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28화

새벽 두 시, 도시의 불빛들이 저마다의 속도로 흐려질 무렵, 은채는 마이크 앞에 앉았다. 스튜디오는 언제나처럼 고요했고, 그녀의 목소리만이 이 고요를 깨고 밤하늘 아래 잠든 수많은 이들의 귓가에 가닿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평소의 차분하고 온화한 표정 뒤로, 그녀의 심장은 마치 수면 아래 요동치는 파도처럼 불안하게 뛰고 있었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은채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완벽하게 평온했다. 연습되고 다듬어진 수년간의 경험이 만들어낸 가면이었다. 시계 초침 소리마저 삼켜버린 정적 속에서, 첫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피아노 선율이 섬세하게 공간을 채울 때, 은채는 앞에 놓인 한 통의 사연을 응시했다. 몇 시간 전부터 그녀의 책상 위에서 빛바랜 사진처럼 존재감을 드러내던 편지였다.

오늘의 사연은 한 지극히 평범한 청취자, 지민 씨가 보낸 것이었다. 오빠를 찾는다는 내용. 흔하디흔한 사연일 수 있었지만, 글 속에 묘사된 오빠의 모습은 은채의 과거를 산산이 부숴버린 한 조각의 기억과 소름 끼치도록 일치했다.

‘오빠는 별을 정말 좋아했어요. 밤늦도록 뒷산에 올라가 별자리를 그리는 것을 낙으로 삼았죠. 오른쪽 손등에는 어릴 적 놀다 다쳐 생긴 희미한 흉터가 있었고, 늘 작은 멜로디를 흥얼거렸어요. 가사가 없는, 오직 음으로만 이뤄진 곡이었는데… 그걸 들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은채의 손끝이 떨렸다. 서준. 그녀의 첫사랑이자, 가장 소중했던 친구. 별을 사랑했고, 손등에 자신과 장난치다 생긴 흉터가 있었으며, 늘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멜로디를 흥얼거렸던 아이. 십 년 전, 그녀의 곁을 홀연히 사라진 서준이었다. 교통사고. 책임감. 죄책감. 그 모든 단어들이 그녀를 옭아매는 쇠사슬처럼 느껴졌다.

음악이 끝나고, 은채는 심호흡을 했다. 숨결이 마이크를 타고 청취자들에게 닿을까 봐 조심스러웠다. “오늘 지민 씨께서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그녀는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한 문장, 한 문장 입 밖으로 내뱉을 때마다 잊고 싶었던 과거의 조각들이 스튜디오 안에 실체처럼 떠올랐다.

‘오빠가 사라진 지 벌써 10년이 흘렀어요. 사고는 저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겼고, 오빠는 그날 이후로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잘 지내는지조차 알 수 없어요. 부모님은 오빠가 돌아오길 기다리다 병이 드셨습니다. 은채 언니의 목소리에서 위로를 받다 보면, 혹시 오빠도 이 방송을 듣고 있을까 하는 희망이 생겨요. 오빠, 어디선가 이 방송을 듣고 있다면, 제발 연락 한 번만 해주세요. 저희는 언제나 오빠를 기다리고 있어요.’

읽는 동안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심장은 찢어지는 듯 아파왔다. 지민 씨의 오빠가 서준이라는 확신. 그리고 그 사고의 중심에 그녀가 있었다는 잔혹한 진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단순한 DJ가 아니었다. 십 년 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어쩌면 미래까지 잇는 가느다란 실 위에 서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알고 있다고 말해야 할까? 서준이 정말 이 방송을 듣고 있다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서준이 사라진 후, 그녀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무대 뒤로 숨어버렸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라디오 DJ가 된 것은, 어쩌면 어둠 속에 숨은 서준에게 닿기 위한 그녀만의 방식이었는지도 몰랐다. 매일 밤, 수많은 사연을 읽으며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서준의 흔적을 찾았던 것이다.

“지민 씨의 마음이 오빠에게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은채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사연을 듣고 계실지 모르는 분에게도 제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밤하늘의 별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빛나고 있고, 우리는 늘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요.”

그녀는 다음 곡을 소개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선곡표에는 지민 씨가 요청한 곡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은채는 순간 다른 곡으로 손을 돌렸다. 자신과 서준, 둘만이 알았던 특별한 노래. 어린 시절, 밤하늘을 보며 함께 흥얼거렸던, 서준이 직접 만들었다던 멜로디에 가사를 붙인 노래였다. 아무도 그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서준이라면 분명 알아들을 수 있을 터였다.

“다음 곡은, 오늘 이 밤, 별을 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든 분들을 위한 곡입니다. <멜로디가 전하는 밤>.”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다시 스튜디오를 채웠다. 은채는 숨을 멈추고 귀 기울였다. 도입부부터 잊고 있었던 멜로디가 그대로 흘러나왔다. 그녀의 눈가에 뜨거운 것이 맺혔다. 만약, 정말 만약 서준이 이 방송을 듣고 있다면. 이 노래를 듣는다면. 그 멜로디 속에 숨겨진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을까. ‘나는 여기에 있고, 너를 기다리고 있어. 괜찮아.’

노래가 흐르는 동안, 은채는 마이크를 끄고 잠시 눈을 감았다. 십 년 만에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느꼈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던 자신이, 마침내 하나의 별에 닿을 방법을 찾은 것 같았다.

방송이 끝나고, 엔딩 멘트와 함께 시그널 음악이 흘러나왔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은채였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다시 평온해졌다. 하지만 그 평온함 속에는 알 수 없는 기대와 함께, 깊은 불안감이 공존했다.

스튜디오의 불이 꺼지고, 은채는 혼자 남았다. 창밖의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그 별들 중 하나가 서준의 눈빛이라면, 그 별빛은 그녀의 메시지를 받았을까. 십 년 만에 던진 작은 희망의 돌멩이가, 과연 어둠 속 거대한 호수에 잔물결을 일으킬 수 있을까. 은채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오랫동안 잠겨 있던 한 번호를 눌러보려다 멈칫했다. 아직은 아니었다. 그녀는 기다려야 했다. 오늘 밤, 별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대한 답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