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끈질기게 창문을 두드리던 밤, 낡은 저택 ‘고요의 집’에 어둠이 깊어지고 있었다. 천둥은 낮게 으르렁거리며 굳게 닫힌 문들을 흔들었고, 번개가 칠 때마다 저택의 그림자는 기괴하게 춤을 췄다. 안 그래도 습하고 스산한 공기는 살인 사건이라는 섬뜩한 소식에 질식할 듯 무거웠다.
경찰차가 저택 입구를 빽빽이 채운 가운데, 이진우는 허름한 트렌치코트의 깃을 올린 채 비를 뚫고 걸어 들어섰다.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달라붙었지만, 그의 눈빛은 빗물조차 씻어낼 수 없는 날카로운 광채를 띠고 있었다.
“이쪽입니다, 이 형사님!”
오 경위가 현관에서부터 그를 알아보고 다급하게 외쳤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 수사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친 기색과 함께, 좀처럼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에 대한 짜증이 역력했다.
“피해자는 한성민 씨입니다. 이 저택의 주인이자 골동품 수집가였죠. 흉기는 칼, 가슴에 한 번 찔렸습니다. 사망 시각은 대략 두 시간 전으로 추정됩니다.”
이진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이미 복도를 지나 어둠 속에 잠긴 방문을 향해 있었다. 오 경위는 진우의 뒤를 따르며 한숨처럼 말을 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밀실이라는 겁니다. 서재는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도 빗장이 걸린 채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고, 내부에서 침입자가 나간 흔적도 없어요. 도대체 살인범은 어디로 사라진 건지…”
서재 문 앞에 도착하자, 젊은 형사 한 명이 초조하게 서 있었다. 문은 낡았지만 견고해 보이는 육중한 나무 문이었고, 문고리 위로 큼지막한 데드볼트가 걸려 있었다. 오 경위는 장갑 낀 손으로 문고리를 잡아 보여주었다.
“이게 발견 당시 상태입니다. 문은 잠겨 있었고, 안에서 열쇠가 꽂힌 채 돌아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직접 땄습니다.”
문이 열리고, 차가운 공기와 함께 희미한 핏비린내가 진우의 코끝을 스쳤다. 그는 망설임 없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은 온통 책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빽빽한 책장들, 고풍스러운 앤티크 가구들, 그리고 그 중심에 놓인 묵직한 서재 책상.
책상 위에는 갖가지 골동품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고, 그 사이로 깨진 도자기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책상에 몸을 기댄 채, 한성민 씨가 축 늘어져 있었다. 그의 셔츠는 붉게 물들어 있었고, 푸른 눈은 천장을 향해 멍하니 열려 있었다.
이진우는 시체를 곁눈질하며 방 안을 천천히 훑었다. 그의 시선은 바닥의 먼지, 책장의 배열, 창문의 틈새, 심지어는 천장의 작은 균열까지 놓치지 않았다.
“사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진우가 나지막이 물었다.
오 경위가 문 쪽으로 고개를 짓자, 늙은 집사 김 씨가 겁에 질린 얼굴로 서 있었다. 그는 손수건을 든 채 연신 얼굴의 땀을 닦아냈다. 옆에는 히스테리컬한 표정의 가정부 이 씨와, 차분하지만 어딘가 냉정한 인상의 주치의 박 씨가 서 있었다.
“김 집사입니다. 평소와 달리 한성민 씨가 아침에 내려오지 않자 걱정되어 서재 문을 두드렸고, 인기척이 없자 이상하게 여겨 문을 열려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문이 잠겨 있어 열 수 없었다고 합니다.” 오 경위가 설명했다.
이진우는 김 집사를 응시했다. “문은 언제나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까?”
김 집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나리께서는 서재에 들어가시면 늘 안에서 잠그셨습니다. 누구도 방해받는 것을 싫어하셨으니까요.”
“그래서, 당신은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 신고를 했단 말입니까?”
“그… 그렇습니다. 몇 번 더 두드려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창문 쪽으로 가 보았지만 역시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서…”
이진우는 김 집사의 말을 자르고 창문으로 향했다. 두꺼운 암막 커튼을 걷어내자, 빗물이 흐르는 이중창이 드러났다. 낡은 창틀 안쪽에는 녹슨 빗장이 단단히 걸려 있었다. 바깥쪽에는 오래된 철창이 설치되어 있었다. 먼지 한 톨 없는 빗장은 마치 수십 년간 건드리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완벽한 밀실. 그래, 너무나도 완벽해서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진우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번쩍이는 이미지가 스쳤다. 오래된 도서관의 책장, 손때 묻은 고서, 그리고… 책장 뒤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불빛. 현실의 서재와 과거의 기억이 뒤섞이며 짧은 혼란이 일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다시 서재로 시선을 돌린 진우는 책장을 응시했다. 그는 책꽂이를 천천히 훑으며 손을 뻗어 책등을 스쳤다. 낡은 책에서 풍기는 특유의 곰팡내와 종이 냄새가 섞여 코끝을 맴돌았다.
“사건 발생 전, 이 방에 출입한 사람은 누가 있습니까?” 이진우가 물었다.
박 주치의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오늘 저녁에 한성민 씨의 혈압을 측정하러 잠시 들어갔었습니다. 7시쯤이었죠.”
“문은 어떻게 잠겨 있었습니까? 그때도 안에서 잠그셨습니까?”
“아닙니다. 제가 들어갈 때는 잠겨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측정 후 나올 때, 나리께서 직접 문을 잠그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확실합니까?”
“네. 늘 그렇게 하셨습니다.” 박 주치의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였다.
이진우는 잠시 침묵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시각은 약 두 시간 전. 박 주치의가 나간 후, 약 한 시간 뒤에 살인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한성민 씨가 문을 잠근 후, 살인범은 어떻게 방 안으로 들어왔고, 또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이진우는 다시 책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 사이에서 그의 시선은 한 지점에 멈춰 섰다. 다른 책들과는 미묘하게 다른, 아주 작은 흔적. 마치 먼지 속에 손가락이 닿았다가 사라진 것 같은 자국이었다. 주변의 다른 책들과는 달리, 그 부분의 먼지층이 아주 미세하게 교란되어 있었다.
*이 정도 먼지층이라면, 며칠이 아닌 몇 시간 안에 생긴 흔적이야.*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가락으로 그 부분을 톡톡 건드렸다. 그리고 순간, 빗소리에 섞여 아주 희미하게, 목재가 마찰하는 듯한 소리가 그의 귓가를 스쳤다. 아주 작고, 짧은 소리였지만, 그의 예민한 감각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오 경위님, 이 책장 좀 자세히 보시죠.” 이진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오 경위는 의아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책장이요? 오래된 책장인데… 뭔가 특이한 점이라도 있습니까?”
“이 저택은 꽤 유서 깊은 곳이라 들었습니다. 오래된 저택에는 종종 남다른 비밀들이 숨겨져 있기도 하죠.”
이진우의 손가락은 특정 책 한 권을 가리켰다. 여느 책과 다름없이 낡고 해진 표지의 고서였다. 그는 그 책을 뽑아냈다. 책이 빠져나오자, 그 뒤에 있던 벽면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밀실은… 절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살인범은 이 방에서 나갔습니다. 다만, 우리가 모르는 통로를 통해 나갔을 뿐이죠.”
그의 말을 들은 용의자들의 얼굴에 미묘한 변화가 스쳐 지나갔다. 김 집사는 입술을 깨물었고, 가정부 이 씨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박 주치의의 냉정한 시선이 잠시 흔들리는 것을 진우는 놓치지 않았다.
이진우는 책이 빠진 공간에 손을 넣었다. 좁고 깊은 틈새였다. 그는 그 안쪽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그리고 무언가 차가운 금속성의 감촉이 그의 손끝에 닿았다. 그것은 작은 버튼이었다.
그가 버튼을 누르자, 희미하게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벽면을 가득 채웠던 거대한 책장 한 부분이 미세하게 안쪽으로 밀려들어갔다. 그리고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옆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책장 뒤로 드러난 것은 어둠뿐이었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차가운 바람이 희미하게 서재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것은 살인범이 드나들었던,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비밀 통로였다.
“이 통로가 어디로 연결되는지 아는 사람은… 분명 이 안에 있을 겁니다.”
이진우는 어둠 속을 응시하며 차갑게 말했다. 그의 시선은 세 명의 용의자를 번갈아 훑었다. 빗소리는 여전히 창문을 두드렸고, 저택은 길고 숨 막히는 침묵에 잠겼다. 밀실의 비밀이 이제 막 그 장막을 걷어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