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정의 톱니바퀴
강준영은 습관처럼 낡은 황동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오후 11시 47분. 바늘은 멈춰 있었다. 며칠 전부터 그랬다. 정비사라는 직업이 무색하게도, 정작 자신의 시계는 고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고칠 마음이 없었다. 어차피 이 도시의 시간은 시계가 아닌,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 연기의 밀도로 가늠되는 법이었으니까.
밖은 이미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고층 아파트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네온 불빛과 증기 가스등이 뒤섞여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거대한 비행선들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묵직한 엔진음을 토해냈다.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 대신, 수많은 톱니바퀴와 증기 기관으로 이루어진 이 거대 도시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하나의 기계 같았다.
준영은 작업대 위로 시선을 돌렸다. 산산조각 난 태엽 시계 부품들이 흩어져 있었다. 오늘은 낡은 회중시계의 밸런스 휠을 교체하려다 실패했다. 섬세한 핀셋이 삐끗하는 순간, 찰나의 흔들림이 부품들을 바닥으로 떨어트렸고, 곧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한숨을 쉬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때였다. 귓가에 맴도는 아주 희미한, 그러나 분명한 ‘째깍, 째깍’ 소리.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작업실은 온통 멈춘 시계와 분해된 기계 부품들로 가득했지만, 그 어떤 것도 지금 소리를 낼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낡은 벽시계는 진작부터 작동을 멈춘 채 먼지만 쌓여 있었고, 테이블 위 스탠드도 증기 압력을 조절하는 밸브가 고장 나 깜빡거리고 있었다.
“젠장, 환청인가.”
준영은 머리를 털었다.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으로 향하려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건, 작업대 한구석에 놓여 있던 작은 황동 나사못이었다. 분명히 그는 방금 전까지 그 나사못을 손에 들고 태엽을 조이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작업대 가장자리, 그러니까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놓여 있었다.
“뭐지?”
준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망설이다 손을 뻗어 나사못을 집어 들었다. 별것 아니었다. 그저 피곤해서 착각한 것이리라. 그는 자신을 납득시키며 나사못을 다시 원래 자리에 놓았다.
그리고 다음 날 밤, 기이한 현상은 더욱 선명해졌다.
준영은 늦게까지 잠 못 들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천장의 낡은 증기등이 깜빡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새벽 두 시. 불면증에 시달리는 날이 늘고 있었다. 문득, 침대 옆 협탁 위 스탠드에서 ‘딸깍’ 하는 소리가 들렸다. 스탠드는 전원이 꺼져 있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스탠드 아랫부분의 작은 레버가 미세하게 움직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불을 켜는 쪽으로.
“설마.”
그는 조심스럽게 스탠드를 다시 켰다. 불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스탠드는 이미 고장이 난 상태였다. 그러나 레버가 움직였다는 사실은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단순한 착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명확한 흔적이었다.
이후 며칠 동안, 준영의 아파트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됐다.
작업실 선반에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던 괘종시계의 추가 흔들리거나, 분명히 잠가 두었던 서랍이 열려 있고, 그 안의 작은 부품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기도 했다. 한번은 작업 도중 사용하던 렌치가 그의 손에서 스르륵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러나 바닥에 닿기도 전에, 마치 투명한 손이 잡기라도 한 듯 공중에 잠시 멈춰 있다가 이내 작업대 위로 ‘탁’ 하고 다시 올라왔다. 준영은 얼어붙은 듯 그 광경을 지켜봤다.
“이건… 대체 뭐야?”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렌치를 집어 들었다. 싸늘한 금속의 감촉. 환각이라고 애써 외면하기에는 그 상황이 너무나 생생했다. 그는 그날 밤, 늦도록 잠 못 들고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서 작은 소리 하나에도 반응했다.
새벽 3시 17분.
주방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준영은 벌떡 일어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차가운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그는 조심스럽게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 바닥에는 그가 아끼던 낡은 세라믹 머그컵이 산산조각 나 있었다. 주변에는 물방울이 흩뿌려져 있었고, 마치 물을 끓이다가 갑자기 폭발한 것처럼 주변 벽면에 물자국이 선명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싱크대 위에 놓여 있던 고대 황동 주전자였다. 증기 압력을 조절하는 밸브가 활짝 열려 있었고, 뚜껑은 비스듬히 들려 있었다. 그리고 주전자 안에서는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준영은 경악했다. 주전자는 비어 있었다. 물을 넣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증기가 나올 수 있지? 그는 주전자 앞으로 다가섰다. 뿜어져 나오던 증기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였다. 투명한 실타래처럼 이리저리 춤을 추다가, 갑자기 주전자 밸브 구멍에서 ‘쉭-!’ 하는 소리와 함께 뿜어져 나오며 희미하게 사람의 형상을 띠는 듯했다.
작고, 흐릿한 손가락이 주전자의 황동 몸체를 더듬었다. 그리고는 그의 눈앞에서, 그 작은 증기의 손가락이 밸브를 아주 천천히, 그러나 힘겹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밸브는 잠기는 쪽으로 돌아갔다. ‘끼이익’ 하는 낡은 톱니바퀴 마찰음이 증기 속에서 울려 퍼졌다.
“안 돼…!”
준영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차가운 증기 형상을 허무하게 통과할 뿐이었다. 증기 손가락은 밸브를 완전히 잠갔고, 주전자에서 뿜어져 나오던 증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갑자기, 아파트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쿵! 쿵! 쿵!’ 마치 거대한 망치로 벽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였다. 소리는 그의 작업실 쪽에서 들려왔다. 그는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안 돼, 제발….”
그는 도망치듯 작업실 문을 향해 달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작업실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작업대 위의 부품들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선반의 책들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벽에 걸려 있던 낡은 증기 압력계는 유리가 깨져 있었고, 그 안의 바늘은 미친 듯이 ‘0’과 ‘최대치’ 사이를 오가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방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괘종시계였다. 200년도 더 된,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낡은 시계였다. 그 시계는 오랜 시간 동안 멈춰 있었고, 그는 언젠가 고쳐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괘종시계는 작동하고 있었다.
‘째깍, 째깍, 째깍!’
추가 미친 듯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시계 내부에서 톱니바퀴들이 격렬하게 맞물리는 소리가 귀청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시계의 낡은 나무 케이스 사이로는 희미하게 주황색 빛이 새어 나왔고, 그 빛은 마치 뜨거운 증기처럼 일렁였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괘종시계의 중앙 문이 천천히, 저절로 열리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익—’ 낡은 경첩이 비명을 질렀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안에서는 기이하고 거대한 톱니바퀴가 보였다. 그 톱니바퀴는 마치 심장처럼 ‘쿵, 쿵’ 하고 박동하고 있었다.
“아… 안 돼.”
준영은 온몸의 피가 식는 것을 느꼈다. 그 톱니바퀴의 한가운데에서,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두 개의 붉은 눈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붉은 눈동자 사이로, 수없이 많은 작은 톱니바퀴들이 쉼 없이 회전하며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를 내는 듯했다.
그것은 시계 속에서 갇혀 있던, 무언가였다.
그것은 이 아파트에 깃들어 있던, 기이한 생명이었다.
괘종시계의 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 방 안의 모든 시계들이 일제히 미친 듯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멈춰 있던 시계들의 바늘이 갑자기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낡은 톱니바퀴들이 서로 부딪히며 ‘끼이이익! 쾅!’ 하는 소리를 토해냈다.
준영은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그의 눈앞에서, 괘종시계의 붉은 눈이 더욱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차가운 증기와 함께, 거대한 금속 팔 하나가 서서히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기계처럼, 차가운 증기와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존재였다.
그것은 준영을 향해, 그의 심장을 움켜쥐려는 듯, 빠르게 뻗어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