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음, 너희도 꽤 오래 버텨주는구나.”
내 손길이 파릇한 상추 잎사귀 위를 스쳤다. 새벽 호의 바이오 모니터링 담당이자 실질적인 ‘온실 관리자’인 내가 이 광활한 우주선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바로 이 작은 온실이었다. 흙냄새와 싱그러운 풀냄새가 기계음 대신 공간을 채우는 유일한 곳. 심우주의 고요함 속에서 나는 이곳의 초록 생명들이 보내는 미세한 숨결에 귀 기울이며 나만의 평화를 찾곤 했다.
창밖으로는 언제나처럼, 무수히 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우주가 펼쳐져 있었다. 검은 벨벳에 박힌 다이아몬드처럼 영롱했지만, 그 찬란함은 동시에 가늠할 수 없는 외로움을 안겨주기도 했다. 우리가 지금 어디쯤 떠다니고 있는지, 함장님은 아마 알고 계시겠지만, 내게는 그저 끝없는 심연의 한 조각일 뿐이었다.
“윤슬, 잠시 함교로 와줄 수 있을까?”
내 헤드셋 너머로 한이진 함장님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늘 그렇듯 침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어딘가 미묘한 긴장감이 실려 있는 듯했다. 평소라면 ‘식물들은 잘 지내니?’ 같은 안부 인사를 먼저 건네실 분이셨으니까.
“네, 함장님.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나는 황급히 물뿌리개를 내려놓고 온실 문을 나섰다. 복도를 가로질러 함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무슨 일일까? 기계 고장? 아니면 예상치 못한 소행성이라도? 새벽 호는 지난 3년 동안 심우주를 탐사하며 수많은 ‘아무 일 없음’을 기록해왔다. 그래서 이런 호출은 늘 작지만 큰 사건의 전조처럼 느껴졌다.
함교 문이 스르륵 열리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함장님은 중앙 홀로그램 스크린 앞에서 팔짱을 끼고 서 계셨고, 그 옆에는 탐사 팀장인 강태오 박사님이 흥분한 표정으로 잔뜩 모니터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태오 박사님은 머리카락이 늘 부스스하고 안경이 코에 걸쳐져 있는 게 트레이드마크인데, 지금은 그 안경이 거의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함장님, 부르셨습니까?”
“오, 윤슬 왔구나.”
함장님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살짝 미소 지었지만, 시선은 다시 홀로그램 스크린으로 향했다. 스크린에는 평범한 성운 이미지 대신, 이상하고도 매혹적인 형상이 일렁이고 있었다.
“태오 박사님, 무슨 일인가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태오 박사님은 내 질문에 번개라도 맞은 듯 고개를 휙 돌렸다. 그의 눈은 광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윤슬 씨! 자네도 이것 좀 보게! 기가 막히지 않나! 이건… 이건 말이지, 우리가 찾던 바로 그것일세!”
그는 격양된 목소리로 손가락을 스크린 위로 내저었다. 스크린에 떠오른 건, 주변의 검은 우주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묘한 유선형의 물체였다. 크기는 작은 우주선 정도? 하지만 금속 같지도, 암석 같지도 않았다. 마치 심해의 거대 생명체처럼 부드럽고 유기적인 곡선을 가지고 있었고, 표면은 옅은 옥빛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깜빡이며 색조를 바꾸는 듯했다.
“이게… 뭔가요? 소행성 치고는 너무…”
“소행성이라니! 소행성이라니! 윤슬 씨! 이건 소행성이 아닐세! 우리의 스캐너가 포착한 에너지 서명은 그 어떤 자연 현상과도 일치하지 않아!” 태오 박사님이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외쳤다. 그의 흥분은 전염성이 강했다.
함장님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태오 박사님, 진정하시고요. 윤슬이 놀라지 않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시죠.”
태오 박사님은 큼큼거리고는 안경을 고쳐 썼다. “음, 그래. 진정. 아무튼, 이 물체는 우리 항로에서 갑자기 탐지된 미지의 존재일세. 접근 거리는 약 1광초. 흥미로운 건, 자체적인 동력원이나 추진 장치는 전혀 감지되지 않는데도 아주 미약하게나마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야. 마치… 심해의 해파리처럼 말이지. 표면 온도도 주변 우주 공간과 거의 차이가 없고, 구성 물질도 기존 데이터와 일치하는 것이 없어.”
그는 다시 스크린을 가리켰다. “가장 놀라운 건 이거야. 이 물체에서 나오는 신호가… 특정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걸세. 마치 언어처럼, 하지만 우리가 아는 어떤 언어와도 달라. 비선형적이고, 불규칙적인데… 또 질서 정연해. 완벽한 역설이지!”
나는 화면 속의 유려한 물체를 멍하니 바라봤다. 섬세하게 빛나는 옥빛 표면은 마치 부드러운 비단 같기도 했고, 살아있는 생물의 피부 같기도 했다. 그 안에서 미세하게 파동치는 빛은 내 마음속 어딘가를 건드리는 듯했다.
“정말로… 외계 유물인가요?” 내 목소리는 나도 모르게 떨렸다. 지난 3년간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헤맸으니까.
함장님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이 거대한 우주에서 우리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될지도 모르죠.” 그녀의 눈빛은 비장하면서도 기대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접근 속도는 최저로 유지하고, 모든 탐사 장비를 활성화하세요. 조심스럽게, 그리고 신중하게 접근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함장님!” 태오 박사님은 다시 활기찬 목소리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여러 패널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화면 속의 미지의 물체는 점점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함장님은 나를 돌아봤다. “윤슬, 자네가 맡은 바이오 센서들은 전부 정상인가? 혹시라도 이 물체가 생체 반응을 보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할 거야.”
“네, 함장님. 모든 센서 정상입니다. 혹시라도 비정상적인 생체 반응이 감지되면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임무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이 평화로운 새벽 호에, 미지의 존재가 던져질 수도 있는 것이다.
몇 분 후, 새벽 호는 미지의 물체로부터 약 100미터 지점까지 접근했다. 육안으로도 그 신비로운 자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스크린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영롱하고, 어딘가 신성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옅은 옥빛은 이제 미묘한 금빛으로 변해 있었고, 마치 심해의 고대 유적처럼 조용히 그 자리에 떠 있었다.
“태오 박사님, 추가 스캔 결과는 어떻습니까?” 함장님이 물었다.
태오 박사님의 얼굴에는 경이로움과 당혹감이 뒤섞여 있었다. “함장님… 믿기지 않겠지만, 이 물체는… 존재하지 않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아는 한에서는요. 원자 구조가… 불안정하면서도 완벽하게 결합되어 있어요. 그리고 내부에서는 어떠한 동력원도 감지되지 않는데, 표면에서는 일정한 주기로 미세한 진동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마치… 잠들어 있는 생명체 같달까요?”
그의 말에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잠들어 있는 생명체라니.
“생명체… 라면?” 함장님이 되물었다.
“아니요! 직접적인 생체 신호는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미세한 진동과 불규칙적인 신호 패턴… 흡사 심장이 뛰는 것처럼, 혹은 깊은 숨을 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게다가 저희 바이오 센서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로 봐서는… 우리가 아는 생명체의 정의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일 겁니다.”
나는 무심코 손을 뻗어 조종석 창밖을 향했다. 유리가 막고 있었지만, 그 신비로운 물체에 닿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옥빛에서 금빛으로, 그리고 다시 푸른빛으로 미세하게 변하는 그 색채의 향연은, 마치 우주가 우리에게 보내는 은밀한 메시지 같았다.
“함장님, 이 물체에서… 아주 미약한 파동이 느껴집니다. 제 바이오 센서에는 잡히지 않는… 하지만 제 몸이 느끼는 파동이요.” 내가 나직하게 말했다.
함장님과 태오 박사님이 동시에 나를 돌아봤다.
“파동이라니? 어떤 종류의 파동이지, 윤슬?” 태오 박사님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물었다.
“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물리적인 진동은 아닌 것 같고… 그냥…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에요. 온실에서 식물을 돌볼 때 느껴지는 그런 종류의… 평화로움 같은 거요.”
내 말에 함장님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윤슬의 특기죠, 생명의 소리를 듣는 것.”
태오 박사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체 신호는 아니라고 했으니… 혹시 심리적인 효과일까? 미지의 것에 대한 경외감에서 오는 착각일 수도 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착각은 아닌 것 같아요.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히 느껴져요. 마치 이 물체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싶어 하는 것처럼요.”
함장님은 다시 홀로그램 스크린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호기심, 경계심, 그리고 알 수 없는 기대감.
“알겠습니다. 태오 박사님, 원거리 탐사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여기까지인 것 같군요. 이제… 직접 확인해볼 시간입니다.”
내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직접 확인이라니. 그 말은… 누군가가 저 미지의 물체에 직접 다가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선내 방송합니다. 전 승무원은 각자의 위치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10분 후, 외부 탐사선 ‘반딧불이’를 이용한 1차 샘플 채취 및 근접 조사가 시작됩니다.”
함장님의 목소리가 우주선 전체에 울려 퍼졌다. 내 눈은 다시 창밖의 신비로운 물체에 고정되었다. 우주에서 발견된 작은 숨결.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해 줄까? 우리가 찾아 헤매던 답의 시작일까, 아니면 또 다른 미궁의 입구일까.
새벽 호의 조용한 함교 안에서, 미지의 존재를 향한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