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엽 감긴 악몽
## 일곱 번째 째깍임
밤은 이미 새벽의 초입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텁텁한 입안과 뻑뻑한 눈꺼풀이 민준의 고단함을 웅변하고 있었다. 며칠째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그의 아파트, 아니, 그의 작업실 겸 거주 공간은 온통 황동과 구리, 닳아 해진 가죽과 톱니바퀴의 향기로 가득했다. 밖은 여전히 거대한 증기 기관처럼 도시의 심장이 고동치고 있었다. 창밖으로 언뜻 보이는 고층 건물들은 강철과 유리, 그리고 거대한 증기 파이프라인으로 얽혀 거대한 기계의 몸통처럼 솟아 있었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비행선들이 희미한 엔진 소리를 내며 밤하늘을 가르곤 했다.
민준은 거실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증기식 자동 서기관, ‘오토마톤 루시우스’가 멈춰 서 있었다. 루시우스는 그저 정교한 인형이 아니었다. 수천 개의 톱니바퀴와 미세한 증기 압력 조절장치로 이루어진, 살아있는 듯 글씨를 쓸 수 있는 그의 역작이었다. 민준은 지난 며칠간 이 루시우스를 밤낮으로 감시했다.
“젠장…”
낮게 읊조린 욕설은 입안에서 맴돌다 사라졌다. 찻잔 속의 식어버린 커피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불과 한 시간 전, 그는 루시우스가 제멋대로 잉크를 머금고 깃펜을 움직이는 것을 목격했다. 아무도 루시우스의 태엽을 감거나 증기 압력을 조절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루시우스는 마치 누군가의 명령이라도 받은 듯, 텅 빈 양피지 위에 알 수 없는 기호들을 휘갈겼다. 희미한 긁적임은 순간적인 착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분명히 루시우스의 황동 손가락은 움직였다.
그의 눈은 이미 혈관이 터져 붉게 물들어 있었다. 지난 두 달 동안이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니었다. 작업실에 놓아둔 렌치가 저절로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벽시계의 째깍거림이 갑자기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현상. 민준은 피곤해서 잘못 들은 것이거나, 부품이 오래되어 생긴 마찰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빈도와 강도는 점차 심해졌다. 작업 중인 증기 엔진의 압력계 바늘이 아무 이유 없이 춤을 추고, 완성된 시계태엽 장치들이 한밤중에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의 침대 맡에 놓인 증기식 스탠드 램프는 스스로 스위치를 돌려 켜지거나 꺼지기를 반복했다. 그는 모든 장치의 배선을 점검하고, 증기 라인을 확인했다.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완벽했다. 아니, 완벽했어야 했다.
갑자기, 테이블 위 루시우스의 옆에 놓인 은잔이 스르륵 미끄러졌다. 아주 천천히,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밀어내는 것처럼. 민준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눈을 깜빡이는 순간, 은잔은 테이블 끝에 매달려 위태롭게 흔들렸다.
“또 시작이군.”
민준은 자신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두려움보다 지긋지긋함이 앞섰다. 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려는 듯,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테이블 아래에 놓인 증기식 기록기에 닿았다. 어제부터 이 모든 현상을 녹음하고 녹화하기 위해 설치해 둔 장치였다. 기록기의 붉은색 램프가 깜빡이고 있었다. 작동 중이었다.
은잔은 결국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테이블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던 낡은 태엽식 회중시계가 ‘딸깍’ 소리를 내며 뒤집혔다. 그리고 시계의 뚜껑이 열리면서, 희미하게 ‘째깍, 째깍’ 소리가 들려왔다. 시계는 멈춰 있던 것이었다. 민준이 며칠 전부터 수리하려 했지만, 고장 난 태엽 때문에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이건… 안 돼.”
민준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그의 논리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멈춰 있던 시계가 혼자 움직이다니. 그의 이성적인 사고회로는 이 현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작업실 건너편, 벽에 걸린 거대한 증기식 기압계의 바늘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보통은 묵직하게 고정되어 있어야 할 바늘이 마치 거대한 압력이 몰아치는 것처럼 좌우로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벽에 내장된 증기 파이프에서 ‘쉬이익-‘ 하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민준의 아파트에는 중앙 증기 난방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이 파이프에서 이런 소음이 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마치 숨을 쉬는 듯한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 사이로,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 긁히는 듯한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쯧, 츠으으으윽… 츠으으윽…’
마치 낡은 톱니바퀴가 마모되어 헛도는 소리 같기도 했고, 거친 숨소리 같기도 했다. 민준은 몸을 굳혔다. 그의 눈동자가 방 안을 훑었다. 기압계의 바늘은 여전히 격렬하게 움직였다. 증기 소리는 점점 커졌다.
“거기… 누구 있어?”
민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거칠었다. 침묵. 아니, 침묵이 아니었다. 증기 소리와 알 수 없는 긁힘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쉬이이익… 츠으으윽… 째깍… 째깍…’
그때, 루시우스가 놓인 테이블 위에서, 깃펜이 저절로 들려졌다. 보이지 않는 손에 붙잡힌 듯, 깃펜은 허공에 잠시 멈춰 있었다. 민준의 시선이 그곳에 고정되었다. 깃펜은 천천히, 종이 위로 내려앉았다.
사각, 사각.
이번에는 희미한 긁적임이 아니었다. 또렷하고 선명하게, 글자가 새겨졌다.
민준은 숨조차 쉬지 못하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양피지 위에는 한 글자, 한 글자씩 또렷하게 글자가 새겨지고 있었다.
**’너의… 심장이…’**
거기까지 읽었을 때, 작업실 건너편에 놓인 그의 대형 증기식 자동 시계탑 모형에서 섬뜩한 기계음이 울렸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포효하는 듯한 굉음이었다. 이 시계탑 모형은 그의 가장 자랑스러운 작품 중 하나로, 수십 개의 태엽과 증기 압력으로 정교하게 작동하는 복잡한 기계였다. 평소에는 정각이 되면 웅장한 종소리를 내는 것 외에는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시계탑 모형의 거대한 황동 추들이 제멋대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묵직한 추들이 쿵, 쿵,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마치 망치질을 하는 것처럼 격렬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 사이로, 수많은 톱니바퀴들이 미친 듯이 돌아가는 ‘촤르르르륵!’ 하는 쇠붙이 소리가 공간을 지배했다.
민준은 몸을 돌려 시계탑 모형을 응시했다. 시계탑의 정교한 기계장치들이 모두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거대한 태엽이 풀리고 감기는 소리, 증기 압력이 내부에서 폭주하는 듯한 ‘쉬이이익’ 하는 고음.
그리고 그 모든 소음 속에서, 루시우스가 다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더 빠르고, 더 광기에 찬 움직임이었다.
**’너의… 심장이… 멈출… 때까지…’**
민준의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더 이상 단순한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아니었다. 분명한 경고, 혹은 위협이었다.
‘콰앙!’
시계탑 모형의 가장 큰 황동 추 하나가 격렬하게 움직이다가, 본체에서 떨어져 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묵직한 황동 추는 바닥의 나무 마루를 찍어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 순간, 민준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
그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루시우스는 깃펜을 들고, 더 이상 글씨를 쓰지 않고 있었다. 대신, 그 정교한 황동 얼굴의 눈 부분에서, 희미한 증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그 안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눈동자라고 할 수 있는 정교한 시계태엽 부품이, 민준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들렸다.
민준의 심장이 쿵, 하고 크게 울리는 순간, 루시우스의 입 모양을 흉내 낸 황동 틈새에서, 섬뜩하게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째깍… 째깍… 시작됐다…”
민준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의 심장은 마치 고장 난 태엽처럼 미친 듯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 모든 기괴한 현상의 중심에, 그의 역작 루시우스가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루시우스는 그저 도구일 뿐인가.
그때, 거실의 모든 증기식 램프가 일제히 깜빡였다. 그리고 이내, 모든 빛이 꺼졌다.
세상은 암흑으로 가라앉았다. 오직 시계탑 모형의 거친 기계음과 증기 소리, 그리고 루시우스의 눈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증기만이 그 공간에 존재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루시우스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시간은… 흐른다…”
민준은 숨조차 쉬지 못했다. 그의 심장이 터질 듯이 고동쳤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분명히. 그리고 그 ‘무엇’은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심장 박동까지도.
어둠 속에서, 그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을 할 수 있었다.
이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