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햇살이 창문 너머로 쏟아져 들어오던 토요일 오후였다. 정해담은 익숙한 동네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갓 구운 슈톨렌 한 조각과 캐모마일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슈톨렌 위에 소복이 쌓인 눈처럼 하얀 슈가파우더를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포크로 섬세하게 잘라 입에 넣었다. 달콤하고 촉촉한 빵이 입안 가득 퍼지는 동안, 그의 눈은 거리 풍경 대신 펼쳐진 신문 지면의 십자말풀이에 머물러 있었다. ‘가장 깊은 바다’ 정답은? ‘마리아나 해구’겠지. 그는 연필로 사뿐히 칸을 채웠다. 이런 소소한 퍼즐이 좋았다. 명쾌하고, 답이 있는. 삶의 대부분은 그렇지 않지만, 적어도 이런 순간만큼은 그랬다.

그때,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강형사’라는 이름이 액정에 선명했다. 해담은 평소처럼 느릿하게 차 한 모금을 더 마신 뒤, 차분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강형사님. 또 무슨 복잡한 문제를 들고 오신 건가요? 전 지금 아주 중요한 십자말풀이를 풀고 있는 중이라서요.”

수화기 너머 강형사의 목소리는 늘 그랬듯 다급함과 한숨이 뒤섞여 있었다.

“정 탐정님! 농담하실 때가 아닙니다! 이번엔 진짜… 정말 난감한 사건입니다! 어서… 어서 이쪽으로 좀 와주세요! 어르신 댁입니다!”

해담은 천천히 슈톨렌 한 조각을 마저 비우고, 캐모마일 잔을 내려놓았다. ‘어르신 댁’이라는 말에 그의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이곳 동네에서 ‘어르신’이라 불리는 이는 대개 한 분뿐이었다. 고즈넉한 한옥 마을 깊숙이 자리한, 동양화의 대가 오선생님 댁. 그는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계산대 위에 가지런히 올려둔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평화로운 오후는 그렇게 예상치 못하게 방향을 틀었다.

오선생님 댁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마당은 경찰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가득했다. 노란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고, 강형사는 초조하게 이마를 짚은 채 해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 탐정님, 이쪽입니다.”

강형사는 해담을 이끌고 낡은 목조 문 앞에 섰다. 문고리에는 굳게 채워진 자물쇠가 걸려 있었고, 문틈 사이로는 붉은 물감이 얼룩진 듯한 흔적이 어렴풋이 보였다.

“피입니다. 새벽에 비명 소리가 들렸다는 이웃의 신고가 있었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강제로 열었더니… 이런 참혹한 광경이…”

강형사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해담은 아무 말 없이 문 안으로 들어섰다. 퀴퀴한 나무 냄새와 피 냄새, 그리고 낯선 향기가 뒤섞인 공기가 후각을 자극했다. 방 안은 생각보다 더 단출했다. 한쪽에 낡은 서안과 붓통, 벼루가 놓여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오래된 병풍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쓰러져 있는 오선생님의 시신이 있었다. 등에 깊은 상처가 나 있었고, 주변 바닥에는 붉은 얼룩이 흥건했다.

강형사는 한숨을 쉬며 설명을 이어갔다.

“문은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고, 창문들도 모두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심지어 창밖에는 방범용 쇠창살까지 설치되어 있고요. 유일한 출입구인 이 문은 밖에서 자물쇠로 잠겨 있었으니… 그 누구도 안으로 들어갈 수도,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완벽한 밀실이었습니다. 게다가 오선생님은 평소 지병이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돌아가실 분이 아니시거든요.”

해담은 강형사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시신에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 대신 그는 천천히 방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붓통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붓들, 서안 위 먼지 한 톨 없는 종이, 병풍의 섬세한 그림, 심지어 방바닥의 나뭇결까지. 그의 시선은 마치 카메라의 초점이 움직이듯,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모든 것을 담아냈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문득 방 한쪽에 놓인 작은 화분으로 향했다. 작고 푸른 잎들이 돋아난 식물이었다. 흙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고, 잎사귀 위에는 옅은 먼지가 앉아 있었다.

“강형사님, 이 화분은 누가 가져다 놓은 겁니까?” 해담이 나직이 물었다.

강형사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듯 눈을 깜빡였다.

“화분이요? 음… 오선생님 댁에 원래 있던 겁니다. 특별히 누가 가져다 놓은 건 아닐 텐데요.”

“그렇군요.” 해담은 더 묻지 않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은 잠시 창문 밖을 응시하더니, 이내 다시 방 안쪽, 특히 벽면의 특정 부분을 훑었다.

“이상하지 않나요?” 해담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평온했지만, 그 안에는 미세한 흥미로움이 실려 있었다.

“뭐가 말입니까?” 강형사가 다급하게 물었다.

해담은 그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방 안의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퀴퀴한 냄새와 피 냄새, 그리고 아까 맡았던 낯선 향기. 그 모든 것이 그의 뇌리에서 정교하게 분석되는 듯했다.

“이 방 안의 모든 것은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해담이 눈을 뜨며 말했다. 그의 눈빛은 아까의 평온함 속에서 날카로운 빛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이 밀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는 조용히 돌아서서, 방 한쪽에 놓인 작은 유리컵을 집어 들었다. 컵 안에는 물기가 거의 없는 얼음 조각 몇 개가 녹아 있었다. 해담은 그 컵을 손바닥으로 감싸 쥐었다. 차가운 온기가 그의 손끝에 전해졌다.

“밀실. 완벽해 보이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죠. 특히 인간이 만든 것 중에는 더더욱요.”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마치 복잡한 퍼즐의 첫 조각을 찾아낸 사람의 미소 같았다. 강형사는 그 미소를 보며 왠지 모를 안도감과 동시에 더 큰 미궁에 빠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럼 범인은요? 대체 어떻게…?”

해담은 강형사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컵 속의 녹아버린 얼음을 말없이 바라봤다. 얼음은 액체가 되어 컵 바닥에 고여 있었다. 그는 이내 컵을 내려놓고, 창문으로 다가섰다. 쇠창살 너머로 보이는 푸른 하늘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세상 모든 일에는 흔적이 남기 마련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어딘가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표정으로 섰다. 마치 이미 모든 것을 꿰뚫어 본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