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파는 상점 – 제27화

새벽 세 시, 미나는 또다시 식은땀에 젖은 채 깨어났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낡은 천장 선풍기가 삐걱이며 돌아가는 소리마저 환청처럼 들렸다. 베개 옆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었지만, 누구에게도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 기이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누가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의 눈앞에는 아직도 하은의 잔상이 아른거렸다. 조그맣고 발그레했던 뺨, 장난기 어린 눈빛, 자신을 ‘언니!’ 하고 부르던 맑은 목소리. 모든 것이 너무나 생생해서, 방금 전까지도 하은이 침대 끝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일주일 전, 아니, 정확히는 열흘 전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죄책감에 짓눌려 헤매던 미나는 우연히 ‘꿈을 파는 상점’이라는 간판을 보았다. 희미한 램프 불빛 아래, 상점은 마치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처럼 홀로 서 있었다. 홀린 듯 들어선 그곳에서, 묘령의 주인장은 미나에게 ‘가장 간절한 꿈’을 물었다. 미나는 주저 없이 답했다. 죽은 동생, 하은이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딱 한 번만,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주인장은 아무 말 없이 빛나는 구슬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이것은 단순한 꿈이 아닙니다. 당신의 가장 깊은 소망이 형상화된 것이지요.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꿈은 현실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저 당신의 마음에 닿을 뿐.”

그날 밤, 미나는 난생 처음 보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하은은 살아 있었다. 활짝 웃으며 언니의 손을 잡고 강가에서 뛰놀았고, 가장 좋아하던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었다. 미나가 울먹이며 ‘미안해’라고 속삭이자, 하은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언니가 왜 미안해? 나는 언니가 제일 좋은데!’ 그 순간의 평온함과 행복은 미나의 모든 고통을 씻어내는 듯했다. 잠에서 깼을 때, 미나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지만 마음은 얼마 만에 느끼는 평화로 가득했다.

문제는 그 평화가 오래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행복한 꿈의 여운이라고 생각했다. 길을 걷다 문득 하은이 좋아하던 꽃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거나, 카페 창가에 앉아있는 아이들 중에서 하은의 뒷모습을 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하은의 모습은 미나의 일상에 더욱 선명하게, 그리고 불쑥불쑥 나타나기 시작했다.

퇴근길 만원 버스 창밖으로, 하은이 즐겨 입던 노란색 점퍼를 입은 아이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의 얼굴이 하은과 너무도 똑같아서, 미나는 숨을 헐떡이며 버스에서 내렸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그 아이를 쫓아갔지만, 인파 속으로 사라진 것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 환영이었다.

집에서는 더욱 심했다. 주방에서 물을 마시고 있으면 식탁 건너편 의자에 앉아 까르르 웃는 하은의 목소리가 들렸다. 밤에는 잠들기 전 침대 맡에서 책을 읽어달라 조르는 하은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엔 그리움이 만들어낸 착각이라 애써 부정했지만, 하은의 모습은 날이 갈수록 생생해져 마치 진짜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고, 말을 걸면 대답할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제나 미나가 손을 뻗는 순간, 그녀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미나는 더 이상 제대로 잠들 수 없었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너져 내렸다. 하은의 환영은 그녀를 따라다니며 일상의 모든 조각들을 부숴버렸다. 회사에서는 멍한 표정으로 창밖만 바라보거나,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기 일쑤였다. 동료들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미나는 그들의 시선이 자신을 ‘미친 사람’으로 낙인찍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미나 씨, 괜찮아요? 요즘 많이 힘들어 보여서….”

친한 동료인 지혜가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미나는 저도 모르게 테이블 아래로 떨어진 펜을 주우며 픽, 하고 웃음을 흘렸다. “괜찮아. 그냥… 요즘 잠을 잘 못 자서 그래.”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지혜의 어깨 너머, 빈 공간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곳에 하은이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미나는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꿈을 파는 상점’을 찾았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상점의 낡은 간판은 여전히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익숙한 향 내음이 코를 스쳤다. 수많은 꿈들이 담겨 있다는 빛나는 구슬들이 유리 진열장 안에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오셨군요, 미나 씨.”

창가에 앉아 오래된 책을 읽고 있던 주인장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늘 그렇듯 온화하고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주름진 눈가가 길게 휘어지는 그의 모습은 마치 오래된 이야기 속의 현자 같았다.

미나는 그의 앞에 서서 두 손을 꽉 쥐었다. 떨리는 목소리가 겨우 흘러나왔다.

“주인장님… 저… 저 지금 너무 힘들어요. 제 꿈이… 제 꿈이 절 망가뜨리고 있어요.”

주인장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미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천천히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은이… 그녀가 아직도 당신 곁에 있습니까?”

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차올라 시야를 흐렸다.

“네. 밤낮없이… 항상 보여요. 제정신이 아니에요. 죽은 아이가… 죽은 아이가 계속 저를 따라다녀요. 이게 대체 무슨… 대체 무슨 꿈이에요? 왜 하은이가 저를 떠나지 않죠?”

그녀의 목소리에는 절규가 섞여 있었다. 주인장은 한숨을 쉬었다.

“당신은 하은이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당신의 간절한 소망은, 꿈의 형태로 하은이를 불러냈지요. 하지만 미나 씨, 당신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것은 단순히 그리움만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죄책감… 그리고 아직 하지 못한 이별의 말들. 당신은 그 모든 것을 꿈에 담아냈고, 꿈은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현실과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것입니다.”

미나는 무릎이라도 꿇을 듯이 흐느꼈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해요? 제가 원한 건 평화였어요… 이렇게 고통받는 게 아니었어요.”

주인장은 조용히 미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의 손은 따뜻했지만, 그 무게는 미나의 고통을 더욱 깊게 느끼게 하는 듯했다.

“꿈은 마법이 아닙니다. 현실을 조작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꿈은 당신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하은이 당신의 곁에 머무는 것은, 그녀가 당신을 떠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당신이 그녀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미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지만, 무언가 깨달은 듯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떠나보내지 못한다구요…?”

“네. 당신은 꿈을 통해 하은과의 마지막 만남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 만남은 당신의 진정한 작별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잠시 동안의 위로, 혹은 외면이었을 뿐이죠. 꿈은 당신의 무의식 속에 숨겨진 고통을 끌어올려 현실로 드러낸 것입니다. 당신이 하은이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 그리고 하은이가 당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아직 당신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요.”

주인장은 진열장 가장 안쪽에 놓인, 다른 구슬들보다 훨씬 더 희미하게 빛나는 구슬 하나를 가리켰다.

“이것은 ‘작별의 꿈’입니다. 당신이 하은이를 온전히 떠나보내고, 당신 자신을 용서할 수 있도록 돕는 꿈이지요. 하지만 이 꿈은… 이전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진짜 이별은 언제나 아프니까요.”

미나는 떨리는 시선으로 희미한 구슬을 바라보았다. 또 다른 꿈. 또 다른 고통. 하지만 이대로는 살 수 없었다. 하은의 환영에 갇힌 채 평생을 살아가느니, 차라리 진짜 이별을 택하고 싶었다.

“이 꿈은… 하은이가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해줄까요?” 미나가 겨우 물었다.

주인장은 빙긋 웃었다. “하은이는 이미 편안합니다. 그녀를 붙잡고 있는 것은 당신의 마음뿐이에요. 이 꿈은 하은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미나는 깊은 심호흡을 했다. 그녀는 이제 알 것 같았다. 꿈을 파는 상점이 주는 것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때로 지독한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거울이며, 외면했던 고통을 끄집어내는 가시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오직 자신만이 열 수 있는 치유의 문이었다.

“주세요… 그 꿈을 제게 주세요.”

미나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지만, 그 속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주인장은 미나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꿈속에서 하은이를 만나거든, 모든 것을 다 말하세요. 숨기지 말고, 후회 없이. 그리고… 그녀를 진심으로 보내주세요.”

미나는 구슬을 받아 들었다. 차가운 온기가 손바닥을 감쌌다. 이번 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자신을 찾아올까. 두려웠지만, 동시에 한 줄기 희망이 그녀의 마음속에 번졌다.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그녀는 하은과 진정으로 작별하고, 스스로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었다. 상점의 문을 나서는 미나의 뒷모습은,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해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그림자는, 여전히 길고 어둡게 드리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