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푸른 하늘 아래, 에테르 아카데미의 첨탑은 꿈처럼 솟아 있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고풍스러운 유리창들, 정교하게 조각된 대리석 기둥들, 그리고 그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에메랄드빛 정원까지. 이곳은 마법을 배우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꿨을 지상 낙원이자, 마법사들의 요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유이는 이곳에 있었다.

“유이야! 오늘도 멍하니 서 있어? 지각하겠다!”

맑고 활기찬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나보다 두 뼘은 더 큰 키에 늘 싱글벙글 웃는 소라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찰랑이는 갈색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빛났다. 그녀는 우리 학년에서 가장 밝고 긍정적인 아이였다.

“아, 소라. 미안. 또 넋 놓고 보고 있었네.”
“괜찮아, 괜찮아.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근데 이제 한 달이나 됐잖아. 슬슬 익숙해질 법도 한데.”

소라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앞장섰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르며 다시 한 번 아카데미를 올려다봤다. 이곳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벅찬 감동은 아직도 생생했다. 내가, 그렇게 대단치 않은 집안 출신의 내가, 에테르 아카데미라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볼을 꼬집어야만 현실임을 깨닫곤 했다.

우리가 향하는 곳은 오늘 첫 수업인 ‘고대 마법사 열전’ 강의실이었다. 묵직한 오크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미 상당수의 학생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부분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서 깊은 마법사 가문의 자제들이었다. 그들의 우아한 태도와 자신감 넘치는 눈빛은 나와 같은 ‘평범한’ 학생들에게는 언제나 약간의 위압감을 주었다.

“이봐, 유이! 여기 자리 비었어!”

창가 제일 앞자리에서 은발의 리안이 손을 흔들었다. 리안은 외모와는 달리 조금 엉뚱한 성격의 소유자로, 입학 초기부터 나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주며 큰 도움을 주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교재를 펼쳤다.

수업은 늘 흥미진진했다. 드루이드 마법의 대가인 헬레나 교수님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고대 마법사들의 영웅담과 비극적인 서사를 들려주었다. 거대한 숲을 창조하고, 산맥을 통째로 옮겼던 선조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자, 이제 조별 과제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헬레나 교수님이 칠판에 커다란 글씨로 ‘고대 마법 문양 연구’라고 썼다.

“아카데미 도서관 지하 서고에 있는 기록들을 참고하여, 조별로 특정 마법 문양 하나를 선택해 그 기원과 의미, 사용처를 조사하여 발표하는 겁니다. 기한은 다음 달 마지막 주까지예요. 참고로 지하 서고는 일반 서고와 달리 접근이 제한된 곳이니, 각 조의 조장에게 특별 출입증을 발급할 겁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하 서고는 소문으로만 듣던 곳이었다. 아카데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아래에 있으며, 수백 년 전의 금지된 마법이나 잊힌 주문서가 잠들어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쩐지 좀 으스스하다고 들었어.” 소라가 속삭였다.
“그래도 자료가 엄청 많대. 게다가 우리가 함부로 못 들어가던 곳이잖아? 신기하다!” 리안이 눈을 반짝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왠지 모르게, 지하 서고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어릴 적 살던 마을의 오래된 우물 밑바닥처럼, 알 수 없는 깊이와 어둠이 느껴지는 단어였다.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 우리는 늘 그렇듯 잔디밭에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우리 조는 내가 조장이야! 지하 서고라니, 완전 모험이잖아!” 소라가 신나게 떠들었다.
“우리 조는 리안이 조장이라서 다행이야. 난 길치라서 어딜 가도 헤맬 텐데.” 내가 웃었다.
“흐음, 지하 서고라…. 난 별로 가고 싶지 않은데.”

갑자기 조용히 도시락을 먹던 하준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하준은 우리 학년에서 손꼽히는 우등생이자,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가진 학생이었다. 그의 말에 소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뭐가 그렇게 싫어, 하준? 귀한 자료가 많을 거 아냐.”
“그냥…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지 않아. 어릴 적 아버지가 ‘아카데미 지하 깊숙한 곳은 절대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하셨거든. 뭔가… 불길한 기운이 흐른다고.”

하준의 말에 우리는 일순간 침묵했다. 늘 냉정하고 이성적이던 하준이 이런 미신 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뜻밖이었다.

“에이, 설마. 아버지께서 옛날이야기 해주신 거겠지.” 소라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 나는 하준의 말에 묘한 설득력을 느꼈다.

그날 밤, 나는 내 방에서 조용히 마법 교재를 읽고 있었다. 소라는 다른 친구들과 교류회에 간다고 일찌감치 나갔고, 방에는 나 혼자였다. 창밖으로는 은은한 마법등이 켜진 아카데미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문득, 낮에 들었던 하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카데미 지하 깊숙한 곳은 절대 발을 들여놓지 말라.’ 어째서 그런 말을 했을까? 이곳은 밝고 희망찬 마법의 전당인데.

나는 책을 덮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밤이었다. 그때였다. 아주 희미하게, 마치 바람에 실려 오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흐으읍… 흐으읍…’ 하고 숨을 들이쉬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한 낮고 긴 신음 같기도 한 소리였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분명히 들렸다. 처음에는 바람 소리인가 했지만, 아니었다. 바람 소리보다는 훨씬 더… 생명체에 가까운 소리였다. 어디서 들려오는 걸까? 창밖을 내다봤지만, 밤의 정원은 고요하기만 했다.

소리는 아주 희미했지만, 그 존재감은 명확했다. 그리고 마치 지하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것처럼, 바닥을 통해 진동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나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에테르 아카데미의 지하, 하준이 말했던 ‘불길한 기운’이 흐르는 곳.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복도는 어두웠고, 멀리서 희미한 마법등이 깜빡거렸다.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는 조금 더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소리는 건물 아래쪽, 더 정확히 말하면…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듯했다.

발소리를 죽이고 복도를 지나 계단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 다다르자, 소리는 더욱 강렬해졌다. 그건 더 이상 단순한 신음이 아니었다. 무언가 긁는 듯한 소리, 쿵, 쿵, 하고 규칙적으로 울리는 둔탁한 진동, 그리고 그 사이에 섞여 있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속삭임 같은 소리.

분명히 위험하다고, 돌아가야 한다고 이성이 소리쳤다. 하지만 호기심은 언제나 이성보다 한 발 앞서 나가는 법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계단 아래로 한 발을 내디뎠다. 어둠 속에서 차가운 공기가 확 끼쳐왔다. 복도와는 확연히 다른, 흙냄새와 함께 비릿하고 축축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한 칸, 두 칸, 계단을 내려갈수록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그 소리 사이로, 나는 기이한 것을 감지했다. 마치…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무언가가 그곳에 갇혀 절규하고 있는 것 같은, 처절한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이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이 계단은 지하 서고로 향하는 일반적인 통로와는 다른, 낡고 좁은 비상 계단 같았다. 발밑에는 부서진 돌 조각들이 밟혔다. 그리고 그 계단 끝, 어둠 저편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거리는 것이 보였다. 마치 누군가 랜턴을 들고 움직이는 것처럼.

그 빛을 따라 몇 걸음 더 내려가자, 나는 굳게 닫힌 거대한 철문을 마주했다. 녹슨 쇠사슬이 얽혀 있었고, 문틈 사이로는 아까 보았던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에서, 소리는 절정에 달했다.

“흐윽… 끄으윽… 살려… 줘…”

낮게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 분명히 사람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너무나도 고통스러워 보여서, 차마 사람의 소리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나는 손을 뻗어 차가운 철문에 살짝 댔다. 문 안쪽에서 느껴지는 묘한 진동과 함께, 축축한 냉기가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갑자기, 문 안쪽에서 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모든 소리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쥐죽은 듯한 침묵. 방금 전까지 그렇게 강렬하게 울리던 모든 것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누군가 나를 눈치챈 걸까? 아니면… 지금 들었던 그 모든 것이 환청이었을까?

그 순간, 철문 틈새로 아주 작은 종이 조각 하나가 밀려 나왔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것을 주웠다. 낡고 바싹 마른 종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펼쳤다.

종이 위에는 붉은색으로 덧칠된 듯한 글씨가 삐뚤빼뚤하게 쓰여 있었다.

‘절대… 진실을… 찾지 마.’

그리고 그 글씨 아래,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흐느끼는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내 손 안의 종이 조각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나는 다시 철문을 올려다봤다. 거대한 철문은 묵묵히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그 너머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심연처럼 느껴졌다.

나는 깨달았다. 이 화려하고 완벽해 보이는 에테르 아카데미의 지하 깊숙한 곳에는,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금기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방금, 그 금기의 문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