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미스터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어둠이 짙게 깔린 방 안, 공기마저 얼어붙을 듯 차가웠다. 책상 위 모니터에서는 현란한 조명 아래 열정적으로 연설하는 남자의 모습이 비쳤다. 강현우. 전 세계가 주목하는 혁신적인 기업의 젊은 CEO. 그의 얼굴에는 성공과 자신감이 넘실댔다. 환하게 웃는 그를 지켜보는 시선은, 그러나, 조금의 온기조차 담고 있지 않았다.

지훈은 턱을 괸 채 미동도 없이 화면을 응시했다. 화면 속 현우는 마치 다른 세상의 사람 같았다. 화려한 슈트, 완벽하게 세팅된 헤어스타일, 능숙하게 청중을 휘어잡는 목소리. 모든 것이 그와 어울렸다. 한때 이 모든 영광이 자신의 것이 될 뻔했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수많은 이들이 그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 열광했다.

“‘미래를 위한 혁신’. 정말이지 그럴듯한 이름이야.”

지훈의 입술 사이로 조용한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음성은 메마르고 거칠었다. 과거의 자신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음색이었다.

모니터 속 현우는 강단에서 내려와 사람들의 환호 속에 걸어 나갔다. 그를 둘러싼 경호원들의 모습이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지훈은 시선을 움직여 모니터 옆에 놓인 낡은 사진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십 년도 더 된 사진 속에는 앳된 얼굴의 두 청년이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활짝 웃고 있었다. 한 명은 지훈, 다른 한 명은 현우였다. 꿈을 이야기하며 밤새 술잔을 기울이던 시절의 현우는, 지금의 현우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지훈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자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 우정은 마치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것도 가장 밑바닥부터,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강현우. 넌 그날 밤 내가 느꼈던 절망의 깊이를 평생 이해하지 못할 거야.”

지훈은 사진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손끝에서부터 다시금 그때의 분노가 차오르는 듯했다.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핏줄이 터질 듯이 욱신거렸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때 자신은 겨우 스물여섯이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젊은 천재 개발자. 밤낮없이 매달려 완성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그의 모든 것이었다. 혁신적인 데이터 분석 능력, 예측 불가능한 패턴 인식, 기존의 모든 시스템을 능가하는 속도. 그는 확신했다. 이것이 미래를 바꿀 열쇠가 될 것이라고.

그리고 현우는 그 열쇠를 훔쳐 달아났다.

그때의 기억은 지훈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새겨져 있었다. 마지막 발표를 며칠 앞둔 밤이었다. 함께 밤샘 작업을 하던 현우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지훈은 샤워를 하러 갔다. 돌아왔을 때, 현우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흔적도 없이. 그리고 그의 노트북도, 모든 데이터도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다음 날, 현우는 지훈의 알고리즘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했다. 완벽하게 위조된 코드와 서류, 그리고 오랜 기간 철저히 준비된 듯한 시나리오가 지훈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지훈은 표절범으로 몰렸고, 데이터 도둑으로 낙인찍혔다. 그의 모든 주장과 증거는 현우가 미리 파놓은 함정에 의해 힘을 잃었다. 모든 사람들이 지훈을 비난했고, 그가 몸담았던 연구소마저 등을 돌렸다. 세상은 그를 버렸다.

그로부터 7년. 지훈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았다.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내며, 그는 오직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해 나아갔다. 복수. 강현우가 자신에게 행한 모든 것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것. 아니, 그보다 더 처절하게.

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창밖으로 강현우의 이름이 새겨진 거대한 빌딩의 불빛이 번쩍였다. 저 빛이 영원할 것 같지? 착각하지 마.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은 결국 모래성일 뿐이야.

그는 서랍을 열어 작고 정교한 장치 하나를 꺼냈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였다. 금속성 재질의 차가운 감촉이 손가락 끝에 닿았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듯한 미세한 센서가 박혀 있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오랜 시간 동안 지훈이 설계하고, 만들고, 또다시 수정했던 거대한 계획의 아주 작은 첫 조각이었다.

밤새 잠 못 이루는 것은 여전했다. 하지만 더 이상 절망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복수에 대한 집념이었다.

“그래, 강현우.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릴 때까지, 난 널 지켜볼 거야.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

그는 장치를 주머니에 넣고 방을 나섰다. 복도의 희미한 불빛 아래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림자는 마치 사냥감을 쫓는 맹수처럼 거대하고 위협적인 형상으로 일렁였다.

***

다음 날 아침, 강현우는 평소와 다름없이 완벽한 모습으로 자신의 초고층 빌딩 최상층에 위치한 집을 나섰다. 최신형 자율주행 차가 부드럽게 대기하고 있었다. 그는 차에 오르며 비서에게 지시했다.

“오늘 오전 회의 자료, 다시 한번 확인해 둬. 아주 작은 오류도 용납할 수 없어.”

“네, 사장님. 완벽하게 준비했습니다.”

비서의 목소리는 신뢰로 가득 차 있었다. 현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주변은 항상 이렇게 완벽하게 돌아가야 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발아래 펼쳐져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손 안에 있었다.

차는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여유롭게 아침 뉴스를 확인하던 현우는 문득, 자신의 휴대전화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진동이 아닌, 아주 작은 전기적 충격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휴대전화를 들어 올렸다. 이상은 없었다.

‘기분 탓인가.’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시 뉴스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그가 알지 못하는 새, 그의 차 바닥, 좌석 밑 아주 은밀한 곳에는 지훈이 밤새 몰래 설치해둔 작은 장치가 완벽하게 위장되어 박혀 있었다. 장치의 미세한 센서는 현우의 모든 움직임, 그의 차가 지나치는 모든 위치 정보를 조용히 수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어딘가로 전송되고 있었다.

***

한 시간 뒤, 지훈은 차가운 금속 의자에 앉아 여러 개의 모니터를 응시했다. 화면 한가운데에는 현우의 자율주행 차가 도시를 가로지르는 경로가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초록색 점은 현우의 차, 붉은색 점은 그가 방문할 다음 장소를 의미했다.

옆 모니터에는 현우의 일정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그 모든 정보는 지훈이 지난 몇 달간 현우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혹은 그의 공개된 일정을 역추적하여 얻어낸 것들이었다. 현우는 철저하게 자신을 보호했지만, 지훈은 그보다 더 집요했다.

“오전 회의는 10시 30분, ‘미래 혁신 센터’에서.”

지훈은 중얼거렸다. 그의 눈동자에 미세한 섬광이 스쳤다. 그는 태블릿을 집어 들고 손가락으로 화면을 몇 번 두드렸다. 복잡한 코드들이 순식간에 펼쳐졌다.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오직 차가운 결의만이 깃들어 있을 뿐이었다.

몇 분 후, 현우의 차가 막 빌딩 지하 주차장에 진입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차 안의 모든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정지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부 조명이 미세하게 깜빡거렸고, 에어컨 바람이 멈췄다가 다시 시작했다. 계기판의 숫자들도 잠시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이게… 무슨 일이지?”

현우는 당황하여 비서를 돌아보았다. 비서 역시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모르겠습니다, 사장님. 이런 적은 처음인데….”

차가 완전히 멈춰서고 문이 열렸다. 현우는 찜찜한 기분을 애써 떨쳐내며 차에서 내렸다.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방금 전 찰나의 순간, 지훈이 심어둔 아주 작은 오류가 그의 차 내부 시스템에 침투하여 미세한 데이터 흔적을 남겼다는 것을. 그 흔적은 마치 작은 바이러스처럼, 현우의 디지털 세상에 첫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현우가 경호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 모습을 모니터로 확인한 지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기분은 어때, 현우? 아직은 미풍에 불과할 거야. 하지만 그 미풍이 점차 거대한 폭풍이 되어 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날이 올 거다. 네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지훈은 손에 들린 태블릿 화면을 껐다. 방 안은 다시 깊은 어둠에 잠겼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지훈의 눈빛은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길고 긴 밤의 시작이었다. 아니, 강현우에게는 악몽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