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눈동자**
천장 없는 백화점의 뼈대 사이로 스며든 회색빛 햇살은 먼지구름을 헤치며 흐릿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진우는 등 뒤로 바싹 붙어 걷는 유진의 숨소리를 들으며 부서진 에스컬레이터를 조심스럽게 올랐다. 철골이 삐걱이는 소리가 폐허의 정적을 찢었고, 그때마다 진우의 신경은 칼날처럼 곤두섰다. 지난 3년간 그가 살아남은 유일한 이유였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경계심.
“여기 아무것도 없어, 오빠. 시간 낭비인 것 같아.” 유진의 목소리는 갈라진 콘크리트 바닥을 타고 울렸지만, 그 속에 배인 지친 기색은 감출 수 없었다.
진우는 대답 대신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멈추라는 신호였다. 2층 아동복 코너는 진열대가 통째로 무너져 내려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곰 인형의 찢어진 눈동자가 텅 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때 웃음소리로 가득했을 공간은 이제 공포가 숨 쉬는 곳으로 변해 있었다.
“다른 흔적이 느껴져.” 진우는 속삭였다. 그의 눈은 부서진 유리와 널브러진 옷가지 사이를 바쁘게 훑었다. “얼마 안 됐어. 물건을 뒤진 흔적이 분명해.”
“정말? 난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유진은 주위를 둘러보며 불안하게 물었다. 그녀의 손은 어느새 허리춤에 찬 작은 단검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진우는 유진의 어깨를 툭 쳤다. “그게 문제야, 유진. 느껴야 해. 이젠 본능이 곧 생존이야.”
그는 깨진 유리 조각을 밟지 않으려 발걸음을 조심하며 더 깊숙이 들어갔다. 찢어진 옷더미, 뒤집힌 마네킹, 모든 것이 뒤섞인 난장판이었다. 하지만 진우의 눈에는 미세한 틈새가 보였다. 누군가 빠르게 지나간 듯한 희미한 발자국. 굳은 흙먼지 위로 새로 생긴 긁힌 자국.
갑자기 진우의 발이 멈췄다. 그의 시선은 바닥에 놓인, 평범해 보이는 찢어진 인형 옷에 고정되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놓여 있었기에 오히려 수상했다. 진우는 몸을 낮춰 인형 옷을 향해 손을 뻗는 척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젠장.” 진우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경고음이 서렸다.
“왜, 왜 그래?” 유진이 진우의 등 뒤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
진우는 인형 옷 바로 옆의 낡은 나무 상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상자 뚜껑은 비스듬히 열려 있었고, 그 안에는 곰팡이가 피었지만 아직 먹을 만해 보이는 통조림 몇 개가 보였다. 그리고 그 통조림들 사이로, 아주 얇은 낚싯줄 같은 것이 거의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었다. 한쪽은 상자 안의 통조림에, 다른 한쪽은 주변의 무너진 선반에 묶여 있었다.
“덧이야.” 진우는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시선은 통조림을 넘어 주변의 어둠을 훑었다. “이런 낡은 백화점에, 이만큼 잘 숨겨진 덧이라니. 꽤나 영리한 녀석들이군.”
유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럼 우리가 지금… 누군가의 영역에 들어온 거야?”
“영역이라기보다, 사냥터에 들어온 거지.” 진우는 혀를 찼다. “통조림은 미끼고, 저 줄에 걸리면 아마 위에서 뭐가 떨어지거나… 아니면 더 고약한 게 터질 거야. 이건 단순한 경고가 아니야. 이건 먹이를 잡으려는 의도라고.”
진우는 허리에서 조용히 작은 나이프를 꺼냈다. 손목의 스냅으로 낚싯줄을 정확히 끊어냈다. ‘딸깍’ 하는 작은 소리가 폐허 속에서 엄청나게 크게 들렸다. 통조림 상자는 아무 일 없이 뚜껑이 더 열렸고, 그 안의 미끼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후우…” 유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 한숨은 곧 공포로 변했다. “그럼 저걸 설치한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거야? 우리를 보고 있었던 거 아니야?”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주변의 모든 그림자를 스캔하고 있었다. 덧을 설치한 방식이 너무나도 능숙했다. 함부로 건드리면 죽을 수도 있는 종류의 덧이었다. 그리고 그 덧이 설치된 곳이, 이 넓은 백화점의 가장 은밀한 코너가 아닌,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통로 근처였다는 점이 섬뜩했다.
그것은 경고이자, 도전이자, 유인책이었다.
“우리 여기 너무 오래 있었어.” 진우는 속삭였다. 그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이 건물 전체가 거대한 함정처럼 느껴졌다. “돌아가자. 조용히, 최대한 조용히.”
그는 유진의 손목을 잡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 했다. 그때였다. 저 멀리, 무너진 천장 사이로 보이는 어두운 통로에서 아주 희미한,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소리가 들려왔다.
진우는 본능적으로 유진을 끌어당겨 부서진 진열대 뒤로 몸을 숨겼다. 먼지 섞인 콘크리트 바닥에 엎드리자, 코끝으로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저게 뭐야, 오빠?” 유진은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몰라. 하지만…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건 확실해.” 진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어둠 속을 응시했다. 그는 감각을 곤두세웠다. 희미한 긁힘 소리, 먼지를 밟는 듯한 둔탁한 소리, 그리고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감정을 알 수 없는 날카로운 웃음소리 같은 것까지.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그 순간, 진우의 눈에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아주 작은 빛이 포착되었다. 섬광탄처럼 강렬한 빛이 아니라, 마치 작은 동물의 눈동자처럼 어둠 속에서 잠시 반사되었다가 사라지는 빛이었다.
차가운 전율이 진우의 등골을 타고 흘렀다.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미끼에 걸려들기를, 혹은 미끼를 낚아채 도망치려 발버둥 치기를.
“뛰어.” 진우는 유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제 도망쳐야 해. 최대한 빨리. 밖으로!”
그는 유진의 손을 잡고, 폐허가 된 백화점의 미로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는 없었지만, 진우는 알고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여전히 어둠 속에서 우리를 쫓고 있을 거라는 것을. 그들의 웃음소리가 우리의 탈출을 비웃고 있을 거라는 것을.
어둠은 언제나 깊었고, 그 심연 속에는 늘 예상치 못한 눈동자가 숨어 있었다.
우리는 그저, 그들의 사냥감일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