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하이 판타지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에피소드 1: 잿빛 하늘 아래, 첫 불꽃**

**[장면 1]**
**시간:** 늦가을, 해 질 녘
**장소:** ‘회색골’ 마을 입구, 황량한 들판 옆

**[화면 1]**
전체적으로 잿빛이 감도는 황량한 들판. 저 멀리 해가 지고 있고, 붉은 노을이 겨우 하늘 한 조각을 물들이고 있다. 들판에는 누렇게 시든 작물들이 바람에 힘없이 흔들리고, 그 옆으로 초라한 오두막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화면 아래에는 힘없이 고개를 숙인 채 낡은 괭이를 메고 마을로 향하는 한 청년의 뒷모습. 그의 어깨는 넓지만 지쳐 보인다.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굳게 다문 입술만이 겨우 보인다.

**내레이션 (카인):**
언제부터였을까.
이 하늘이, 이 땅이, 모든 것이 잿빛으로 물든 것이.
어머니는 말씀하셨지. 아주 오래전엔, 이곳에도 푸른 희망이 있었다고.
하지만 내가 아는 ‘회색골’은, 언제나 회색이었다.
그리고… 그 회색빛 위에, 언제나 ‘철의 제국’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화면 2]**
청년, ‘카인’의 클로즈업. 땀과 먼지로 얼룩진 얼굴,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깊은 고뇌가 담긴 눈빛. 그의 눈은 멀리 보이는 제국군의 병영 쪽을 향하고 있다.

**내레이션 (카인):**
우리의 땀으로 지어진 높은 성벽. 우리의 피로 물든 제국의 깃발.
그 아래, 우리는 그저… 살아있는 흙먼지에 불과했다.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그저 숨만 쉬는 존재들.

**[화면 3]**
카인이 마을로 들어서자, 아이들이 축 처진 어깨로 빈 바구니를 들고 흙바닥에 앉아있다. 그들의 눈은 공허하고,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다. 마을 어귀의 낡은 나무 아래에는 늙은 촌장이 고개를 떨군 채 앉아있다.

**카인:**
(나지막이 중얼거리듯)
오늘도… 빈손인가.

**[화면 4]**
카인이 촌장에게 다가간다. 촌장의 주름진 얼굴에는 깊은 한숨과 체념이 어려있다. 촌장의 어깨가 들썩이는 것을 보니, 방금 전까지 울었던 모양이다.

**카인:**
촌장님, 수확은… 조금이라도 건졌습니까?

**촌장:**
(쉰 목소리로, 겨우 뱉어내듯)
…아무것도. 철의 제국 놈들이 싹 다 가져갔네. 전쟁 물자라고, 씨앗 한 톨 남기지 않고… 곡식 창고까지 몽땅 비워갔어. 흑… 이젠 겨울을 어떻게 나란 말인가.

**[화면 5]**
카인의 주먹이 꽉 쥐어진다. 그의 얼굴에 분노와 절망이 교차한다. 분노로 인해 눈가가 붉게 물들지만, 금세 절망의 그림자가 그 분노를 집어삼키는 듯하다.

**카인:**
이럴 수가… 이제 우리 아이들은 뭘 먹고 삽니까! 겨울은 코앞인데!

**촌장:**
(눈을 감으며 고개를 흔든다)
그뿐만이 아니야. 젊은이들을 더 데려간다고 했네. ‘북쪽 광산’으로 끌고 가겠다고… 우리 마을의 절반은 남정네들이 사라질 걸세. 이미 끌려간 이들도 돌아오지 못했는데… 또! 또!

**[화면 6]**
카인의 시선이 마을을 훑는다. 젊은이들이 없는 텅 빈 골목, 울먹이는 여인들, 그리고 앙상한 아이들. 절망에 잠겨 침묵하는 마을의 모습이 어둡게 비친다. 한 여인이 끌려가는 자식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고 있다.

**내레이션 (카인):**
숨을 쉬는 것조차 죄가 되는 세상.
우리가 흘린 땀은 그들의 칼날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고,
우리가 키운 곡식은 그들의 배를 채웠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줄 것이 없었다.
아니, 더 이상 내어줄 수 없었다. 내어줘서는 안 되었다.

**[장면 2]**
**시간:** 같은 날 밤
**장소:** 카인의 초라한 오두막 안

**[화면 7]**
카인이 낡은 등불 아래 앉아 무언가를 갈고 닦고 있다. 그것은 녹슨 낫. 농기구라기보다는 투박한 무기에 가까운 모양새다. 그의 얼굴은 어둠에 잠겨 있지만, 눈빛만은 형형하게 빛난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오두막 안을 가득 채운다.

**효과음:** (쇠를 가는 소리, 쉬이이익-)

**[화면 8]**
오두막 문이 조용히 열리고, 한 여인이 들어선다. ‘리엘’. 그녀는 차분하고 지적인 인상이며, 손에는 약초 바구니를 들고 있다. 그녀의 눈은 카인의 손에 들린 낫을 향한다. 한숨이 그녀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다.

**리엘:**
또 이걸 갈고 있었어? 대체 뭘 어쩌겠다는 거야, 카인.

**카인:**
(고개를 들지 않고, 거친 숨을 내쉬며)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

**리엘:**
(한숨을 쉬며,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이러다간 네 목숨만 위험해질 뿐이야. 제국군은 우리보다 수백 배는 강해. 그들의 마법사들과 철갑 기사들을 우리가 어떻게 이겨?

**[화면 9]**
카인이 낫을 탁자에 ‘쿵’ 하고 내려놓고 리엘을 똑바로 쳐다본다. 그의 눈에 이글거리는 불꽃이 선명하게 보인다. 낫의 날카로운 끝이 등불 불빛에 반사되어 빛난다.

**효과음:** (쿵!)

**카인:**
그럼 이대로 죽으라는 말이야? 굶어 죽고, 노예로 끌려가 죽고, 병들어 죽고… 어차피 죽을 바에는, 싸우다 죽는 게 낫지 않아? 적어도, 우리의 피가 헛되지 않았다는 기억이라도 남길 수 있잖아!

**리엘:**
(조용히 카인의 맞은편에 앉으며, 침묵 속에 잠시 생각한다)
…무모해. 하지만, 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야. 나도 오늘, 꼬마 렐리아가 마차에 실려가는 걸 봤어. 엄마의 비명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아.

**[화면 10]**
리엘이 고개를 숙이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그녀의 손이 꽉 쥐어진다. 렐리아의 엄마가 울부짖는 모습이 그녀의 눈앞에 스쳐 지나가는 듯하다.

**리엘:**
하지만 싸움은… 준비 없이 시작할 수 없어. 제국은 단순히 힘으로만 움직이는 곳이 아니야. 그들의 통치 방식은 견고하고, 정보는 철저하게 통제돼. 무작정 달려들면… 덧없이 사라질 뿐이야.

**[화면 11]**
카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의 그림자가 등불에 길게 드리운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는 단단한 결의로 가득 차 있다.

**카인:**
그럼 준비는 내가 할 거야! 다른 마을 사람들을 설득할 거고, 숨겨진 용사들을 찾아낼 거야!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거야! 침묵은 더 큰 고통만을 가져올 뿐이니까!

**리엘:**
(카인의 불타는 눈을 마주하며, 그녀의 눈빛에도 미약한 희망이 스친다)
…쉽지 않을 거야, 카인. 오랜 세월 제국의 그림자 아래서 살았던 사람들은, 공포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단순한 분노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몰라.

**내레이션 (카인):**
알아.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고개를 숙일 수 없었다.
이 잿빛 하늘 아래서, 나는 아주 작은 불꽃이라도 피워야만 했다.
꺼질지언정,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나는, 그 불꽃이 되어보기로 했다.

**[장면 3]**
**시간:** 다음 날 아침
**장소:** 마을 중앙 광장

**[화면 12]**
이른 아침,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리고 있다. 촌장과 몇몇 어른들은 여전히 절망에 빠진 표정이다. 그들 위로 제국군 병사들이 설치한 ‘징집’ 포고문이 펄럭인다. 포고문에는 새카만 글씨로 ‘강제 징집’, ‘노동력 징발’ 등의 내용이 피처럼 붉은 낙인과 함께 적혀있다.

**효과음:** (바람 소리, 싸아아-)

**[화면 13]**
광장 한가운데, 카인이 낡은 나무 상자 위에 올라서 있다. 그의 손에는 전날 갈았던 녹슨 낫이 들려있다. 그의 얼굴은 어제의 고뇌를 씻어낸 듯, 단단한 결의로 가득 차 있다. 리엘은 그의 뒤편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 속에는 카인에 대한 신뢰와 조용한 응원이 담겨있다.

**카인:**
(목소리를 높여, 광장에 울려 퍼지도록)
모두 들으시오! 더 이상은 안 됩니다!

**[화면 14]**
웅성거리던 마을 사람들이 카인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몇몇은 놀란 표정이고, 몇몇은 당황스러워 한다. 촌장은 황급히 손짓하며 카인을 말리려 한다.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다.

**촌장:**
(작게, 거의 속삭이듯)
카인! 그만두게! 제국군에게 들키면… 우리 모두가…!

**카인:**
(외침, 촌장의 말을 끊고)
우리에게 남은 것이 무엇입니까! 빼앗기고, 밟히고, 고통받는 것 외에 무엇이 남았습니까! 우리의 자식들이 끌려가고, 우리의 부모가 굶주리는데, 언제까지 두려움에 떨며 살아야 합니까! 차라리 죽음이 나을 지경입니다!

**[화면 15]**
카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몇몇 젊은이들의 눈빛이 흔들린다. 그들의 마음에 작은 파동이 인다. 어린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들을 대신하여 소리치는 카인을 경외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몇몇 노인들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힌다.

**카인:**
우리는 약합니다! 강철로 무장한 제국에 비하면 한없이 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죽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싸울 겁니다! 이 철의 제국에 맞서, 우리의 자유를 위해, 우리의 삶을 위해 싸울 겁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더 이상 잿빛 하늘을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

**[화면 16]**
카인이 녹슨 낫을 높이 치켜든다. 떠오르는 햇살이 녹슨 낫날에 반사되어 잠시 섬광을 일으킨다. 그의 눈빛은 희망과 분노로 활활 타오른다. 그의 뒤편에 선 리엘의 표정도 점차 굳건해진다.

**내레이션 (카인):**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작은 불꽃이, 거대한 제국을 불태울 수도, 혹은 한 줌의 재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이 잿빛 하늘 아래서…
희망을 노래하는 첫 번째 불꽃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날, 회색골의 하늘 아래, 작은 울림이 시작되었다.
아무도 듣지 못할 것 같던, 작지만 거대한 외침이.

**[화면 17]**
카인의 실루엣이 상자 위에서 당당하게 서 있고,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의 어렴풋한 모습들이 보인다. 그들의 눈빛에는 아직 두려움이 남아있지만, 동시에 카인의 외침에 의해 조용히 피어나는 희망의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 리엘은 조용히 카인을 바라보다가, 이내 결의에 찬 눈으로 마을 사람들을 둘러본다. 저 멀리, 제국군의 검은 깃발이 회색 하늘 아래 차갑게 펄럭인다. 카인과 제국군의 깃발이 대치하는 듯한 구도.

**효과음:** (바람 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제국군 행진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