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오천 미터. 더 깊이 파고들면 차라리 우주 공간과 가까울 것만 같은, 완전한 고립의 심연이었다. 공기는 축축하고 무거웠으며, 흙과 돌,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쇠 비린내가 섞인 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김현우는 땀으로 축축한 손바닥을 바지에 닦아내며 낡은 지도에 고개를 박았다. 팀 리더 이지혜는 무전기를 귀에 대고 잔뜩 신경이 곤두선 표정으로 낮은 목소리를 주고받는 중이었다.
“……현재 좌표에서 더 이상의 통신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지혜의 목소리가 점점 흐려지다 결국 끊겼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무전기를 허리에 매달았다.
“젠장, 예상보다 통신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여기 지반이 영 불안정해서 그런가 봐.”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발을 디딘 곳은 최근 발견된 미지의 고대 지하 유적이었다. 수천 년은 족히 되었을 법한 거대한 구조물들이 복잡하게 얽혀 동굴 미로를 이루고 있었고, 횃불도 전등도 없던 시대에 어떻게 이런 거대한 공간을 만들었는지조차 미스터리였다. 어둠이 짙게 깔린 거대한 홀의 천장은 아득히 높아 랜턴 불빛으로도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벽면에는 기괴하고 난해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인간의 형상이라기엔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이질적인 그림들이었다. 마치 어떤 미지의 생명체가 벽을 따라 꿈틀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어디야? 적어도 우리가 이 인류의 흔적을 발견한 첫 번째 탐사대는 확실하잖아.”
현우는 애써 유쾌한 목소리를 내보려 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위화감이 드는 공간이었다. 공포라기보다는, 불쾌하고 음습한 기운이 끈적하게 달라붙는 느낌.
지혜는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홀의 중앙에 놓인 거대한 석상에 시선을 고정했다. 석상은 기묘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는데, 얼굴은 없었고 대신 매끄러운 구형의 돌이 박혀 있었다. 그 위에는 역시 알아볼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건 대체…… 어떤 문명이었을까? 역사의 어느 기록에도 남아있지 않은데.”
그 순간, 현우의 등골을 차가운 무언가가 훑고 지나갔다. 분명 벽에 새겨진 문양들이 순간적으로 움직인 것 같았다. 물결치듯 일렁이며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현우 씨, 봤어요?”
지혜의 목소리가 잔뜩 쉬어 있었다. 현우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뭘요?”
“방금…… 벽 그림자가 움직인 것 같았어요. 저 석상 근처에서.”
“착각이겠죠. 오래된 곳이라 빛이 이상하게 반사되거나, 어둠이 짙어서 그럴 겁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자신도 똑똑히 보았다. 아니, 느꼈다. 벽에 새겨진 그 기괴한 눈동자들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날 밤, 그들은 홀 한쪽 구석에 텐트를 치고 잠을 청했다. 현우는 잠에 들기 전, 텐트 안을 꼼꼼히 살폈다. 그의 불안감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었다. 잠이 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얕은 수면 속에서, 그는 낯선 목소리를 들었다. 귀에 속삭이는 듯한, 그러나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이루어진 웅얼거림. 어딘가 애처롭고, 또 어딘가 섬뜩한 음성이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슬픔에 잠식된 듯한 목소리.
아침이 되자, 현우는 극심한 피로감에 시달렸다. 지혜 역시 눈 밑이 거뭇했다.
“잠 제대로 못 잤죠? 저도 그래요. 계속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지혜의 말에 현우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혼자만의 환청이 아니었다.
“혹시…… 고대 언어 같은 거 들었어요?” 현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냥 웅얼거리는 소리였어요. 어떤 규칙도 없는 잡음처럼. 그런데 듣는 동안 머리가 너무 아팠어요. 마치 누가 내 머릿속을 긁는 것 같은 느낌.”
그들은 다시 탐사를 시작했다. 홀을 지나 더 깊은 통로로 들어서자, 공기는 더욱 차가워지고 습해졌다. 통로의 벽에는 이전 홀보다 더욱 밀도 높게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번에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어떤 의식을 묘사한 듯한 조각들이었다. 웅크린 인간형 존재들이 하늘을 향해 팔을 뻗고 있었고, 그들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가 어둠 속에서 내려다보는 형상이었다. 그 존재의 눈은 마치 검은 구멍처럼 뚫려 있었고, 그 구멍 안으로 모든 빛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게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지혜가 중얼거렸다.
그때 현우의 랜턴이 깜빡거렸다. 새 배터리로 교체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랜턴은 이내 완전히 꺼져버렸고, 주위는 다시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
“현우 씨! 괜찮아요?”
지혜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현우는 등 뒤에서 차가운 무언가가 자신을 만진 것 같은 느낌에 숨을 들이켰다. 뒤를 돌아봤지만, 보이는 것은 지혜의 랜턴 불빛에 비친 음산한 벽화뿐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는 목이 메인 소리로 답했다. “랜턴이 갑자기 꺼졌어요. 배터리를 갈아봐야……”
“현우 씨, 거기 서요!”
지혜의 다급한 외침에 현우는 멈칫했다.
“왜요?”
“아니, 방금…… 현우 씨 뒤에 그림자가…… 아니, 괜찮아요. 그냥 벽 때문에 착각했나 봐요.” 지혜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를 내보려 했지만, 그녀의 눈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은 그날 이후로 점점 더 쇠약해졌다. 잠은 제대로 잘 수 없었고, 끊임없이 들려오는 웅얼거림은 이제 그들의 머릿속에서 직접 들리는 듯했다. 벽에 새겨진 문양들은 살아있는 듯 꿈틀거렸고, 좁은 통로를 지날 때마다 누군가가 자신들의 숨통을 노리는 듯한 느낌에 시달렸다.
현우는 자신의 정신이 서서히 붕괴되고 있음을 느꼈다. 눈앞에 없는 존재가 자꾸만 아른거렸고, 귀에는 귓속말이 들려왔다. ‘돌아가지 마’, ‘여기 남아’, ‘잊혀진 자들의 영원한 안식처.’
“지혜 씨, 우리 돌아가야 해요. 여긴 뭔가 잘못됐어.”
현우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지혜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알아요, 현우 씨. 나도……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뭔가에 이끌리는 것 같아요. 저 깊은 곳에…… 뭔가가 있어. 우리가 알아내야만 하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욕망이 서려 있었다. 이 미지의 유적이 그들의 정신을 갉아먹는 동시에, 묘한 매력으로 그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들은 유적의 가장 깊은 곳, 거대한 원형의 공간에 도달했다. 그곳의 중앙에는 거대한 검은 돌덩이가 놓여 있었는데, 주변의 모든 빛을 흡수하는 듯한 기묘한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벽면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더욱 섬뜩한 그림들이 새겨져 있었다. 인간의 형상들이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는 듯한 모습, 그리고 그들의 영혼이 어떤 검은 존재에게 흡수되는 듯한 끔찍한 묘사들.
“이건…… 감옥이야.” 현우가 중얼거렸다. “누군가를 가두기 위한 곳이었어. 아니면, 뭔가를 가두기 위한.”
그 순간, 검은 돌덩이에서 희미한 진동이 느껴졌다. 웅얼거리는 소리가 이제는 명확한 형태로 귀에 들려왔다.
—자유.
“지혜 씨!”
현우는 지혜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홀린 듯 돌덩이를 향해 한 발짝씩 다가가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그 돌덩이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이건…… 진실이야. 모든 것을 알게 될 거야.”
지혜의 손이 검은 돌덩이에 닿으려는 순간, 현우는 몸을 던져 그녀를 막았다. 그 순간, 돌덩이에서 강렬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빛이라기보다는 어둠 자체의 분출 같았다. 빛은 그들의 정신을 직접 후려치는 듯했다.
현우는 비명을 질렀다. 그의 눈앞에 환영이 펼쳐졌다. 수많은 얼굴들이 고통 속에서 일그러지고, 그들의 비명이 머릿속을 헤집는 듯했다. 그는 수천 년 전, 이 거대한 지하 유적을 만든 고대인들의 공포와 절망을 똑똑히 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명을 파괴한 어떤 존재, 혹은 어떤 재앙을 이 검은 돌덩이에 봉인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실패했다. 그 존재는 봉인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이 유적을 자신의 육체 삼아 영원히 존재하고 있었다. 고통, 절망, 파괴의 기억으로만 이루어진 순수한 악의.
—나는 잊혀지지 않았다.
그 목소리가 현우의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 현우는 온몸을 떨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검은 빛은 이내 사그라들었지만, 그의 정신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현우 씨! 괜찮아요?”
지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현우를 부축하려 했지만, 현우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은 상태였다.
“돌아가야 해…… 우리가 그걸 깨웠어……”
그들은 필사적으로 유적을 탈출했다. 다시 통로를 지나고, 홀을 가로질러 지상으로 향하는 길을 찾았다. 하지만 이제 유적은 이전과 달랐다. 벽에 새겨진 그림들은 끊임없이 그들을 응시했고, 복잡하게 얽힌 통로들은 마치 살아있는 미로처럼 끊임없이 길을 막고 방향을 바꾸는 듯했다. 환영과 환청이 그들을 괴롭혔다. 뒤에서 무언가가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고, 앞에서는 기괴한 형상들이 어른거렸다.
지혜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녀 역시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지만, 현우마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책임감이 그녀를 지탱했다. 그녀는 거의 반쯤 정신을 놓은 현우를 끌다시피 하여 필사적으로 길을 찾았다.
“거의 다 왔어, 현우 씨! 조금만 더 버텨!”
마침내, 아득히 멀었던 지상으로 향하는 입구가 보였다. 희미한 바깥세상의 빛이 그들을 비췄다. 그들은 죽을힘을 다해 기어 올라갔다.
차가운 바람이 그들의 얼굴을 스쳤다. 오랜만에 맡는 흙냄새와 풀냄새에 지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쓰러지듯 땅바닥에 엎드렸다.
“우리가…… 해냈어……” 지혜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현우는 아무 말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지혜는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현우 씨, 괜찮아요? 우리 이제 안전해요!”
그 순간, 현우의 입가에 기이한 미소가 번졌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공허했지만, 그 미소는 섬뜩할 정도로 평화로워 보였다.
“안전하다고?” 현우가 낮게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훨씬 깊고, 낮게 깔려 있었다. 마치 다른 존재의 목소리인 것처럼.
“지혜 씨, 그게 아니야. 우리는 그걸 깨운 게 아니었어.”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지혜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 속 깊은 곳에서, 검은 빛이 일렁이는 듯했다.
“그것은 늘 거기에 있었고, 우리는 그저…… 그것의 다음 숙주가 되었을 뿐이야.”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지상으로 올라왔다. 아니, 어쩌면 그들의 몸속에 이미 자리 잡은 것인지도 몰랐다. 고대 유적의 비밀은 파헤쳐졌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 잔혹했다. 잊혀진 것은 단지 그 유적이 아니었다. 잊혀진 것은, 그곳에 봉인되었던, 혹은 잠들어 있던 순수한 악의였다. 그리고 이제, 그것은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그들의 몸을 빌려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