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전생 (Isekai)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회색 먼지가 폐허가 된 도시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빌딩들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채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길바닥은 갈라지고 무너져 마치 거대한 상처처럼 보였다. 탁한 공기 속에는 곰팡이와 금속성의 비릿한 냄새, 그리고 미약하게나마 죽은 생명체의 잔해에서 풍기는 썩은 내가 섞여 있었다. 지독한 갈증이 목구멍을 찢을 듯이 조여왔다.

“젠장….”

강우진은 메마른 입술을 억지로 비틀어 중얼거렸다. 등 뒤에 짊어진 낡은 배낭이 그의 지친 어깨를 더욱 짓눌렀다. 며칠째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수분 섭취라고는 이따금 벽에 고인 끈적한 이끼를 긁어먹거나, 흙탕물을 필터로 겨우 걸러 마시는 것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이제는 바닥났다.

그는 부서진 아파트 잔해를 밟으며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삐걱거리는 철골들이 그의 발걸음에 맞춰 불길한 비명을 질렀다. 이 구역은 ‘정적 지대’라고 불렸다. 다른 생존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변이된 괴물들조차 잘 나타나지 않는 곳. 그만큼 아무것도 없는, 죽은 구역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우진에게는 희망의 장소였다. 아무것도 없다는 건, 어쩌면 손대지 않은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했으니까. 특히, 물.

그의 시선이 한때 번화했던 상가 건물들의 잔해를 훑었다. 유리창들은 모두 깨져나갔고, 간판은 녹슨 철 조각이 되어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문득,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완전히 붕괴되지 않고 절반쯤 지면에 파묻힌 대형 슈퍼마켓의 흔적이었다. 정확히는, 슈퍼마켓의 냉동창고 구역. 철문은 이미 녹슬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문을 뚫고 나온 굵은 전선들이 여전히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는 듯했다.

“혹시….”

우진의 심장이 미약하게나마 뛰기 시작했다. 냉동창고는 완벽하게 밀폐된 공간이다. 외부의 오염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며, 습기가 보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폐허에서 기적 같은 일이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그는 주위를 경계하며 건물 잔해를 돌아 슈퍼마켓 후문 쪽으로 향했다.

콘크리트 덩어리가 산을 이루고 있는 좁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자, 냉동창고의 두꺼운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굳게 닫힌 문틈으로 시큼한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 나왔다. 안쪽의 부패한 공기 탓이겠지만, 그만큼 내부와 외부의 공기가 잘 섞이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귀를 문에 가져다 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생물이 살고 있다면 미약한 움직임이라도 느껴져야 했다. 너무나 완벽한 정적이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건 좋은 징조일 수도, 혹은 더 나쁜 징조일 수도 있었다.

낡은 쇠지렛대를 꺼내 문틈에 끼워 넣었다. 온몸의 힘을 실어 누르자, 끼이이익- 하는 소름 끼치는 마찰음과 함께 문이 조금씩 벌어졌다.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는 순간, 안쪽에서 역겨운 썩은 내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코를 막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내부는 암흑 그 자체였다. 그는 주머니에서 낡은 플래시를 꺼내 불을 밝혔다. 켜지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약하게나마 빛을 뿜어냈다. 플래시 불빛이 비추는 곳은 온통 먼지와 곰팡이로 뒤덮여 있었다. 선반들은 무너져 내렸고, 한때 신선식품으로 가득했을 냉장고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바닥에는 녹아내린 얼음물이 고여 있었다.

“물….”

우진은 흥분으로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고인 물을 만져보았다. 차갑다. 그리고 의외로 맑았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며 외부의 오염물질은 걸러지고, 지하수가 스며들어 고인 것일까? 아니면 냉동고 안의 얼음이 녹아내린 것일까? 어느 쪽이든, 귀한 물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배낭을 내려놓고 빈 물통을 꺼냈다. 웅크리고 앉아 조심스럽게 물을 떠 마시려는 순간, 그의 등골이 오싹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섬뜩한 느낌.

그는 재빨리 플래시를 들어 주위를 비추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시선이 다시 바닥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 뒤로,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두 개의 붉은 점을 포착했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던지며 굴렀다. 동시에, 플래시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크르르….”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텅 빈 냉동창고에 울려 퍼졌다. 우진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숨을 몰아쉬었다. 플래시가 비추는 곳에 서 있는 것은, 검은 털로 뒤덮인 짐승이었다. 늑대와 비슷한 형태였지만, 크기는 훨씬 컸고, 앞발에는 날카로운 갈고리 발톱이 돋아나 있었다. 특히 눈빛은 굶주림과 광기로 가득 찬 붉은색이었다. ‘어둠추적자’. 정적 지대에 드물게 출몰하는 가장 위험한 변이 생명체 중 하나였다. 이놈은 소리에 민감하고, 빛을 싫어하며, 주로 어둠 속에서 기습적으로 사냥하는 포식자였다.

우진은 쥐고 있던 쇠지렛대를 고쳐 잡았다. 플래시 불빛이 어둠추적자의 눈을 향하자, 녀석은 잠시 주춤하며 고개를 돌렸다. 빛에 약하다는 정보는 사실이었다.

기회였다.

우진은 짐승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어둠추적자는 플래시 불빛에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낮게 으르렁거리며 그를 향해 돌진했다. 쾅! 날카로운 발톱이 그가 방금까지 기대고 있던 벽을 할퀴었다. 콘크리트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우진은 좁은 선반 사이를 미친 듯이 헤치며 달렸다. 쿵, 쿵, 쿵. 짐승의 발소리가 그의 뒤를 맹렬히 쫓아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이대로라면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의 머릿속에서 모든 정보들이 빠르게 교차했다. 빛에 약하다, 소리에 민감하다, 그리고… 뛰어난 후각.

그는 문득 냉동창고 안쪽, 부서진 냉장고 사이로 난 좁은 틈새를 발견했다. 그곳은 어둠추적자가 몸을 웅크려도 들어올 수 없을 만큼 비좁았다.

“이쪽이다!”

우진은 필사적으로 틈새를 향해 몸을 던졌다. 간신히 몸을 밀어 넣자마자, 뒤에서 날아온 발톱이 그의 다리를 스쳤다. 날카로운 고통이 허벅지를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피가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어둠추적자는 좁은 틈새 밖에서 으르렁거리며 앞발로 벽을 긁었다. 녀석의 붉은 눈이 틈새 너머의 우진을 노려보았다. 들어가지는 못해도, 나올 수도 없었다. 완벽한 함정이었다.

우진은 숨을 고르며 땀으로 범벅이 된 손으로 쇠지렛대를 꽉 쥐었다. 이대로 갇혀 죽을 수는 없었다. 그는 플래시를 들어 어둠추적자의 얼굴에 직접적으로 비췄다. 녀석은 잠시 눈을 감으며 고통스러워하는 듯했지만, 이내 광기 어린 눈으로 다시 그를 노려보았다.

“젠장….”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좁은 틈새 안에도 냉동창고의 잔해들이 가득했다. 부서진 선반, 녹슨 부품들. 그리고 눈에 띈 것은, 바닥에 고인 물이었다. 이곳까지 물이 고여 있었다는 건, 물줄기가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물을 만져보았다. 밖에서 보았던 물보다 훨씬 차갑고, 깨끗했다. 마치 지하에서 솟아나는 샘물처럼.

“이거라면….”

우진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스쳤다. 그는 플래시를 비추며 틈새 안쪽의 벽을 살폈다. 오래된 콘크리트 벽은 세월의 흐름 속에 곳곳에 균열이 가 있었다. 그리고 그 균열 중 하나에서, 미세하게 물방울이 맺혀 떨어지고 있었다.

어둠추적자는 밖에서 끈질기게 으르렁거렸다. 당장이라도 틈새를 부수고 들어올 기세였다. 시간은 없었다. 우진은 쇠지렛대를 물방울이 맺히는 균열에 갖다 댔다. 있는 힘껏 틈새를 벌리자, 콘크리트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 소리에, 어둠추적자가 더욱 격렬하게 반응하며 벽을 긁어댔다.

끼이이익! 푸스스…!

균열이 조금 더 벌어지자, 그 안에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뭔가 묵직한 것이 굴러 떨어졌다. 돌덩이였다. 돌덩이가 떨어져나가자, 그 너머로 어둡고 좁은 통로가 드러났다. 비상용 배수로나 환기구 같은 것일까?

우진은 망설일 틈도 없이 그 통로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어둠추적자의 으르렁거림이 뒤에서 더욱 크게 들려왔다. 통로는 좁고 미끄러웠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살아야 했다.

한참을 기어가자, 저 멀리 희미한 빛이 보였다. 바깥이었다! 그는 온몸에 남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통로 끝으로 기어 나왔다.

철컥!

좁은 배수로를 빠져나오자, 축축한 흙냄새가 그의 코를 찔렀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것은, 폐허가 된 도시 외곽의 지하수로였다. 머리 위로는 낡은 콘크리트 천장이 있었고, 발아래로는 맑고 차가운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찾았다….”

우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가에 엎드렸다. 손으로 물을 떠 마시자,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듯한 시원함이 느껴졌다. 갈증이 해소되는 순간, 모든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는 흐르는 물에 빈 물통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지하수로 안은 예상치 못한 위험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어둠추적자는 그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쯤 냉동창고 밖으로 나와 이 주위를 맴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진은 허벅지의 상처를 확인했다. 깊지는 않았지만, 계속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배낭에서 약품을 꺼내 상처를 소독하고 거친 천으로 감쌌다.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하수로는 어둠 속으로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대로 이곳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

그는 굳은 얼굴로 앞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 발짝, 한 발짝.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그의 유일한 길잡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저 멀리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줄기가 깜빡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살아있는 빛이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그곳에 있다는 신호.

우진은 흐르던 물통을 꽉 움켜쥐었다. 새로운 희망인가, 아니면 또 다른 절망의 시작인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갈 수밖에 없었다. 이 황폐해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는 빛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등 뒤에서는, 여전히 어둠추적자의 낮은 으르렁거림이 희미하게 울려 퍼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