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른 용과 은빛 나비
강하람의 눈앞에서 거대한 폭발이 터져 나갔다. 맹렬한 불꽃이 푸른색 장갑의 ‘청룡’ 기체를 집어삼키는 듯했지만, 고성능 실드 제너레이터는 그 압력을 끈질기게 버텨냈다. 콕핏 안,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었다. 귀를 찢을 듯한 경보음과 함께 전방 스크린에는 적 기체의 잔해가 섬광처럼 흩어지는 것이 포착되었다.
“젠장, 끝이 없잖아!”
이를 악물며 하람은 조종간을 거칠게 꺾었다. 콰앙! 거대한 청룡의 팔이 옆에서 돌격해오는 크리살리스 제국의 생체병기를 박살 냈다. 금속과 유기체가 뒤섞인 끔찍한 파편들이 우주 공간에 흩뿌려졌다. 이 전쟁은 수백 년째 이어지고 있었다. 인간은 크리살리스를 흉악한 이종족 괴물이라 불렀고, 크리살리스는 인간을 문명을 파괴하는 야만족이라 칭했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없이, 오직 섬멸만이 존재했다.
하람은 잠시 숨을 고르며 전황을 살폈다. 아군 함대는 서서히 밀리는 형국이었다. 압도적인 수의 크리살리스 무리 앞에 청룡을 포함한 정예 파일럿들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건 거대한 크리살리스 모선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치 곤충 떼 같은 무수한 전투 유닛들이었다.
“후방 지원 요청! 이대로는…”
그의 통신이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그림자가 그의 청룡을 덮쳤다. 육중하고 끔찍한 형상. 크리살리스의 최상위 전투 유닛인 ‘블러드 오비터’였다. 놈의 기괴한 발톱이 청룡의 실드를 찢고 장갑을 노리는 순간, 하람은 몸이 얼어붙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피할 수 없다. 스티어링을 최대한 꺾어봤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그때였다.
쨍그랑!
마치 유리잔이 깨지는 듯한 고주파음과 함께, 블러드 오비터의 공격은 허공을 갈랐다. 하람의 눈에 들어온 것은 푸른색과 은색이 절묘하게 조화된, 기존의 크리살리스 기체와는 확연히 다른 아름다운 형상의 전투 유닛이었다. 나비 같기도 하고, 어딘가 새 같기도 한, 우아하면서도 날카로운 디자인. 그 유닛은 블러드 오비터의 측면을 순식간에 파고들어, 날개처럼 펼쳐진 장갑 끝에서 섬광을 내뿜었다.
키이이잉-!
블러드 오비터는 비명을 지르는 듯한 전자음을 내며 휘청거렸다.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공격의 흐름이 완전히 끊겼다. 하람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은빛 나비 같은 기체를 응시했다. 저건… ‘실버윙’이라 불리는 특수 유닛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채널 개방. 3번 프로토콜.]
하람의 콕핏 내부, 개인 통신 장치에서 작게 경고음이 울렸다. 그리고 곧이어, 노이즈 너머로 익숙하면서도 가슴 저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하람. 무사한가?
지독히도 차분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슬픔을 머금은 듯한 목소리였다. 하람의 손에 들린 조종간이 미세하게 떨렸다.
“세린… 너 대체 왜…!”
— 설명할 시간은 없다. 너의 위치가 너무 위험했다.
은빛 나비 유닛, 실버윙은 블러드 오비터가 전열을 정비하기도 전에 한 번 더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이번에는 훨씬 더 빠르고 정교한 움직임이었다. 오비터의 팔다리 중 하나가 정확히 절단되며 우주를 부유했다.
“미쳤어?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동족을 공격한 거야?”
하람의 목소리에는 격분과 걱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녀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크리살리스 제국에서 ‘실버윙’ 파일럿은 단순한 전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제국의 정수이자, 가장 신성한 존재들이었다. 그런 그녀가… 그들의 가장 강력한 병기를 상대로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그것도 ‘인간’을 구하기 위해.
— 이 전쟁은 아무 의미가 없어, 하람. 너와 나에게는…
세린의 목소리가 점점 더 희미해지는 듯했다. 그녀의 실버윙은 블러드 오비터의 후속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아군 전선의 뒤편으로 물러났다. 마치, 그저 길을 막고 있던 장애물을 제거한 것처럼.
“세린! 돌아와! 지금 당장 그만둬!”
그녀가 인간에게 공격받는 상황을 만든 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람은 패닉에 빠졌다. 그는 청룡의 스러스터를 최대로 올리며 그녀의 뒤를 쫓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전방을 가로막는 것은 또 다른 크리살리스 전투 유닛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명령을 받은 것처럼, 하람의 청룡에게 일제히 포화를 퍼부었다.
콰콰콰쾅!
다시금 폭발과 섬광에 휩싸인 하람은 이를 악물었다. 그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저 멀리, 아득히 보이는 세린의 실버윙이 선회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기체가 향하는 곳은, 크리살리스 모선이 아닌, 전장의 가장 혼란스러운 중앙이었다.
— 나는 나의 역할을 할 뿐이다, 하람. 너도 너의 역할을 해. 그리고… 살아남아.
마지막 말은 마치 간절한 속삭임처럼 들렸다. 하람의 콕핏 스크린에 세린의 실버윙 마커가 희미하게 점멸하더니, 이내 수많은 적성 유닛들 사이에 묻혀 사라졌다.
“세린!!!”
하람의 외침은 전장의 굉음에 파묻혔다. 하지만 그의 눈은 그녀가 사라진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왜 자신을 구해줬는지… 그리고 자신에게 ‘살아남으라’고 말했는지…
그들의 관계는 세상의 모든 상식을 거스르는 금기였다. 인간과 크리살리스. 서로를 증오하고 죽여야만 하는 숙적. 그들 사이에 피어난 감정은 달콤한 독과 같았다. 하지만 그 독은, 지금 이 순간, 하람의 심장을 미친 듯이 옥죄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는 청룡의 팔을 들어, 거대한 칼날 형태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전방을 가로막는 크리살리스 유닛들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그의 눈빛은 전보다 더욱 잔인하고 날카로워졌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세린을 위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저지른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그 어떤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이 전쟁이 그녀를 삼키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푸른 용은 다시금 포효했고, 은빛 나비는 전장의 심연으로 사라졌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된 비극의 서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