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디찬 금속 내음이 코끝을 찔렀다. 짙은 매연과 기계 기름 냄새가 섞여 만들어낸, 이 도시의 공기는 언제나 비릿하고 탁했다. 강재우는 손에 든 망원경을 더욱 바싹 쥐었다. 녹슨 철골 구조물 사이로 보이는 제5 증기 제어탑은 여전히 웅장하게, 그리고 오만하게 이 밤의 하늘을 뚫고 솟아 있었다. 거대한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가 달빛을 희미하게 가리며 음산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저 거대한 심장을 멈춰야 해.” 재우가 낮게 읊조렸다. 그의 옆에 바싹 엎드려 있던 윤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매가 어둠 속에서도 빛났다.
“감시병 교대 시간까지 5분 남았습니다. 정면은 여전히 뚫기 어렵습니다. 제 머리 위로 올라가서 후면의 비상 통풍구를 노리시죠. 도결이 형이 저쪽에서 시선을 끌어줄 겁니다.”
저 아래, 거대한 강철 벽을 사이에 두고 도결이 뭔가 거대한 증기 엔진을 손보고 있는 척하며 일부러 요란한 쇠망치 소리를 내고 있었다. ‘대제국 강철심장’의 병사들이 이따금 그쪽으로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보였다. 도결은 타고난 연기자였다.
재우는 작게 숨을 들이쉬었다.
“좋아, 윤슬. 네가 먼저 올라가서 통풍구 주변을 확인해. 난 뒤따라 올라갈게. 도결은 병사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소리 내면서 3분 간 더 시선을 끌어.”
윤슬은 이미 옆구리에 찬 갈고리총을 꺼내 들고 있었다. 스팀 압력으로 발사되는 이 장치는 소리 없이 튼튼한 갈고리를 던질 수 있었다. 퓨식, 하는 짧은 바람 소리와 함께 갈고리가 어둠 속으로 날아가 제어탑 외벽의 작은 틈새에 정확히 박혔다. 윤슬은 군말 없이 얇은 로프를 타고 그림자처럼 벽을 기어올랐다. 그녀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유연해서 마치 거미 같았다.
잠시 후, 윤슬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길게 늘어뜨린 로프 끝을 잡자, 재우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로프를 잡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거친 금속 표면이 맨손을 파고들었지만, 재우는 익숙한 고통이라 여기며 묵묵히 몸을 끌어올렸다. 제어탑의 육중한 구조물이 마치 살아있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그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인, 거대한 증기기관의 웅웅거리는 소리가 온몸을 울렸다.
비상 통풍구는 생각보다 작고 비좁았다. 내부로 들어서자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뜨거운 증기 냄새가 뒤섞여 숨통을 막았다.
“윤슬, 상태는?” 재우가 속삭였다.
“내부 경비는 예상보다 삼엄하지 않습니다. 주요 경비는 모두 외부와 동력실에 집중된 것 같아요. 하지만 여기, 통풍구 끝에… 레이저 격벽이 있습니다.”
재우는 윤슬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통풍구 내부를 가로지르는 붉은 레이저 선이 그물처럼 얽혀 있었다. ‘잿빛 새벽단’이 개발한 무음 절단기라 해도 저 많은 레이저를 모두 피해가는 건 불가능했다.
“젠장… 저건 예상 밖인데.” 재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때, 윤슬이 작은 망치로 통풍구 벽을 톡톡 두드렸다.
“형, 이 벽, 생각보다 얇습니다. 그리고 저 레이저 격벽은 전력선을 따라 통풍구 외부에 연결되어 있을 거예요. 저 전력선을 끊으면…”
“…일시적으로 격벽이 해제될 수도 있겠군.” 재우의 눈빛이 빛났다. “하지만 외부에 감시병이 있다면 위험해.”
“도결이 형이 아직 시선을 끌고 있습니다. 지금이 기회예요. 제가 외부로 나가 전력선을 끊고 다시 들어올게요. 형은 여기서 준비하고 계세요.”
윤슬은 재빨리 왔던 길로 되돌아 내려갔다. 재우는 불안한 마음으로 윤슬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제5 증기 제어탑은 ‘강철심장’ 제국 동력의 핵심이었다. 이곳을 무력화시키면 수도 전체에 전력 공급이 마비되고, 제국군 병기들의 동력도 일시적으로 멈출 터였다. 평민들의 고된 삶을 지탱하는 모든 기계가 멈추고, 제국의 오만함이 잠시나마 고꾸라지는 상징적인 순간이 될 것이다.
철컥, 퓨식! 짧은 기계음이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풍구 내부를 가로지르던 붉은 레이저 선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완벽했다. 윤슬이 다시 통풍구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손엔 작은 절단기가 쥐여 있었다.
“성공했습니다, 형.”
“수고했다, 윤슬. 이제 핵심 동력실로 이동한다.”
좁고 어두운 통풍구를 기어 내부로 진입하자, 거대한 동력실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거대한 증기 파이프들이 마치 살아있는 혈관처럼 방 전체를 가로지르고 있었고, 중앙에는 사람 키의 수십 배에 달하는 거대한 증기 압력기가 굉음을 내며 회전하고 있었다. 구리 빛의 압력계는 붉은 경고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었다.
“저게 우리의 목표다.” 재우가 거대한 압력기를 가리켰다. “중앙 제어 밸브를 파괴하고, 보조 증기 파이프에 폭탄을 설치한다. 동시 작동으로 최대한의 피해를 입혀야 해.”
바로 그때, 콰아앙! 요란한 굉음이 동력실을 뒤흔들었다. 천장에 매달린 램프가 불안하게 흔들리며 번쩍였다.
“무슨 일이지?” 재우가 몸을 숙이며 주위를 경계했다.
“도결이 형 쪽에서 폭발음이 들린 것 같아요!” 윤슬이 외쳤다. “시선을 끌다가 걸린 건가…?”
아니, 단순한 시선 끌기가 아니었다. 폭발음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연이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어디선가 다급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증기 압력 비정상!’
“젠장, 도결!” 재우는 이를 악물었다. 도결이 병사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사용한 폭탄이 너무 강력했던 모양이었다. 혹은 병사들이 그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채고 먼저 공격했을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이제 ‘잿빛 새벽단’의 존재가 제국에 발각된 것이었다.
“시간이 없어! 빨리 움직여!” 재우가 소리쳤다.
윤슬은 재빨리 가장 가까운 보조 증기 파이프로 달려갔다. 재우는 망설임 없이 거대한 압력기 쪽으로 향했다. 육중한 강철 밸브를 돌리기 위해 온몸의 힘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견고하게 잠겨 있었다.
“빌어먹을!”
그때, 동력실 문이 쾅 하고 열리며 증기갑옷을 입은 제국군 병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의 증기총이 징, 하고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재우를 향했다.
“움직이지 마라! 반란군!”
윤슬이 재빨리 총을 뽑아 들고 병사들 쪽으로 견제 사격을 가했다. 증기총에서 뿜어져 나온 압축 공기가 병사의 갑옷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들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병사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윤슬! 폭탄 설치됐나?!”
“네! 이제 터트리기만 하면!”
재우는 한 번 더 거대한 밸브에 매달려 온 힘을 다해 돌렸다. 끽, 끽… 밸브가 비명을 지르며 아주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엔 핏줄이 섰다. 바로 그때, 병사들이 일제히 증기총을 발사했다. 슈우우욱! 거센 압축 공기탄이 재우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금속 벽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망할!”
재우는 마지막 힘을 짜내 밸브를 완전히 돌렸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증기 압력기에서 퓨우우욱- 하는 굉음과 함께 증기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압력계의 바늘이 미친 듯이 붉은색 경고선을 넘어갔다. 동시에 윤슬이 설치한 폭탄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보조 파이프를 박살 냈다.
콰콰콰쾅! 연쇄 폭발이 동력실을 집어삼켰다. 거대한 파이프들이 찢겨나가고, 과열된 증기가 사방으로 치솟았다. 제국군 병사들은 혼란에 빠져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재우는 폭발의 충격에 몸을 날려 겨우 숨어들었다.
“성공했다…!” 재우는 터져 나오는 기침과 함께 중얼거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동력실의 지축을 뒤흔드는 폭발음 너머로, 더욱 거대하고 섬뜩한 엔진음이 들려왔다. 단순한 증기선이나 소형 비행선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하늘을 가르는 쇠붙이 용의 울음소리 같았다.
거대한 동력실의 천장이 산산조각 나며 굉음을 냈다. 그리고 그 찢어진 구멍 위로, 수십 개의 강철 날개가 무섭게 회전하는 거대한 비행 요새, 제국의 최종 병기인 ‘강철 비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거대한 선체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갈고리를 던져 동력실 내부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진압이 아니었다. 제국은 이 작은 반란을 완전히 뿌리 뽑으려 했던 것이다. 재우는 망가진 천장 위로 드리워진 ‘강철 비룡’의 거대한 그림자를 올려다보았다. 압도적인 절망감이 밀려왔다. 그때, 그의 뒤에서 윤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형! 도결이 형이…!”
재우가 뒤를 돌아보았다. 동력실 입구에 쓰러져 있는 도결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옆구리에서는 시뻘건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에워싼 수십 명의 제국군 병사들이 차가운 눈으로 재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강재우! 네놈의 반란은 여기까지다!” 병사들 뒤에서 거대한 증기갑옷을 입은 지휘관이 묵직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손에는 번쩍이는 증기검이 들려 있었다.
재우는 윤슬을 바라보았다. 윤슬은 이미 다음 행동을 읽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할 수 있습니다, 형! 어서 도망치세요!”
‘도망치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재우의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수많은 잿빛 새벽단 단원들의 희생과 희망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여기서 죽을 수 없었다. 그의 죽음은 이 모든 반란의 끝을 의미했다.
“윤슬!” 재우가 외쳤다. 그의 눈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살아남아! 그리고… 반드시 돌아와!”
재우는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려 폭발로 생긴 구멍 너머,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뒤에서는 윤슬의 필사적인 총성이 울리고, 병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의 죽어가는 신음 소리가 그의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살아야만 했다. 이 처절한 밤의 끝을 보기 위해서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