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연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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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검은 정적 속으로**
**컷 1**
(시커먼 우주. 저 멀리 희미한 은하의 띠가 뿌옇게 펼쳐져 있다. 그 광활한 어둠 속을 한 척의 우주선이 외로운 점처럼 유영한다. 우주선 표면에는 오래된 탐사의 흔적처럼 긁힌 자국과 보수 패치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조명은 최소한으로만 켜져 있다.)
**나레이션 (함장 이선):**
인류는 항상 ‘그 너머’를 갈망했다. 익숙한 푸른 행성의 중력을 벗어나, 태양계의 경계를 넘어…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누구도 닿지 못했던 은하의 변방을 헤매고 있다. 우리의 우주선 ‘고래호’는, 그 거대한 심연 속을 유영하는 고독한 존재였다.
**컷 2**
(고래호의 함교. 전면의 투명 스크린은 끝없는 우주 공간을 보여준다. 함장 ‘이선’은 낡았지만 편안해 보이는 의자에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눈빛은 피로하면서도 깊은 통찰력을 담고 있다. 옆에는 항해사 ‘최민’이 조이스틱 같은 조종간을 만지며 하품을 참는 표정이다.)
**최민:** (하품하며) 함장님, 오늘도 특이사항은 없네요. 광자 엔진은 안정적으로 작동 중이고, 생명 유지 장치도 완벽합니다. 이런 지루한 일상이 더 계속된다면, 다음 휴가 때는 정말 행성 중력이라는 걸 느껴보고 싶어질 것 같아요.
**이선:** (나지막이) 지루하다는 건, 곧 안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민. 이 심연 속에서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지.
**컷 3**
(고래호 내부 통로. 과학관 ‘박지혜’가 양손에 데이터 패드를 들고 바쁘게 걸어가고 있다. 그녀의 머리는 제멋대로 헝클어져 있고, 안경은 코끝에 걸려 위태로워 보인다. 반대편에서 기관사 ‘김건’이 큼직한 공구함을 들고 묵묵히 걸어오다 그녀를 보고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김건의 얼굴에는 항상 무표정하다.)
**박지혜:** (데이터 패드를 휙휙 넘기며) 젠장, 또 미세 중력자 파동 교란이… 아, 김건 씨. 4번 구역 산소 포화도 센서 좀 봐주실 수 있나요? 미세하게 수치가 떨어지고 있는데, 시스템에는 아무런 경고도 안 뜨네요.
**김건:** (낮게 읊조리며) 지금 3번 구역 격벽 점검 중입니다. 끝나는 대로 가겠습니다.
**박지혜:** 네, 부탁해요! (다시 데이터 패드에 시선을 고정하고 총총히 사라진다.)
**컷 4**
(함교. 이선은 눈을 감았다가 뜬다. 최민은 커피 머신에서 추출된 뜨거운 음료를 홀짝이고 있다.)
**최민:** 하, 좋다. 함장님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아카시아향 시럽을 넣은…
**이선:** (손을 들어 제지하며) 됐다.
**컷 5**
(갑자기 함교 전체에 경고음이 울린다. ‘삐빅-! 삐빅-!’ 투명 스크린에 붉은색 경고 메시지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다.)
**최민:** (깜짝 놀라 커피잔을 떨어뜨릴 뻔한다) 으악! 뭐야?!
**이선:** (눈을 번쩍 뜨며) 무슨 일인가?!
**컷 6**
(최민이 다급하게 주조종석으로 달려가 데이터를 확인한다. 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최민:** (더듬거리며) 함장님, 미확인 에너지 신호입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해요! 저희 항로에 진입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컷 7**
(고래호 내부 과학 실험실. 박지혜가 데이터 패드를 떨어뜨린 채 경고음을 들으며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박지혜:** 말도 안 돼… 이런 곳에?
**컷 8**
(함교. 이선이 스크린을 노려본다.)
**이선:** 자세한 정보는? 어떤 종류의 에너지인가?
**최민:** 알 수 없습니다! 기존 데이터와 일치하는 부분이 전혀 없어요! 마치… 우주 자체에서 방출되는 노이즈 같기도 하고, 동시에… 극도로 정교한 인공 신호 같기도 합니다!
**컷 9**
(스캔 화면 클로즈업. 알 수 없는 기호들과 숫자들이 빠르게 변하고, 중앙에는 강렬한 붉은색 점이 점멸한다. 그 점은 마치 심장을 뛰는 것처럼 불규칙적으로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한다.)
**박지혜 (통신):** (흥분한 목소리) 함장님! 제가 잡은 신호와 일치합니다! 이건… 이건 정말 전례 없는 케이스예요! 감마선 파동도 아니고, 중력자 붕괴도 아니고, 그 어떤 알려진 에너지 형태와도 달라요!
**이선:** 위치는?
**박지혜 (통신):** 현재 고래호에서 5천 킬로미터, 예상 충돌까지 12분!
**컷 10**
(이선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의 표정은 경계심으로 가득하다. 최민은 불안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
**이선:** 회피 기동 준비해. 그리고 비상 방어막 활성화, 모든 구역에 경계 태세 발령. 김건은?
**김건 (통신):** (낮고 침착한 목소리) 엔진실에서 대기 중입니다. 언제든 출력 증폭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선:** 좋다.
**컷 11**
(고래호가 방향을 틀기 시작한다. 거대한 엔진 노즐에서 푸른빛 섬광이 뿜어져 나오며 기체가 천천히 회전한다. 우주선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최민:** 함장님, 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신호가 저희 경로를 따라오는 것 같아요!
**컷 12**
(이선이 굳은 얼굴로 스크린을 바라본다. 붉은 점은 피할수록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이선:** 이 넓은 우주에서…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끈질기군.
**박지혜 (통신):** (점점 더 흥분하며) 함장님! 신호의 근원지가 드디어 시각적으로 포착됩니다!
**컷 13**
(고래호의 전면 스크린. 처음에는 점처럼 보이던 것이 빠르게 확대된다. 처음에는 그저 거대한 암흑 덩어리처럼 보였던 것이, 점차 그 형태를 드러낸다.)
**최민:** 저게… 저게 뭡니까?
**컷 14**
(스크린 클로즈업. 그것은 완벽하게 검고, 빛을 전혀 반사하지 않았다. 모든 우주의 빛을 집어삼키는 듯한 절대적인 어둠. 형태는 기하학적이었다. 깎아놓은 듯 완벽한 정육면체. 표면은 매끄럽고, 어떤 이음새나 무늬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 거대한 크기는 마치 소행성 하나를 통째로 깎아놓은 듯했다.)
**박지혜 (통신):** (거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 말도 안 돼… 중력 스캔 결과, 밀도는 상상 이상입니다! 표면 온도는 절대 영도에 가깝지만, 내부에서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이게 대체…
**이선:** (나지막이) 정체불명의 유물인가…
**컷 15**
(최민이 침을 꿀꺽 삼킨다. 그의 손이 조종간 위에서 미세하게 떨린다.)
**최민:** 함장님, 계속 회피 기동을 할까요?
**이선:** (잠시 침묵) 아니다. 속도를 줄여. 스캔 프로브 발사 준비. 우리는 저것을 조사한다.
**최민:** 예?! 하지만 함장님, 너무 위험합니다! 저것은…
**이선:** (단호하게) 우연이 아니다, 최민. 저것은 우리가 아니었다면 이 우주선에 발견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존재다. 우리는 ‘고래호’의 임무를 완수해야 해. 미지의 것을 밝히는 것.
**컷 16**
(고래호의 하단 해치에서 작은 무인 탐사선(프로브)이 발사된다. 프로브는 푸른빛 추진력을 내뿜으며 정체불명의 검은 정육면체를 향해 날아간다.)
**컷 17**
(함교 스크린. 프로브가 전송하는 실시간 영상이 뜬다. 검은 정육면체는 마치 거대한 우주의 무덤처럼 그 자리에 묵묵히 떠 있다. 프로브가 서서히 접근한다.)
**박지혜 (통신):** 프로브가 접근 중입니다! 표면 분석 시작!
**컷 18**
(프로브가 검은 정육면체의 표면에 닿기 직전, 정육면체의 한 면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는 듯하다. 균열은 뱀처럼 꿈틀거리며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희미한 보랏빛 빛줄기가 새어 나온다.)
**최민:** 헉! 움직였습니다!
**이선:** (눈을 가늘게 뜨며) 저게… 저게 문인가?
**컷 19**
(프로브가 그 보랏빛 틈새로 빨려 들어간다. 스크린은 갑자기 노이즈로 가득 차더니, 이내 완전히 꺼져버린다. ‘지지직-‘ 하는 노이즈 음만 남는다.)
**박지혜 (통신):** (경악하며) 프로브 신호 소실! 내부로… 내부로 들어갔어요!
**컷 20**
(고래호 함교 전체의 조명이 깜빡거린다. ‘웅-‘ 하는 알 수 없는 저주파 진동이 우주선 전체를 울린다. 승무원들이 불안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김건 (통신):** (거친 숨소리) 함장님! 엔진 출력이 불안정합니다! 비상 동력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이선:** (차가운 땀을 흘리며) 대체… 저 안에 뭐가 있는 거지…?
**컷 21**
(검은 정육면체. 보랏빛 틈새가 다시 닫히더니, 완벽하게 검었던 표면에 희미한 푸른색 문양이 새겨지기 시작한다. 마치 심장 박동처럼 일정한 리듬으로 빛났다 꺼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 문양이 새겨지는 순간, 고래호 전체의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정지한다.)
**컷 22**
(고래호 내부 통로. 비상등만 깜빡이는 가운데, 최민과 박지혜가 어둠 속에서 마주 보고 있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극도의 공포와 혼란이 서려 있다.)
**최민:** (떨리는 목소리) 함장님…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습니다…
**박지혜:** (눈을 크게 뜨고 허공을 응시한다) 저건… 저건 단순한 유물이 아니에요… 우리를… 우리를…
**컷 23**
(고래호 함교. 이선은 의자에 힘없이 기대앉아 있다. 전면 스크린은 완전히 암전된 상태. 그의 눈동자에, 검은 정육면체의 푸른 문양이 마치 잔상처럼 비친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서, 알 수 없는 언어로 된 속삭임이 메아리치는 듯하다.)
**이선:** (괴로운 표정으로 이마를 짚으며) 젠장…
**컷 24**
(클로즈업: 이선의 눈. 그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섬뜩한 푸른빛을 띠더니, 이내 원래 색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더 이상 냉철함이 아닌, 미지의 존재에게 잠식된 듯한 공허함으로 가득하다.)
**나레이션 (함장 이선):**
그것은 단순히 발견된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그것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거대한 심연 속에서, 우리는 가장 위험한 존재와 마주하고 말았다.
**컷 25**
(정지된 고래호와 거대한 검은 정육면체가 대치하고 있는 장면. 정육면체의 푸른 문양은 계속해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고래호는 마치 먹이 사슬의 가장 아래에 있는 것처럼 무력해 보인다. 우주 전체는 다시금 섬뜩한 정적에 휩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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