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움 마법 학원. 웅장한 첨탑은 구름을 뚫고 하늘에 닿아 있었고, 반짝이는 흑요석 벽면은 태양 아래서 오색찬란하게 빛났다. 이곳은 대륙의 모든 명망 높은 가문과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이들이 선망하는 마법의 전당이었다. 지식과 힘, 그리고 영광의 정점.
하지만 류진에게 아테네움은 늘 어딘가 뒤틀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밤마다 그의 귓가에 속삭이는, 차가운 돌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 이따금 복도를 스쳐 지나가는 수상한 학자들의 시선. 그리고 무엇보다, 학원 지하에서 피어오르는 섬뜩한 냉기.
그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탁월하지도, 그렇다고 낙제생도 아닌. 그저 주어진 마법을 배우고 숙련하는 데 몰두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은 호기심이 도사리고 있었다. 특히, 누구도 감히 발을 들이려 하지 않는, ‘금단의 지하’에 대한 호기심은 집요했다. 학원 측은 공식적으로 그곳이 오래된 창고이며, 불안정한 마법 잔류물 때문에 폐쇄되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류진은 믿지 않았다.
어느 날 밤, 류진은 잠결에 다시 그 소리를 들었다. 비명 같기도 하고, 흐느낌 같기도 한,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끔찍한 음성. 그는 벌떡 일어났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침대 옆 작은 상자에 숨겨둔, 학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낡은 지도를 꺼내 들었다. 금단의 지하로 향하는 은밀한 통로가 희미하게 표시된 지도였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그는 침묵의 마법으로 발소리를 감추고,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칠흑 같은 밤, 학원의 거대한 석조 복도는 마치 거대한 생물의 척추처럼 길게 뻗어 있었다. 복도 끝, 고대 룬 문자로 봉인된 거대한 철문이 드러났다. 지도에 표시된 대로, 류진은 특정 룬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룬들이 희미하게 빛나며 서로 얽히는가 싶더니, 철문이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문 안쪽은 예상했던 대로 짙은 어둠이었다. 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희미한 비릿한 쇠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류진은 작은 빛 마법을 시전했다. 손끝에서 피어난 푸른 불꽃이 좁은 통로를 비췄다. 벽은 축축했고, 천장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통로는 점차 넓어졌고, 이내 거대한 동굴 같은 공간으로 이어졌다. 푸른 불꽃이 닿는 곳마다 류진의 눈앞에는 경악스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거대한 석조 기둥들이 천장을 떠받치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기이한 장치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수정관들이 복잡하게 얽혀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었고, 그 속에는 푸른빛 액체가 찰랑이며 흐르고 있었다.
류진은 가까이 다가섰다. 수정관 하나하나에 연결된, 마치 침대처럼 생긴 석판 위에 인간의 형체가 누워 있었다. 아니, 누워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들은 살아있는 존재라기보다는, 마치 마력이 주입된 미라 같았다. 피부는 바싹 말라 있었고, 눈은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가슴팍에서는 약하게 맥동하는 빛이 느껴졌다. 그들의 생명력이, 혹은 영혼의 일부가, 수정관을 통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듯했다.
“이게… 대체….”
류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순간, 한 석판에 누워 있던 존재가 희미하게 눈을 떴다. 텅 빈 눈동자가 류진을 향했다. 그 눈동자에는 더 이상 두려움도, 고통도 없었다. 오직 끝없는 허무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존재의 입에서 끔찍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것은 비명이라기보다는, 영혼의 밑바닥에서 쥐어짜는 듯한, 모든 희망이 사라진 슬픈 울음소리였다.
그 소리는 류진이 밤마다 들었던 바로 그 소리였다.
그제야 류진은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아테네움 학원이 자랑하는 무한한 마력. 학생들이 누리는 풍요로운 마법 환경. 그 모든 것이 이곳, 금단의 지하에서 착취당하는 영혼의 희생 위에서 세워진 것이었다. 학원은 실패한 학생들, 혹은 외부에서 납치해온 존재들의 생명력과 영혼을 뽑아내, 학원 전체의 마력원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학원은 빛나는 전당이 아니라, 거대한 영혼 포식자였다.
그때, 뒤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류진 군.”
류진은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은 충격에 몸을 돌렸다.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은회색 머리에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는, 학원장이었다. 평소의 인자한 모습과는 달리, 그의 눈에는 차갑고 비릿한 광기가 서려 있었다.
“학원장님… 이게 무슨….” 류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학원장은 천천히 석판들 사이를 걸어왔다. 그의 발소리는 공허하게 울렸다. “훌륭한 지적 호기심이야. 하지만 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이 될 때도 있지.” 그의 손이 한 석판 위로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그 석판에 누워있는 것은 과거에 실종 처리되었던 학생 중 한 명이었다. “이 아이들은… 빛이 부족했어. 재능은 있었지만, 스스로 빛을 발할 능력이 없었지. 하지만 그들의 잠재력은 사라지지 않아. 다른 이들을 위한 등불이 될 수 있지.”
“그게 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드는 이유입니까? 산 채로, 영혼을 뽑아내는….” 류진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렸다.
학원장은 고개를 저었다. “착각하지 마. 우리는 그들에게 새로운 존재 이유를 부여한 것뿐이야. 사라질 운명이었던 것을 영원한 생명의 순환 속에 편입시킨 거지. 아테네움이 대륙 최고의 학원이 된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어. 마력이 고갈될 염려 없는 영원한 원천. 이 빛이 없었다면, 너희가 누리는 모든 영광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야.”
그의 말은 거만했지만, 섬뜩할 정도로 논리적이었다. 이 학원은 희생을 통해 번성하고 있었다. 학원의 모든 영광과 지식, 마법의 발전은 지하에 갇힌 수많은 영혼의 비명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이건 범죄입니다!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행위예요!”
“존엄? 죽음 앞에서, 혹은 무능력 앞에서 존엄은 사치일 뿐이다.” 학원장은 피식 웃었다.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이 위대한 순환의 일부가 되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학원장의 눈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류진은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몸을 피하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차가운 마력이 그의 몸을 칭칭 감았다. 마치 거대한 뱀에게 붙잡힌 것 같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공포가 그의 심장을 옥죄었다.
“류진 군, 너의 영혼은 꽤나 강하고 순수해 보이는군. 아마 아주 훌륭한 마력원이 될 거야. 네가 이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영원히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영광으로 여겨라.”
류진은 저항하려 발버둥 쳤지만, 이미 그의 몸은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의 눈에 학원장의 차가운 미소가 박혔다. 그리고 그 미소 뒤로, 석판에 누워있는 채 류진을 응시하는 텅 빈 눈동자들이 보였다. 그들의 눈빛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단지, 다음 희생자를 기다리는, 영원한 어둠뿐이었다.
류진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의 의식이 흐려지는 마지막 순간, 그는 생각했다.
아테네움. 빛의 전당.
그 빛은, 누군가의 비명 위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차례였다.
차가운 수정관이 그의 몸을 감싸 안는 것이 느껴졌다.
곧, 그의 영혼도, 이 끝없는 어둠 속에서 꺼져가는 등불이 될 것이었다.
그의 귓가에, 수많은 영혼들의 슬픈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그것은 학원 지하의 금기를 지키는, 영원한 자장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