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창고의 눅눅한 공기가 코끝을 찔렀다. 곰팡이 냄새, 오래된 먼지 냄새, 그리고 묘하게 뒤섞인 쇠 비린내 같은 것. 한지우는 팔을 걷어붙이며 거미줄을 헤쳐나갔다. 돌아가신 삼촌의 유품 정리. 그중에서도 이 지하창고는 가장 기피하고 싶은 장소였다. 삼촌은 살아생전 늘 기이한 물건들을 모으는 괴짜였다. 그리고 그 기벽은 사후에도 지우를 괴롭히고 있었다.
손전등 불빛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낡은 가구들과 박스들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었다. 녹슨 자전거 바퀴, 곰팡이 핀 책들, 정체를 알 수 없는 도자기 파편들. 온통 버려야 할 것들 투성이였다. 한숨을 쉬며 쌓여있는 잡동사니를 치우던 그때였다. 구석진 곳, 다른 물건들에 가려져 거의 보이지 않던 칠흑 같은 나무 상자가 지우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언뜻 보면 평범한 보물 상자처럼 보였지만, 먼지를 털어내자 섬세한 조각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마치 살아있는 듯한, 기묘한 형상들이 뱀처럼 얽히고설켜 상자 표면을 뒤덮고 있었다. 손끝이 닿자 나무인데도 불구하고 차가운 냉기가 스며들었다. 오한이 느껴질 정도였다.
상자는 생각보다 견고했다. 낡은 걸쇠를 풀려고 애썼지만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십여 분을 끙끙대다가 결국 공구함에서 드라이버를 가져와 비틀어 겨우 열쇠 없는 걸쇠를 부쉈다.
‘딸깍.’
낡은 금속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안에서 차가운 기운이 확 뿜어져 나왔다. 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느낌. 내용물은 의외로 단순했다. 온갖 기이한 물건들 사이에서 이런 상자에 담겨 있을 만한 화려한 보석 같은 것이 아니었다. 손바닥만 한, 매끄러운 검은 돌. 흑요석 같기도 했고, 그보다 더 깊은 심연을 품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돌의 표면은 검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푸른빛이 희미하게 감돌았다.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돌 위를 훑었다. 매끄럽고 차가운 감촉. 그리고 그 순간,
“젠장!”
갑자기 손끝이 찌릿하고 저려왔다. 동시에 눈앞이 번쩍 섬광으로 가득 차는 듯했다. 어둠 속에서 오직 자신만이 본 환상. 마치 천둥이 귓전을 때린 것 같았고, 심장이 발작적으로 뛰어올랐다. 지우는 돌을 놓치고 뒷걸음질 쳤다. 잠시 어지럼증을 느꼈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피곤해서겠지. 지하창고 공기가 너무 답답했어.’
그는 애써 현실적인 이유를 찾으려 했다. 삼촌은 대체 이런 걸 왜 숨겨놨던 걸까. 그는 바닥에 떨어진 돌을 주웠다. 왠지 모르게 그냥 두고 갈 수 없었다. 마치 돌이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았다.
* * *
며칠 후, 지우의 일상은 미묘하게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밤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하다가도, 문득 고개를 들면 방구석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조차 누군가 귓가에 대고 중얼거리는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켰다.
‘내가 너무 신경이 날카로워졌나.’
삼촌의 죽음과 유품 정리, 그리고 다시 시작된 일상 속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꿈은 현실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 없었다. 꿈은 더욱 선명하고 기괴해졌다. 단순한 악몽이 아니었다. 그는 꿈속에서 낯선 얼굴들을 보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들었다. 날카로운 돌칼이 피를 뿜는 제단, 흙으로 만든 거대한 형상들, 그리고 그 중심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검은 돌. 꿈에서 깨면 식은땀에 절어 있었고, 돌은 침대 옆 협탁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저 빛의 반사가 아니었다. 자체적으로 발산하는, 차가운 푸른빛이었다.
지우는 돌을 버리려고 했다. 그 모든 기이한 현상들이 이 돌 때문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쓰레기통에 넣었다가도, 왠지 모를 강렬한 충동에 다시 꺼내 들었다. 마치 심장이 돌에 묶여 있는 듯했다. 손에서 놓는 순간, 온몸에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밀려왔다.
미쳐가는 걸까. 그는 의심했다. 아니, 이건 다른 문제였다. 돌은 그저 돌멩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무언가였다. 어쩌면 그 이상이었다.
어느 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던 지우의 눈에 협탁 위 돌이 더욱 강렬하게 빛나는 것이 들어왔다. 검은 돌의 표면에서 푸른 빛이 맥동하듯 뿜어져 나왔다.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홀린 듯 손을 뻗었다. 손끝이 돌에 닿는 순간, 모든 감각이 폭발했다.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검은 밤하늘 아래 펼쳐진 고대의 폐허였다. 거대한 석상들이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두려움과 경외심이 뒤섞인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그의 두 눈은 방금 자신이 본 검은 돌처럼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사내의 입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고대어가 흘러나오자, 폐허를 뒤덮었던 어둠이 춤추듯 일렁였다. 거대한 힘이 지우의 몸을 관통했다. 그것은 마치 존재 자체가 새롭게 재편되는 듯한, 고통스러우면서도 황홀한 경험이었다.
쿵!
현실로 돌아온 지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몸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다. 간신히 비틀거리며 거울 앞에 섰다. 땀으로 얼룩진 자신의 얼굴. 그리고…
두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푸른, 너무나도 낯선 푸른빛이.
동시에 귓가에 속삭임이 파고들었다.
— *이제, 너는 나다.*
목소리는 그의 것이면서도 그의 것이 아니었다.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오래된 메아리였다. 지우는 무너지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아니, 자신 안에 깃든 ‘다른 존재’를.
이제 시작이었다.
이 저주받은 힘이, 그의 모든 것을 잠식하기 시작한 순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