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는 정적은 늘 파열음을 예고한다.
철컥.
리온은 자신의 손에 들린 제식 블래스터의 탄창을 확인했다. 식은땀이 흘렀지만, 제복 소매로 훔칠 여유조차 없었다. 코앞의 티타늄 문 저편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기계음이 모든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옆을 돌아보니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처럼 단단한 결의와 함께, 이제 막 수염이 돋기 시작한 청년의 불안감이 엿보였다.
“통신 확인, 세라.” 리온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본부, 여기는 비행선 ‘은하수’입니다. 문 여세요. 신호 기다릴게요.] 세라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활기찼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공명음이 그녀 또한 긴장하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알았다. 카이, 준비.”
카이가 문 옆의 제어 패널에 손을 얹었다. 그는 숙련된 솜씨로 코드를 해독하기 시작했다. 푸른빛이 패널 위를 미끄러지듯 흘렀다. 초 단위의 싸움. 제국군의 순찰 주기를 정확히 계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임무는 처음부터 칼날 위를 걷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달랑 셋. 기껏해야 스무 명을 넘지 않는 무력한 과학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제국 깊숙한 곳의 비밀 연구 기지에 침투한 건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해야만 했다. 저들이 제국의 가장 추악한 심장을 들여다본 유일한 목격자들이었으니까.
삐비빅-! 띠링-!
“문, 열린다!” 카이가 짧게 외쳤다.
거대한 티타늄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미끄러지듯 옆으로 열렸다. 그 순간,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경보! 침입자 발생!”
빨간 경고등이 번쩍이며 복도를 붉게 물들였다. 제국군 보안 드론 하나가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젠장! 너무 빨랐다!” 카이가 욕설을 내뱉으며 블래스터를 치켜들었다.
쉬이이잉-! 콰앙!
드론이 섬광과 함께 터져 나갔다. 리온은 이미 복도 끝에서 달려오는 제국군 보병들을 향해 조준하고 있었다. 그의 눈은 흔들림 없었다.
“임무는 변함없다! 과학자들을 찾아라! 세라, 탈출로 확보에 집중해!”
[접수! 함선은 언제든 이륙 준비 완료!] 세라의 목소리가 한층 더 높아졌다.
타타타탕! 블래스터 총성이 복도 전체를 뒤흔들었다. 푸른색, 붉은색 에너지 볼트가 벽을 스치고 지나며 불꽃을 튀겼다. 리온과 카이는 벽에 바싹 붙어 몸을 숨기며 반격했다. 제국군 보병들은 수가 많았고, 훈련된 대로 빈틈없이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은 너무나 공허했다. 그저 명령에 복종하는 기계처럼.
“왼쪽! 셋이다!” 카이가 외치며 연사했다.
끄으윽! 제국군 보병 하나가 가슴팍에 블래스터 볼트를 맞고 쓰러졌다. 그의 동료들은 한 치의 동요도 없이 그 자리를 메웠다.
‘시간이 없다.’
리온은 손목의 전술 패드를 빠르게 조작했다. 기지 내부에 잠시 전파 교란을 일으켜 드론 네트워크를 마비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성공한다면 몇 분의 귀중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카이! 내가 길을 열 테니 그 틈에 과학자들 위치 파악해!”
리온은 벽을 박차고 튀어나갔다. 그의 블래스터가 쉴 새 없이 불을 뿜었다. 그는 제국군 보병들의 진형을 헤집고 들어가 근접전을 펼쳤다. 블래스터 개머리판으로 적의 헬멧을 후려치고, 옆구리에 칼날을 꽂아 넣었다. 피와 기름 냄새가 뒤섞였다. 제국군 보병들은 압도적인 화력으로 리온을 포위하려 했지만, 그의 움직임은 예측 불가능했다. 그는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평민들의 분노를 온몸에 새긴 전사였다.
“찾았다! 중앙 구역, 격리실! 젠장, 수가 너무 많아!” 카이가 외쳤다. 그의 목소리엔 절망감이 묻어 있었다.
격리실 입구에는 이미 중무장한 제국군 엘리트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른바 ‘검은 독수리’ 부대. 제국에서 가장 잔혹하고 효율적인 살인 병기들이었다.
“젠장…!” 리온이 이를 악물었다. “세라! 검은 독수리 부대가 투입됐다! 예상보다 빨라!”
[이미 확인했어요, 리온! 제가 이륙하는 순간, 놈들이 궤도 포격을 준비할 거예요! 너무 오래 기다릴 수 없어요!] 세라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쾅! 쾅! 쾅!
격리실 문에서 강력한 충격음이 들려왔다. 검은 독수리 부대가 문을 부수고 진입하려는 모양이었다.
“여기 붙잡힌 과학자들은 모두 일반 민간인이야. 군인도 아니고, 전사도 아니야. 그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카이가 으르렁거렸다. 그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제국이 수많은 행성에서 저지른 만행을 직접 목격했던 그는, 무력한 이들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반란의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믿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이들이다.” 리온이 짧게 말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카이, 나를 믿고 움직여라.”
리온은 빠르게 판단했다. 정면 돌파는 불가능했다. 그는 허리춤의 수류탄 두 개를 뽑아 들었다.
“카이! 내가 충격탄으로 시선을 끌 테니, 넌 제국군 뒤편으로 우회해서 과학자들을 격리실에서 빼내!”
“뭐? 혼자서?” 카이가 경악했다. “미쳤어? 검은 독수리라고!”
“알아! 하지만 이 이상 지체하면 놈들이 과학자들을 모두 죽일 거다! 지금뿐이야! 과학자들이 제국 최악의 비밀을 알고 있어. 반드시 살려야 해!” 리온의 목소리엔 흔들림 없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젠장! 알았어! 살아남아, 리온!”
카이는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격리실 반대편 복도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의 움직임은 그림자처럼 민첩했다. 리온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격리실 입구에 자리한 검은 독수리 부대를 향해 수류탄 두 개를 던졌다.
쉬이이잉-! 쾅! 쾅!
섬광과 폭음이 복도를 집어삼켰다. 그 혼란을 틈타 리온은 몸을 날려 검은 독수리 부대의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그들의 방어막이 잠시 균열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그의 블래스터가 불을 뿜으며 가장 가까운 적을 쓰러뜨렸다. 하지만 나머지 검은 독수리들은 놀라운 속도로 재정비했다. 그들의 칼날 같은 눈빛이 리온을 향했다.
“이곳을 떠날 수 없다, 반란군!” 한 검은 독수리 병사가 기계음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검은 갑옷은 불길한 그림자처럼 다가왔다.
“이 빌어먹을 기생충들아! 우리는 이곳을 떠날 것이다! 너희들이 가둬놓은 모든 생명과 함께!” 리온은 포효했다.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압도적인 숫자의 검은 독수리 부대가 리온을 옥죄어 왔다. 그의 몸에는 이미 몇 군데 블래스터 볼트가 스쳐 지나간 상처가 생겼다. 팔뚝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자유를 향한 불꽃으로 타올랐다.
[리온! 카이가 과학자들과 함께 탈출합니다! 랜딩 존으로 이동하세요!] 세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젠장…! 좀 더 버텨야 하는데…!”
리온은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은 무리였다. 검은 독수리 부대원 둘이 동시에 블래스터를 겨누었다. 피할 수 없는 순간.
그때였다.
쉬이이이잉- 콰앙!
천장에서 거대한 금속 파편이 떨어져 내리며 검은 독수리 부대원들을 덮쳤다. 이어진 폭발음과 함께 복도 전체가 흔들렸다.
[리온! 서둘러요! 제가 상층부 보강재를 격파했어요! 착륙장으로 뛰어요! 궤도 방어막이 30초 안에 완전히 가동될 거예요!] 세라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세라… 미쳤군!’
그녀는 기지 구조의 약점을 파악하고, 함선 포격으로 직접 길을 열어준 것이다. 위험천만한 도박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리온은 잠시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그는 재빨리 폭발 잔해를 헤치고 카이와 과학자들이 향했을 랜딩 존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달려, 달려, 달려.
폐가 찢어질 듯이 아파왔지만 멈출 수 없었다. 뒤에서 검은 독수리 부대의 추격대가 다시 조직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거대한 격납고가 눈앞에 펼쳐졌다. ‘은하수’호가 시동을 걸고 대기 중이었다. 함선 아래에서 뿜어져 나오는 엔진 열기가 지면을 아지랑이처럼 일렁이게 했다. 카이와 과학자들은 이미 램프를 통해 함선 내부로 향하고 있었다.
“리온! 이쪽이야!” 카이가 외쳤다.
리온은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램프를 향해 몸을 던졌다. 간발의 차이로 램프가 닫히기 직전, 그는 함선 내부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콰아아앙!
함선 문이 닫히는 동시에, 기지 외부에서 강력한 폭발음이 울렸다. 제국군의 궤도 포격이 시작된 것이었다.
“세라! 이륙해!” 리온이 소리쳤다.
[붙잡아요! 출발합니다!]
은하수호는 굉음과 함께 지면을 박차고 솟아올랐다. 거친 진동이 함선 내부를 뒤흔들었다. 창문 밖으로 기지가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러나 안심할 틈도 없었다.
삐빅! 삐빅!
함선 내 경고등이 요란하게 울렸다.
“뭐야, 또?” 리온이 물었다.
[리온! 제국군 궤도 방어막이 완전히 활성화됐어요! 탈출 경로가 봉쇄되고 있어요!] 세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다가… ‘검은 독수리’ 우주선들이 우리를 쫓고 있어요!]
창밖을 보니,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그림자들이 튀어나왔다. 제국군 최고의 전투기, ‘독수리 발톱’이었다. 검은 독수리 부대 전용 기체.
“젠장, 정말 끈질기군!” 카이가 욕설을 내뱉었다.
[데이터칩 확인했어요. 제국군의 ‘심장’ 프로젝트 파일입니다.] 과학자들 중 한 명이었던 노학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손에 들린 작은 데이터칩을 내밀었다.
리온은 그 칩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인 뒤, 함선 메인 컴퓨터에 연결했다.
슈우우욱-!
데이터가 빠르게 로딩되기 시작했다.
‘제국의 심장… 대체 무엇일까.’
화면 가득 복잡한 설계도와 알 수 없는 언어로 쓰인 문서들이 튀어 나왔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거대한 행성을 묘사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단순한 행성이 아니었다. 행성의 표면에는 수많은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구멍들에서 붉은빛이 섬뜩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흡사 거대한 생명체가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건… 대체…?” 카이가 숨을 들이켰다.
[세라, 회피 기동! 놈들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어!] 리온이 외쳤다.
우주선이 심하게 흔들렸다. 세라의 조종석에서는 온갖 경고음이 울렸다.
“리온… 이 행성은… 살아있는 행성입니다. 제국은… 이 행성을 거대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행성을… 통째로 착취해서… 새로운 차원의 무기를 만들고 있었어요. 행성 내부의 생명 에너지를… 뽑아내서…” 노학자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리온의 시선은 홀로그램에 고정되었다. 붉게 맥동하는 행성. 그 아래에 쓰여진 프로젝트 코드명.
**[아포칼립스 계획: 모든 생명의 종착점]**
그 순간, ‘은하수’호의 뒤편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독수리 발톱 전투기들이 쏘아낸 미사일이 함선 후미를 강타한 것이었다.
“안 돼!” 세라의 비명이 들렸다.
함선 내부의 조명이 깜빡거렸다. 진동이 더욱 격렬해졌다.
[엔진 하나… 나갔어요! 추락합니다!]
리온은 홀로그램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제국은 단순히 압제적인 것을 넘어선 존재였다. 그들은 우주의 생명 자체를 유린하려 하고 있었다. 평민들의 고통을 넘어, 모든 존재의 근원을 파괴하려는 광기.
“세라! 버텨!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야 해! 이 정보를… 반드시 전해야 해!”
리온의 눈빛이 새롭게 타올랐다. 이 싸움은, 단순히 자유를 위한 싸움을 넘어선 것이었다.
그것은… 모든 생명을 위한 싸움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