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고독이 발톱을 세우는 ‘그림자 미궁’. 그곳은 이름처럼 어두웠고, 미로처럼 복잡했으며, 그림자처럼 예측 불가능했다. 일반적인 던전들이 몬스터의 개체 수나 서식하는 마수의 등급으로 위협을 가한다면, 그림자 미궁은 오직 ‘수수께끼’와 ‘함정’, 그리고 ‘봉인된 공간’으로만 등급을 매기는 특이한 던전이었다. 그리고 지금, 미궁 관리국(LMB) 소속의 어리숙한 요원, 유민준은 그 수수께끼 중에서도 가장 역겨운 형태를 마주하고 있었다.
“강현우 씨, 제발 빨리 좀 와주세요! 미치겠습니다, 정말.”
민준의 목소리는 수신석 너머로도 땀 냄새가 진동하는 듯했다. 평소라면 능글맞게 농담 한두 마디는 던졌을 그였지만, 지금은 다급함만이 가득했다. 그의 등 뒤로 희미하게 들려오는 건, 낮은 비명과 웅성거림,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섬뜩한 정적이었다.
“거기까지 목소리가 떨리면, 제가 아니라 신이라도 불러야 할 것 같은데요. 유민준 요원.”
수신석 너머의 강현우는 나른한 듯, 그러나 또렷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불필요한 감정이 한 조각도 섞여 있지 않았다. 마치 엉킨 실타래를 보며 이미 끝을 예측한 달인의 그것과 같았다. 현우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창밖의 희뿌연 도심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길드’ 소속도, ‘탐험가’ 그룹의 일원도 아니었다. 단지, 사람들은 그를 ‘미궁의 눈’이라 불렀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는 곳에, 항상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좀 다릅니다. 아니, 이건… 밀실 살인입니다! 던전에서, 그것도 이렇게 완벽한 밀실에서요! 피해자는… 최정훈 씨입니다.”
최정훈. 그 이름에 현우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유명한 유물 사냥꾼이자, 때로는 관리국의 눈엣가시였던 남자. 그가 미궁에서, 그것도 ‘밀실’에서 죽었다니. 현우는 나른했던 자세를 고쳐 앉았다.
“위치는요.”
“그림자 미궁 7구역, ‘별의 전당’입니다. 지금 즉시 이송조를 보낼 테니…”
“됐습니다. 제가 직접 가죠.”
현우는 말을 끊고 수신석을 허리춤에 도로 넣었다. 그리고는 테이블 위에 놓인 낡은 가죽 지갑을 챙겨 일어섰다. 그의 옷차림은 언제나 평범했다. 회색의 기능성 셔츠와 검은 바지. 누구라도 던전 탐험과는 거리가 먼 복장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달랐다. 깊은 심연처럼 가라앉아 있으면서도, 그 심연 어딘가에서 찰나의 빛이 번뜩이는 듯했다.
***
그림자 미궁 7구역 입구. 금속성 패널로 된 임시 통제선 너머로는 수십 명의 관리국 요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고작 한 달 전에 개방된 이 구역은 고대 문명의 유적과 봉인된 마법 장치들이 뒤섞여 있어, ‘함정의 천국’이라는 악명을 얻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살인이라니. 그것도 밀실 살인이라니. 관리국 요원들은 하나같이 혼란과 공포가 뒤섞인 표정이었다.
현우가 통제선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민준 요원이 마중을 나왔다. 그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새하앴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현우 씨, 오셨군요. 빨리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민준은 현우를 보며 거의 울먹일 지경이었다. 현우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피해자의 사인은 확인했나요?”
“아직요. 내부에는 수사 인력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진입을 못하게 막아놓았습니다. 훼손 우려도 있고, 결정적으로… 그곳의 기운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민준은 침을 꿀꺽 삼키며 ‘별의 전당’ 입구를 가리켰다. ‘별의 전당’은 거대한 원형 석실이었다. 거대한 돌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주변에는 마력 잔류 분석팀과 봉인 해제팀이 초조한 얼굴로 대기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죠.”
현우는 망설임 없이 돌문 쪽으로 걸어갔다. 민준은 급히 그를 뒤쫓았다.
“잠시만요! 현우 씨, 저희가 파악한 상황은 이렇습니다. 최정훈 씨는 어제 오후, 이 7구역에서 발견된 고대 유물을 회수하겠다며 단독으로 ‘별의 전당’에 진입했습니다. 약 한 시간 후 신호를 보내기로 했지만, 아무 소식도 없었죠. 6시간이 지나도록 연락이 닿지 않아, 비상 봉인 해제 프로토콜을 가동해 강제로 문을 열었습니다. 그때 발견된 겁니다. 최정훈 씨가… 죽어있었습니다.”
현우는 돌문 앞에 섰다. 차가운 돌의 표면에는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손바닥을 문에 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일반인에게는 그저 차가운 돌멩이일 뿐이지만, 현우에게는 문에 새겨진 마법진의 잔류 마력, 문의 봉인 상태, 그리고 문 너머의 흐름까지 어렴풋이 느껴졌다.
“이 문, 봉인은 완벽했습니다. 외부에서의 강제 개방 흔적도 없고, 내부에서 침입자가 침투한 흔적도 없다는 말이죠. 그리고 내부 봉인은…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현우의 낮은 중얼거림에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희가 도착했을 때도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강제로 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부 봉인은 외부에서 해제할 수 없는 방식입니다. 오직 내부에서만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 거죠. 그게 밀실이라고 단정하는 이유입니다.”
“그럼 피해자는 외부의 도움 없이 혼자 봉인을 풀고 안으로 들어갔고, 다시 혼자 봉인을 걸었다는 말이 되겠군요.”
“네. 그리고 봉인을 다시 풀지 못한 채… 변을 당한 거죠.”
현우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돌문을 향해 굳게 닫혔던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색이었지만, 그 안에서 아주 희미한 푸른빛이 번뜩이는 듯했다. 그의 각성 능력, ‘흐름 읽기’가 발동된 것이었다. 과거의 잔상, 마력의 흐름, 시간의 흔적들이 그의 눈앞에 그림자처럼 스쳐 지나갔다.
***
문이 열리고,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별의 전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천장에는 수많은 발광하는 마법석들이 박혀 있었다. 희미한 푸른빛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지만, 그 빛은 섬뜩한 푸른 장막처럼 느껴졌다. 원형의 거대한 석실. 중앙에는 최정훈이 쓰러져 있었다.
“흐읍…”
민준이 저도 모르게 신음했다. 최정훈의 모습은 처참했다. 그는 마치 고목처럼 바싹 말라붙어 있었고, 피부는 종잇장처럼 쭈글쭈글했다. 옷은 온전했지만, 그 안의 육체는 오랜 시간이 지난 시체처럼 변해버린 상태였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에는 깨진 수정 조각 하나가 굳게 쥐여 있었다. 그 조각에서 알 수 없는 검은 기운이 희미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변은요? 몬스터의 습격 흔적이나, 전투의 흔적은 없었나요?” 현우가 물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몬스터도 없었고, 마력의 격돌 흔적도 없었습니다. 시신에는 외상은 전혀 없고, 독극물 반응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미라처럼 변해버린 겁니다. 단시간에.”
민준의 목소리에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단시간에 인간을 미라로 만들 수 있는 몬스터나 마법은 그리 흔치 않았다. 더군다나 봉인된 밀실에서.
현우는 최정훈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은 여전히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흐름 읽기’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을 보여주었다. 벽면에 흐르는 고대 마법진의 잔류 마력, 바닥에 희미하게 남은 발자국, 그리고 최정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죽음의 잔재까지.
최정훈의 시신을 둘러보던 현우의 시선이 오른손에 굳게 쥐여 있는 수정 조각에 닿았다. 검은 기운을 뿜어내는 그 조각은 낯설면서도 어딘가 기시감이 들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시신을 살펴보았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를 보듯, 죽음의 흐름을 역추적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최정훈 씨의 얼굴에… 고통의 흔적은 없었군요.” 현우가 조용히 말했다.
민준은 당황했다. “네? 고통이라니요. 저렇게 처참한 모습인데…”
“마지막 순간의 흔적 말입니다.” 현우는 그의 말을 끊었다. “보통 미라화 현상이 일어날 때는 극심한 고통과 함께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게 됩니다. 하지만 최정훈 씨의 표정은… 미라처럼 말라붙어 있기는 하지만, 표정 자체는 매우 평온합니다.”
민준은 최정훈의 얼굴을 다시 살펴보았다. 정말이었다. 얼굴 근육이 수축되어 있었지만, 눈은 평온하게 감겨 있었고,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고통에 일그러진 모습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수정 조각. 이거 어디서 본 적 없는 물건인가요?” 현우는 손가락으로 수정 조각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뇨. 저희가 아는 어떤 유물 도감에도 없는 물건입니다. 다만, 강한 마력을 내뿜고 있어서 함부로 만질 수 없습니다. 저희가 접촉했을 때도 섬뜩한 냉기가 흘러나와서요.”
현우는 수정 조각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흐름 읽기’로 얻은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뒤섞였다. 평온한 죽음, 밀실, 그리고 이 기묘한 수정 조각.
“범인은 여기에 없었습니다.” 현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민준은 눈을 크게 떴다. “네? 범인이 없었다니요! 그럼 누가 최정훈 씨를 죽였다는 겁니까? 밀실입니다, 현우 씨!”
“그리고 이 살인 사건은… 밀실 살인이 아닙니다.”
현우의 말에 민준뿐 아니라 주변에서 증거를 기록하던 관리국 요원들까지 일제히 그를 돌아보았다. 모두의 눈에는 의아함과 혼란이 가득했다. 완벽한 밀실에서 벌어진, 완벽한 죽음. 그런데 밀실 살인이 아니라고?
현우는 손에 쥐여 있던 작은 펜을 최정훈의 몸 옆에 떨어뜨렸다. 펜은 아무 소리 없이 바닥에 닿았다. 그는 바닥에 난 미세한 균열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별의 전당은 7구역에서 가장 깊고, 가장 봉인이 완벽한 장소입니다. 문도 완벽하게 봉인되어 있었고, 내부의 마법진도 침입을 불가능하게 만들죠. 하지만…”
현우는 차가운 시선으로 주변을 훑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해서, 안에 갇힌 최정훈 씨가 이곳에서 죽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최정훈 씨는 이곳에서 미라가 된 게 아닙니다. 애초에, 시체가 이곳에 ‘옮겨진’ 겁니다.”
천재 탐정의 첫 번째 추리가, 그림자 미궁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울려 퍼졌다. 혼란에 빠진 모두의 표정에도 불구하고, 현우의 눈은 흔들림 없었다. 그는 이미 이 모든 흐름의 시작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밀실 안의 죽음이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