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1화. 하늘에서 떨어진 재앙인가, 행운인가?**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회색빛 도시에 걸맞게 우중충한 날씨는 김수아 씨의 기분과 정확히 일치했다.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흐린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수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차라리 누가 내 통장에 백억을 넣어주고 ‘앞으로 회사 안 나와도 돼’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아니, 백억까지도 바라지 않아. 일억만… 아니, 천만원이라도 좋으니!”

수아는 텅 빈 머그컵을 툭툭 건드렸다. 갓 스물아홉. 딱히 드라마틱한 사건도, 설레는 로맨스도 없이 흘러가는 평범한 나날. 입사 5년 차, 대리 꼬리표를 달았지만 달라진 건 책임감과 야근뿐이었다. 동기들은 하나둘 결혼하거나 이직했는데, 수아는 여전히 이 낡은 건물, 이 낡은 사무실, 이 낡은 키보드 앞에서 매일을 버티고 있었다.

“김수아 대리! 서류 다 됐어? 팀장님이 찾으시는데!”

옆자리 선배의 목소리가 쨍하게 귀를 때렸다. 아, 젠장. 수아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네, 선배님! 방금 다 끝났습니다!”

거짓말. 이제 막 첫 문단을 끝냈을 뿐이었다. 모니터 속 빽빽한 글자들이 마치 감옥의 창살처럼 느껴졌다. 수아는 손가락을 빠르게 놀려 자판을 두드렸다. ‘이건 마치… 탈옥수 김수아의 필사의 몸부림!’ 따위의 한심한 생각을 하면서.

점심시간은 수아에게 유일한 탈출구였다. 회사 근처 새로 생긴 퓨전 한식집은 직장인들의 성지였다. 수아는 부랴부랴 숟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가볼게요! 오후에 회의 준비해야 해서요!”

동료들에게 넉살 좋게 웃어 보이고는 쏜살같이 밖으로 나섰다. 탁 트인 하늘을 보고 싶었다. 잿빛 빌딩 숲 사이를 거닐며 잠시나마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하늘은 수아의 편이 아니었다. 사무실을 벗어나 채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후드득,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 이게 뭐야?”

일기예보에도 없던 비였다. 그것도 심상치 않은 장대비였다. 빗줄기는 순식간에 도로를 적시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수아는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봤다. 우산은커녕 비를 피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이런 젠장! 망할 날씨! 망할 회사! 망할 내 인생!’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뛰기 시작했다. 저 멀리 보이는 버스정류장 처마 밑으로라도 피해야 했다. 발은 물웅덩이를 첨벙이며 나아갔다. 빗물에 시야가 흐려졌다. 그때였다.

“악!”

정신없이 뛰던 수아의 몸이 무언가와 강하게 부딪혔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수아는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팔꿈치에서 따끔한 통증이 올라왔다. 망할! 비에 젖은 바닥은 미끄러웠다.

“죄, 죄송합니다… 흐읍, 흐읍…”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건… 검은색 정장 바지. 그리고 그 위로 뚝뚝 떨어지는 빗물. 수아는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상대는… 어마어마했다.

키는 모델 뺨치게 컸고, 어깨는 태평양만큼 넓었다. 빗물에 젖은 검은 머리카락은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지만, 그 아래로 드러나는 뚜렷한 이목구비는 조각상 같았다. 백옥같이 흰 피부, 곧게 뻗은 콧대, 날카로운 턱선. 그리고… 뭐지? 이 사람의 눈은 왜 이렇게… 깊고 푸른 거지? 마치 깊은 숲 속의 호수 같기도 하고, 겨울밤의 별빛 같기도 했다. 인간의 눈이라기엔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그는 빗속에 홀로 서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쏟아지는 비에도 미동조차 없었다. 그의 주변만 유독 비가 약하게 내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괜찮으십니까.”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물방울 맺힌 눈꺼풀이 천천히 깜빡였다. 그리고 그 시선은 수아의 얼굴에 닿았다. 이상하게도, 그의 눈은 수아의 눈동자를 꿰뚫어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마치 수아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은… 섬뜩하면서도 묘하게 매혹적인 시선이었다.

“네, 네? 아… 네, 괜찮습니다. 제가 앞을 못 봐서… 죄송합니다.”

수아는 황급히 일어나려 애썼지만, 젖은 옷은 몸에 착 달라붙어 움직임이 둔했다. 그때였다. 그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하얗고 긴 손가락, 그리고 그 손톱은… 어딘가 모르게 날카롭고 투명한 빛을 띠는 것 같았다. 햇빛도 없는 날씨인데도 반짝이는 게 착시현상인가?

수아는 홀린 듯 그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의 손아귀에 잡힌 순간, 수아는 마치 자신이 숲 속의 어린 토끼가 된 듯한 기묘한 위압감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그에게서 풀잎 향기, 흙내음, 그리고… 아주 희미하지만 강렬한, 알 수 없는 ‘생명’의 향기가 났다.

그는 수아를 일으켜 세웠다. 너무나 쉽게. 마치 깃털처럼. 수아는 휘청이는 몸을 겨우 가다듬었다.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다시 한번 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물속에서 울리는 듯한 신비로운 톤이었다.

“아, 네… 괜찮습니다.”

수아는 머쓱하게 웃었다. 팔꿈치에 살짝 까진 상처가 있었지만, 이 남자의 비현실적인 외모에 정신이 팔려 통증도 잊었다.

“저는… 이환입니다.”

그가 자신을 소개했다. 이름조차 숲의 안개처럼 신비로웠다.

“아… 저는 김수아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환 씨.”

수아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이환은 여전히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빗물은 그의 완벽한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는 마치 비를 맞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수아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액정을 보니 팀장님이었다. 망할 회의 준비!

“아,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가봐야 해서요! 정말 죄송했습니다!”

수아는 연신 고개를 숙이고는 버스정류장 쪽으로 다시 내달렸다. 뛰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이환은 여전히 그 자리, 빗속에 홀로 서 있었다. 빗물은 그의 검은 머리칼을 더욱 짙게 물들이고, 그의 푸른 눈은 마치 깊은 심연처럼 수아를 응시하는 것 같았다.

수아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 사람… 대체 누구지?
버스정류장 처마 밑으로 간신히 몸을 피한 수아는 젖은 몸을 털었다. 그리고 문득, 잡았던 이환의 손이 떠올랐다. 차갑고 단단했지만, 이상하게도 따뜻한 기운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가 내뿜던 묘한 향기.

‘설마… 요즘 웹소설에 나오는 환상종 같은 건 아니겠지?’

수아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젖은 옷, 망쳐버린 점심, 그리고 미스터리한 남자. 엉망진창인 하루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심장이 묘하게 두근거렸다.

그때, 수아의 주머니에서 무언가 툭 떨어졌다. 땅에 떨어진 그것을 주워 올렸다. 검고 윤기 나는 작은 조약돌이었다. 아니, 조약돌이라기엔 너무나 매끄럽고, 검은색이었지만 빛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였다. 마치… 숲의 깊은 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신비로운 보석 같았다.

‘이게 뭐지? 내 주머니에 이런 게 있었나?’

수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문득, 이환이 손을 내밀었을 때, 그의 손바닥에서 흘러내린 것 같은 희미한 감각이 떠올랐다. 설마… 그 남자 것이었을까?

수아는 조약돌을 꽉 움켜쥐었다. 차가운 돌멩이에서, 아까 이환의 손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희미하고도 기묘한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환. 깊고 푸른 눈의 남자. 그리고 그의 손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신비로운 조약돌.
수아의 평범한 일상에, 알 수 없는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