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7화

밤은 깊었고, 별은 쏟아질 듯 빛나고 있었다. 도시의 불빛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저 별들이 온전히 제 빛을 뿜어내는 유일한 시간. 지혜는 익숙한 스튜디오 의자에 앉아 헤드폰을 귀에 썼다. 차가운 마이크가 그녀의 앞에 서 있었지만, 그 차가움이 무색할 정도로 그녀의 마음은 뜨거웠다. 지난 며칠간, ‘찬영’이라는 이름의 청취자가 보낸 사연들은 지혜의 잠잠하던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별밤 라디오’의 시그널 음악이 흘러나오고, 스튜디오의 ‘ON AIR’ 램프에 붉은 불이 들어왔다. 지혜는 심호흡을 하고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지혜입니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전해주는 이야기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잔잔하게 공기를 타고 흘렀다. 오늘은 유난히 떨리는 밤이었다. 마치 오래된 서랍 속에서 잊혔던 사진 한 장을 꺼내보듯, 찬영의 사연이 자꾸만 그녀의 기억을 두드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첫 번째 사연은 늘 아름다운 밤하늘을 올려다보시는 청취자, 찬영 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지혜는 손에 들린 사연지를 바라보았다. 찬영은 지난 몇 주간,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는 듯한 사연들을 꾸준히 보내왔다. 그 사연 속에는 늘 특정 장소와 특정 시간이 등장했다. 작은 오두막집, 그리고 그 오두막집 지붕 위에서 보이던 수많은 별들. 지혜는 침을 꿀꺽 삼키며 사연을 읽어 내려갔다.

‘DJ 지혜님,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밤, 어린 시절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했던 장소를 떠올려 봅니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작고 허름한 오두막집이었죠. 사람들은 다들 그 집이 외지고 무섭다고 했지만, 저에게는 그곳이 온 우주였습니다. 특히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렸어요. 그때마다 저는 지붕에 올라가 한참을 앉아 있었는데… 유성우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밤, 그곳에서 한 친구와 함께 작은 비밀을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친구는 별을 정말 좋아했죠. 특히 북두칠성을 보면, 늘 작은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선을 그으며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그 밤, 우리는 사라진 별똥별 하나를 두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 별똥별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자고요. 저는 아직도 그 별똥별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때의 그 친구도요.’

지혜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북두칠성을 보며 자신만의 그림을 그렸다’는 구절에서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했다. 지혜는 어린 시절, 별에 심취해 밤마다 할머니 댁 오두막 지붕에 올라가 별자리를 그렸던 자신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옆에는 늘, 한 아이가 있었다.

“…찬영 님, 오늘 사연, 정말 마음을 울리네요. 어린 시절의 약속이라… 저도 잠시 추억에 잠겼습니다.”

지혜는 애써 평온한 목소리를 유지하며 다음 곡을 소개했다. 의도적으로 평소보다 조금 더 긴 곡을 선곡했다. 정신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안, 지혜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는 빛바랜 기억들이 선명하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여름밤, 오두막집 지붕 위. 나란히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두 아이.
“지혜야, 저 별똥별 어디로 갔을까?”
“글쎄… 멀리 아주 멀리 날아갔나 봐. 다음에 우리가 꼭 찾으러 가자.”
그 약속. 그리고 그 아이의 이름.

지혜의 입술이 희미하게 ‘찬영…’을 읊조렸다. 설마. 설마 그 찬영일까.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차마 믿을 수 없는 기적 같은 우연이, 이렇게 전파를 통해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급하게 마이크를 켰다. 곡이 끝나기 전이었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잠시… 급하게 전달할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찬영 님, 제 라디오를 듣고 계시다면… 저희 방송국으로 연락 한번 주실 수 있을까요? 부디… 부탁드립니다.”

스튜디오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평소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돌발 행동이었다. PD는 깜짝 놀라 지혜를 바라보았지만, 그녀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간절함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노래는 여전히 흐르고 있었지만, 지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전화벨이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몇 분이 지났을까. 영겁처럼 길게 느껴지던 시간 끝에, 인터폰 너머로 PD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DJ님, 찬영 님께 전화 왔습니다!”

지혜는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봐 걱정했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놀랍도록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찬영 님, 맞으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낯설지만 왠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맞습니다. 제가 찬영입니다. 갑자기 전화를 주셔서… 무슨 일 있으신가요?”

지혜는 망설였다. 이 질문이 정말 맞을까? 너무 성급한 건 아닐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찬영 님… 혹시… 어릴 때, 여름밤에 오두막집 지붕 위에서 저랑 같이 별똥별을 찾자고 약속했던… 그때 그 아이가 맞으신가요? 그리고… 그때 제가 북두칠성을 보고 그렸던 그림, 기억하세요?”

정적이 흘렀다. 스튜디오 안의 공기마저 얼어붙은 듯했다. 지혜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얕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진 목소리는 지혜의 온몸에 전율을 일으켰다.

“…지혜야. 혹시 너는… 아직도 그 별똥별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니? 나는… 아직도 궁금해.”

그 목소리, 그 말투.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녀의 기억 속 그대로였다. 지혜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리던 그 밤, 약속했던 그 별똥별을 찾아 헤매던 두 아이가, 이 차가운 전파를 통해 다시 만난 것이다.

지혜는 마이크를 켰다. 그녀의 목소리는 울먹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다음 곡은… 오늘 사연 보내주신 찬영 님과 저에게. 그리고 어쩌면, 저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에서 잊힌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 모든 분들께 바칩니다. 다시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소중한 인연을 다시 이어주는… 그런 밤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그녀는 한참을 울먹이다가, 겨우 다음 곡 제목을 읊조렸다. 스튜디오 밖으로는 수많은 별들이 여전히 말없이 빛나고 있었다. 그 별빛 아래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제 막 새로운 장을 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