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테르 연방 소속의 순양함 ‘헤르메스’가 심우주 항해를 마치고 행성 ‘제로스-7’의 궤도에 진입했다. 함교는 푸른빛 홀로그램 스크린과 정교한 콘솔로 가득했고, 긴장감 속에서도 고요한 질서가 흐르고 있었다. 카이 대위는 함장석 옆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창밖을 응시했다. 거대한 우주선 창밖으로는 이제 막 발견된 미개척 행성이 푸른빛과 붉은빛의 오라를 번갈아 내뿜으며 회전하고 있었다. 그의 임무는 명확했다. 제로스-7에 서식하는 이그니스 종족의 생태를 파악하고, 그들의 문명 수준을 평가하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 연방의 통제 아래에 두는 수순을 밟는 것이었다.
“착륙 허가 요청합니다, 함장님.”
카이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단호했다. 연방 최고의 엘리트 장교답게 그의 이성은 언제나 감성을 앞섰다.
“허가한다, 카이 대위. 명심해. 이그니스 종족은 예측 불가능하며, 야만적이라는 보고가 많다. 불필요한 접촉은 피하고, 오직 데이터 수집에만 집중해라.”
함장의 경고에 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푸른 눈동자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어릴 적부터 주입된 교육은 그에게 완벽한 연방의 병사이자 외교관으로 만들었다. 이성, 논리, 질서. 그것이 에테르 연방의 신조이자 카이의 삶이었다.
작은 정찰선 ‘나이팅게일’이 모함에서 분리되어 제로스-7의 대기권으로 진입했다. 행성 표면은 예상보다 훨씬 다채로웠다. 붉은색의 거대한 식물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고, 푸른빛의 강물은 마그마처럼 빛나며 흐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에테르 연방의 본성인 ‘크로노스’의 회색빛 금속 도시와는 정반대였다.
카이는 전용 센서 슈트를 착용한 채 착륙지점에 내렸다. 슈트가 자동적으로 행성의 대기를 분석하고, 그의 생체 정보와 주위 환경을 최적화했다. 붉은 숲은 기묘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마치 행성 자체가 살아 숨 쉬는 듯한 낮은 울림이었다. 그는 주위를 경계하며 전방으로 나아갔다. 수집해야 할 데이터가 많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숲 속 깊은 곳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강렬한 푸른빛이었다. 카이는 반사적으로 전투 태세를 취했다. 에테르 연방의 기록에 따르면, 이그니스 종족은 마그마 에너지를 다루는 능력이 있으며, 매우 공격적이라고 했다.
빛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한 존재가 서 있었다.
카이는 숨을 들이켰다. 그의 센서 슈트가 읽어내는 데이터는 혼란스러웠다. ‘생체 에너지 반응 매우 높음, 외형 미확인 종, 언어 패턴 미분석… 경계 요함.’
그 존재는 인간과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훨씬 유려하고 신비로웠다. 피부는 마치 행성 표면의 마그마 강처럼 붉은 빛을 띠고 있었고, 그 빛은 섬세한 문양을 그리며 온몸에 흐르고 있었다. 검은색 머리카락은 길게 늘어져 있었고, 양쪽 귀는 길고 뾰족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눈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금빛 눈동자는 마치 작은 별을 품고 있는 듯 찬란하게 빛났다. 옷은 행성의 식물 줄기로 엮은 듯한 단순한 형태였지만, 그 존재의 아름다움을 가리지 못했다.
“누… 누구냐?” 카이의 자동 번역기가 작동하며 더듬거리는 에테르어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 존재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경계심이 역력했다. 이그니스어는 번역기에 잡히지 않았다. 대신, 금빛 눈동자가 카이의 전신을 훑었다. 마치 그의 영혼을 꿰뚫어 보려는 듯한 시선이었다.
“연방 기록에 없는 형태다.” 카이는 중얼거렸다. 그들의 도감에는 이그니스 종족의 이미지가 ‘거칠고, 투박하며, 낮은 지능을 가진’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지금 그의 앞에 선 존재는 그 모든 기록을 부정하고 있었다.
“너는… 낯선 이여.”
마침내 입술이 열리자, 행성의 바람 소리와 숲의 울림이 섞인 듯한, 하지만 분명하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동 번역기가 허둥지둥 그 단어를 재빨리 분석해 카이의 귀에 속삭였다.
“어떻게… 내 말을 알아듣지?”
“이곳에 도착한 순간부터, 네 ‘마음’의 파동을 읽었다. 낯선 이여. 너는 누구이며, 무엇을 찾아 여기에 왔느냐?”
‘마음의 파동?’ 카이는 당황했다. 에테르 연방의 과학 기술은 어떤 생명체의 생체 신호를 읽고 분석할 수 있었지만, ‘마음’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읽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에테르 연방의 대위, 카이다. 우리는 이곳을 탐사하러 왔다.” 카이는 다시 한번 침착하게 대답하려 애썼다.
“탐사… 정복이라는 단어에 가깝군. 너희 종족은 언제나 그랬지. 푸른 별의 심장을 탐하고, 그 심장을 꺼내려는 자들.”
그 존재의 목소리에는 서늘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붉은 피부의 문양이 더욱 선명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카이는 한순간, 그녀에게서 엄청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위험하다. 직감했다.
“나는 ‘레나’. 이 푸른 별, 제로스-7의 심장을 지키는 자.”
레나의 금빛 눈동자가 카이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 시선 속에는 경계심과 함께, 거부할 수 없는 고독감이 스며들어 있었다. 카이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녀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그의 냉철한 이성이 경고음을 울렸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충동이 고개를 들었다.
카이는 순간 말을 잃었다. ‘푸른 별의 심장을 지키는 자’.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그가 평생 배워온 에테르 연방의 역사와 논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듯했다. 에테르 연방은 언제나 ‘문명화’와 ‘발전’을 기치로 내세웠지, ‘정복’이라니. 하지만 그녀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깊은 슬픔과 분노는 거짓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행성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진동이 느껴졌다. 숲의 붉은 식물들이 격렬하게 흔들렸고, 땅이 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이의 슈트 시스템에서 경고음이 터져 나왔다.
“경고! 지각 활동 급증! 대기 불안정! 즉시 이탈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지?” 카이가 외쳤다. 그의 슈트가 보여주는 데이터는 혼란 그 자체였다.
레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금빛 눈동자에 불안감이 스쳤지만, 이내 결의로 가득 찼다.
“태양이… ‘숨을 쉰다’. 서둘러! ‘심장의 동굴’로 가야 해!”
그녀는 카이의 손목을 잡았다. 붉은 빛을 띠는 매끄러운 피부가 카이의 슈트 장갑에 닿았다. 예상치 못한 접촉에 카이는 움찔했지만, 그녀의 손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생명력에 반사적으로 몸을 맡겼다.
“심장의 동굴? 그게 뭔데?”
“말할 시간이 없어! 이곳은 위험해!”
레나는 카이를 끌고 숲 속 깊은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카이는 그녀의 속도에 맞춰 움직이려 했지만, 낯선 지형과 예상치 못한 강력한 중력의 변화에 휘청거렸다. 그의 슈트가 모든 것을 분석하고 경고했지만, 그의 몸은 본능적으로 레나를 따르고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붉은 숲이 끝나고, 거대한 절벽이 나타났다. 절벽 중간에는 거대한 동굴 입구가 마치 짐승의 입처럼 벌어져 있었다. 동굴 안에서는 희미하게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여기다!” 레나가 외치며 카이를 동굴 안으로 이끌었다.
동굴 안은 예상외로 넓고 장엄했다. 벽면에는 기묘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고, 동굴 깊숙한 곳에서는 거대한 수정 기둥들이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주기적으로 푸른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것은… 행성의 핵 에너지를 이용한 시설인가?” 카이가 센서를 돌리며 분석했다.
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자, 이 별의 심장이다. 외부의 에너지를 빌리지 않아도 스스로 빛을 내고, 스스로 치유하는 곳.”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동굴 입구가 거대한 바위로 막혔다. 행성의 지각 변동이 절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완전히 고립되었다.
카이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슈트가 행성 외부와의 통신 두절을 알렸다.
“젠장…!” 그는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상황은 그의 계산에는 없었다.
레나는 한숨을 쉬었다. “걱정 마. 이곳은 안전해. 태양이 숨을 쉬는 동안은… 이곳에서 기다려야 해.”
그녀는 동굴 벽에 기대어 앉았다. 금빛 눈동자가 여전히 불안하게 흔들렸지만, 그녀의 태도는 침착했다.
카이는 그녀를 따라 앉았다. 슈트의 에너지는 한정적이었고, 무모하게 행동하는 것은 어리석었다.
“태양이 숨을 쉰다는 건 무슨 뜻이지?”
레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듯 동굴 천장을 응시했다.
“이 별의 태양은 주기적으로 격렬한 에너지 방출을 해. 마치 거대한 생명체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처럼. 그때마다 지각은 격렬하게 요동치고, 숲은 붉은 폭풍에 휩싸이지. 우리 이그니스 종족은 그 주기를 읽고, 심장의 동굴에 숨어. 수만 년 동안 그래왔어.”
카이는 놀랐다. 에테르 연방의 과학은 행성의 활동 주기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읽는다’고 표현했다. 마치 본능처럼.
“너희는… 그걸 어떻게 예측하지?”
“느껴.” 레나는 짧게 답했다. “별의 고동을… 우리의 심장으로 느껴.”
그의 센서 슈트가 보여주는 데이터와 그녀의 ‘느낌’은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직감 덕분에 카이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동굴 안은 정적에 잠겼고, 푸른 수정 기둥들의 빛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카이는 배터리 절약을 위해 슈트의 불필요한 기능을 껐다. 외부의 통신이 계속 두절되어 있었다.
“에테르 연방에서는 분명 나를 찾으러 올 거다. 그들은 나의 위치를 알고 있어.” 카이가 말했다.
레나는 피식 웃었다. “이 폭풍 속에서? 우리 종족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어. 너희도 마찬가지일 걸.”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처음 만났을 때의 날카로운 경계심은 많이 누그러진 듯했다.
“내 이름은 카이. 에테르 연방의 대위다.”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을 소개했다. 이번에는 공식적인 직함 대신, 마치 개인적인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알고 있어. 네 마음의 파동이 그렇게 속삭였지.” 레나는 미소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동굴의 푸른빛 아래에서 더욱 신비롭게 빛났다.
“너는… 정말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건가?”
“마음이라기보다… 존재의 에너지 흐름을 읽는 것에 가까워. 너희 종족은 에너지를 억누르는 데 익숙하지만, 나는 그 흐름을 느껴. 너는… 깊은 곳에 커다란 호기심과 외로움을 감추고 있구나.”
카이는 당황했다. 그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감정이었다. 에테르 연방의 질서 속에서 ‘외로움’과 ‘호기심’은 효율성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감정으로 치부되었다.
“내가… 외롭다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래. 너의 별은 모든 것이 통제되어 있지. 따뜻한 온기 대신 차가운 금속으로 둘러싸여 있고, 예측 불가능한 자연 대신 질서정연한 기계들만이 존재할 테니. 네 종족의 깊은 곳에는 자연과의 연결이 끊어진 고독이 있어.”
레나의 말은 카이의 심장을 깊이 울렸다. 그의 금속 슈트와 첨단 장비가 주는 보호막 너머로, 잊고 살았던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듯했다.
“너희 이그니스 종족은… 외롭지 않나?”
“우리는 별과 연결되어 있으니. 별이 곧 우리의 심장이니. 하지만… 이 넓은 우주에서 우리의 존재를 이해해 줄 또 다른 심장을 찾는 것은 언제나 고독한 일이지.” 레나의 시선이 카이에게로 향했다. 금빛 눈동자는 동굴의 푸른빛과 섞여 오묘한 색을 띠었다. “너는… 나의 존재를 이해하려는 듯 느껴져.”
그날 밤, 동굴 안에서 그들은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의 종족이 살아온 방식, 믿는 것들, 꿈꾸는 것들. 카이는 레나의 이야기를 통해 이그니스 종족이 결코 야만적이지 않고, 오히려 고도의 자연 친화적인 문명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별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며, 모든 생명과 에너지를 존중하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레나 또한 카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에테르 연방이 무조건적인 침략자가 아니라, 질서와 발전을 추구하는 종족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방식이 때로는 타 종족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여전했지만.
동굴 속의 시간은 마치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듯 흘러갔다. 카이의 차가운 이성은 레나의 따뜻한 감성과 충돌하고 융합하며 새로운 파동을 만들어냈다. 그는 그녀의 금빛 눈동자를 보며, 그 속에 담긴 우주의 신비를 읽으려고 애썼다. 그녀는 그의 푸른 눈동자 속에서, 꽁꽁 숨겨진 고독과 진정한 호기심을 발견했다.
점점 더,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공기는 옅은 설렘과 함께 위험한 금기(禁忌)의 향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가 너무나 달랐기에, 더욱 강렬하게 이끌렸다. 마치 태양과 달처럼, 에테르와 이그니스처럼.
며칠 밤낮이 흘렀을까. 동굴 밖의 폭풍은 서서히 잠잠해졌다. 지각의 진동도 잦아들었고, 푸른 수정 기둥의 빛은 더욱 고요해졌다. 레나는 동굴 입구 쪽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태양이… 숨을 내쉬었어. 이제 괜찮아.”
그녀의 목소리에는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카이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옆에 섰다. 무너졌던 동굴 입구가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돌아가자, 카이.”
“그래.”
문이 완전히 열리고, 바깥세상이 드러났다. 붉은 숲은 폭풍의 상처를 안은 채였지만, 생명의 기운은 여전했다. 카이의 슈트 시스템이 다시 외부와의 통신을 시도했다.
“통신 신호 수신! 연방 모함 ‘헤르메스’입니다. 카이 대위, 현재 위치는 어디입니까? 즉시 보고 바랍니다!”
익숙한 함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이는 망설였다. 그의 눈은 레나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금빛 눈동자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카이 대위! 들리는가? 응답하라!”
“접수했습니다, 함장님. 제로스-7 지표면에 있습니다. 곧 복귀하겠습니다.”
카이는 짧게 답하고 통신을 끊었다. 그리고 다시 레나를 바라봤다.
“이제… 헤어질 시간인가.” 레나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묻어났다. 카이의 심장이 아릿하게 울렸다. 헤어진다는 사실이 이렇게 아플 줄이야.
“레나… 너는… 너의 별처럼 아름답고 강한 존재야.”
카이는 슈트 장갑을 벗어던졌다. 차가운 금속 대신 그의 맨살이 드러났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레나의 뺨에 손을 댔다. 그녀의 붉은 피부는 뜨거운 생명력으로 가득했다. 그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는 그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레나의 금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카이… 너의 외로움은… 이제 내가 채워줄 수 없어.”
“알아. 하지만… 너를 만난 후로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야.”
카이는 한없이 이성적인 에테르인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의 모든 이성은 그녀의 존재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는 그녀를 원했다. 그녀의 따뜻한 온기, 그녀의 순수한 영혼, 그녀의 별과 같은 강렬한 생명력을.
레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카이의 입술에 닿았다.
서로 다른 종족의, 서로 다른 세상의 존재들이 마침내 하나의 숨결로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본능이 충돌하고, 질서와 혼돈이 하나로 엮이는 듯했다.
그들의 키스는 달콤하고도 절망적이었다. 영원히 함께할 수 없는 운명을 예감하는 것처럼.
그때였다.
“카이 대위! 이게 무슨 짓인가!”
갑작스러운 외침과 함께, 에테르 연방의 정찰선 두 대가 숲 위로 나타났다. 정찰선에서 내린 에테르 병사들은 레이저 소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카이의 모함 ‘헤르메스’의 부함장이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카이 대위! 즉시 그 이그니스 종족에게서 떨어져라! 이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부함장의 목소리에는 경멸과 혐오가 가득했다. 병사들의 레이저가 레나에게 향했다.
카이는 반사적으로 레나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
“멈춰라! 그만둬!”
“대위님,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연방의 규율을 잊으셨습니까! 저들은 야만적인 이종족입니다! 심지어 이 행성은 아직 연방의 정식 영토도 아닙니다!”
그때, 숲 반대편에서도 거대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키 큰 붉은색 식물들이 흔들리며, 이그니스 전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손에는 마그마 에너지를 응축한 창이 들려 있었다. 레나와 같은 붉은 피부를 가진 거친 전사들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이그니스 종족의 장로로 보이는 늙은 전사가 있었다.
“레나! 무엇을 하는 것이냐! 저 에테르인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경고하지 않았느냐!” 장로의 목소리는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했다.
양측은 서로를 경계하며 대치했다. 레이저 소총과 마그마 창이 서로를 겨냥했다.
카이는 절망했다. 모든 것이 어긋나고 있었다. 그의 한 순간의 이끌림이 이토록 거대한 파장을 불러올 줄이야.
“레나….”
레나는 카이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두 종족은 절대 함께할 수 없어.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카이.”
그녀는 카이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종족 앞으로 나섰다.
“장로님, 저들은… 우리를 해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저 대위는….”
“닥쳐라! 너는 이 별의 수호자로서의 책임을 잊었느냐! 저들은 우리의 별을 약탈하려 온 침략자들이다!” 장로가 고함을 질렀다.
에테르 부함장도 소리쳤다. “카이 대위! 즉시 이탈해라! 저 야만인들의 계략에 넘어가지 마라!”
카이는 양쪽에서 쏟아지는 비난과 위협 속에 서 있었다. 그의 심장이 찢어지는 듯했다.
“레나….” 그는 작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레나는 그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금빛 눈동자는 깊은 슬픔과 함께,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네는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잘 가, 카이. 부디 너의 별로 돌아가. 이곳은…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이야.”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그니스 전사들이 에테르 병사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에테르 병사들도 이에 맞서 레이저를 발사했다.
혼돈의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붉은 마그마 에너지가 푸른 레이저 광선과 충돌하며 숲을 불태웠다.
카이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자신이 이 모든 싸움의 원흉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레나!” 그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레나는 이미 이그니스 전사들 사이에서 싸우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마그마 에너지는 적들을 압도했다. 그녀는 정말이지, 이 별의 심장을 지키는 전사였다.
“카이 대위! 이쪽으로! 어서!”
부함장이 그를 잡아끌었다. 카이는 저항했지만, 강제로 정찰선 안으로 밀어 넣어졌다. 정찰선이 이륙하며 지상에서의 전투는 더욱 치열해졌다.
카이는 정찰선 창밖으로 레나의 모습을 찾아 헤맸다. 그녀는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붉은 섬광 속에서, 그녀의 금빛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마지막 시선을 보내는 것을 카이는 보았다. 그 시선은 비할 데 없는 슬픔과 함께, 이해와 용서, 그리고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사랑을 담고 있었다.
정찰선이 대기권을 뚫고 모함 헤르메스호로 귀환했다.
카이는 함교에 앉아 있는 함장에게 곧바로 호출되었다.
“카이 대위! 자네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저 미개한 이종족과 접촉을 넘어… 감히 연방의 규율을 어기고…!”
함장의 노성은 함교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카이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푸른 눈동자는 여전히 제로스-7의 붉은 숲을 응시하고 있었다.
레나.
그녀의 이름이 그의 심장 속에서 뜨겁게 울렸다.
그는 완벽한 에테르인이 아니었다. 그는 논리와 질서의 가면 뒤에, 외로움과 호기심을 숨기고 있던 평범한 존재였다.
그리고 지금, 그는 사랑을 알게 된 존재였다.
결코 닿을 수 없을지라도, 별빛 아래 금지된 맹세로 영원히 기억될 그 사랑을.
카이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의 슈트는 벗겨졌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레나의 따뜻한 온기가 영원히 남아 있었다.
그는 다시는 예전의 카이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었다.
그는 이제, 에테르 연방과 이그니스 종족 사이의 끝없는 증오 속에서, 홀로 별의 심장을 품은 채 살아갈 존재가 되어 버렸다.
어쩌면 그의 고독은 더욱 깊어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고독 속에는, 푸른 별의 심장을 지키던 붉은 여인의 찬란한 금빛 눈동자가 영원히 함께할 것이었다.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축복이자 영원한 저주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