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어둠은 심연의 옷자락처럼 도시를 덮고 있었다. 거대한 제국의 수도, ‘불멸의 로덴’은 이름과는 달리 썩어 문드러지는 생선 내장 같은 냄새를 풍겼다. 비린 악취와 가난한 자들의 체취, 그리고 저 멀리 황궁에서 피어오르는 기이한 향이 뒤섞여 숨통을 조여왔다. 아린은 낡은 망토를 더욱 바싹 여미고 좁은 골목을 빠져나왔다. 이 시간에도 거리는 여전히 활기 없었고, 가끔 그림자 속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신음소리만이 이곳의 고통스러운 일상을 증명했다.

제국의 성벽은 너무나 거대해서 하늘을 가렸다. 그 거대한 돌덩이들은 인간의 손으로 쌓았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묘한 각도로 솟아 있었다. 마치 그림자가 제멋대로 뒤틀린 것 같았고, 밤하늘의 별빛마저 저 기괴한 돌덩이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쳇.”

아린은 혀를 찼다. 저 성벽 너머에 감춰진 황금과 비단, 그리고 괴이한 의식들이 이 아래 평민들의 피와 땀으로 지탱되고 있었다. 불과 이틀 전, 시장 광장에서 식량을 요구하던 노인들이 제국 병사들의 곤봉에 맞아 죽었다. 그들의 핏자국은 아직 마르지 않았을 터였다.

그때였다. 쩌렁이는 쇠붙이 소리와 함께 제국 기사단 병사들이 골목 어귀를 돌았다. 그들의 갑옷은 검은색이었고, 헬멧의 틈새로 보이는 눈은 감정 없는 기계 같았다. 이 거대한 제국은 황제의 눈먼 충성으로 움직였다. 아니, 어쩌면 그들조차 황제에게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고, 아린은 어렴풋이 생각했다.

“꼼짝 마라! 통행금지 시간을 어긴 자는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선두에 선 병사가 횃불을 높이 들었다. 아린은 망토 밑에 숨겨둔 단도를 꽉 움켜쥐었다. 도망치는 건 익숙했지만, 가끔은 이렇게 들켜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미 다른 병사들이 골목을 막고 있었다.

“어린 계집이군. 제국 법을 모르는가?”

병사 하나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의 눈빛은 굶주린 짐승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아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싸우면 이길 수 없었다. 이들에게 잡히는 순간, 그녀의 삶은 지옥으로 변할 터였다.

그 순간, 옆 건물 옥상에서 그림자 하나가 휙 하고 내려섰다. 망토를 두른 그는 마치 밤의 일부인 것처럼 조용하고 빨랐다. 병사들은 미처 반응할 틈도 없었다. 남자는 병사 한 명의 목덜미를 순식간에 붙잡아 끌어당겼고, 그대로 벽에 처박았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병사의 몸이 축 늘어졌다.

“도망쳐, 아린!”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였다. 강노인이었다. 아린은 망설일 틈도 없이 다시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강노인은 순식간에 다른 병사들의 시선을 끌었고, 아린은 혼란스러운 틈을 타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강노인의 거친 숨소리와 병사들의 고함, 그리고 칼 부딪히는 소리가 아린의 심장을 격렬하게 울렸다.

***

습기 찬 지하 수로를 따라 한참을 걸었을까, 아린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숨을 내쉬었다. 발소리를 죽여 조용히 움직이던 그녀는 마침내 익숙한 낡은 철문 앞에 섰다. 차가운 쇠붙이를 조심스럽게 밀자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낮은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안에는 이미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횃불 불빛 아래 그림자져 있었지만, 아린은 그들의 절망과 결의를 익히 알고 있었다. 탁 트인 공간의 중앙에는 낡은 나무 상자들이 모여 테이블을 이루었고, 그 위에는 도시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아린이 왔군.”

강노인은 이미 와 있었다. 그의 어깨에는 피가 배어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병사들을 따돌리고 이곳까지 오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어르신… 무사하신 거죠?”

아린은 강노인의 어깨를 살폈다. 강노인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쯤이야. 그놈들의 실력은 여전이 형편없군. 어쨌든, 늦어서 미안하네. 자네도 고생 많았지?”

“제국 놈들이 요즘 부쩍 순찰을 늘렸어요. 저들의 압제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뜻이겠죠.”

아린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요 며칠 사이, ‘붉은 수확’이 시작되었다더군.”

그룹의 한 명인 마른 체구의 남자가 씁쓸하게 입을 열었다. 그는 한때 제국 서고에서 일하던 학자였으나, 황제의 광기에 질려 뛰쳐나온 ‘지식인’이었다.

“붉은 수확이라니? 또 무슨 해괴한 이름이지?”

아린이 물었다.

“황궁에서 흘러나온 소문에 따르면… 제국의 주둔지에 있는 농노들에게 수확량의 9할을 바치라고 지시했답니다. 그것도 ‘별빛이 붉어지는 밤’에 맞춰서 말이죠.”

“9할? 그럼 남아나는 게 뭐가 있단 말이야? 그건 그냥 전부 빼앗겠다는 소리잖아!”

아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탁자 위 지도를 주먹으로 내리치자 횃불 불빛이 흔들렸다.

“그게 다가 아니다, 아린. ‘별빛이 붉어지는 밤’… 그건 단순한 은유가 아니야.”

강노인이 낮게 읊조렸다. 그의 눈빛은 멀리, 황궁의 심연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요즘 들어 밤하늘의 별들이… 이상하게 보이는 날이 잦아졌어. 평소와는 다른 색깔로 빛나고, 마치 뒤틀린 형상처럼 일렁이는 듯한… 황제 폐하의 권능이 날이 갈수록 강해진다고는 하지만, 동시에 세상의 이치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느낌이다.”

모두의 얼굴에 알 수 없는 공포가 스쳤다. 제국의 황제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의 권능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했으며, 마치 살아있는 신처럼 군림했다. 하지만 그의 권능은 항상 섬뜩하고 기이했다. 가끔은 황궁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울림이나, 도시 곳곳에서 발견되는 알 수 없는 문양의 비석들, 그리고 황궁 깊숙한 곳에서 풍겨오는 낯선 향기가 사람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버티는 건 한계가 있어. 제국은 우리를 서서히 죽여나가고 있어.”

그룹의 또 다른 구성원, 덩치 큰 사내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광부 출신으로, 제국에 대한 증오심이 누구보다 깊었다.

“그럼 어쩌자는 거야? 앉아서 죽을 날만 기다릴 순 없잖아!”

아린은 모두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우리에겐 더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해. 제국이 가장 아끼는 것을 건드려야 해.”

강노인이 아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제국이 가장 아끼는 것이라면…?”

“황제에게 바쳐지는 진상품.”

아린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들었어. 다음 주 ‘붉은 수확’이 절정에 달하는 밤에, 각 주둔지에서 거둬들인 진상품들이 수도로 모여들 거야. 그중에는 희귀한 광물이나, 알 수 없는 고대의 유물, 그리고… 어린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그녀의 마지막 말에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제국 황제의 기괴한 취향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건 자살 행위야, 아린. 황제에게 바쳐지는 진상품은 제국 정예 부대가 호위하고 있어. 우리가 아무리 용감하다고 해도…”

학자 출신 남자가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우리가 그걸 성공시킨다면? 제국의 보급을 끊고, 황제의 권위에 흠집을 낸다면?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용기를 얻을 거야.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해.”

아린은 지도를 펼쳐 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제국 수도 외곽의 한 지점을 짚었다.

“여기. 북서쪽 외곽, ‘망각의 늪’을 지나는 길목이야. 지형이 험하고 제국군의 감시가 소홀한 틈이 있을 거야. 이곳이라면… 해볼 만해.”

강노인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의 깊은 눈동자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내,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는 결의로 빛났다.

“좋다. 우리가 해내야 할 일이라면… 피할 수 없지.”

그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이 떠올랐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가슴 속에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피어났다. 그들이 맞서 싸우는 것은 단순히 부패한 제국만이 아니었다. 그 너머에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광기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날 밤, 수도의 밤하늘은 기이하게도 붉은 기운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황궁의 가장 높은 탑에서, 누군가의 읊조림이 바람을 타고 지하 수로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 *이크쓰아. 니알라토텝. 이그. 슈브 니구라스.* —

그것은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저 세상의 이치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의 속삭임이었다. 그리고 그 속삭임은 반란을 꿈꾸는 이들의 심장에 차가운 칼날처럼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