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호, 현재 위치. 은하계 3만 광년 외곽, 미탐사 구역 ‘망각의 심연’ 진입 중. 모든 시스템 정상. 이변 없음.」
단정한 목소리가 함교의 적막을 갈랐다. 우주선 ‘청룡호’는 검은 벨벳처럼 끝없이 펼쳐진 심우주를 가르고 있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은 이름 없는 성운의 희미한 잔광뿐, 생명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영역. 그것이 바로 청룡호의 임무였다.
“진아, 다시 한번 확인해 봐. 이 에너지 패턴은… 통상적인 자연 현상과는 거리가 멀어.”
선장 박무진의 묵직한 목소리가 의자에 앉아 홀로그램 화면을 응시하던 항해사 이진아에게 향했다. 그의 눈은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다. 짙은 눈썹 아래 드리워진 그림자가 그의 오랜 경험이 빚어낸 직관을 대변하는 듯했다.
이진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패드를 조작했다.
“선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전례 없는 감마선 폭발 직후, 극저주파 대역에서 비정상적인 공명 패턴이 감지되었습니다. 자연 발생적인 에너지는 분명히 아닙니다. 명백히… 인공적인, 혹은 인공적이었던 겁니다.”
그녀의 목소리 끝에 묘한 긴장감이 실렸다. 우주탐사 10년 차, 그녀도 이런 패턴은 처음이었다.
“인공적인?” 박선장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이곳에서?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에서?”
그때, 함교 한쪽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 붉은색 경고등이 번쩍이며 깜빡였다.
`신호 강화! 원인 불명!`
알림 메시지가 섬광처럼 번개처럼 화면을 뒤덮었다.
“선장님! 방금 전까지 희미했던 신호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좌표… 좌표 확인됩니다!” 이진아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그녀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맹렬히 움직였다. “시각 센서 개방! 잠재적 위협 분석 시작합니다!”
박선장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은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최대한 속도를 늦추고 접근해. 모든 함내 보안 시스템 가동. 외부 스캔은 최고 해상도로.”
스피커에서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새로운 신호가 송출되기 시작했다. 스크린 속, 검은 우주 한가운데에서 희미한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처음에는 단순히 빛의 왜곡인가 싶었지만, 윤곽은 점점 더 선명해지며 거대한 형태로 시야를 압도했다.
“저건… 구조물인가?” 박선장의 목소리에 감탄과 경계가 동시에 섞여 있었다.
“말도 안 돼…” 이진아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스크린에 잡힌 것은, 말 그대로 ‘거대’했다. 마치 우주를 떠다니는 거대한 산맥 같기도 하고, 혹은 암흑 물질로 빚어낸 신의 조각상 같기도 했다. 매끄러운 곡선과 날카로운 각이 불규칙하게 뒤섞여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거대한 하나의 형태로 합쳐져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 표면이었다. 금속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유기적이고, 암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인공적인 질감.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딘 듯 표면 곳곳에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 문양들은 마치 살아 숨 쉬는 듯, 스크린 너머로도 희미한 기운을 내뿜는 것 같았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선들은 특정 규칙성을 띠고 있었으나, 그 의미를 해독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고대의 주술문자 같기도, 어떤 생명체의 신경회로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는 것은… 압도적인 정적이었다. 수만 년, 어쩌면 수억 년 동안 우주를 표류하며 모든 소리를 흡수한 듯한 침묵.
“누가 저런 걸… 대체 언제부터 저기에…” 이진아가 중얼거렸다.
박선장은 한참 동안 말없이 스크린을 노려봤다. 그의 심장이 거칠게 고동쳤다. 단순히 과학적인 발견을 넘어선, 어떤 위대한 미스터리의 예감이 그의 온몸을 휘감았다.
***
몇 시간 뒤, 청룡호는 정체불명의 구조물 상공에 정지했다. 거대한 그림자가 청룡호의 함체를 집어삼킬 듯 드리워졌다. 함내 브리핑 룸에는 탐사팀이 모여 있었다.
박선장이 손가락으로 홀로그램 화면을 가리켰다. 화면에는 구조물의 정밀 스캔 이미지가 띄워져 있었다.
“현재까지 파악된 정보입니다. 구조물의 길이는 대략 100km, 폭은 30km에 달합니다. 내부는 수많은 층과 통로로 이루어져 있고, 특정 구역에서 비정상적인 에너지 반응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방사능 수치는 낮지만, 정체불명의 기운이 계속 감돌고 있습니다.”
과학팀장 최박사가 안경을 고쳐 쓰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장님, 이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입니다! 수천 년, 어쩌면 수백만 년 전의 외계 문명 유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저 기묘한 문양들을 보십시오. 제가 추측컨대 저것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어떤 정보를 담고 있거나… 아니면 에너지의 흐름을 제어하는 장치일 겁니다!”
최박사는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빛이었다. 학자로서 그의 오랜 꿈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그때, 탐사팀의 일원인 보안팀장 한진혁이 냉철하게 제동을 걸었다. 그는 우주 특수부대 출신으로, 강인한 체구와 날카로운 눈빛을 지닌 베테랑이었다.
“최박사님, 흥분은 이해하지만, 미지의 외계 구조물입니다. 내부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생명체가 있을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방어 시스템이 작동할 수도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인류에게 해가 되는 병기일 수도 있습니다.”
“한팀장 말이 맞아.” 박선장이 최박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로 진입한다. 탐사팀은 나, 이진아 항해사, 최박사, 그리고 한팀장이다. 만약 내부에서 어떤 위협이 감지되면, 무조건 철수한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선장님.” 모두가 일제히 답했다.
***
탐사용 셔틀 ‘밤까마귀’가 거대한 구조물의 표면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압도적인 규모에 모두가 숨을 삼켰다. 표면에 뚫린 거대한 균열, 혹은 입구처럼 보이는 곳으로 셔틀이 조심스럽게 진입했다.
내부는 마치 거대한 동굴 같았다. 인공적인 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암흑 속에서, 셔틀의 전등만이 길을 밝혔다. 벽면은 외부와 마찬가지로 기묘한 문양들로 가득했다. 이진아가 함내 스크린을 통해 내부 지도를 띄웠다.
“선장님, 내부 공기는 분석 결과, 호흡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미량의 알 수 없는 입자가 감지됩니다. 유기체와 무기체의 중간 단계… 생체 광물질인 것 같습니다.”
“생체 광물?” 최박사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혀를 내둘렀다. “저 거대한 구조물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일 수도 있다는 건가? 아니면 살아있는 광물로 만들어졌거나!”
셔틀은 좁고 구불구불한 통로를 한참 동안 헤치고 들어갔다. 끝없는 미로 같았다. 이따금씩 바닥에서 솟아오른 뾰족한 암석들이 셔틀의 날개를 스칠 듯 다가왔다.
“선장님,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진아가 고요하게 말했다.
셔틀이 서서히 착륙했다. 전등이 꺼지자, 주위는 다시 짙은 어둠에 잠겼다. 외부 공기를 흡입하는 소리가 적막을 깼다. 탐사팀은 각자 개인 장비를 착용하고 셔틀 문을 열었다.
내부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광활했다. 돔 형태로 펼쳐진 거대한 공간은 그 어떤 건축 양식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형태였다. 천장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사방을 둘러싼 벽에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문양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의 정중앙에, 모든 시선을 잡아끄는 존재가 있었다.
“저건… 대체…” 한진혁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곳에는 거대한 비석이 서 있었다. 아니, 비석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생명력이 넘쳤다. 높이만 해도 수십 미터에 달하는 그것은,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투명한 결정체 같으면서도, 동시에 거대한 나무뿌리처럼 뒤엉킨 모습이었다. 결정체 내부에서는 실핏줄처럼 가느다란 빛줄기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그 빛줄기들이 모여 알 수 없는 문양들을 형성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신경계를 투명한 유리관 안에 가둬 놓은 듯했다.
그리고 그 심장부에서, 아주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고동’이 느껴졌다.
두근. 두근.
마치 거인의 심장이 뛰는 듯한, 아주 느리고 묵직한 고동이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그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듯했다.
“이 기운은… 이전에도 느껴본 적 없는, 그러나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입니다.” 한진혁이 무릎을 꿇고 결정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결정체에 닿으려는 찰나, 박선장의 제지가 떨어졌다.
“한팀장! 섣불리 접촉하지 마!”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최박사가 한진혁보다 먼저, 마치 홀린 듯 결정체를 향해 다가갔다. 그의 눈은 광기로 빛나고 있었다.
“이 에너지는! 이 압도적인 기운은! 이건 단순한 유물이 아니야! 살아있는 지식의 보고이자, 우주의 비밀이 담겨 있는 초월적인 존재다!”
최박사가 결정체의 푸른 표면에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이 결정체에 닿는 순간.
**즈즈즈즈읏-!**
마치 정전기가 방출되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공간을 갈랐다.
결정체 내부의 푸른 빛줄기들이 일제히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고동 소리는 더욱 커지고 빨라졌다.
“크아아아악!”
최박사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의 몸이 경련하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그와 동시에, 결정체 주변에 새겨진 모든 문양들이 섬광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푸른 빛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눈앞에 환상이 펼쳐지는 듯했다.
“선장님! 전자기장에 이상 발생! 모든 통신 두절! 시야 왜곡이 심합니다!” 이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미 빛과 소리에 파묻혀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한진혁은 주저앉은 최박사를 향해 달려갔다. 그의 몸에서 이상한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치 최박사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어떤 것이 끌어당겨지는 듯한, 혹은 유물의 기운이 그의 몸을 침투하는 듯한 섬뜩한 감각이었다.
박선장은 총을 뽑아 들었지만, 어디에 겨눠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최박사!”
결정체는 이제 거대한 심장처럼 폭주하고 있었다. 내부의 빛줄기들은 용암처럼 끓어오르며 문양들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 문양들은 단순히 빛나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꿈틀거리며 공간 속으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쿠우우우우웅-!**
거대한 진동이 땅을 뒤흔들었다. 결정체 중앙에서 한 줄기 강렬한 푸른 빛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 빛줄기가 닿은 천장에서는 거대한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균열 사이에서,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었다.
“선장님… 저 위를… 보세요…” 이진아의 목소리가 공포에 질려 떨렸다.
박선장이 고개를 들었다. 천장의 균열 사이로 보이는 것은…
수많은 눈동자였다.
거대하고 불길한, 알 수 없는 존재의 눈동자들이었다.
결정체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빛이 그의 눈동자를 집어삼키는 순간, 박선장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어떤 이미지들이 스쳐 지나갔다. 고대의 전사들, 기이한 무술을 펼치는 그림자들, 그리고 세상을 뒤덮을 듯한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칼날.
유물은… 단순히 깨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봉인을 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봉인 뒤에 숨겨져 있던 것은…
단순한 외계 문명이 아니었다.
`고대의 무(武)가… 깨어난다.`
박선장의 의식 속에서, 알 수 없는 속삭임이 울려 퍼졌다.
결정체는 더욱 격렬하게 고동쳤고, 푸른 빛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타올랐다.
그리고 균열 너머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형태 없는 그림자였다.
하지만 그 그림자로부터,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마치 수억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강대한 무인(武人)의 정신이 깨어나는 듯한,
압도적인 영압(靈壓)이었다.
“철수… 철수해…!!!” 박선장이 비명처럼 외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최박사는 푸른 빛 속에서 기이한 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비틀었고, 결정체는 그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심연의 조각, 그 속에 잠들어 있던 힘이…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