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혁, 설마 또 지각이냐? 너 오늘 마력 제어 실습 평가 있는 날이잖아!”
이수아의 목소리가 귀에 박히자마자, 나는 반사적으로 어깨에 걸친 홀로그램 백팩의 스트랩을 고쳐 쥐었다. 오전 8시 50분, 아르카나 마법학원의 중앙 홀 시계는 붉은색 숫자를 깜빡이며 징벌적 지연을 경고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아치형 홀은 매일 아침 수천 명의 학생들이 뿜어내는 활기와 에테르 입자로 번쩍였지만, 지금 내 눈에는 오직 저 멀리 보이는, 교수님들의 사무실 복도로 향하는 입구만이 보였다.
“5분 남았어! 제발, 오늘은 좀 봐줘라, 수아!”
나는 인파 속을 헤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르카나 학원.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엘리트 교육기관. 공중을 유영하는 돔형 교실, 개인별 맞춤형 인공지능 비서, 마나 핵융합 기술을 기반으로 한 최첨단 마법 장치들. 이 모든 게 ‘마법’이라는 이름 아래 구축된 과학의 정점이었다. 보통의 고등교육기관과는 차원이 다른, 마치 미래 세계에서 온 듯한 이곳의 시설들은 언제나 나를 압도하곤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완벽함 뒤에 도사린 어딘가 위화감 드는 공허함이랄까, 알 수 없는 낯선 감각이 항상 내 주변을 맴돌았다.
복도를 가로질러 마력 제어 실습실이 있는 D동으로 향하는 길은 늘 그렇듯 발광하는 에너지 라인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천천히 움직이는 투명한 이동식 플랫폼에 올라타자, 옆에서 헐떡이며 따라붙은 수아가 나를 흘겨봤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오늘은 진짜 교수님한테 찍히겠네. 너 마력 불균형 때문에 징계받을 뻔한 거 잊었어?”
“그러니까 오늘은 잘해야지!” 나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발악하고 있었다. 마력 불균형. 그건 아르카나 학원 학생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이 학원은 타고난 마법적 재능뿐만 아니라, 그걸 고도로 통제하고 활용할 수 있는 이성적인 능력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으니까. 감정적 동요는 곧 마력 폭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학원의 불문율이었다.
“어휴, 김지혁. 너 그러다 지하에 보내진다.” 수아가 혀를 찼다.
지하. 그 단어가 내 귀에 꽂히는 순간, 등골에 싸늘한 한기가 스쳤다. 아르카나 학원의 학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금기의 영역. ‘지하’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학원 건물 아래에 끝없이 펼쳐져 있다는 미지의 구역이자, 학칙 위반이나 마력 통제 불능으로 인해 징계받은 학생들이 ‘재교육’을 받으러 간다는 곳이었다. 공식적인 발표는 ‘에너지 코어 관리 구역’ 또는 ‘고대 아르카나 문헌 보관소’였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괴이한 소문이 무성했다.
‘지하에 내려간 학생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그곳에서는 비명 소리가 들린다.’
‘몸이 뒤틀린 채로 끌려가는 걸 봤다는 목격담도 있다.’
물론 대부분은 시험 기간에 스트레스받은 학생들이 지어낸 헛소리라고 치부했지만, 그 소문들이 너무나도 일관적이고 섬뜩해서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었다.
“하필 그 말을 왜 지금 하냐…” 나는 괜히 투덜거렸다.
플랫폼은 D동 최상층의 실습실 앞에 멈췄다. 우리는 서둘러 내렸다. 이수아는 “파이팅!”이라는 말과 함께 제 갈 길을 갔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실습실 문을 열었다. 다행히 교수님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간신히 자리에 앉아 숨을 돌리자, 심장이 쿵쾅거렸다.
실습은 무사히 마쳤다. 어찌어찌 간신히 평균 점수를 넘겼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린 나는,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텅 빈 복도로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D동 복도 끝에 있는 비상구 쪽에서 희미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웅- 찌직-.’ 불규칙하고 긁히는 듯한 소리였다.
“뭐지?”
평소라면 신경도 쓰지 않고 지나쳤겠지만, 수아의 ‘지하’ 이야기가 맴돌아서일까, 괜스레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했다. 비상구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문 위에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붉은 홀로그램 경고가 선명했지만, 소리는 점점 더 또렷해지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기계가 마찰하며 내는 소리 같기도 했고, 정체 모를 무언가가 발버둥 치는 소리 같기도 했다.
나는 천천히 문에 귀를 댔다. 홀로그램 경고는 내 존재를 인식했는지, ‘경고! 접근 금지 구역입니다!’라는 기계음성으로 바뀌었지만, 나는 무시했다. 소리의 출처는 분명히 문 너머였다. 희미하게, 금속이 긁히는 소리 사이로, 아주 작지만 분명한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흐읍… 흐으읍…”
숨을 들이쉬는 소리. 그것도 아주 고통스럽게, 헐떡이는 듯한 숨소리였다. 인간의 숨소리… 그것도 누군가 억지로 참고 있는 듯한, 깊은 고통에 잠식된 소리였다. 내 심장이 다시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소문의 ‘지하’가 떠올랐다.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며 문고리를 잡았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 잠겨 있었다. 강제로 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명백했다. 누군가 저 문 너머에 갇혀 있거나, 혹은 어떤 끔찍한 일에 휘말려 있는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
그 순간,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화들짝 놀라 손을 떼고 황급히 몸을 숨겼다. 복도 모퉁이에서 나타난 것은 경비용 드론이었다. 붉은 감지 센서를 번뜩이며 다가오는 드론은 나를 스캔하더니, 이내 금지 구역 앞에서 멈춰 서서 무언가를 탐지하는 듯했다. 드론의 스캔 파장이 비상구 문을 훑는 모습을 보며 나는 숨을 죽였다.
드론은 잠시 문 앞에서 맴돌다, 아무 이상 없다는 듯 다시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상이 없기는커녕, 저 문 너머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다. 고통스러운 숨소리. 금속이 긁히는 소리. 그리고 아르카나 학원 전체를 감싸고 있는 듯한, 거대한 비밀의 그림자.
나는 다시 비상구 문을 노려봤다. 붉은 경고 홀로그램은 여전히 섬뜩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겉으로는 완벽하고 화려한 아르카나 학원. 그 이면에는 대체 어떤 끔찍한 금기가 숨겨져 있는 걸까. 그리고 그 ‘지하’는 대체 어디까지 뻗어 있는 것일까.
내 안의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이며 묘한 불쾌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점심도 잊은 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르카나 학원의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빛나는 복도, 웃음 가득한 학생들, 심지어 공중에 떠다니는 교실까지. 모든 완벽함 아래, 희미하게 들려왔던 그 고통스러운 숨소리의 잔향이 잊히지 않았다.
지하. 그곳에는 분명, 학원 설립 이념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한 끔찍한 진실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진실을 파헤치고 싶다는 충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