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탐험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제12장: 나락의 잔향**

검은 심연의 미궁. 그 이름에 걸맞게 모든 것은 끝없는 어둠과 차가운 침묵으로 뒤덮여 있었다. 끈적한 습기가 피부에 달라붙고, 발걸음마다 축축한 흙이 질척였다. 미궁의 가장 깊은 곳, 이른바 ‘심연의 핵’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강민준은 낡은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허리춤의 단검을 한 번 쓸어 올렸다. 핏줄이 불거진 손등이 그의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듯했다.

“저쪽에서 마나의 잔류가 감지됩니다.”

뒤따르던 서예린이 조용히 속삭였다. 그녀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한 푸른빛을 띠며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마법사 특유의 예민한 감각이 뿜어내는 기운이었다. 민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굳게 다문 입술은 아무것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단단히 잠겨 있었다.

발소리가 멈춘 곳에는 기괴한 형태로 뒤틀린 그림자 괴수들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녀석들은 그림자 속에서 태어나 그림자로 돌아가는 존재들.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잘 쓰러지지 않아 까다로운 상대로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남은 것은 마치 한 줌의 먼지처럼 형체도 없이 사라진 괴수들의 흔적뿐이었다.

민준은 한 괴수의 잔해에 시선을 고정했다. 단순히 파괴된 것이 아니라, 마치 내부에서부터 불태워진 것처럼 검게 변색된 부분들이 보였다. 이런 특이한 흔적을 남기는 스킬은 단 하나뿐이었다.

“……’염화(焰火)의 지배자’.” 민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김현우 놈의 파티가 맞군.”

예린은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민준의 곁에서 수많은 던전을 함께 헤쳐왔지만, 현우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그의 표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분노, 증오,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 그 모든 것이 그의 심장을 찢어놓는다는 것을.

“이 정도 속도라면… 심연의 핵 입구에서 마주칠 수도 있겠습니다.” 예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민준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죽은 괴수들의 잔해를 밟고 지나갔다. 그의 발걸음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오직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심연의 핵. 그곳은 1년 전, 그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곳이었다.

* * *

그날의 기억은 언제나 선명한 악몽처럼 민준의 뇌리를 맴돌았다.

`거대 석룡`의 비늘이 부서지는 소리, 터져 나오는 마나의 광휘, 그리고 눈앞에서 활짝 웃으며 그를 향해 손을 내밀던 김현우의 모습.

“민준아, 조금만 더! 우리가 해냈어!”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따뜻하고 믿음직스러웠다. 민준은 온몸의 마나를 쥐어짜 마지막 일격을 날린 뒤였다. 거대 석룡은 이제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현우의 눈빛이 변했다. 따뜻한 푸른빛은 순식간에 차갑고 잔혹한 녹색으로 물들었다.

“미안하다, 친구야.”

그 한마디와 함께 현우가 내민 손은, 민준을 끌어올리기는커녕 등 뒤에서 칼날이 되어 날아들었다. 날카로운 비수가 그의 심장을 꿰뚫는 대신, 그가 막 손에 넣으려던 던전의 ‘핵심석’을 노렸다. 현우의 스킬 ‘염화의 창’이 민준의 등 뒤에서 터져 나왔다. 온몸이 타오르는 듯한 고통 속에서 민준은 거대 석룡의 마지막 발악에 휘말려 심연의 가장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내렸다. 현우의 입가에 걸린 비릿한 미소를 마지막으로 보면서.

* * *

“크윽…!”

민준은 정신을 차렸다. 손에 든 단검을 꽉 쥐자 날카로운 손잡이가 살을 파고들었다. 그 고통이 그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젠장, 또 그 기억이다. 피와 고통, 그리고 배신으로 물든 기억.

“괜찮으세요?” 예린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녀는 민준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듯한 표정이었다.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의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불꽃은 오직 하나였다. 복수. 그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 그는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남았다기보다는 죽음의 문턱에서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심연의 나락에서 얻은 것은 고통뿐만이 아니었다. 그곳은 그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다. 복수를 위한 힘을.

그는 심연의 핵으로 통하는 마지막 통로 앞에 섰다. 거대한 철문이 앞을 막고 있었지만, 이미 부서져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현우의 파티가 먼저 들어갔다는 증거였다.

“이제 곧….”

민준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의 손에서 검은 마나가 피어오르며 단검을 감쌌다. ‘그림자 절단’. 민준이 나락에서 얻은 스킬 중 하나였다. 그림자처럼 적의 방어를 무력화하고, 영혼마저 꿰뚫는 치명적인 일격.

철문 너머에서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우의 파티원들인 모양이었다. 그들의 대화는 마치 불협화음처럼 민준의 귀를 긁었다.

“이야, 이번 심연의 핵은 보상이 제대로인데? 김현우 길드장님 덕분이야!”
“그러게! ‘신념의 파티’가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었겠지.”
“어떤 멍청이처럼 어둠 속에서 죽어나간 놈들과는 차원이 다르지, 하하하!”

그 조롱 섞인 웃음소리가 민준의 뇌리를 강타했다. 현우는 민준의 죽음을 이용해 자신의 명성을 쌓고, ‘신념의 파티’라는 위선적인 이름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었다. 속이 뒤틀리는 역겨움이 치밀어 올랐다.

“가자.” 민준의 목소리가 으르렁거렸다.

그가 철문을 밀고 들어서자, 안쪽의 소음이 일순간 정지했다. 심연의 핵은 넓은 원형의 공간으로, 중앙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거대한 수정이 박혀 있었다. 그 주변에는 현우를 포함한 다섯 명의 파티원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탐욕스러운 빛이 가득했다.

가장 먼저 민준을 발견한 것은 현우였다. 그의 얼굴에서 여유로운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신 경악과 함께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스쳐 지나갔다.

“강… 강민준?!” 현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마치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네가 어떻게… 살아있을 리가 없어!”

민준은 현우를 향해 느릿하게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마다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 예린은 민준의 뒤에 서서 조용히 마나를 끌어올렸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였다.

“살아있을 리가 없다니. 네가 나를 죽였다고 확신했나 보군, 친구야.” 민준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아니, 김현우. 네놈이 나를 죽였다고 떠벌리고 다녔겠지. 영웅담처럼.”

현우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헛소리야! 거대 석룡이 폭주해서 네가…!”

“거짓말 마라.” 민준의 눈빛이 섬뜩하게 번뜩였다. “네가 내 등에 비수를 꽂았을 때, 나는 네 눈을 똑똑히 봤다. 그 지독하게 비릿한 미소까지도.”

현우의 파티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길드장 현우가 과거의 동료를 배신했다는 말은 그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길드장님, 저 자가 뭐라고…!” 한 파티원이 나서려 하자, 현우가 손을 들어 막았다. 그의 얼굴은 분노와 함께 미세한 떨림을 보였다.

“하! 강민준. 죽은 줄 알았더니 기어코 살아돌아왔군. 그래, 살아서 여기까지 온 건 칭찬해 주마. 하지만 아직도 주제 파악을 못 하는군. 넌 나약해. 늘 내 뒤에 숨어다니던 겁쟁이일 뿐이었어!” 현우는 애써 침착한 척하며 비웃었다. “그날도 그랬지. 네가 그 핵을 가질 자격은 없었어. 애초에 내 것이었어야 할 힘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민준의 심장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갔다. 저 오만함, 저 탐욕.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맞아. 그때의 나는 나약했지. 그래서 네놈에게 당했고.” 민준은 천천히 단검을 뽑아 들었다. 검은 마나가 칼날을 타고 솟아올라 공간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네놈이 나락으로 던져버린 덕분에, 나는 비로소 진정한 어둠의 힘을 얻었다.”

그의 발밑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솟구쳐 오르더니,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현우를 향해 뻗어 나갔다. ‘어둠의 속박’. 현우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염화의 지배자’ 스킬을 발동하며 불꽃의 방패를 만들어 그림자를 태워버렸다.

“꼴랑 그딴 하급 스킬로 나에게 덤비려 했느냐?” 현우가 조롱하듯 웃었다. 그의 손에서 맹렬한 불꽃이 타올랐다.

하지만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어둠의 속박’은 단지 미끼였을 뿐이었다. 민준의 오른손에 든 단검에서 검은 마나가 폭발하듯 분출했다. 주변의 모든 빛을 삼키는 듯한 칠흑 같은 어둠이 칼날에 응축되었다. 공간 자체가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강민준… 넌 도대체… 뭘 얻은 거냐?” 현우의 얼굴에서 조롱이 사라지고, 진정한 공포가 피어났다.

“네놈의 목숨을 앗아갈 힘.” 민준의 목소리가 심연의 핵을 울렸다.

그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손에 든 단검을 현우에게로 겨눌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존재가 홀연히 사라졌다. 그림자가 흐릿해지는 속도와 거의 같았다.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본능적인 위협을 느낀 것이다.

‘젠장, 어디로…!’

현우가 눈을 크게 뜨며 주위를 살피는 찰나, 그의 등 뒤에서 싸늘한 그림자가 솟아올랐다. 민준의 단검이 현우의 심장을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그림자 절단’의 완벽한 일격. 현우는 본능적으로 온몸의 마나를 끌어올려 방어했지만, 그림자 칼날은 그의 방어를 마치 허상처럼 꿰뚫고 들어왔다.

쉬이이익-!

단검이 현우의 갑옷을 스치는 소리가 찢어질 듯 날카로웠다. 심장을 직접 꿰뚫지는 못했지만, 왼쪽 어깨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콰직! 뼈가 부러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현우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크아악!” 현우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그의 어깨에서는 검붉은 피가 솟구쳐 나왔다.

주변의 파티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길드장 현우가, 불과 한 합에 이렇게 무력하게 당하다니.

민준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현우를 내려다봤다. 그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이게… 네놈이 나락에 버린 존재가 얻은 힘이다.” 민준이 읊조렸다. “이제부터는 네놈이 느꼈던 절망과 공포를, 내가 그대로 돌려주겠다. 하나도 빠짐없이.”

검은 마나가 민준의 주변을 맴돌며 섬뜩한 기운을 내뿜었다. 현우는 피 흘리는 어깨를 부여잡고 몸을 떨었다. 그의 얼굴에는 이제 오만함 대신 순수한 공포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깨달았다. 강민준은 더 이상 과거의 나약한 친구가 아니었다.

그는 나락에서 돌아온, 지옥의 그림자였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이제 자신을 삼키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