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나 마법 학원. 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고귀하며, 가장 순수한 마법의 전당이라 불리는 곳. 그리고 내게는, 그저 지루하고 위선적인 거대 건축물일 뿐이었다.
나는 류진. 이세계에서 넘어온 존재. 원래 세상의 평범한 공대생이었던 내가, 눈을 뜨니 마력 회로 설계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고아 소년의 몸으로 빙의해 있었다. 이 우주적인 농담에 익숙해질 즈음, 난 이 세계의 마법과 과학이 너무나도 닮아 있음을 깨달았다. 마법진은 회로도였고, 주문은 알고리즘이었으며, 마력은 에너지원이었다.
문제는, 아르카나 학원에는 ‘자연스러운’ 마법만 존재해야 한다는 위선적인 교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마력을 분석하고,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나의 방식은 이들에게는 이단에 가까웠다. 덕분에 나는 ‘문제아’ 딱지를 달고 학원 구석의 허드렛일이나 맡게 되는 신세였다. 이번 주 임무는 ‘잊힌 지하실’의 마력 흐름 점검. 이름부터 으스스했다.
“류진, 이 자식아! 이번에도 또 꼼수 부릴 생각 말고, 똑바로 해! 알았어?”
관리국장의 쉰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비대한 몸뚱이와 탐욕스러운 눈을 가진 그는 내가 마법의 원리를 캐묻는 것을 특히 싫어했다. 마법은 신비로운 것이어야 했으니까.
“네, 국장님. 말씀대로 ‘신비’롭게 수행하겠습니다.”
나는 일부러 ‘신비’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국장의 얼굴이 구겨졌지만, 더 이상 잔소리할 힘이 없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램프 하나와 마력 측정 수정구를 챙겨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 계단은 끝없이 이어지는 미로 같았다. 꿉꿉한 흙냄새와 오래된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램프 불빛에 의지해 삐걱이는 계단을 한참 내려가자, 마침내 지하 10층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이곳은 학원 도서관의 폐기된 서적들을 임시 보관하는 곳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마력 흐름 점검이라니? 이상했다. 마력이 흐를 만한 시설은 전혀 없었다.
낡은 나무 문을 열자, 후텁지근하고 습한 공기가 훅 끼쳐왔다. 안쪽은 거대한 동굴처럼 펼쳐져 있었다. 천장은 흙과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고, 곳곳에 기이한 모양의 종유석이 돋아나 있었다. 여기저기 곰팡이가 피어 있는 폐서적 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야말로 ‘잊힌’ 지하실 그 자체였다.
“젠장, 이런 데서 뭘 점검하라고.”
나는 투덜거리며 마력 측정 수정구를 들었다. 붉은빛이 깜빡이며 주변의 마력 밀도를 표시했다. 일반적인 지하와 다를 바 없는 낮은 수치. 역시나 이상한 임무였다. 이건 그냥 나를 귀찮게 하려는 수작에 불과했다.
폐서적 더미 사이를 헤치며 걷던 중, 문득 수정구의 붉은빛이 급격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라?”
측정된 마력 밀도가 갑자기 치솟았다. 그것도 평범한 마력이 아니었다. 뭔가 끈적하고, 어둡고, 불쾌한 기운이 섞여 있었다. 마치 썩어가는 시체에서 풍기는 역한 냄새 같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여 은밀히 움직였다. 발소리를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낡은 서적들이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마력 측정 수정구는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분명 이 근처였다.
가장 깊숙한 곳, 폐기된 서적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산 뒤편에, 덩그러니 놓인 낡은 벽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벽들과는 다르게 매끄럽게 다듬어진 돌로 쌓여 있었고, 묘하게 위화감이 느껴졌다. 벽에는 희미하게 고대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게… 뭐지?”
나는 손을 뻗어 벽에 새겨진 문자를 쓰다듬었다. 손끝에 차갑고 이질적인 마력의 잔류가 느껴졌다. 마치 이 벽 자체가 거대한 마력의 결정체인 양, 수정구의 불빛은 거의 터질 듯 붉게 번쩍였다.
나는 학원에서 배운 고대어 지식과, 내가 본래 세계에서 익혔던 기호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문자를 해독하기 시작했다. 문자는 복잡하게 얽혀 있었지만, 내 눈에는 일종의 ‘회로도’로 보였다. 에너지 흐름을 차단하는 봉인 마법. 그리고 그 봉인 마법을 해제하는 방법…
‘호기심이 과하면 죽는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내 안의 공학도적 호기심과 이세계인의 특유의 무모함은 이미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움직여 벽에 그려진 봉인 마법진의 특정 지점을 눌렀다. 마법진이 일종의 ‘스위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찌릿!
손끝에서 전기가 통하는 듯한 감각이 스쳐 지나갔다. 벽에 새겨진 문자들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번개처럼 번쩍이더니, 이내 거대한 문양이 벽을 따라 펼쳐졌다. 쿵!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벽의 일부가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며 어둠 속으로 통하는 통로를 드러냈다.
매캐한 철분 냄새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확 끼쳐왔다. 그리고 동시에, 희미하지만 분명한, 기분 나쁜 ‘흐느낌’이 들려왔다.
“젠장… 이걸 열어버렸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세계인이 된 이래 수많은 위험을 겪었지만, 이번만큼 등골이 오싹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문득, 관리국장이 나에게 ‘신비’롭게 임무를 수행하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자식, 이걸 알고 있었던 건가?
램프를 높이 들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발을 들였다. 통로는 좁고 축축했다. 벽에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이끼가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흐느낌 소리는 점점 더 또렷하게 들려왔다. 마치 수많은 사람의 절규가 한데 섞인 듯한, 고통스러운 비명이었다.
통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자, 갑자기 공간이 넓어지며 거대한 원형 홀이 나타났다. 홀의 중앙에는 지름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마법진이 바닥에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마법진 위에는… 수많은 ‘투명한 관’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관 안에는 액체가 가득 차 있었고, 그 액체 속에는 흐릿한 형태의 ‘무엇’인가가 둥둥 떠 있었다. 그것들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피부는 창백했고, 눈은 감겨 있었으며, 온몸에는 얇은 마력선들이 꽂혀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시체 같았다.
“이게… 뭐야?”
내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마력 측정 수정구는 이미 한계를 넘어선 듯 시뻘건 빛을 내며 미친 듯이 진동하고 있었다. 홀을 가득 채운 마력은 그야말로 악의적이고 불경했다. 이곳의 마력은 투명한 관 속의 존재들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홀의 벽면에는 복잡한 마력 회로와 파이프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그 파이프들은 관 안의 액체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액체는 어딘가로 계속 흘러들어가는 구조였다. 마치… 이 관 속에 있는 존재들에게서 마력을 ‘추출’하는 장치 같았다.
그리고 그때, 홀의 가장자리, 거대한 제어판 앞에 서 있는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 연구복을 입고 있었지만, 등 돌리고 서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 그림자가 홀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아직 멀었나… 아르카나의 영광을 위해, 더욱 많은 ‘재료’가 필요하다…”
‘재료’라는 단어에 온몸의 피가 식는 듯했다.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지하에 숨겨진 끔찍한 금기. 그것은 마법의 ‘순수함’을 외치던 이들이, 살아있는 인간을, 아니, 살아있었던 인간의 육신을 이용해 마력을 착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투명한 관 속의 존재들은, 설마… 학원에서 실종되었다고 발표되었던, 재능 넘치던 마법사들이었던 건가?
내 머릿속에 섬뜩한 가설이 떠올랐다. 이 거대한 학원을 움직이는 막대한 마력은, 순수한 마법의 힘이 아니라… 바로 이 시체 같은 존재들에게서 강제로 추출되는 것이었다.
“이건… 살인이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누구냐!”
차가운 목소리가 홀에 울려 퍼졌다. 그림자였던 인물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핏기 없는 얼굴, 광기로 번뜩이는 눈, 그리고 입가에 걸린 소름 끼치는 미소. 그는 분명 이 학원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마법 이론 교수’ 아르윈이었다.
나는 꼼짝없이 들켜버렸다. 그의 눈빛은 이미 나를 죽은 자로 취급하고 있었다. 손에 든 램프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 순간, 홀 가득한 투명한 관 속에서, 수많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텅 비고 생기 없는 눈동자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돌아봤다.
끔찍한 흐느낌 소리가, 이제는 홀 안을 가득 채운 절규로 변했다.
등 뒤로 섬뜩한 한기가 솟구쳤다.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진짜 ‘영광’은, 바로 이 지옥 같은 심연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심연의 비밀을 너무 깊이 들여다보고 말았다.
나는 이제, 이 비밀의 또 다른 ‘재료’가 될 참이었다.
내 안의 이세계인으로서의 생존 본능이, 으르렁거리는 경고음을 울렸다.
도망쳐야 한다. 당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