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정거장 ‘아르카디아’의 가장 깊숙한 곳, 폐쇄된 구역 델타-7의 비상 통로 끝에 있는 낡은 관측 데크. 잊힌 시간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곳, 고장 난 자동문이 겨우 틈을 벌리고 먼지 쌓인 창 너머로 수천 개의 별들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류진은 그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희미한 푸른빛을 응시하며 숨을 죽였다.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금지된 열망의 무게가 은하수처럼 무겁게 그를 짓눌렀다.
또 이 순간이 왔다. 매번 그랬듯이, 만남의 시간은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고, 헤어짐은 눈 깜짝할 사이에 찾아올 터였다. 그는 주머니 속에서 작게 빛나는 홀로그램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약속 시간까지 1분. 그 1분이, 우주의 모든 시간을 합친 것보다 더 길었다.
저벅.
고요를 깨고 아주 미세한 발소리가 들렸다. 금속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류진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알아채지 못했을, 그러나 류진에게는 세상의 모든 소리보다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소리. 그 순간, 비상 통로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영롱한 빛이 흘러나왔다.
엘라나였다.
그녀의 피부는 마치 살아있는 우주 그 자체처럼 빛나고 있었다. 세레니아 종족 특유의 미세한 비늘들은 푸른색에서 녹색, 다시 보랏빛으로 끊임없이 변하며 신비로운 오로라를 연출했다. 그녀의 머리칼은 마치 은하수를 흩뿌려 놓은 듯 반짝이는 은빛이었고, 인간의 귀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섬세한 깃털 같은 감각 필라멘트들이 우아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빛나는 세 개의 눈동자는 류진을 향해 온 우주의 비밀을 담은 듯 깊이를 알 수 없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류진.”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수정이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심해의 울림 같기도 했다. 류진은 저도 모르게 한 발짝 그녀에게 다가섰다. 발소리는 내지 않으려 했으나, 심장의 고동 소리가 너무 커서 마치 천둥처럼 들리는 듯했다.
“엘라나.”
그는 겨우 한 단어를 뱉어냈다. 그 한 마디에 지난 모든 기다림과 그리움, 그리고 두려움이 응축되어 있었다. 엘라나가 조용히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은은하고 신비로운 향이 류진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녀는 인간의 체온과는 확연히 다른, 싸늘하면서도 매끄러운 손을 류진의 뺨에 올렸다. 그 이질감이 오히려 류진을 더 깊이, 강렬하게 끌어당겼다.
“오랜만이야.” 류진은 그녀의 손등에 제 손을 포개었다. 그녀의 피부는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그 차가움 속에서 타오르는 듯한 열정이 느껴졌다.
엘라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녀의 감각 필라멘트가 공기의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며 우아하게 흔들렸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저에게는 너무도 멀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어요.”
그녀의 세 개의 눈동자가 류진의 얼굴을 훑었다.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류진의 심장이 욱신거렸다. 마치 영혼까지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나도 그래.” 류진은 그녀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입술로 가져갔다.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는 순간, 싸늘한 감촉과 함께 알 수 없는 전율이 류진의 온몸을 휩쓸었다. “이곳은… 안전한가?”
엘라나는 류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오래된 구역이에요. 감시 드론도, 순찰대도 이곳까지는 오지 않아요. 적어도… 잠시 동안은요.”
그녀의 목소리에 스치는 미세한 불안감이 류진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종족이었다. 인간과 세레니아. 우주의 오랜 역사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때로는 협력했지만, 결코 섞일 수 없는 존재로 규정되었다. 그들의 법전은 종족 간의 결합을 ‘종족 순수성을 더럽히는 행위’로 규정했고, 세레니아 종족의 고위 의회는 더욱 엄격했다. 그들의 사랑은 우주 전체가 반대하는 금지된 열망이었다.
“걱정 마. 내가 널 지킬 거야.” 류진은 그녀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맹세와도 같은 말이었다.
엘라나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별빛만큼이나 아름답고, 동시에 덧없어 보였다. “당신은 언제나 그래왔죠.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너무도 위태로워요. 마치 얇은 얼음 위를 걷는 것 같아요.”
“그래도 괜찮아.” 류진은 그녀를 품에 안았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단하게. 엘라나의 몸은 그의 품 안에서 마치 정교한 유리 공예품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피부는 차갑고 매끄러웠다. 내 체온과는 확연히 달랐지만, 그 이질감이 오히려 나를 더 깊이 끌어당겼다. 서로 다른 두 심장이 다른 박자로 고동쳤지만, 그 박자는 묘하게 어우러져 하나의 멜로디를 이루는 듯했다.
그녀의 감각 필라멘트가 류진의 목덜미를 스쳤다. 섬세하고 간지러운 감촉이 류진의 피부에 전율을 일으켰다. “류진, 당신의 심장 소리가 제 안에서 울려요.”
그녀의 말에 류진은 더욱 깊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 말없이 그녀의 머리칼에 얼굴을 묻었다. 은하수 향이 났다. “엘라나, 너 없이는 아무것도 의미 없어. 이 넓은 우주도, 내 모든 삶도.”
그들의 만남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위태롭고, 애절하며, 뜨겁게 타오르는.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서로를 갈구하는.
그때였다. 폐쇄된 구역의 바깥쪽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류진의 몸이 경직되었다. 엘라나 역시 몸을 굳혔다. 그녀의 세 눈동자가 경고음이 울린 방향을 향했다.
“무슨 일이지?” 류진이 속삭였다.
엘라나의 감각 필라멘트가 빠르게 움직이며 공기의 진동을 읽어냈다. 그녀의 얼굴에서 빛나던 오로라 빛깔이 순간적으로 어두워졌다. “정찰 드론…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정지 명령이 해제되었어요.”
“이럴 수가.” 류진은 그녀를 제 품에서 떼어냈다. 차가운 공기가 그들 사이를 갈랐다. 그들은 급히 관측 데크 안쪽의 어두운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낡은 장비들이 쌓여있는 곳,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류진은 엘라나를 자신의 몸으로 가리며 숨을 죽였다.
끼이익- 덜컹!
비상 통로의 자동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완전히 열렸다. 작은 감시 드론 하나가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관측 데크 안으로 들어왔다. 드론의 탐조등이 사방을 비추었다. 낡은 금속 기둥과 부서진 패널들을 훑고 지나갔다. 류진은 엘라나의 차가운 손을 꽉 잡았다. 그녀의 심장 박동이 그의 손바닥에서 느껴졌다. 두려움과 함께 애처로운 갈망이 밀려왔다.
탐조등이 그들이 숨어있는 곳을 향해 다가왔다. 류진은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일 수도 있었다. 발각된다면, 엘라나는 세레니아 의회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터였다. 자신 또한 인간 연합의 법정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드론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금속성 냄새와 함께 드론의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류진은 엘라나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더욱 깊숙이 숨었다.
바로 그때, 드론의 탐조등이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는, 멈칫하더니 다시 빛을 되돌려 그들을 향해 정확히 조준했다.
류진은 순간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