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는 정적만이 묵직한 강철 문 뒤에 갇힌 채 흐느끼고 있었다. 천재 탐정 한서진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 방은 그 어떤 논리도, 그 어떤 추리도 삼켜버린 채 완벽한 밀실의 수수께끼를 뱉어내고 있었다.
“빌어먹을… 대체 누가, 어떻게, 왜?”
젊은 형사 이도윤은 절규하듯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피로와 좌절로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방 한가운데 쓰러진 채 싸늘하게 식어버린 김진우 회장의 시신은, 마치 세상 모든 수수께끼를 비웃는 듯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것만 같았다. 국내 최고 미술품 컬렉터이자 보안 전문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김진우. 그가 자신의 ‘철옹성’이라 불리던 개인 수장고에서 살해당했다. 그것도, 완벽한 밀실에서.
“문은 안에서 잠겼습니다. 지문 인식, 홍채 인식, 거기에 수동식 걸쇠까지, 완벽하게 밀봉되어 있었어요. 외부 침입 흔적은 전무합니다. 창문도 없고, 환풍구는 어린아이조차 통과할 수 없을 만큼 작습니다. 게다가… 흉기는 사라졌어요.”
베테랑 오 형사가 답답한 듯 벽을 쿵, 주먹으로 쳤다. 그는 이런 완벽한 밀실 살인은 난생 처음이었다. 현장의 모든 형사들은 미로에 갇힌 듯 혼란스러워했다.
그때였다. 조용히, 그러나 지독한 존재감을 뿜어내며 한 남자가 현장에 들어섰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낡은 트렌치코트, 그리고 세상 모든 것에 흥미를 잃은 듯한 무심한 표정. 바로 한서진이었다.
“늦으셨습니다, 서진 씨. 이번엔 무슨 잠꼬대 같은 추리를 하실지 벌써부터 기대되는군요.”
이도윤이 비아냥거렸다. 그는 한서진의 천재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특유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거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서진은 아무 말 없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피해자의 시신, 혈흔, 뒤집힌 가구 같은 일반적인 살인 현장의 요소들은 마치 처음부터 그의 시야에 없었던 것처럼 무시됐다. 그의 시선은 바닥의 먼지 한 톨, 벽지의 미묘한 색 변화, 그리고 천장에 설치된 감지기들을 스쳐 지나갔다. 마치 세상의 모든 정보를 필터링하며 필요한 것만을 집어삼키는 기계 같았다.
“방 안에 산소 농도가 조금 낮군요.”
그가 불쑥 말했다.
“네? 그게 지금 중요합니까? 서진 씨,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이 방은 완벽한 밀실이라고요! 범인은 대체 어떻게 사라진 겁니까? 아니, 있었던 건 맞나요? 대체…!”
이도윤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는 답답함에 머리를 쥐어뜯을 지경이었다.
한서진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도윤을 돌아봤다.
“사라졌다기보다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봐야죠. 아니, 있었는데… 사라지지 않은 거려나? 후자 쪽이 더 흥미롭겠군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 형사마저 미간을 찌푸렸다. 한서진은 그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바닥에 흩어진 도자기 파편들을 무심하게 발로 툭 건드렸다. 깨진 도자기는 아마 김진우 회장이 아끼던, 수억 대를 호가하는 조선백자였을 것이다. 시신 옆, 붉은 피와 검은 먹물처럼 대비되어 흩어져 있었다.
“음, 꽤나 큰 소리가 났을 텐데요.”
한서진의 시선이 도자기 파편에서 천장의 감지기로 향했다.
“저희도 그 점이 이상합니다. 격투의 흔적이 거의 없는데, 이 도자기만 이렇게 깨져있으니… 하지만, 이 방의 모든 보안 기록을 확인했지만, 특이 사항은 없었습니다. 특히 음성 센서는 어떤 소리도 감지하지 못했어요. 조용했습니다. 피해자가 들어간 후 사망하기 전까지, 아무 소리도.”
이도윤이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모든 증거를 꼼꼼히 확인했다고 자부했다.
한서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억지로 납득하려는 듯한, 그러나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조용했다… 깨진 도자기가 이렇게 흩어져 있는데, 조용했다? 음, 재미있군요.”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는 늘 이도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한서진이 저런 미소를 지을 때면, 늘 상식을 벗어난 섬뜩한 진실이 드러나곤 했기 때문이었다.
한서진은 바닥에 쭈그려 앉아 도자기 파편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깨진 단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무언가를 발견한 듯 그의 눈빛이 일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이도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도윤 경위님.”
한서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
“이 방의 모든 음성 센서 감지 기록을 다시 한번 찾아주십시오. 이번에는 단순히 ‘소리’의 유무가 아니라, 감지 ‘주파수’를 분석해주세요. 특히, 이 도자기가 깨지는 순간 발생했을 법한, 특정한 대역의 주파수를 역추적해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 이 방의 천장에 설치된 환기구 필터, 예전에 교체된 적이 있습니까?”
한서진의 마지막 질문에 이도윤은 물론, 오 형사까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환기구 필터? 밀실 살인과 그게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한서진의 눈빛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깨진 도자기 파편을 든 채 희미하게 웃었다.
“범인은 이 방에 들어왔고, 김진우 회장을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 완벽한 밀실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그는 이 방을, 자신에게 유리한 완벽한 ‘밀실’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트릭의 시작은… 바로 이 도자기가 깨지는 ‘소리’에 있었습니다.”
한서진의 말에 이도윤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소리. 깨진 도자기. 그리고 주파수. 그리고 환기구 필터. 그 퍼즐 조각들이 어떤 무시무시한 그림을 완성할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이도윤은 직감했다. 한서진이 또 한 번, 이 세상의 상식을 뒤엎는 진실의 문을 열어젖히려 하고 있다는 것을.
그의 시선이 다시 환기구를 향했다. 작은 구멍. 그러나 저 작은 구멍 너머에, 과연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긴장감은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