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심연의 유물
아르카나 마법 학원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 고고한 자태로 서 있었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에 걸쳐 축적된 마력이 거대한 학원 전체를 감싸고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한 위용을 뿜어냈다. 나는 류진, 이곳 아르카나의 2학년 학생이다. 명문가의 후광도, 타고난 천재성도 없는 그저 평범한 재능을 가진 고아. 그런 내가 이곳에 있을 수 있었던 건 오직 미친 듯한 노력과, 아주 약간의 운 덕분이었다.
“류진, 또 혼자서 이런 곳에 박혀있느냐?”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움찔했다. 고개를 돌리자, 퀴퀴한 먼지로 가득한 고문서 보관실의 입구에 학장의 심복인 미리아 교수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그녀의 얼굴에는 언제나처럼 불만이 서려 있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잠시… 자료를 찾고 있었습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낡은 마도서 한 권을 들어 보였다. 정작 내가 찾고 있던 건, 금서로 지정되어 접근 자체가 금지된 고대 기계 문명에 대한 희미한 기록들이었다. 마법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이 시대에, 마법의 힘 없이 움직였다는 거대한 강철 거인들의 이야기는 나를 늘 매혹시켰다. 학원 도서관의 깊은 곳, 일반 학생들은 들어올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이 낡은 보관실에만 그런 단편적인 기록들이 파편처럼 남아 있었다.
“자료? 네가 졸업할 때까지 ‘기원 마법학’에서 수석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쓸데없는 과거의 잡동사니에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그리고 네 주 전공은 소환술이다. 정신 차려.”
미리아 교수의 꾸짖음은 언제나 날카로웠다. 그녀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현실적으로 마법이 모든 것의 중심인 세상에서, 사라진 고대 기술에 집착하는 건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늘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학원에서는 고대 기술에 대한 모든 자료를 이렇게 철저히 봉인하고, 심지어 언급조차 꺼리는 것일까? 마치 그 기술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금기라도 되는 것처럼.
“오늘 야간 자율 학습은 빠지고, 서고 지하 3층의 폐기된 마도구 보관실 정리를 해라. 그곳의 마력 봉인 유지 장치가 불안정하다는 보고가 있었다. 단순 작업이니 네가 하기에 적당할 거다. 마력 회로의 먼지만 털어내면 된다.”
미리아 교수는 더 이상 내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듯 돌아서며 냉정하게 말했다.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폐기된 마도구 보관실이라니. 먼지 구덩이에서 밤새도록 낡은 고철 덩어리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벌써부터 한숨이 나왔지만, 거절할 수는 없었다. 이것도 다 ‘쓸데없는 호기심’이 불러온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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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지고, 아르카나 학원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학생들은 각자의 기숙사로 돌아가거나, 연마실에서 밤늦도록 마법 훈련에 매진하고 있을 터였다. 나는 손전등 역할을 하는 ‘루미누스’ 마법 구슬을 든 채 서고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밟았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지하 1층은 일반 서고, 지하 2층은 교수진 전용 서고. 그리고 지하 3층은… 폐기된 마도구 보관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려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는 더욱 차가워지고, 덩굴처럼 늘어진 마력선들이 벽을 타고 흐르는 모습이 보였다. 확실히 마력 봉인 유지 장치가 오래되기는 한 모양이었다.
마침내 지하 3층으로 통하는 육중한 철문 앞에 섰다. 문은 낡았지만, 그 위에는 복잡한 마법 문양이 얽혀 있었고, 중앙에는 ‘접근 금지’라는 고대어가 새겨져 있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미리아 교수의 지시를 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마력 인증을 거쳐 굳게 닫혔던 철문을 열었다.
“으읍!”
문이 열리자마자 뿜어져 나오는 눅진한 공기와 지독한 쇠 냄새에 나는 저절로 입을 틀어막았다. 내부는 거대한 동굴과 같은 형태였다. 학원의 지하에 이런 거대한 공간이 숨겨져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폐기된 마도구 보관실이라고 했지 않나?’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보관실’이라는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웅장함이었다. 낡은 마도구 몇 개를 치우러 왔던 나의 생각은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내가 서 있는 곳은 거대한 절벽의 한 귀퉁이였다. 발아래로는 아득한 심연이 펼쳐져 있었고, 멀리 바닥에 희미한 마법 조명들이 띄엄띄엄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들이 솟아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마법 구슬을 더 강하게 밝히며 난간에 다가섰다. 발밑의 절벽을 따라 깎아지른 듯한 나선형 계단이 아래로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마치 거대한 용의 척추뼈처럼. 나는 홀린 듯 그 계단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는 더욱 차갑고 무거워졌다. 단순한 폐기물 보관소가 아니었다. 이곳은, 무언가를 아주 오랫동안 봉인해 둔 곳이었다.
수십 미터를 내려갔을까. 시야가 점차 선명해졌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그 거대한 그림자들의 정체를 확인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것은 강철이었다. 거대하고 육중한, 검은 강철. 인간형의 형체를 갖춘, 수십 미터에 달하는 강철 거인들이었다. 하나, 둘, 셋… 셀 수 없이 많은 강철 거인들이 거대한 지하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녀석들은 모두 어떤 종류의 마력 봉인막에 갇힌 채, 마치 깊은 잠에 빠진 듯 미동도 없었다. 녹슨 흔적과 파괴된 부위가 보였지만, 그 위용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고대… 기갑…?”
내 입에서 쥐어짜듯 단어가 흘러나왔다. 도서관에서 희미하게 스쳐 지나갔던, 전설처럼 전해지던 고대 기계 문명의 병기. 마법의 힘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오직 강철과 기계 장치로만 이루어졌다는 초고대 병기. 학원에서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설령 존재했더라도 마법의 시대가 도래하며 완전히 폐기된 ‘잡동사니’ 취급을 해왔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것은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발치에 있던 작은 돌멩이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쨍강’ 하는 소리와 함께 돌멩이는 바닥으로 사라졌다. 그 작은 소리가 너무도 크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때였다.
수많은 강철 거인들 사이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박혀있던 한 기체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거대한 어깨 부분이 살짝 움직이는가 싶더니, 녀석을 감싸고 있던 봉인막의 한 귀퉁이가 섬광처럼 번쩍였다.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거대한 짐승처럼, 그 강철 거인의 흉갑에 박힌 크고 붉은 핵(核)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이곳은 폐기된 마도구 보관실이 아니었다.
이곳은… 무언가를 봉인하고 있는 거대한 감옥이었다.
그리고 그 금기가, 지금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