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 속의 시간 (Time in the Walls)
**[작품 장르]** 타임슬립 스릴러, 미스터리
**[핵심 줄거리]**
현대 도시의 평범한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폴터가이스트 현상. 이 불가사의한 존재는 단순히 영혼이 아닌, 과거의 시간에 갇힌 채 현재와 소통하려는 절박한 존재였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지연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들을 마주하며, 잊힌 과거의 비극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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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 **김지연 (20대 후반):** 프리랜서 웹툰 배경 어시스턴트 겸 일러스트레이터.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으로, 혼자 사는 시간이 많아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과거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어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 **어둠 속의 목소리:** 아파트에 갇힌 미지의 존재. 과거의 시간 속에 묶여 현재와 단절된 채, 필사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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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 대본 및 스토리보드]**
**[프롤로그]**
**[장면]** 밤, 서울의 고층 아파트 단지.
**[상세 묘사]**
도시의 불빛이 빽빽하게 수놓인 밤하늘 아래, 수많은 고층 아파트들이 거대한 그림자처럼 솟아 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오래되어 보이는, 낡은 회색빛 빌라 한 동이 클로즈업된다. 건물의 창문들은 제각기 다른 빛을 내뿜고, 어떤 창은 어둠 속에 잠겨 있다. 빌딩 숲 사이에서 마치 과거의 유령처럼 홀로 서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컷 1]**
드론 쇼트. 빽빽한 도심을 지나, 김지연이 사는 낡은 아파트 13층으로 천천히 접근한다. 어둠 속, 1304호 창문만이 유난히 창백한 빛을 뿜어낸다.
**[사운드]**
도시의 잔잔한 소음: 자동차 엔진 소리, 멀리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
(아주 희미하게, 바람 소리처럼 들리는) 사람의 흐느낌.
(점점 커지는) 낡은 종소리: 댕… 댕… 댕…
**[내레이션 (김지연)]**
이곳은 도시의 망각이 시작되는 곳.
수많은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잊힌 기억들이 벽 속에 잠들어 있는 곳.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발을 들여놓은 이 평범한 아파트가,
나를 과거와 현재의 기묘한 경계로 이끌 줄은.
그리고 그 경계에서,
시간에 갇힌 누군가의 절규를 듣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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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장면 1] 고요 속의 균열**
**[시간]** 오후 3시, 맑음.
**[장소]** 지연의 아파트 작업실.
**[상세 묘사]**
작은 방 하나를 개조한 작업실. 벽에는 웹툰 배경 자료를 위해 출력한 도시 풍경 사진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중앙에는 거대한 액정 타블렛이 놓인 책상이 있고, 그 주위로 온갖 스케치 도구와 물감, 참고 서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창밖으로는 서울의 회색빛 고층 빌딩들이 빽빽하게 솟아 있다. 방 안은 햇빛이 잘 들어와 밝지만, 어딘가 모르게 눅진한 공기가 감돈다. 키보드와 펜 타블렛의 ‘딸깍’, ‘사각’ 소리 외에는 적막하다.
**[컷 1]**
지연의 옆모습. 미간을 찌푸린 채 액정 타블렛에 집중하고 있다. 입술을 꾹 다물고, 눈은 그림 속 건물 외벽의 작은 디테일을 파고든다. 작업에 몰두해 있어 주변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모습.
**[사운드]**
키보드 타이핑 소리: 따다닥, 따다닥.
펜 타블렛 사각거리는 소리: 스으윽, 스으윽.
(아주 미세하게) 멀리서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 희미한 자동차 경적, 사람들의 웅성거림.
**지연 (내레이션)**
매일 똑같은 작업. 매일 똑같은 풍경.
나는 이 도시의 작은 부품처럼, 내 몫의 그림을 그려내며 살아간다.
이곳, 낡은 아파트 1304호.
솔직히 말하면, 재개발 직전이라 다른 곳보다 월세가 싸다는 이유 하나로 이사를 결정했다.
하지만… 때때로, 이곳은 나 혼자 사는 공간이 아닌 것 같은 기묘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컷 2]**
지연이 쓰던 연필이 책상 위에서 아주 미세하게, 저절로 굴러간다. 거의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천천히, 딱 한 바퀴. 연필의 끝이 책상 모서리에 아슬아슬하게 닿을 뻔하다가 멈춘다.
**[사운드]**
(거의 들리지 않게) 연필이 나무 책상 위에서 아주 가볍게 굴러가는 소리: 스륵.
**지연**
(작업에 열중한 채, 혼잣말처럼)
흐음, 여기 그림자가 너무 강한가…
**[컷 3]**
지연이 화면에서 잠시 눈을 떼고, 스트레칭하듯 목을 꺾는다. “으음…” 소리를 내며 주변을 둘러본다. 연필은 원래 있던 자리에 멈춰 있다. 지연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사운드]**
지연의 나지막한 신음. 목뼈에서 나는 가벼운 ‘뚝’ 소리.
**지연 (내레이션)**
그래. 분명 내가 잘못 본 거였을 거야.
피곤하니까, 헛것이 보이는 거지.
혼자 사는 사람들이 겪는 흔한 착시 현상 중 하나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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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2] 어둠 속의 움직임**
**[시간]** 밤 10시.
**[장소]** 지연의 주방과 거실.
**[상세 묘사]**
작업실 옆에 붙어 있는 작은 주방. 싱크대 위에는 먹다 남은 컵라면 용기 하나와 씻다 만 컵이 놓여 있다. 냉장고에서 나오는 낮은 ‘웅-‘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거실은 어둡고, 복도 끝의 화장실 문은 닫혀 있다.
**[컷 4]**
지연이 냉장고 문을 열고 우유를 꺼낸다. 냉장고 문이 ‘삐이익-‘ 소리를 내며 열리고, 안에서 차가운 공기가 확 새어 나온다.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컵에 우유를 따른다.
**[사운드]**
냉장고 문 여는 소리: 삐이익-
우유팩 꺼내는 소리: 스윽.
냉장고 닫는 소리: 쿵.
**지연**
(컵에 우유를 따르며)
오늘 밤은 좀 시원하려나… 에어컨을 너무 틀었나.
**[컷 5]**
싱크대 위 선반에서, 방금 지연이 비운 컵라면 용기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린다. 마치 누군가 옆을 스쳐 지나간 것처럼, 용기 안쪽의 국물 자국이 살짝 일렁인다. 그러나 지연은 등을 돌린 채 우유를 마시고 있어 보지 못한다.
**[사운드]**
(아주 작게) 플라스틱 용기가 긁히는 소리: 스스스…
**지연**
(컵을 들고 거실로 향하며)
음…
**[컷 6]**
거실 복도를 걸어가는 지연의 뒷모습. 복도 끝에 있는 작은 화장실 문이 아주 천천히, 안에서 밖으로 ‘끼이이익-‘ 소리를 내며 열린다. 지연은 우유를 마시며 휴대폰을 보고 있어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문틈으로 어둠이 새어 나온다.
**[사운드]**
화장실 문 열리는 소리: 끼이이이익- (점점 커지다가 멈춘다)
지연의 발소리: 터벅, 터벅.
**지연 (내레이션)**
환기 좀 시켜야겠네. 여름이라 그런가.
이상하게 꿉꿉한 느낌이 계속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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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3] 깨진 유리, 들려오는 목소리**
**[시간]** 다음 날 새벽 3시.
**[장소]** 지연의 침실.
**[상세 묘사]**
어두컴컴한 침실. 창밖에서는 도시의 희미한 불빛만이 새어 들어온다. 지연은 이불을 얼굴까지 덮은 채 잠들어 있다. 침대 옆 협탁에는 물이 반쯤 담긴 유리컵이 놓여 있다.
**[컷 7]**
지연의 잠든 얼굴 클로즈업. 숨소리가 고르게 들린다. 이불에 파묻혀 편안해 보이지만, 미간은 약간 찌푸려져 있다.
**[사운드]**
지연의 규칙적인 숨소리: 스으- 하으-.
(아주 작게) 멀리서 들려오는 도시의 밤 소음.
**지연 (내레이션)**
이상한 꿈을 꾸었다.
차가운 물속을 걷는 꿈.
아니, 정확히는 물이 나를 따라오는 꿈.
점점 발목을 넘고, 무릎을 넘어… 숨통을 조여오는 차가운 물.
**[컷 8]**
침대 발치 쪽, 옷장 문이 천천히, 마치 누군가 안에서 밀어내는 것처럼 열린다. 문틈 사이로 어둠이 더욱 짙게 깔린다. 좁은 문틈으로 보이는 옷장 안은 칠흑 같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운드]**
(점점 커지는) 옷장 문 열리는 소리: 끄으으윽…
(그리고 이어지는) 낮은 ‘똑… 똑…’ 하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컷 9]**
지연의 잠든 얼굴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 그녀의 눈이 꿈틀거린다. 잠결에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사운드]**
물방울 소리가 점점 빨라진다: 똑, 똑, 똑똑똑!
(아주 희미하게, 사람 목소리 같기도 한) 흐느낌 소리: 흐으으윽…
**[컷 10]**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유리컵이 미세하게 흔들리더니, 옆으로 쓰러져 바닥에 떨어진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난다. 물은 순식간에 차가운 바닥으로 스며든다.
**[사운드]**
유리컵 떨어지는 소리: 쨍그랑! (매우 크게, 고요를 찢는 소리)
지연의 짧은 비명: 헉!
**[컷 11]**
지연이 벌떡 일어나 앉는다.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살핀다. 깨진 유리 파편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고, 옷장 문은 활짝 열려 있다. 그 안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하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른다.
**지연**
(떨리는 목소리로)
뭐… 뭐야…?
누구… 누구 있어…?
**[사운드]**
지연의 거친 숨소리: 허억, 허억.
심장이 빠르게 뛰는 소리: 두근, 두근, 두근.
(어둠 속에서, 아주 작게 들려오는) 흐느낌 소리: 흐으으윽… 흐윽…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멀리서 들려오는 낡은 종소리: 댕… 댕… 댕…
**[컷 12]**
지연의 시선이 옷장 안쪽으로 향한다. 어둠 속에서 아주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거린다. 마치 오래된 CRT 모니터의 잔상처럼, 불안정하게 깜빡이며 곧 사라진다. 그 빛은 차갑고 쓸쓸해 보인다.
**지연 (내레이션)**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더 이상,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저 어둠 속에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건 현실이었다. 너무나 생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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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4] 관리사무소의 침묵**
**[시간]** 같은 날 아침 8시.
**[장소]** 지연의 거실과 아파트 관리사무소.
**[상세 묘사]**
새벽의 공포가 가시지 않은 거실. 깨진 유리컵 파편이 바닥에 그대로 흩어져 있고, 지연은 이불을 몸에 두른 채 소파에 웅크려 앉아 있다. 창밖은 이미 환하게 밝아왔지만, 지연의 얼굴에는 어둠이 가득하다.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한다. 커피잔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지만, 마실 생각도 없는 듯하다.
**[컷 13]**
소파에 웅크린 지연의 모습. 얼굴은 창백하고,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손에 든 스마트폰 화면은 켜져 있지만,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다. 불안한 시선이 거실 여기저기를 훑는다.
**지연 (내레이션)**
밤새 한숨도 못 잤다.
벽에 귀를 대고, 문틈을 노려보고.
눈을 감으면 옷장 속의 어둠과 그 안에서 들려오던 흐느낌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누군가 있었다. 분명히.
그런데… 왜 아무 흔적도 없는 거지?
**[사운드]**
지연의 얕은 한숨: 후우…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소리: (없음)
**[컷 14]**
지연의 시선이 깨진 유리 파편들로 향한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어젯밤의 ‘쨍그랑!’ 소리가 다시 울린다. 그녀는 이를 악문다.
**지연**
(떨리는 목소리로)
누구야…? 정말 누구야…?
**[컷 15]**
지연이 스마트폰을 들어 인터넷 검색창에 ‘OO동 낡은 아파트 기괴 현상’, ‘폴터가이스트’, ‘원인 모를 소리’ 등을 입력한다. 검색 결과창에는 무수히 많은 미스터리 카페 게시글과 괴담들이 뜬다. 그녀의 손가락은 빠르게 움직인다.
**[사운드]**
휴대폰 타이핑 소리: 따다닥.
(내레이션) 화면에 뜨는 검색 결과 텍스트: “벽 속의 울음소리”, “가구가 저절로 움직여요”, “우리 집 귀신”, “심령 현상인가요?”
**지연 (내레이션)**
말도 안 돼. 이런 걸 검색하고 있다니.
과학적인 근거? 이성적인 판단? 그런 건 어젯밤 유리컵이 깨지면서 함께 산산조각 나 버렸다.
**[컷 16]**
지연의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검색 결과를 스크롤하다가, 특정 블로그 게시물에서 멈춘다. 제목: “낡은 주택의 시간, 사라진 사람들”. 섬뜩한 글씨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연 (내레이션)**
이곳… 우리 아파트…
이 아파트가 지어지기 전에, 이 자리에는 오래된 단독 주택들이 모여 있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뭔가 있었던 걸까?
**[컷 17]**
블로그 게시물에 첨부된 오래된 흑백 사진. 낡은 기와집들과 허름한 골목길, 그리고 그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높은 종탑 같은 건물의 일부분. 사진 아래에는 “1970년대 후반, OO동 주택가”라고 적혀 있다. 종탑의 모습이 어젯밤의 종소리와 기묘하게 연결된다.
**[사운드]**
(희미하게, 아주 멀리서) 새벽에 들었던 그 종소리: 댕… 댕… 댕…
**지연**
(사진을 노려보며, 혼잣말처럼)
종소리… 어젯밤 그 소리가 이거였어…?
**[컷 18]**
지연은 잠옷 위에 대충 외투를 걸치고, 헝클어진 머리로 아파트 관리사무소 앞에 서 있다. 낡고 바랜 페인트칠이 되어 있는 관리사무소 문을 망설이며 바라본다. 안에서는 둔탁한 말소리가 들려온다. 지연의 발끝은 문을 향해 있지만, 몸은 살짝 뒤로 물러나 있다.
**지연 (내레이션)**
바보 같다고 생각하겠지.
미쳤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물어봐야만 했다.
이 건물의 과거를.
**[사운드]**
관리사무소 안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희미한 대화 소리.
지연의 거친 숨소리.
**[컷 19]**
지연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좁은 사무실 안에는 나이 지긋한 관리소장과 경비원 한 명이 앉아 있다. 그들은 지연을 힐끗 쳐다본다. 관리소장은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관리소장**
(안경을 고쳐 쓰며, 퉁명스럽게)
어이쿠, 1304호 김씨 아니신가. 무슨 일로?
저번에 수도꼭지 고쳐달라고 한 건 처리됐을 텐데.
**지연**
(말을 더듬으며, 시선을 피한다)
아, 그게… 아니라…
저기, 혹시 이 아파트… 오래전에 뭔가 특별한 일이 있었나요?
아니면, 뭐… 좀 이상한 소문 같은 거라도…
**[컷 20]**
관리소장과 경비원의 얼굴에 의아함이 스친다. 둘은 서로를 쳐다보며 어이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경비원**
(피식 웃으며)
소문이라니? 재개발 앞두고 시세 올리려는 투기꾼들 얘기라면 모를까.
아니면 층간 소음 때문에 시끄럽다는 민원 같은 거요?
**지연**
(고개를 저으며, 점점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아뇨, 그게 아니라…
밤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거나, 물건이 저절로 움직이거나…
혹시, 예전에 이 자리 건물에 대한… 그런 기록 같은 건 없나요?
**[컷 21]**
관리소장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미묘한 표정이 스친다. 그는 컵라면을 먹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지연을 똑바로 본다. 그의 눈빛에 한순간 당혹감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간다.
**관리소장**
(나지막하게)
김씨. 혹시 밤에 잠이 잘 안 옵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워낙 예민해서… 괜한 걱정이 많고.
**지연**
(간절하게, 테이블을 짚으며)
아니요, 소장님! 정말이에요!
어젯밤엔 유리컵이 저절로 깨지고, 옷장 문이 열렸어요.
그리고… 어떤 흐느낌 소리랑… 오래된 종소리 같은 게…
**[컷 22]**
관리소장은 한숨을 쉬며 벽에 걸린 낡은 달력을 쳐다본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경비원은 못마땅한 듯 지연을 힐끗거린다. 사무실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진다.
**관리소장**
(목소리를 낮추며, 거의 속삭이듯)
흠… 뭐, 이런저런 소문이 없었던 건 아니지.
워낙 오래된 자리니까. 재개발만 해도 몇 번을 미뤘는지 몰라.
예전에 여기에 절이 있었다는 얘기도 있었고…
어떤 집은 아궁이 터에서 이상한 게 발견됐다고 해서 공사가 지연되기도 했었지.
하지만 다 오래전 일이고, 지금은 다 아파트가 들어서서…
**[컷 23]**
지연의 눈이 커진다. ‘절’이라는 말에 어젯밤의 종소리가 겹쳐진다. ‘이상한 것’이라는 말에 섬뜩한 상상이 스쳐 지나간다.
**지연**
(다급하게)
절이요? 그럼 그 종소리가…
그리고 이상한 게 발견됐다구요? 어떤…?
**관리소장**
(손을 저으며, 말을 자른다)
아이고, 다 헛소문이지. 풍수지리 그런 미신 같은 거.
김씨도 혼자 사니까 괜히 신경이 예민해진 거야.
전기 점검이나 한번 해드릴까요? 걱정 말고 돌아가시오.
**[컷 24]**
관리소장의 태도에 실망한 지연이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그녀의 뇌리에는 ‘절’과 ‘이상한 것’, ‘공사 지연’이라는 단어가 깊이 박힌다. 그녀의 눈빛은 결연하게 빛난다.
**지연 (내레이션)**
헛소문이라고 일축했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렸다.
이곳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잊혀진 과거가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고 그 과거가… 지금, 내 삶을 침범하고 있었다.
나는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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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5] 벽 속의 절규**
**[시간]** 같은 날 오후 2시.
**[장소]** 지연의 아파트 거실 겸 작업실.
**[상세 묘사]**
지연은 바닥에 앉아 노트북으로 ‘OO동 옛 절터’, ‘서울 70년대 아파트 개발 비화’ 등을 검색하고 있다. 책상 위에는 그녀가 관리사무소에서 얻어온 듯한 낡은 아파트 단지 배치도가 놓여 있다. 커피잔은 여전히 비어 있지 않다. 방 안은 어쩐지 이전보다 더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컷 25]**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는 지연의 옆모습. 눈은 충혈되어 있지만, 이전과는 다른 결의 집중력이 느껴진다. 노트북 화면에는 오래된 신문 기사 스캔본들이 떠 있다. ‘OO동 재개발, 토지 보상 갈등 심화’, ‘유적지 발견 논란, 공사 차질 불가피’ 등의 자극적인 제목들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연 (내레이션)**
관리소장은 그저 ‘오래된 자리’라고만 했지만, 인터넷은 더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우리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자리는 과거에 ‘정암사’라는 작은 절이 있던 곳이었다.
그리고 그 절은 1970년대 후반, 도시 개발 과정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운드]**
노트북 키보드 타이핑 소리: 따다닥.
(내레이션) 화면에 뜨는 기사 제목들: “정암사 주지, 토지 보상금 전액 환원 약속했으나 미스터리 실종”, “개발 업체-주민 갈등 고조, 문화재청 조사 착수 지연”.
**[컷 26]**
지연의 손가락이 멈춘다. 화면 속 기사에는 ‘정암사 주지, 김노인 실종’이라는 제목이 눈에 띈다. 아래에는 흐릿한 흑백 사진이 첨부되어 있다. 깡마른 몸에 선한 인상을 가진 노승의 모습. 그의 얼굴에는 어딘가 슬픔이 깃들어 있다.
**지연**
(속삭이듯)
실종…?
**[컷 27]**
갑자기 작업실 천장의 형광등이 ‘지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깜빡인다. 처음에는 가볍게, 이내 밝았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며 불안정한 빛을 내뿜는다. 방 안의 모든 빛이 왜곡되는 듯하다.
**[사운드]**
형광등 깜빡이는 소리: 지이잉- 치직- (점점 커지고 빨라진다)
(희미하게) 바람 소리: 후우우우… (방 안에서 맴도는 듯한)
**지연**
(놀라서 고개를 들고 천장을 올려다본다)
또야…?
**[컷 28]**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진다.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지연의 입김이 뿌옇게 새어 나온다. 그녀는 팔을 감싸 안으며 몸을 떤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사운드]**
급격히 낮아지는 주변 온도.
(아주 가까이서, 등 뒤에서 들리는 듯한) 희미한 속삭임: “가지 마…” “안 돼…” “여기를…”
**지연**
(공포에 질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누구야…? 무슨 소리야…?
**[컷 29]**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낡은 아파트 단지 배치도에서, 지연의 아파트 호수(1304호)가 표시된 부분에서 갑자기 잉크가 번지기 시작한다. 붉은색 잉크가 마치 피처럼 스며들 듯 번져나가, 그 주변을 시뻘겋게 물들인다. 잉크의 냄새가 비릿하게 코를 찌른다.
**[사운드]**
종이 위에 액체가 번지는 ‘스윽’ 소리.
(속삭임이 더욱 명확해진다) “여기를 떠나지 마…!” “내가… 여기…” “갇혔어…”
**지연**
(비명을 지를 듯한 얼굴로 배치도를 노려본다)
이게… 이게 뭐야…!
**[컷 30]**
번지는 잉크 위에, 마치 오랜 세월이 지나 바랜 듯한 낡은 글씨들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처음에는 알아보기 힘들지만, 점차 선명해진다. ‘나는 여기 갇혔다’, ‘시간이 멈췄다’. 그리고 마지막에, ‘구해줘’라는 한글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글씨가 쓰인 곳은 정확히 1304호와 그 아래 층들을 관통하는 자리였다.
**[사운드]**
(속삭임이 절규로 변한다) “구해… 줘!!!”
강렬한 종소리: 댕!!! (온 방을 뒤흔들 듯 크게 울린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
**[컷 31]**
지연은 충격으로 의자에서 나자빠진다. 등 뒤로 차가운 벽이 느껴진다. 눈은 공포와 경악으로 가득하다. 형광등은 미친 듯이 깜빡거리다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터진다. 방은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긴다. 어둠 속에서 푸른빛의 잔상들이 흐릿하게 맴돈다.
**[사운드]**
형광등 터지는 소리: 퍽!
지연의 거친 숨소리: 흐읍, 흐읍, 흐읍.
(어둠 속에서, 아주 가까이서, 낡고 메마른 목소리) “…지금이… 몇 년도… 인가…?”
**지연 (내레이션)**
그 목소리는, 절규하는 동시에 혼란스러워 보였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한, 혹은 길을 잃은 아이의 목소리 같았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폴터가이스트가 아니다.
이건… 시간의 틈새에 갇힌 누군가의 잔상이다.
그리고 그 잔상은, 어쩌면 나를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이 낡은 아파트의 벽 속에 갇힌 시간과 마주하고 있었다.
나는 이 잊힌 절규를… 외면할 수 없었다.
—
**[에필로그]**
**[장면]** 밤, 1304호.
**[상세 묘사]**
전기가 끊긴 1304호는 촛불 하나에 의지해 희미하게 빛난다. 지연은 노트북 화면의 흑백 사진 속 노승의 얼굴과, 붉은 잉크로 ‘구해줘’라고 쓰인 배치도를 번갈아 본다.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공포가 서려 있지만, 그 안에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듯한 결의가 비친다. 창밖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빛나지만, 지연의 작은 방 안은 전혀 다른 시간 속에 존재하는 듯하다.
**[컷 32]**
지연의 얼굴 클로즈업. 촛불이 그녀의 눈동자에 흔들리며, 슬픔과 비장함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을 드러낸다. 그녀의 손은 이제 더 이상 떨리지 않는다.
**[사운드]**
촛불 타는 소리: 스스슷.
지연의 깊은 숨소리.
(아주 희미하게, 바람 소리처럼 들리는) 속삭임: “고맙소…”
**지연 (내레이션)**
어쩌면 나는, 그저 싸구려 월세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필연이었을지도.
이 벽 속에, 이 시간의 틈새에 갇힌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당신을 이해하고,
어쩌면…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
나는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이 낡은 아파트의 벽 속에 갇힌 시간과 함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컷 33]**
지연의 시선이 배치도 위에 머문다. 붉은 잉크로 쓰인 ‘구해줘’라는 글씨 위로, 그녀의 손가락이 천천히 닿는다. 손가락 끝에서 아주 미세하게, 푸른빛이 번쩍인다.
**[사운드]**
(잔잔하게 울리는) 낡은 종소리: 댕… (여운을 남기며 사라진다)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