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녀석의 가장 소중한 것을 부숴주마.」
강태인의 목소리가 조종석 내부에 낮게 울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숨겨진 그의 거대한 기체, ‘나이트호크’의 심장이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박동하고 있었다. 외장 장갑을 타고 흐르는 전기의 미세한 진동이 태인의 손끝에 전해졌다. 손끝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지는 것은 기체와 혼연일체가 되는 감각, 그리고 피처럼 뜨거운 복수심이었다.
모니터는 쏟아지는 인공위성 잔해와 파편들로 가득한 궤도상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아래로는 푸른 별, 지구가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 평화로운 광경이 태인의 눈에는 도리어 역겹게 느껴졌다. 저 아래, 화려하게 번성한 도시 중 하나에, 모든 것을 훔쳐 간 배신자가 지금쯤 제 왕좌에 앉아 있을 테니까.
“시스템, 전원 기동. 출력 100%. 위성 방어망 회피 경로 최종 확인.”
태인의 명령에 따라 나이트호크의 내부 시스템이 차분하게 응답했다.
[확인. 기체 전원 기동 완료. 출력 100% 달성. 방어망 회피 경로, 오차 범위 0.001% 이내.]
삐빅.
조종석 전면의 홀로그램 맵에 붉은 점들이 섬뜩하게 깜빡였다. 적의 위성 방어망과 경계 드론의 배치였다. 과거, 유시진과 자신이 함께 구축했던 그 견고한 방어망이 지금은 자신의 앞길을 막고 서 있었다. 그 사실 자체가 잔인한 아이러니였다.
‘시진… 네가 어떤 얼굴로 날 맞이할지 기대되는군.’
태인은 한때 친구였던 자의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다. 아니, ‘친구’라는 단어조차도 이제는 쓰레기 같았다. 3년 전, 모든 것을 걸었던 프로젝트의 성공을 눈앞에 두고 유시진은 태인의 연구 성과를 통째로 가로챘다. 증거는 조작되었고, 태인은 누명을 쓰고 폐기 처분될 뻔했다. 간신히 목숨만 건져 도망쳐야 했다. 그리고 유시진은 그 기술을 이용해 거대 기업의 총수가 되어, 명성과 부를 독식했다.
그때부터 태인의 삶은 오직 복수를 향해 움직였다. 파괴된 줄 알았던 나이트호크의 잔해를 찾아내, 남은 평생을 걸고 재건했다. 이 끔찍한 기계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강태인의 분노와 절망, 그리고 다시 태어난 증오가 응축된 결정체였다.
“이동 개시. 목표, 유시진의 플래그십 타워, 최상층.”
나이트호크의 거대한 다리가 서서히 움직였다. 궤도상에 떠다니는 수많은 잔해들을 그림자처럼 스치며, 나이트호크는 무음으로 거동했다. 스텔스 장비는 완벽하게 작동하여, 적의 레이더망에 단 한 점의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적의 첫 번째 방어선을 돌파하는 것은 쉬웠다. 마치 칼날이 연약한 종이를 찢듯, 태인은 경계 드론들을 단숨에 무력화시켰다. 폭발음조차 허락하지 않는 깔끔한 파괴였다. 드론들은 연기 한 번 피우지 못하고 우주 공간의 잔해로 변했다.
[첫 번째 방어선 돌파 확인. 경로 확보.]
“좋아. 다음은.”
태인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심장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나이트호크는 지구 대기권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기체가 대기와의 마찰로 인해 붉게 달아올랐지만, 특수 코팅된 장갑은 완벽하게 열을 분산시켰다.
대기권을 뚫고 지상으로 강하하는 나이트호크의 실루엣은 밤하늘에 잠시 스친 유성처럼 보였다. 그 빛은 섬광처럼 빠르게 사라졌고, 이내 거대한 그림자가 도시의 마천루 숲 위로 드리워졌다.
유시진의 플래그십 타워는 거대한 독수리가 날개를 펼친 듯한 형상으로, 도시의 중심에서 오만하게 서 있었다. 최첨단 방어 시스템과 무수히 많은 경호 로봇, 그리고 정예 파일럿들이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태인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지금의 태인에게는 거대한 놀이터의 장난감에 불과했다.
“경보! 미확인 비행체 접근 중! 속도 비정상! 즉시 요격하라!”
도시 방어망의 관제실에서 비명 같은 경고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었다.
쿼어어어어-!
나이트호크의 거대한 오른팔에 장착된 ‘흑뢰포(黑雷砲)’가 푸른 섬광을 내뿜었다. 플래그십 타워를 향해 발사된 에너지 파동은 일직선으로 뻗어나가, 타워 주변에 설치된 대공 방어 포탑들을 산산조각 냈다. 금속 파편들이 불꽃을 튀기며 허공으로 흩어졌다.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관제실의 패닉은 더욱 심해졌다. 그들은 상대가 누구인지, 왜 나타났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나이트호크는 지상에 착륙하지 않고, 타워의 중층부를 목표로 거대한 발톱을 휘둘렀다. 굉음과 함께 강화 유리와 강철 프레임이 맥없이 찢겨 나갔다. 마치 종이 상자를 찢듯이, 나이트호크는 타워의 외벽을 부수고 내부로 진입했다.
내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비상등이 깜빡이고, 직원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태인은 이 모든 혼란을 즐기는 듯, 기체의 스피커를 통해 차분한 목소리로 메시지를 보냈다.
“유시진. 네가 나에게서 훔쳐 간 것들을 되찾으러 왔다. 3년 전, 네가 내 모든 것을 짓밟았듯이, 나도 네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다.”
태인의 목소리는 기계음으로 변조되어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냉혹한 증오는 건물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복도에서 몰려나오는 경호 로봇들이 나이트호크를 향해 레이저를 발사했지만, 그것들은 나이트호크의 장갑에 닿자마자 섬광을 일으키며 산산조각 났다. 압도적인 성능 차이였다.
나이트호크는 망설임 없이 건물의 핵심부를 향해 나아갔다. 수많은 벽과 기둥들이 태인의 분노 앞에서 부서져 내렸다. 건물 자체가 태인의 복수를 위한 무대가 되는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태인의 모니터에 하나의 거대한 반응이 포착되었다. 타워의 최상층, 유시진의 집무실 바로 아래층이었다. 압도적인 에너지 반응, 익숙한 설계 방식.
“찾았다… 네가 아끼는 장난감이로군.”
태인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그곳에는 유시진이 자신의 기술을 훔쳐 완성했다고 자랑하던, 최신형 전투 메카닉이 서 있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
“나와라, 시진. 더 이상 숨을 곳은 없을 테니.”
나이트호크의 거대한 오른팔이 최상층으로 향하는 천장을 뚫고 올라갔다. 콘크리트와 철근이 폭발하듯 솟구쳤고, 먼지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그 연기 속에서, 붉은색과 은색이 조화된, 날카롭고 유려한 형상의 거대한 메카닉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크엔젤’이라는 이름의 그 기체는, 태인의 나이트호크와 흡사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더욱 세련되고 오만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리고 아크엔젤의 조종석 해치가 열리며, 한 남자가 모습을 보였다. 3년 전, 태인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던 그 얼굴. 유시진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보다는 비릿한 승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강태인… 네가 이렇게까지 살아서 돌아올 줄은 몰랐군.”
유시진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는 태인의 나이트호크를 훑어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겨우 폐기 처분될 뻔한 쓰레기를 주워다가, 이 정도를 만든 건가? 꽤나 끈질기군. 하지만 그래봐야… 내 앞에선 먼지에 불과해.”
태인의 나이트호크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기계음을 냈다.
“먼지… 그래, 그 먼지가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무너뜨릴 거다. 유시진.”
두 거대한 강철 전사 사이로 섬뜩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 침묵은, 곧 시작될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의 전조였다.
태인은 아크엔젤의 조종석에 있는 유시진을 노려봤다.
“각오는 됐겠지. 이제부터, 진짜 지옥을 보여줄 테니.”
최종 결전의 서막이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