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회색빛 하늘 아래, 무너진 고층 건물들의 앙상한 뼈대가 삐죽이 솟아 있었다. 바람이 찢어진 유리창을 스쳐 지나며 마치 유령의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토해냈다. 대재앙 이후 모든 것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지독한 고독이었다. 강세준은 익숙한 침묵 속에서 바싹 마른 입술을 씹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발밑에는 한때 번화했을 아스팔트가 갈라지고 들려 지각의 주름처럼 울퉁불퉁하게 솟아 있었다.

“또 허탕인가.”

세준은 낮게 중얼거렸다. 보급 기지에서 받은 탐색 지도에는 이 구역이 ‘고가치 자원 가능성 희박’이라고 표기되어 있었지만, 며칠 전 그의 동료, 윤이 이 근처에서 정체불명의 금속 조각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평범한 잔해물과는 다른, 미묘하게 빛을 머금은 그것은 세준의 직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에게 직감은 생존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등 뒤에 멘 낡은 배낭은 텅 비어 있었고, 허리춤에 찬 탐색용 나이프와 낡은 소총만이 유일한 동료였다. 폐허는 언제나 위험으로 가득했지만, 자원이 고갈되어 가는 기지 생활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수준이었다. 식량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연료는 제한적이었으며, 무엇보다 모두의 희망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 그는 뭔가 특출난 것을 찾아야만 했다. 기지로 돌아갔을 때, 빈손으로 돌아온 탐색대원을 맞이하는 싸늘한 시선에 직면하고 싶지 않았다.

세준은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타고 조심스럽게 올랐다. 그의 눈은 훈련받은 매처럼 예리하게 주위를 스캔했다. 녹슨 철근, 콘크리트 조각,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썩어버린 생활 흔적들. 하지만 윤이 말했던 ‘이상한 금속’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햇살 한 점 없는 흐린 날씨 탓에 주위는 더욱 음침했다.

그때였다. 낡은 고층 건물들 사이, 마치 땅 자체가 꺼진 듯 깊게 파인 분지형 지형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지도는 이곳을 단순히 ‘미확인 침하 지형’이라고만 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준의 눈에는 그 침하 지형의 바닥에 무언가 인위적인 구조물이 희미하게 보이는 듯했다. 다른 폐허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 그것은 마치… 숨겨져 있던 무언가가 고개를 내미는 듯한 인상이었다.

“이런 곳에…?”

세준은 조심스럽게 경사면을 따라 내려갔다. 지표는 불안정했고, 작은 돌멩이들이 굴러 내려가며 밑바닥에서 탁한 먼지를 일으켰다. 점차 가까워질수록 구조물의 윤곽이 더욱 선명해졌다. 거대한 사각형 형태의 입구. 그 입구는 검은색의, 매끄럽게 다듬어진 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주변의 모든 건물이 부서지고 삭아버린 것과 달리, 이 구조물은 놀랍도록 온전했다. 수천 년의 세월을 견딘 듯한 묵직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입구 위에는 알아볼 수 없는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뾰족하면서도 둥근 곡선이 섞인 기이한 형태의 문양들은 어떤 알려진 언어와도 닮지 않았다. 그것은 문자가 아니라, 어떤 거대한 생명체의 뼈대를 형상화한 그림 같기도 했다. 세준은 손가락으로 거친 돌 표면을 쓸어보았다. 차가운 촉감, 그리고 기묘하게 진동하는 듯한 기운.

갑자기, 그의 통신 장비에서 짧은 노이즈음이 들렸다.
“세준? 세준, 들리나? 자원 탐색 현황은?”
기지 사령관의 목소리였다.

세준은 잠시 망설였다. 이 미지의 구조물을 보고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아니면, 자신이 직접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야 할까? 그의 직감은 이 발견이 평범한 자원보다 훨씬 거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속삭이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폐허가 아니었다. 잊혀진 고대 문명의 유적, 혹은 대재앙 이전의 어떤 비밀을 품고 있는 장소일지도 몰랐다.

“아직 특별한 건 없습니다, 사령관님. 좀 더 탐색해 보겠습니다.”
세준은 대답하고는 통신을 끊었다. 미안했다. 하지만 이 이끌림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는 소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가방에서 손전등을 꺼내 들었다. 입구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마치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심해의 구멍 같았다. 오랜 세월 동안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았을 것만 같은, 눅눅하고 축축한 공기가 그의 폐를 채웠다. 먼지와 곰팡이 냄새, 그리고 아주 미약하게, 금속성 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세준은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럽게 거대한 입구 안으로 들어섰다. 손전등 불빛이 희미하게 내부를 밝혔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거대한 통로가 끝없이 아래로 이어지고 있었다. 벽면은 외부와 같은 검은 돌로 마감되어 있었고, 일정 간격으로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수십 년간 잊혀진 땅속에서,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통로의 끝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있었다. 그는 발밑의 바닥을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오랜 세월 동안 쌓인 먼지층 아래, 놀랍도록 매끄러운 표면이 손끝에 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세준은 발밑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진동을 감지했다. 마치 잠든 거인이 깊은 숨을 쉬는 듯한, 묵직하고 규칙적인 울림이었다.

“젠장… 이건 또 뭐야.”

그의 심장이 쿵, 쿵, 하고 크게 울렸다.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었다. 살아있는, 혹은 아직 죽지 않은 무언가가 이 거대한 지하 미궁 속에서 숨 쉬고 있었다.
세준은 소총을 단단히 고쳐 쥐었다. 그 미지의 심장이 향하는 곳, 어둠 속으로 한 발짝 더 내딛었다. 등 뒤로 열린 입구에서 들어오던 바깥세상의 희미한 빛조차 사라졌다. 이제 그를 비추는 것은 오직 손전등의 좁은 불빛과, 미지의 지하 유적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안한 기운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저 깊은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쉬이이익…’
마치 수억 마리 뱀이 한꺼번에 꿈틀거리는 듯한 소름 끼치는 마찰음이었다.
세준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알 수 있었다. 이 잊혀진 지하 세계는 그저 조용히 잠들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홀로, 깨어나기 시작한 고대의 비밀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