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독립적인 단편 소설

새카만 화면이 시야를 잠식했다. 삐- 하는 단조로운 경고음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진우는 이를 악물었다. 한때 심장이 뛰던 자리에는 싸늘한 쇳덩이가 박혀 맥동하고 있었다. 온몸의 신경이 그 차가운 금속을 중심으로 재배치된 듯했다. 그는 지금, 2077년의 서울, 아니, 서울이었다고 불리던 폐허의 잔해 위에 서 있었다. 200년 전의 ‘나’가 실수로 가동시킨 낡은 시간 도약 장치가 그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그의 임무는 원래 과거의 데이터를 회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에게 남은 유일한 임무는, 단 하나.

생존.

하늘은 언제나 병든 환자의 눈처럼 뿌옇고 탁했다. 햇빛은 간신히 그 두꺼운 먼지층을 뚫고 내려와, 마치 죽어가는 별빛처럼 힘없이 대지를 비추었다. 먼지는 발걸음마다 푹푹 파고들었다. 마스크 안에서 들이쉬는 공기는 금속과 썩은 냄새, 그리고 무언가 알 수 없는 화학 물질의 역한 혼합물이었다.

“젠장… 언제까지 이럴 건데.”

진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손에 쥔 녹슨 철근은 유일한 무기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거미처럼 벽을 기어 다니던 역겨운 돌연변이 쥐들을 간신히 쫓아낸 참이었다. 놈들은 더 이상 쥐가 아니었다. 개의 몸통에 여덟 개의 눈,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끈적이는 타액을 흘리는 이빨. 이젠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여전히 위장 속을 뒤집어 놓는 혐오감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그의 등에는 낡고 뜯어진 배낭이 매달려 있었다. 안에는 정수 필터 몇 개, 에너지 바 서너 개, 그리고 고장 난 홀로그램 지도가 전부였다. 이 넓은 폐허에서 이 정도는 어린아이의 소꿉장난 도구에 불과했다.

진우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 사이를 조심스럽게 헤치고 나아갔다. 한때 화려한 간판이 빛나던 건물들은 이제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채 하늘을 향해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그는 한때 번화했던 상업 지구의 흔적을 발견했다. ‘은하수 백화점’이라고 쓰여 있던 간판은 이제 ‘은하수 백’까지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여기라면… 뭔가 건질 게 있을지도.”

희미한 희망이 그의 가슴을 스쳤다. 백화점이라면 식량이나 물, 아니면 하다못해 쓸만한 도구라도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그만큼 위험할 것이었다. 다른 생존자들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더 크고 끔찍한 돌연변이들이 둥지를 틀고 있을 수도 있었다.

내부로 들어서자 싸늘한 냉기가 진우를 맞았다. 유리창은 모두 깨져 있었고, 진열대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한때 화려했을 옷가지들은 이제 먼지와 곰팡이로 뒤덮인 누더기에 불과했다. 진우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시선은 바닥에 널브러진 잔해들 사이를 훑었다.

“젠장, 쥐새끼들만 가득하잖아.”

거대한 유리 진열장 안에서 해골이 된 마네킹이 자신을 노려보는 것 같았다. 진우는 스산한 기분에 몸서리쳤다. 그는 식료품 코너였을 법한 곳으로 향했다. 바닥에는 찌그러진 통조림 캔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대부분 녹슬거나 내용물이 부패한 채였다. 그는 그 중에서 비교적 온전해 보이는 캔 몇 개를 주워들었다. 부디 내용물이라도 멀쩡하기를 바라면서.

그때였다.

– 끼이익… 찌직!

어디선가 찢어지는 듯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진우는 재빨리 몸을 숨겼다. 소리는 천장에서 나는 것 같았다. 그는 숨을 죽인 채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먼지 쌓인 천장 덕트 위에서, 녹슨 강철 다리를 가진 덩치 큰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거미와 지네를 합쳐놓은 듯한 형태였다. 여섯 개의 강철 다리가 천장 덕트를 움켜쥐고 느리게 기어 다니고 있었다. 몸통은 낡은 기계 부품과 유기체가 뒤섞여 있었다. 가장 끔찍한 것은, 그 기계의 한가운데에 한때 인간이었을 법한 존재의 해골이 박혀 있다는 점이었다. 머리 부분에는 붉은빛이 깜빡이는 렌즈가 박혀 사방을 훑고 있었다.

진우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저런 괴물은 처음이었다. 저건 분명 이 폐허에서 지능을 가지고 움직이는 ‘정찰병’ 같은 존재일 터였다. 들켰다간 목숨이 위험하다.

‘빌어먹을. 이런 게 여기 있을 줄이야.’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바짝 웅크렸다. 괴물은 느리지만 끈질기게 주변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 렌즈가 진우가 숨어 있는 기둥 쪽으로 향하는 순간, 진우는 직감했다.

‘도망쳐야 해!’

더 이상 숨어 있을 수 없었다. 진우는 재빨리 몸을 낮추고 옆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발소리는 먼지 쌓인 바닥에 탁한 울림을 만들었다.

– 끼이익! 끄아아악!

괴물이 진우를 발견했다! 렌즈가 붉게 번쩍이며, 괴물은 비명을 질렀다. 녹슨 강철 다리들이 천장을 박차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진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백화점의 유리창이 깨져 나간 외부로 향하는 길목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젠장, 젠장, 젠장!”

그의 폐가 터질 것 같았다. 허벅지 근육은 비명을 질렀다. 괴물의 그림자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녹슨 강철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등 뒤에서 섬뜩하게 울렸다.

진우는 간신히 출구 쪽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순간, 옆구리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찢어지는 듯한 아픔과 함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괴물의 강철 다리가 그의 옆구리를 꿰뚫고 지나간 것이었다.

“크윽…!”

그는 바닥에 고꾸라졌다. 옆구리에서는 뜨거운 피가 솟구쳤다.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서, 진우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았다. 백화점 출구 바로 옆, 부서진 보석상 진열대 뒤편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어린아이였다.

흙먼지로 뒤덮인 작은 얼굴, 찢어진 옷을 입은, 열 살도 채 되어 보이지 않는 여자아이. 아이는 겁에 질린 눈으로 진우와 괴물을 번갈아 보다가, 진우의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 몸을 숨겼다.

‘젠장, 왜 하필 지금…’

진우는 절망했다. 이 상황에서 아이를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아이의 눈빛이 뇌리에 박혔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동시에 모든 희망을 잃은 듯한 그 눈빛.

– 끼이이익…!

괴물이 진우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마치 먹잇감을 가지고 놀 듯이. 진우는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살아남아야 했다. 자신이 대체 왜 이 끔찍한 미래로 떨어졌는지 알아내고, 되돌아가야 했다.

그는 옆구리의 통증을 무시하고 팔을 뻗어 바닥에 떨어진 철근을 움켜쥐었다. 피로 축축한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이 빌어먹을 고철 덩어리 같으니라고!”

진우는 괴물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싸울 작정이었다. 그의 눈빛은 맹수처럼 번뜩였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서는 다른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시간 도약 장치…!’

그가 200년 전 과거에서 가져온, 폐기되어야 할 구형 장비. 그것은 그의 등 뒤에 있는 배낭 안에 고스란히 있었다. 충격으로 손상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작동만 한다면…

괴물의 다리가 진우의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다. 진우는 간신히 몸을 비틀어 피했지만, 동시에 배낭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안에서 무언가 굴러 나왔다.

그것은 낡은 홀로그램 프로젝터처럼 생긴 장치였다. 진우가 타고 온 시간 도약 장치였다. 다행히도 심각한 손상은 없어 보였다. 다만, 빨간색 경고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 에러 코드: 시간 좌표 불안정. 재조정 필요.

진우는 재빨리 장치를 주워들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빠른 계산이 이루어졌다. 이 장치는 목적지를 정확히 설정하지 않으면 불특정한 시공간으로 튕겨 나갈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괴물이 다시 공격해왔다. 이번에는 모든 다리를 한꺼번에 휘두르며 진우를 압박했다. 진우는 간신히 충격을 버티며 시간을 벌었다. 한 손으로는 철근을 휘둘러 괴물의 다리를 막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필사적으로 장치의 조작 패널을 눌렀다.

“빨리, 빨리…!”

그의 손가락은 피투성이였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장치에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렌즈 부분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였다.

– 시간 좌표 재설정 중…

괴물의 강철 다리가 진우의 어깨를 강타했다. 뼈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꿰뚫었다. 진우는 비명을 삼켰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마지막으로 패널의 중앙 버튼을 있는 힘껏 눌렀다.

– 시간 좌표 설정 완료. 도약 시퀀스 시작.

장치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 빛은 백화점 내부를 가득 채웠다. 괴물은 혼란스러운 듯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진우는 빛 속에서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아이는 여전히 겁에 질린 채 진우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 진우는 찰나의 후회를 느꼈다. 이 아이를… 혼자 남겨두고 가는 것인가.

하지만 되돌릴 수 없었다. 이미 시간의 흐름은 그를 붙잡았다.

눈부신 섬광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차가운 쇳덩이와 같은 감각이 다시 한번 그의 심장을 잠식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검은 정적 속으로 사라졌다.

***

진우는 눈을 떴다.
폐허가 된 백화점 천장이 아니라, 하늘이 보였다. 푸른 하늘.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투명한 하늘. 그의 코끝에는 흙먼지와 썩은 냄새 대신, 풀과 흙의 싱그러운 냄새가 스며들었다.
옆구리의 통증은 여전했지만, 그토록 심하지는 않았다. 그는 급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숲 속에 있었다.

무성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었고, 이름 모를 새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발아래에는 부드러운 흙과 낙엽이 깔려 있었다. 방금 전까지 그를 쫓던 괴물도, 죽어가는 도시의 잔해도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게… 대체…”

진우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손에 여전히 쥐어져 있는 낡은 시간 도약 장치였다. 그리고 그 옆에,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홀로그램 지도 조각.

지도는 낡았지만, 희미하게 ‘Green Zone’이라고 쓰여 있는 녹색 영역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녹색 영역 한가운데, 아주 작은 점으로 ‘현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게… 성공한 건가?”

진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저 폐허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작위로 시간 좌표를 찍었을 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아이의 눈빛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살려달라는, 그 마지막 절규가 그의 무의식에 어떤 목적지를 새겨 넣었을지도 몰랐다.

그때였다. 숲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우는 본능적으로 철근을 고쳐 쥐었다. 그는 이곳이 과거인지, 아니면 또 다른 미래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곳 역시, 그의 생존기는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는 이곳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폐허에서 보았던 그 아이의 눈동자처럼, 절망 속에서도 반짝이는 작은 빛을.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다. 상처는 아팠지만, 그의 심장은 다시금 뜨겁게 뛰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목적지가 있었다. 살아남고, 찾아야 할 것들이 있었다.
새로운 생존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