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 창밖은 폭우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사정없이 때렸고, 그 소리는 낡은 아파트의 싸늘한 공기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한강민은 차가운 커피잔을 든 채 희미한 스탠드 불빛 아래 앉아 있었다. 눈앞의 노트북 화면에서는 한 남자의 웃는 얼굴이 깜빡이고 있었다. 이지훈.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환하게 웃고 있는 그 얼굴은, 강민의 영혼을 갉아먹는 독이었다.
강민은 손가락으로 화면 속 지훈의 얼굴을 쓸었다. 액정의 차가운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이 손으로 한때는 지훈의 어깨를 두드렸고, 그의 등을 다독였으며, 성공을 함께 축하하며 건배를 나누었다. 그 모든 기억이 이제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심장을 쑤셨다. 비틀린 웃음이 강민의 입술을 스쳤다.
“네가 가진 모든 것, 내 것이었지.”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는 빗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그는 자신의 초라한 반지하 방을 둘러보았다. 곰팡이 냄새가 희미하게 코를 찔렀고, 방 한구석에는 몇 년째 정리되지 않은 짐들이 쌓여 있었다. 한때 강남의 고층 빌딩 꼭대기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던 남자였다. 번쩍이는 양복을 입고, 수많은 사람의 존경을 한몸에 받던, 이 사회의 ‘성공한 사업가’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유령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것을 빼앗긴 채,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 그 모든 것의 원흉은, 바로 화면 속의 저 웃는 얼굴이었다.
이지훈은 영악했다. 강민의 아이디어를 훔쳐냈고, 그의 회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강민이 믿었던 모든 사람을 자신의 편으로 돌려세웠다. 가장 결정적이었던 건, 한 여성의 죽음이었다. 강민의 오랜 연인이었던 서연. 그녀의 죽음마저 지훈의 교묘한 함정에 이용당했다. 그리고 강민은 그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나락으로 떨어졌다. 증거 조작, 거짓 증언, 그리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거대한 음모의 그림자. 강민은 수년간 감옥에 갇혀 절규했고, 세상은 그를 미친 살인마로 기억했다.
“이지훈… 넌 내가 살아있는 지옥을 보여줄 거야.”
강민은 노트북을 닫고 일어섰다.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뼈마디가 삐걱거리는 듯했다. 오랜 투옥과 그 후의 고통스러운 세월은 그의 몸과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차갑고 깊은, 복수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눈빛.
테이블 위에는 낡은 스마트폰이 놓여 있었다. 어둠 속에서 푸른빛을 깜빡이는 액정에는, 단 하나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준비됐습니까, 그림자님?]
발신자는 알 수 없는 번호. 그러나 강민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익명 뒤에 숨어 그와 같은 목적을 공유하는 자. 혹은 그를 이용하려는 자. 강민은 망설임 없이 답장을 보냈다.
[시작한다. 첫 번째 목표는, 최 비서실장이다.]
최 비서실장. 이지훈의 오른팔이자, 과거 강민의 비서였던 남자. 그가 이지훈의 뒤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강민은 뼛속 깊이 기억하고 있었다. 복수의 칼날은 가장 약한 고리부터 파고들 것이다. 그의 손끝이 떨렸다. 두려움이 아니었다. 끓어오르는 증오와, 마침내 시작될 복수극에 대한 냉혹한 기대감이었다.
창밖의 빗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오물을 씻어내려는 듯, 거대한 물줄기가 도시를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강민은 알고 있었다. 이 비로는 결코 씻겨나가지 않을 피와 배신, 그리고 그 위에 피어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을.
“첫 번째 막이 열렸군.”
강민은 천천히 웃었다. 그의 웃음은 차가웠고, 비정했으며, 오직 파멸만을 약속하고 있었다. 이제 게임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게임의 끝은, 둘 중 하나의 완벽한 몰락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