비무성(比武星)의 상공을 가로지르는 광선 고속정에서 뛰어내리자, 류 진은 압도적인 풍경에 잠시 숨을 멈췄다. 푸른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기둥들이 우주 항로를 따라 뻗어 있었고, 그 사이를 수없이 많은 비행체들이 유성처럼 오갔다. 고대 무림의 전설에서나 들었을 법한 웅장한 건축물들이 홀로그램 영상처럼 허공에 떠다녔고, 그 아래에는 첨단 기술로 빚어진 도시가 은하수처럼 반짝였다. 무형신권(無形神拳) 문파의 마지막 전승자인 그가, 오로지 고루한 무예만을 지켜온 그가 발을 디딘 곳은 바로 ‘천하제일 비무대회’의 성지, 비무성이었다.
“젠장, 이게 대체 무슨… 천하냐.”
류 진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가 알던 천하는 지평선 너머의 산과 강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곳의 천하는 수많은 은하와 행성계가 뒤섞인, 광활하고도 알 수 없는 공간이었다. 문파의 장로들은 고작 변방 행성계의 작은 분쟁에 휘말려 사라졌을 뿐인데, 이제는 우주 전체의 운명을 건 대회가 벌어진다니. 조상들이 말하던 천하제일인이란 칭호가 이토록 거창한 의미일 줄이야.
그는 가슴 안쪽에 품고 온 낡은 목편을 만졌다. 선대 사부의 유품이자, 이번 대회에 그가 참여하게 된 유일한 이유였다. 목편에는 ‘공허의 그림자’라는 단어와 함께, 비무성에 대한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사부는 임종의 순간, 희미한 목소리로 “그림자를 막을 힘은… 우주 심핵(宇宙心核)에 있다…”는 말을 남겼고, 그가 향할 곳이 바로 비무성이라고 알려주었다.
“후우…”
심호흡을 내쉬며, 류 진은 굳게 걸음을 옮겼다. 발밑에서 반응하는 자기 부상 보도가 그를 비무장 입구로 자동 안내했다. 수천, 수만 명의 인파가 웅성거리는 가운데, 류 진의 시선은 한곳에 고정되었다. 거대한 투명 벽 너머로 보이는 중앙 경기장이었다. 그곳은 시공간을 초월한 듯 고요하고 신성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옆을 지나던 한 무리가 류 진을 힐끗 보며 비웃었다.
“저런 고물 검을 들고 온 놈도 있네. 아직도 구식 무협 시대인 줄 아나 봐.”
그들이 비웃었던 것은 류 진의 허리에 찬 검 때문이었다. 낡고 투박한 검집에 꽂혀 있었지만, 검집 위로 흐르는 희미한 기운은 여느 금속 검과는 달랐다. 류 진은 그들을 무시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경솔하게 ‘기(氣)’를 드러내는 것은 하수나 하는 짓이었다.
입장 등록을 마친 후, 안내 드로이드가 그에게 개인 휴게실을 배정했다. 그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검을 풀고, 목편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좌선(坐禪) 자세로 앉아 호흡을 가다듬었다. 몸 안에 흐르는 ‘기’를 온전히 느끼며, 외부의 소음을 차단했다.
얼마 후, 시스템 알림음이 울렸다.
[천하제일 비무대회, 제1라운드 시작을 알립니다.]
[참가자 ‘류 진’, 제2경기장으로 이동하십시오.]
류 진은 고요히 눈을 떴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의 시작이었다.
***
제2경기장에 들어서자, 시야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홀로그램 영상이 그를 맞이했다. 경기장은 마치 고대 동양의 정원처럼 꾸며져 있었다. 인공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거대한 암벽이 솟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빛으로 만들어진 환영이었다.
상대 선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육신 절반이 기계로 이루어진 사이보그 전사였다. 그의 피부는 금속으로 번들거렸고, 눈에서는 붉은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카이로스’라는 이름이 그의 갑옷에 새겨져 있었다.
“흐음, 구식 무림인인가. 흥미롭군.” 카이로스가 차가운 전자음으로 말했다. “데이터 분석 결과, 당신의 승률은 0.001% 미만이다. 시간 낭비는 피하는 게 좋을 텐데.”
류 진은 대답하지 않고 자세를 취했다. 그의 무형신권은 형(形)이 없되, 모든 형을 포용하는 무공이었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그의 힘을 역이용하며, 그 안에 흐르는 ‘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 그것이 무형신권의 요체였다.
카이로스가 먼저 공격했다. 그의 기계 팔에서 압축된 에너지 블레이드가 튀어나왔고, 그는 육안으로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류 진에게 돌진했다. 번개처럼 빠른 움직임이었다.
류 진은 가볍게 몸을 틀어 공격을 피했다. 블레이드가 그의 코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금속 비린내가 느껴지는 듯했다. 카이로스는 놀란 듯 잠시 멈칫했다.
“예상보다 빠르군. 그러나 데이터는 정확하다.”
카이로스의 팔목에서 소형 충격탄이 연이어 발사되었다. 류 진은 경공(輕功)으로 허공을 밟아 피했다. 충격탄이 바닥에 부딪히자 홀로그램 바닥이 파열하며 잠시 지직거렸다.
‘저 놈의 움직임은 예측 가능해. 패턴이 있어.’
류 진은 상대의 공격을 회피하며 빈틈을 찾았다. 카이로스는 단순히 빠르고 강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살아있는 ‘기’의 흐름이 없었다. 마치 잘 짜인 기계처럼 움직일 뿐이었다.
류 진은 상대가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순간, 한 발짝 내디뎌 카이로스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카이로스는 당황한 듯 팔을 휘둘러 류 진을 밀쳐내려 했다.
하지만 류 진은 이미 그의 팔목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무형신권의 진수를 담은 ‘쇄골장(碎骨掌)’을 펼쳤다. ‘기’가 흐르는 장풍이 카이로스의 기계 팔 안으로 파고들었다.
“크악! 이… 이 에너지는 뭐지?”
카이로스의 기계 팔에서 스파크가 튀었고, 오작동을 일으키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류 진은 그대로 팔을 비틀어 카이로스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금속의 비명과 함께 바닥의 홀로그램이 완전히 깨져 버렸다.
카이로스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일어서려 했다. 그의 시스템이 빠르게 손상 부위를 복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류 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는 팔을 휘둘러 카이로스의 관자놀이를 강하게 때렸다. 내부에 흐르는 기가 그의 중추 시스템을 혼란시켰다.
카이로스의 몸이 경련하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그의 붉은 눈빛이 희미해졌다.
[참가자 ‘류 진’ 승리!]
경기장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예상 밖의 결과였다. 류 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 고장 난 카이로스를 뒤로하고 경기장을 떠났다. 첫 관문을 통과했을 뿐이었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
대회는 계속되었다. 류 진은 매 경기에서 그야말로 ‘이변’을 일으켰다. 나노 슈트를 입고 광선 검을 휘두르는 전사, 텔레파시로 공격하는 외계 종족의 주술사, 거대한 팔을 가진 유전자 변형 전사 등. 류 진은 그들의 모든 첨단 기술과 이능력을 ‘기’의 흐름으로 읽어내고, 무형신권의 예측 불가능한 변화로 제압했다.
그의 명성은 순식간에 비무성 전체에 퍼져나갔다. ‘고대의 무공을 쓰는 미지의 무림인’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그의 경기는 항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준결승. 류 진은 또 다른 강력한 상대와 마주했다. ‘세레나’, 온몸을 은빛 갑옷으로 두른 여성 전사였다. 그녀는 초능력과 무예를 결합한 ‘염력권(念力拳)’의 달인이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물처럼 부드러웠으나, 그녀의 손짓 하나에 주변 사물이 날아가고, 공기가 압축되어 폭발했다.
“이곳에 도착한 이후, 당신만큼 흥미로운 상대는 없었습니다. 류 진.” 세레나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음성은 류 진의 정신을 파고드는 듯했다. “당신의 ‘기’는 참으로 순수하군요. 하지만, 과연 제 염력 앞에서 버틸 수 있을까요?”
그녀가 손을 뻗자, 경기장 바닥의 자갈들이 일제히 류 진을 향해 날아들었다. 마치 수만 개의 총알 같았다. 류 진은 몸을 낮춰 피했지만, 자갈들은 공중에 멈췄다가 다시 류 진을 향해 돌진했다.
‘제기랄, 보통 방식으로는 막기 힘들다.’
류 진은 순간적으로 온몸에 ‘기’를 둘렀다. 그의 피부에서 푸른빛의 보호막이 아른거렸다. 자갈들이 보호막에 부딪히자 파편으로 부서지며 튕겨 나갔다. 세레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오호라, 정신 방벽과 물리 방벽을 동시에 생성하다니. 놀랍군요.”
이번에는 세레나의 눈빛이 변했다. 그녀의 주변 공기가 일렁이더니, 거대한 압력장이 류 진을 덮쳤다. 몸을 짓누르는 중력과 같은 압력에 류 진은 순간적으로 무릎을 꿇을 뻔했다.
‘강하다… 이 압력은 마치 거대한 손으로 짓누르는 것 같아.’
류 진은 이를 악물었다. 무형신권은 ‘흐름’이었다. 외부의 압력에 저항하기보다, 그 압력의 흐름을 읽고 그 사이를 파고드는 것.
그는 중력의 압력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 압력이 가장 약한 지점을 찾아냈다. 그리고 마치 거대한 파도를 가르듯, 몸을 비틀며 전진했다. 그의 발걸음은 느려 보였지만, 멈추지 않았다.
세레나는 놀랐다. 자신의 염력이 완전히 통하지 않는 상대는 처음이었다. 그녀는 팔을 휘둘러 공기 칼날을 날렸다. 보이지 않는 칼날이 류 진의 목을 노렸다.
류 진은 그 순간,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낡은 검은 번쩍이는 금속 대신 희미한 푸른 기운을 띠고 있었다. ‘기’가 실린 검날이 공기 칼날을 정확히 가르며 나아갔다.
“나의 검은 물리적인 형태를 가진 것이 아니다. 오로지 나의 ‘기’가 흐르는 길을 따를 뿐!”
류 진이 외치며 검을 휘둘렀다. 검에서 뿜어져 나온 ‘검기(劍氣)’가 폭포수처럼 세레나를 향해 쏟아졌다. 세레나는 황급히 염력 방벽을 세웠지만, 검기의 파동은 그녀의 방벽을 뚫고 몸을 강타했다.
“크윽…!”
세레나는 비틀거렸다. 그녀의 은빛 갑옷 곳곳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염력으로 지탱하던 자세가 흔들리자, 류 진은 검을 거두고 빠르게 세레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정신이 흐트러졌을 때가 가장 취약한 법!”
류 진의 주먹이 세레나의 명치에 꽂혔다. 무형신권의 ‘무영권(無影拳)’. 타격과 동시에 ‘기’를 흘려 넣어 상대의 내부를 교란하는 기술이었다. 세레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참가자 ‘류 진’ 승리!]
결승 진출이었다. 류 진은 검을 다시 검집에 꽂으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제 마지막 상대만이 남았다.
***
결승전. 류 진은 중앙 경기장의 한복판에 섰다. 이곳은 그 어떤 홀로그램 효과도 없이, 오직 순수한 초경량 합금으로 이루어진 투박한 원형 경기장이었다. 천장에서는 거대한 에너지 빔이 아래로 쏟아져, 경기장 전체를 신비로운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 선 상대는… ‘카이로스’였다. 제1라운드에서 그가 쓰러뜨렸던 사이보그 전사. 하지만 지금의 카이로스는 달랐다. 온몸이 더욱 강력한 합금으로 보강되어 있었고, 눈에서는 이전보다 훨씬 강렬한 붉은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하나의 전쟁 병기 같았다.
“놀랍군, 류 진. 당신이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 카이로스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더 기계적이고 차가웠다. “나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데이터를 완전히 분석하여, 모든 취약점을 보완했다. 이제 나의 승률은 99.999%다. 당신은 더 이상 내 상대가 되지 않는다.”
류 진은 카이로스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의 ‘기’의 흐름으로 카이로스의 몸 안에 흐르는 에너지 회로와 강화된 신경계를 읽어냈다. 이전보다 훨씬 정교하고 강력했다.
“네가 아무리 강해져도, 너는 결국 기계일 뿐이다. 너에게는 살아있는 ‘기’가 없어.” 류 진이 침착하게 말했다. “결국 너는 정해진 패턴 안에서 움직일 뿐. 무형신권은 그 패턴을 깨부수는 무공이다.”
“무의미한 정신론이군. 나는 오직 승리 데이터만을 따른다!”
카이로스가 돌진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와 파괴력이었다. 그의 주먹에서는 강렬한 플라즈마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고, 그의 발길질은 경기장 바닥에 움푹 패인 자국을 남겼다.
류 진은 피하고, 막고, 흘려보냈다. 카이로스의 공격이 너무나도 빠르고 강해, 류 진은 거의 방어에만 집중해야 했다. 카이로스의 주먹이 그의 팔을 스치자, 류 진의 팔이 저릿할 정도로 큰 충격이 전달되었다.
‘이대로는… 안 돼.’
류 진은 생각했다. 카이로스는 자신의 모든 약점을 보완하고, 류 진의 무공을 분석하여 최적화된 방어 시스템을 구축했다.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그에게 흠집조차 낼 수 없을 터였다.
류 진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온몸의 ‘기’를 끌어모았다. 심장에서 시작된 뜨거운 ‘기’가 혈관을 타고 손끝과 발끝으로 뿜어져 나갔다. 그의 몸에서 희미하게 푸른 기운이 번져나왔다.
카이로스가 다시 플라즈마 주먹을 날렸다. 류 진은 피하는 대신, 왼팔로 그 주먹을 받아쳤다. ‘기’로 강화된 팔이 플라즈마 에너지를 흡수하는 듯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카이로스의 가슴팍을 강하게 밀쳤다.
“무형신권, 역류장(逆流掌)!”
류 진의 손바닥에서 강력한 ‘기’의 파동이 뿜어져 나와 카이로스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카이로스의 온몸에서 스파크가 터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데이터에 없던 공격이다! 나의 시스템이…!”
카이로스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류 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온몸의 ‘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려, 다시 한번 카이로스의 몸에 ‘기’의 파동을 흘려보냈다. 마치 거대한 해일이 방파제를 부수듯, 류 진의 ‘기’가 카이로스의 강화된 시스템을 파괴했다.
카이로스의 몸이 심하게 요동치더니, 이내 엄청난 섬광과 함께 폭발했다. 경기장 전체가 흔들렸다. 폭발의 여파가 가라앉자, 그 자리에는 새까맣게 그을린 잔해만이 남아 있었다.
[최종 승리자, 참가자 ‘류 진’!]
환호성이 비무성 전체를 뒤흔들었다. 천하제일 비무대회의 진정한 승리자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
승리자만이 들어설 수 있다는 ‘우주 심핵’의 방.
류 진은 황홀경에 빠진 듯 그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를 올려다보았다. 방의 중앙에는 우주 만물의 에너지를 응축한 듯한 거대한 푸른색 수정이 빛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우주 심핵’이었다. 방의 벽면에는 수많은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류 진은 그것이 선대 사부의 목편에 새겨져 있던 문양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심핵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한 존재가 형체를 갖추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존재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얼굴은 없었고 오직 순수한 빛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승리자여, 마침내 이곳에 도달했군. 나는 심핵의 수호자다.” 빛의 존재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수많은 별들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너는 강하다. 너의 ‘기’는 순수하고 강력하다. 이제 너는 ‘우주 심핵’을 다룰 자격을 얻었다.”
“다룬다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류 진이 물었다. “공허의 그림자를 막기 위해선, 이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겁니까?”
“공허의 그림자는 파괴로 막을 수 없다. 그것은 무(無)의 공간에서 온 존재이기 때문이다.” 수호자가 답했다. “공허의 그림자는 존재하는 모든 ‘기’를 탐한다. 그것을 막을 유일한 방법은… ‘기’의 흐름을 균형 잡고, 우주 전체의 조화를 되찾는 것이다.”
류 진은 눈을 감았다. 사부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했다. ‘그림자를 막을 힘은… 우주 심핵에 있다.’ 사부는 힘의 사용법까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류 진은 직감했다. 무형신권의 진정한 가르침, 즉 모든 것을 포용하고 조화롭게 만드는 ‘흐름’이야말로 이 심핵을 다루는 열쇠라는 것을.
그는 조용히 심핵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뻗어, 심핵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에 자신의 ‘기’를 흘려보냈다. 그의 몸 안의 모든 ‘기’가 심핵의 거대한 에너지와 공명하기 시작했다.
류 진의 몸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기’와 심핵의 에너지가 만나,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빛은 점점 더 강렬해지더니, 마침내 방을 뚫고 우주로 뻗어나갔다.
그 순간, 멀리 떨어진 은하계 곳곳에서 불안정했던 ‘기’의 흐름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행성들을 위협하던 에너지 폭풍이 잦아들고, 생명력을 잃어가던 별들이 다시 빛을 찾기 시작했다. ‘공허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공간들이 서서히 물러나고, 그 자리에 생명의 활력이 되살아났다.
류 진은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이전보다 더욱 깊고 맑았다. 그는 심핵을 다루어 ‘공허의 그림자’를 완전히 소멸시킨 것은 아니었다. 대신, 우주 전체에 ‘기’의 균형과 조화를 되찾아, 그림자가 더 이상 침범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었다. 마치 거대한 바다의 물결을 잠재우듯.
“천하의 운명은, 파괴가 아닌 조화에 있음을…” 류 진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수호자는 고요히 류 진을 바라보았다. “너는 현명하군. 이제 너는 새로운 천하의 수호자가 되었다. ‘공허의 그림자’는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네가 있는 한, 천하는 균형을 잃지 않을 것이다.”
류 진은 심핵에서 손을 떼었다. 그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 그는 그가 알던 작은 ‘천하’를 넘어, 수많은 별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천하’의 운명을 짊어진 무림인이 되었다. 그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무형신권의 가르침과, 사부의 유품인 낡은 목편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그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새로운 천하를 지켜나갈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