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회색빛 하늘은 오래된 벽화처럼 균열 가득한 잔해 위로 무심하게 펼쳐져 있었다. 강현우는 닳아빠진 등반용 장갑을 고쳐 쥐고 녹슨 철골 구조물 위를 조심스레 기어갔다. 발아래로는 아득한 심연이 펼쳐져 있었고, 그 밑바닥에는 수십 년 전의 대격변이 휩쓸고 간 도시의 뼈대들이 안개처럼 희부연 먼지 속에서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곳은 옛 ‘남포’였다. 한때는 번화했던 항구 도시였지만, 지금은 폐허 사냥꾼들의 은신처이자 망자들이 잠든 무덤이 되어버린 곳.

“젠장… 끝도 없네.”

그의 중얼거림은 이내 바람에 흩어져 사라졌다. 지독한 산성비가 내리고, 독성 먼지가 지배하는 ‘잿빛 시대’에서 이곳은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는 몇 안 되는 육지였다. 그마저도 이제는 서서히 바다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목숨을 걸고 이동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정수 시스템의 핵심 부품’. 불과 닷새 전, 그들의 보금자리인 ‘새벽 마을’에 독한 폐수가 유입됐다. 어린 ‘아린’이 열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불안과 공포는 현우의 심장을 죄어왔다. 마지막 남은 필터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기에, 현우는 이 위험천만한 여정을 시작했다.

오랜 탐색 끝에 현우가 도착한 곳은 옛 중앙 연구소의 흔적이었다. 콘크리트 외벽은 군데군데 무너져 내렸지만, 거대한 규모만큼은 여전히 위압적이었다. 이곳 어딘가에, 아직 작동 가능한 정수 시스템의 제어 장치가 남아있을 것이라는 희미한 소문만이 그를 이끌었다.

현우는 부서진 창문을 통해 내부로 진입했다. 유리 파편이 밟힐 때마다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복도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금속의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그의 손전등이 비추는 곳마다 쥐들이 후다닥 도망쳤다.

“망할, 아무것도 없잖아….”

수많은 실험실과 자료실을 뒤졌지만 성과는 없었다. 고도로 발달했던 문명의 흔적들은 이제 고철 더미나 쓸모없는 종이 뭉치로 변해버린 지 오래였다. 희망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 현우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다른 곳보다 유독 깨끗한 복도. 그리고 바닥에 희미하게 남은 흙 발자국.

현우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폐허 사냥꾼의 흔적이었다. 그들은 먹을 것이든, 쓸모 있는 부품이든, 아니면 그저 심심풀이로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냥하는 무리였다. 이곳까지 폐허 사냥꾼이 들어왔다면, 이미 귀한 것은 모조리 가져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즉시 자세를 낮추고 손전등을 껐다. 시야는 제한적이었지만, 귀는 더욱 예민해졌다.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대화 소리.

“…젠장, 왜 이리 뻑뻑해? 이거 돈 되는 거 맞아?”
“닥쳐, ‘두목’이 쓸모 있다고 했으면 쓸모 있는 거야. 대수롭지 않게 굴지 마. 조용히 해, 바깥에 누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두목? 현우의 뇌리에 ‘철혈단’이라는 악명 높은 폐허 사냥꾼 무리의 이름이 스쳐 지나갔다. 이들은 단순한 도적떼를 넘어,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주변의 작은 마을들을 약탈하고 착취하는 존재들이었다. 만약 그들이라면, 상황은 최악이었다.

현우는 벽에 바싹 붙어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움직였다. 어둠 속에서 그의 그림자가 마치 유령처럼 미끄러졌다. 소리가 가까워지자, 그는 복도 구석에 몸을 숨겼다.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문틈으로 안을 엿보았다.

그곳은 중앙 제어실이었다. 거대한 기계 장치들이 켜져 있었고, 몇몇 폐허 사냥꾼들이 능숙하게 부품을 해체하고 있었다. 그들 한가운데, 현우가 찾던 정수 시스템의 핵심 부품이 번뜩이는 불빛 아래 놓여 있었다.

“찾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의 눈은 이내 절망으로 물들었다. 부품은 이미 사냥꾼들의 손아귀에 있었고, 그들은 그것을 해체하고 있었다. 저렇게 뿔뿔이 흩어진 조각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이거, 가져갈 만한 건가? 꽤 무겁고….” 한 사냥꾼이 투덜거렸다.
“분명히 ‘동력 조절기’라고 했어. 우리가 찾던 발전소 핵심 부품은 아니지만, 이것도 꽤 값어치가 나갈 거다. 우리 진지로 가져가서 해체 전문가에게 보여줘.”

동력 조절기? 정수 시스템 부품이 아니라?

현우는 순간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사냥꾼들이 말하는 ‘동력 조절기’의 생김새는 분명 그가 찾던 ‘유압 필터 펌프’와 일치했다. 아마 그들은 그 용도를 제대로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그저 고철 덩어리일 뿐일지도 몰랐다.

“젠장, 지금 움직여야 해.”

현우는 이를 악물었다. 그들이 부품을 완전히 해체하거나, 밖으로 가져나가기 전에 기회를 잡아야 했다. 그 순간, 한 사냥꾼이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이, 바깥에 아무도 없지?”
“없어, 이 지독한 곳에 올 미친놈은 우리밖에 더 있겠냐?”

현우는 간신히 몸을 숨겼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지금이다. 그가 가장 어두운 복도를 따라 조용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그림자처럼, 발소리 하나 내지 않고 제어실 문에 가까워졌다.

철컥.

발소리가 너무 컸다. 현우는 순간 얼어붙었다. 낡은 복도 바닥에 놓여있던 쇠붙이를 발로 건드린 것이었다.

“누구야?!”

제어실 안의 사냥꾼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들었다. 현우는 망설일 틈도 없이 몸을 던져 제어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손은 본능적으로 ‘유압 필터 펌프’를 향했다.

“저 새끼 잡아!”

총성이 울렸다. 낡은 벽에 파편이 튀었다. 현우는 몸을 굴려 총알을 피하고, 펌프를 움켜쥐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무겁지만, 이것만 있으면 아린이 살 수 있었다.

“거기 서! 감히 우리 걸 훔쳐가?!”

가장 가까이 있던 사냥꾼이 현우에게 달려들었다. 현우는 반사적으로 허리에 차고 있던 작은 칼을 뽑아들고 휘둘렀다. 사냥꾼이 휘청이며 뒤로 물러섰다. 그 틈을 타 현우는 제어실 안쪽 깊숙이, 거대한 기계 장치들 사이로 도망쳤다.

탕! 탕!

총알이 그의 귓가를 스쳤다. 현우는 좁은 틈새로 몸을 구겨 넣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곳은 막다른 곳이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탈출구를 찾았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천장에 달려있는 거대한 환기구였다.

“도박이다….”

현우는 펌프를 꽉 쥐고 환기구로 뛰어올랐다. 녹슨 철제 뚜껑이 그의 무게에 삐걱거렸다. 간신히 몸을 밀어 넣었지만, 펌프는 너무 컸다.

“저 새끼 저기로 들어갔다! 쫓아가!”

환기구 안으로 총알이 빗발쳤다. 현우는 이를 악물고 펌프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 겨우 반쯤 들어갔을 때, 펌프가 틈새에 끼어버렸다.

“젠장!”

뒤에서는 사냥꾼들이 환기구를 향해 총을 쏘고 있었다. 현우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펌프를 붙잡고 몸을 비틀어,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금속이 살을 찢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아린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마침내, 그는 환기구 안으로 몸을 구겨 넣는 데 성공했다. 등 뒤에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환기구 입구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냥꾼들이 그를 쫓아오고 있었다.

어둡고 좁은 환기구 안을 기어가는 동안, 펌프는 그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먼지와 곰팡이 냄새로 가득 찬 통로를 따라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환기구는 점점 아래로, 그리고 옆으로 꺾였다. 방향이 맞지 않았다. 이 환기구는 외부로 통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수조였다. 녹슨 철제 통로의 끝은 수조 위에서 멈춰 있었다. 수조 안에는 검고 탁한 물이 가득했다. 독성 폐수였다.

“젠장, 함정이었나?!”

뒤에서는 사냥꾼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현우는 펌프를 가슴에 품고, 망설임 없이 검은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차갑고 끈적한 액체가 온몸을 휘감았다.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는 필사적으로 헤엄쳤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머리 위에서는 사냥꾼들이 환기구 끝에서 그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저 새끼 미쳤나! 저 물에 들어가다니!”
“어차피 죽은 목숨이야! 시체라도 건져서 물건 회수해!”

현우는 힘겹게 물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눈앞에는 수조의 벽이었다. 올라갈 곳이 없었다. 그의 팔다리는 점점 무거워졌다. 폐수가 그의 몸을 갉아먹는 듯했다.

그때, 수조 안쪽 깊숙한 곳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무언가, 기계적인 신호처럼 보였다. 현우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그 빛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수조의 벽면에는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문양 가운데, 또 다른 작은 환기구가 숨겨져 있었다. 현우는 직감했다. 이곳이 탈출구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또 다른 절망이었다. 작은 환기구는 인간이 통과하기에는 너무 좁았고, 심지어 펌프를 들고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크기였다. 게다가 그 환기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뒤에서는 사냥꾼들이 물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현우는 이제 선택해야 했다. 펌프를 버리고 목숨을 건질 것인가, 아니면 펌프를 지키다 이 차가운 물속에서 최후를 맞이할 것인가. 아린의 얼굴이 다시금 그의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는 펌프를 꽉 쥐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마지막 힘을 다해 환기구 뚜껑을 잡아당겼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암흑 속에서, 그는 또 다른 생존의 기로에 서 있었다.
그의 손에 쥐여진 펌프가, 희미한 빛을 내는 듯했다.
그는 이대로 죽을 수 없었다.
결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