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공상과학)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잿빛 도시의 숨결

햇빛은 거칠었고, 바람은 쇠 비린내를 머금었다. 카이의 낡은 부츠는 콘크리트 조각과 녹슨 금속 파편 위를 조심스럽게 미끄러졌다.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소음이 작은 새 한 마리조차 얼씬거리지 않는 이 잿빛 도시에선 너무나 크게 울렸다. 허리춤에 찬 키네틱 라이플의 차가운 금속 감촉만이 아직 살아있다는 미약한 증거였다.

“젠장, 이런 곳에 뭐가 남았다고….”

삭막한 공허 속에서 튀어나온 그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벌써 사흘째였다. ‘식량’이라는 미명 아래, 그가 짊어져야 할 모든 것을 찾아 헤매는 시간. 지평선까지 뻗어 있는 거대한 강철과 콘크리트의 무덤은 과거 문명의 웅장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잔해로 먹을 것 없는 황량함만을 내뿜었다.

이번 목적지는 옛 통신탑 잔해였다. 전해지는 소문에 의하면, 그곳에 한때 데이터 저장 장치들이 밀집해 있었다고 했다. 어쩌면 작동 가능한 정보 단말기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 혹은… 운이 좋다면 폐기된 비상 식량이라도. 카이는 잊었다. 희망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생존에 필요한 물건의 ‘양’이었다.

폐허가 된 빌딩의 외벽을 타고 오르는 것은 언제나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부식된 철근을 잡고, 위태로운 콘크리트 파편에 발을 디뎠다. 한 번의 실수는 곧 죽음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개미처럼 작아진 지상의 잔해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조용해서, 오히려 그 침묵이 더욱 거대하고 섬뜩하게 느껴졌다.

*휘이잉…*

갑작스러운 돌풍이 불어왔다. 먼지와 부서진 유리 조각들이 허공에서 춤을 추다 흩어졌다. 이 잿빛 도시의 가장 흔한 주민들. 카이는 재빨리 얼굴을 가리고 다음 지지대를 찾았다. 낡은 셔터가 반쯤 떨어져 나간 창문 틈으로 몸을 밀어 넣자, 후텁지근한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내부도 외부와 다를 바 없이 황폐했다. 천장은 붕괴되어 있었고, 철골 구조물은 앙상한 뼈대처럼 드러나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삑삑거리는 소리를 내는 탐색용 소형 드론 ‘찌르’가 카이의 어깨 위에서 작게 진동했다.
“뭐라도 있냐, 찌르?”
드론은 잠시 윙윙거리더니, 전방의 어두운 복도를 향해 희미한 녹색 불빛을 깜빡였다.
“그래, 네 감은 믿어볼 만하지.”
카이는 찌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낡은 복도 끝, 문짝이 사라진 방 안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태양 빛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새어 나오는 인공적인 빛.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서자, 오래된 컴퓨터 서버 랙들이 늘어서 있었다. 대부분은 녹슨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지만, 그중 한 랙의 깊숙한 곳에서 작은 전원 표시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카이의 심장이 기대감에 작게 울렸다. 이런 곳에서 아직 작동하는 기계라니. 이 황폐한 세상에서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랙 안을 살펴보니, 얇은 금속 외피 속에 감싸인 채 닳고 닳은 휴대용 단말기가 놓여 있었다. 전원 표시등은 희미했지만,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카이는 숙련된 손놀림으로 단말기를 집어 들었다. 먼지를 털어내자, 굳게 잠겨 있던 화면에 녹색 글자들이 흐릿하게 나타났다.

[오류: 시스템 무결성 손상. 네트워크 연결 끊김. 잔여 데이터 파일… 확인 중.]

“젠장,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아.”
카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먹을 것 없는 빈손으로 돌아갈 일은 없었다. 이 단말기에 담긴 정보가 비록 파편적일지라도, 언젠가는 쓸모 있는 조각이 될 수도 있었다. 아니, 지금 당장 이곳의 지도를 찾아낼 수만 있다면 더 효율적인 탐색이 가능해질 터였다.

그때였다.
*끼이익… 철컥…*
멀리서 금속이 마찰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카이의 몸이 순식간에 경직되었다. 찌르는 어깨 위에서 거친 진동을 보내왔다. 녹색 불빛은 사라지고 위험을 알리는 붉은색 경고등이 번뜩였다.

“스크랩 하운드.”
그는 이를 악물었다. 고철과 돌연변이 생체 조직이 뒤섞인 끔찍한 잡종. 이 도시의 가장 악랄한 포식자들 중 하나였다. 이젠 그 녀석들이 사냥감을 찾아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다.

*콰앙!*

복도 저편에서 굉음이 울렸다. 낡은 철문이 박살 나는 소리였다. 이어지는 날카로운 울음소리, 기계적인 삐걱거림, 그리고 짐승의 으르렁거림이 뒤섞인 불협화음. 한 마리가 아니었다. 적어도 세 마리 이상.

카이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봤다. 도망칠 곳을 찾아야 했다. 서버 랙 뒤편에 좁은 틈새가 보였다. 과거의 전선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던 공간이었다. 몸을 구겨 넣는다면 잠시 시간을 벌 수 있을지도 몰랐다.

“찌르, 진동 센서 켜. 최대한 자세히.”
드론은 그의 명령에 따라 붉은 불빛을 더욱 빠르게 깜빡이며 복도 상황을 분석했다.

*드르륵, 텅! 드르륵, 텅!*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 스크랩 하운드들이 발톱으로 콘크리트 바닥을 긁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녹슨 철갑이 마찰하며 섬뜩한 소리를 냈다.

카이는 휴대용 단말기를 품속 깊숙이 쑤셔 넣고 키네틱 라이플을 고쳐 잡았다. 방아쇠에 올린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스크랩 하운드는 한 방에 죽지 않는다. 약점을 정확히 노려야 했다. 하지만 좁고 어두운 복도에서 여러 마리를 상대하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랙 바로 옆에 있던 낡은 전력 제어판이었다. 대부분은 망가졌지만, 몇몇 스위치는 제 기능을 할 것처럼 보였다.

“이거라도…!”

스크랩 하운드 한 마리가 마침내 방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썩어가는 살점과 녹슨 철판이 뒤섞인 몸체, 그리고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빛나는 붉은색 눈동자. 그 눈동자는 굶주림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크르르르…!*

하운드가 으르렁거리는 동시에, 나머지 두 마리가 뒤따라 들어왔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카이를 향했다. 도망칠 틈은 없었다.

카이는 망설이지 않았다. 몸을 낮추며 제어판 쪽으로 달려들었다. 동시에 키네틱 라이플을 들어 하운드 중 가장 앞선 놈의 머리를 향해 발사했다.

*쉬이잉- 쾅!*

강력한 운동 에너지를 담은 탄환이 하운드의 철제 머리를 강타했다. 굉음과 함께 스파크가 튀었고, 하운드는 비틀거렸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맹렬한 기세로 카이에게 달려들었다.

“젠장!”

카이는 재빨리 전력 제어판의 스위치를 잡아 돌렸다. 낡은 스위치는 뻑뻑했지만, 그의 힘에 겨우 반응했다.

*지이잉… 찌지직!*

갑자기 서버 랙 전체에서 거대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낡은 전선들이 단락되고, 과부하가 걸린 부품들이 터져 나갔다.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강렬한 전류음과 섬광. 스크랩 하운드들은 갑작스러운 충격에 움찔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들의 몸을 이루는 금속 부분들이 전류에 반응하며 파직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이는 몸을 랙 뒤편 틈새로 밀어 넣었다. 좁은 공간이었지만, 어떻게든 몸을 숨길 수 있었다.

“크르르르… 캬아아악!”

뒤이어 들어오려던 하운드 한 마리가 랙에 닿았다가 감전된 듯 몸을 뒤틀며 비명을 질렀다. 다른 하운드들도 감전의 위험을 감지했는지, 랙 주위를 경계하며 으르렁거릴 뿐이었다.

카이는 좁은 틈새에 쪼그리고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팔에 스크랩 하운드의 날카로운 발톱에 긁힌 상처가 벌어져 있었다. 끈적한 피가 흘렀지만, 통증은 후순위였다.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 했다.

그는 다시 품속의 단말기를 꺼냈다. 화면은 여전히 오류 메시지를 띄우고 있었지만, 전류 충격 때문인지 새로운 파일 하나가 깜빡이며 나타났다.

[암호화된 로그 파일. 열람하시겠습니까? (Y/N)]

카이는 망설임 없이 ‘Y’를 눌렀다. 화면이 한 차례 번쩍이더니, 오래된 기록이 나타났다.

[기록 #307. 발신자: 엘레나. 수신자: 모든 생존자.]
[폐허가 된 도시에서 희망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이곳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정화자’들의 활동이 너무 광범위해졌다. 우리는 마지막 피난처를 찾아 떠난다. 좌표: 코발트 구역 (구, 중앙 연구 단지). 하지만 잊지 마라… 그곳은 이미…]

메시지는 거기서 끊어졌다. 그 뒤에 이어질 말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코발트 구역’. ‘정화자’. 카이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었다. ‘정화자’가 스크랩 하운드 같은 존재를 지칭하는 건지, 아니면 더 거대한 무언가를 의미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곳이 ‘마지막 피난처’라는 점과, 동시에 알 수 없는 경고가 붙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드르르륵… 쾅!*

바깥에서 스크랩 하운드들이 랙을 향해 거칠게 몸을 부딪치기 시작했다. 낡은 금속 외피가 비명을 지르듯 찌그러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랙이 무너지고 틈새에 갇히게 될 터였다.

카이는 단말기를 다시 품에 넣고, 눈을 들어 좁은 틈새 끝을 응시했다. 그곳에 작게 뚫린 환기구가 보였다. 희망은 언제나 작고 보잘것없는 형태로 찾아왔다.

“코발트 구역.”

그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과연 이것이 마지막 희망의 조각일까, 아니면 또 다른 함정의 미끼일까. 잿빛 도시의 숨결 속에서, 그의 심장이 새로운 방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비록 그 길이 죽음으로 이어진다 할지라도, 그는 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