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바람이 갈라진 대지를 휩쓸었다. 잿빛 하늘 아래, 그을음 마을은 먼지처럼 앉아 있었다. 흙과 낡은 고철 조각으로 얼기설기 지어진 움막들, 그 사이를 비집고 흐르는 희미한 물줄기만이 이곳이 한때 생명이 존재했던 곳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사람들은 해진 옷가지로 몸을 감싸고, 앙상한 팔다리 위로 뼈대가 앙상하게 드러났다. 그들의 눈빛은 깊은 우물처럼 침묵했지만, 그 안에는 꺼지지 않는 불씨가 숨 쉬고 있었다.
진은 낡은 삽을 쥔 채 땅을 파고 있었다. 삽날이 쩍쩍 갈라진 흙을 겨우 헤집을 때마다 메마른 흙먼지가 풀풀 날렸다. 며칠째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한 입술은 다 갈라져 피가 비쳤다. 오늘은 수확자들이 오는 날이다. ‘강철 제국’의 그림자가 황무지에 드리워지는 날.
“진, 더 깊이 파야 해. 오늘은 최소한 다섯 개는 찾아야 한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갈라진 바람에 실려 왔다. 어머니는 옆에서 똑같이 지친 몸으로 삽질을 하고 있었다. 빛나는 돌, 제국이 ‘에너지의 심장’이라 부르는 그것은 우리에게는 그저 생명을 갉아먹는 독이었다. 제국은 이 황무지에 숨겨진 빛나는 돌을 강요했고, 그 대가로 먼지 같은 목숨을 연장해 줄 뿐이었다.
쾅, 쾅, 쾅!
멀리서부터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쇠 냄새와 함께 기름 태우는 역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실려 왔다. 수확자들이다. 그들의 거대한 강철 전차는 마치 살아있는 괴물처럼 굉음을 내며 황무지를 가로질렀다. 진은 삽을 내려놓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번엔 또 뭘 가져갈까.
강철 전차 세 대가 마을 어귀에 멈춰 섰다. 전차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리고, 번쩍이는 강철 갑옷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헬멧 안으로 보이는 눈은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기계 같았다. 그들 뒤로는 검은색 제복을 입은 ‘감독관’이 걸어 나왔다. 감독관은 얇고 긴 채찍을 들고 있었는데, 그 채찍 끝에는 뾰족한 금속 조각이 박혀 있었다.
“그을음 마을! 정해진 할당량을 내놓아라!”
감독관의 목소리는 스피커를 통해 증폭되어 울려 퍼졌다. 마을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움츠러들었다. 며칠 밤낮으로 땅을 파고 헤집었지만, 빛나는 돌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섯 개… 오늘은 딱 다섯 개가 부족합니다. 감독관님… 제발…!”
마을 촌장이 앞으로 나서며 무릎을 꿇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간절함과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다섯 개가 부족해? 감히 강철 제국의 은혜를 저버린단 말이냐!”
감독관은 비웃듯이 채찍을 휘둘렀다. 쩌억 하는 소리와 함께 채찍이 촌장의 뺨을 때렸다. 촌장의 얼굴에 붉은 줄기가 그어지고, 그는 고통에 신음하며 쓰러졌다.
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지난번, 여동생 아리가 빛나는 돌을 숨겼다는 이유로 병사들에게 끌려갔을 때도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그의 내면에는 뜨거운 불길과 차가운 절망이 함께 타올랐다.
“흥, 너희 같은 버러지들에게 자비는 사치다. 부족한 할당량에 대한 대가는… 저 아이로 하겠다.”
감독관의 손가락이 진의 옆에 서 있던 어린 소녀를 가리켰다. 소녀는 진의 사촌 동생 ‘미나’였다. 미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흔들렸다.
“안 돼!”
진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 자리에서 벗어나 감독관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강철 병사들이 진을 막아섰다. 육중한 갑옷을 입은 병사들의 팔은 바위 같았다. 진은 몸부림쳤지만 소용없었다.
“이 버러지 같은 놈! 감히 제국의 병사에게 손을 대?”
감독관의 채찍이 진의 등짝에 날아들었다.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진은 비명을 질렀다. 채찍이 연이어 내려쳤다. 등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미나! 도망쳐!”
진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하지만 미나는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병사들이 미나를 거칠게 붙잡았다. 미나는 흐느끼며 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오빠… 오빠…!”
미나의 울음소리가 메마른 마을에 울려 퍼졌다. 진은 무릎을 꿇은 채, 피 흘리는 등으로 몸부림치며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제국은 또다시 어린 생명을 앗아갔다. 그는 무력했다. 그의 주먹은 피를 흘리며 땅을 쳤다. 그때, 그의 마음속에서 차가운 분노가 들끓었다.
‘이대로는 안 돼. 이대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그날 밤, 마을은 침묵에 잠겼다. 잃어버린 아이와 상처 입은 몸으로 진은 잠 못 이루고 있었다. 등에서 피가 굳어 붙었지만, 고통보다 더 큰 분노가 그의 심장을 태웠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두려움과 체념에 갇혀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강철 제국은 너무나 거대했고, 그들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진은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며칠 후, 진은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어머니는 말렸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아리와 미나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끝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머니, 저는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어요.”
진은 어머니의 낡은 손을 잡았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진을 끌어안았다. 그 품은 메말랐지만, 여전히 따뜻했다.
“조심하거라… 아들아.”
어머니의 목소리는 잦아들었지만, 그 안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함이 배어 있었다.
진은 낡은 배낭을 메고, 그의 모든 것이었던 낡은 삽을 챙겼다. 그의 등에는 채찍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지만, 그 상처는 오히려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훈장 같았다. 그는 희망 없는 황무지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강철 제국의 심장부를 향한, 절망 속의 작은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몇 주가 지났다. 진은 황무지를 헤매며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렸다. 죽은 도시의 잔해를 뒤지고, 오염된 물을 찾아 헤맸다. 그는 강철 제국의 병사들을 피해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가끔 먼지 구덩이에서 살아남은 다른 생존자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대부분 희망을 잃은 채 눈빛이 텅 비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낡은 동굴 앞에서 희미한 연기를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불빛과 함께 희미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이곳은 황무지 깊은 곳에 숨겨진 작은 거점이었다.
동굴 안에는 진처럼 해진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지쳐 보였지만, 동시에 진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종류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진을 경계했지만, 동시에 동질감을 느끼는 듯했다.
“누구냐, 너는.”
한쪽 구석에서 투박한 활을 손질하던 거구의 남자가 진에게 물었다. 그의 얼굴은 흉터로 얼룩져 있었고, 그의 눈은 매서웠다.
“그을음 마을에서 왔습니다. 진이라고 합니다.”
진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숨길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같은 처지일 테니.
“그을음 마을? 제국 놈들의 착취가 심한 곳인데, 용케 살아남았군.”
남자는 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진의 등짝에 난 채찍 자국을 발견했다. 남자의 눈썹이 살짝 찡그려졌다.
“제국 놈들이… 제 여동생과 사촌 동생을 잡아갔습니다. 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방법을 찾으러 왔습니다.”
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목소리였다.
남자는 한동안 진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픽 웃었다.
“방법? 그래, 방법이 있긴 하지. 하지만 너 같은 애송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때, 동굴 깊숙한 곳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리 오게, 젊은이. 자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봐야겠군.”
진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굴 가장 안쪽, 불꽃이 희미하게 흔들리는 곳에 한 노파가 앉아 있었다. 노파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파여 있었지만, 그 눈빛은 한없이 깊고 총명했다. 그녀의 손은 낡은 실뭉치를 붙잡고 무언가를 엮고 있었다. 굵고 질긴 밧줄 매듭 같기도 했고, 복잡한 거미줄 같기도 했다.
“매듭 할멈입니다.”
거구의 남자가 작게 말했다. 진은 노파에게 다가갔다. 노파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의 등짝에 새겨진 그 매듭은, 꽤나 아프겠구나.”
노파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진은 그 안에서 위로와 함께 깊은 슬픔을 느꼈다.
“저에게는… 그저 분노의 흔적일 뿐입니다.”
“분노, 그래. 그 분노가 너를 이곳까지 이끌었겠지. 하지만 분노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단다. 분노는 불꽃이 되지만, 그 불꽃을 지피는 것은 차가운 이성이어야 해.”
노파는 자신이 엮던 밧줄을 들어 올렸다. 얽히고설킨 매듭들이 보였다.
“이것 봐라. 하나의 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쉽게 끊어지지. 하지만 이렇게 서로 엮이고 엮이면, 아주 강한 줄이 된단다. 강철 제국은 하나의 줄을 끊는 건 쉽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바로 이 매듭의 힘을 말이다.”
진은 노파의 말뜻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그녀는 단순히 밧줄을 엮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을 엮고, 마음을 엮고 있었다.
“우리도… 매듭입니까?”
“그럼. 너희는 모두 끊어졌다고 생각하는 실들이지. 하지만 끊어진 실들도 이렇게 모이면… 하나의 역사가 되는 거야.”
그날 밤, 진은 동굴에서 매듭 할멈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강철 제국의 폭정과 싸우는 ‘황무지 저항군’이었다. 그들은 빛나는 돌 광산에서 탈출한 노예들, 제국에 가족을 잃은 농부들, 그리고 제국의 부패를 견디지 못하고 이탈한 소수의 지식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제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이었다.
진은 그들의 눈에서 자신의 눈과 같은 불꽃을 보았다. 그들은 무모하지 않았다. 그들은 강철 제국에 맞서기 위해 치밀하게 움직였다. 정보망을 구축하고, 은밀하게 무기를 만들고, 때로는 작은 습격을 감행하며 제국의 물자와 병력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진은 거구의 남자, ‘바위’로부터 싸우는 법을 배웠다. 바위는 전 제국 병사였다고 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진에게 칼을 쥐여주고, 맨몸으로 적을 제압하는 법을 가르쳤다. 진은 빠르게 성장했다. 그의 분노는 기술로, 절망은 강인함으로 바뀌었다. 새벽이라는 이름의 날렵한 여자아이에게서는 황무지를 헤치고 다니는 법, 적의 시선을 피하는 법, 작은 틈새를 이용하는 법을 배웠다. 새벽은 발소리 하나 없이 움직이며, 어떤 지형에서도 길을 찾는 귀신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진은 더 이상 그을음 마을의 무력한 소년이 아니었다. 그의 등짝의 상처는 아물었지만, 그가 잊지 말아야 할 흔적으로 남았다. 그는 저항군의 일원이자, 하나의 매듭이 되었다.
어느 날, 매듭 할멈은 모든 저항군을 모았다. 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이제 때가 되었다. 제국은 곧 ‘광명 광산’에서 빛나는 돌을 캐낼 새 거점을 건설할 것이다. 그곳은 잿빛 황무지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지만,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그곳을 제국에게 내주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없어질 것이다.”
광명 광산. 그곳은 진의 여동생 아리와 사촌 미나가 끌려갔을지도 모르는 곳이었다. 진의 심장이 다시 한번 뜨겁게 타올랐다.
“광명 광산은 철통같은 방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할멈. 전차와 보병, 그리고 무엇보다… ‘감시자’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바위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감시자. 제국의 최정예 병사들이자, 인간의 감각을 초월하는 능력을 가진 강화 인간 병기였다.
“알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우리는 그들이 거점을 완전히 건설하기 전에 타격해야 한다. 그들의 주요 자원 공급을 끊고, 건설을 지연시켜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안에 갇힌 우리 형제들을 구해야 한다.”
매듭 할멈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어떤 강철보다 단단했다.
“진, 새벽, 바위. 그리고 너희 모두. 이것은 우리의 첫 번째 큰 시험대가 될 것이다. 두려운가?”
할멈의 질문에 모두가 침묵했다. 두려움이 없는 자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두려움보다 더 강렬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두렵지 않습니다, 할멈. 저는 제 여동생과 사촌 동생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지옥 같은 세상에… 작은 균열이라도 내고 싶습니다.”
진이 나서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그을음 마을의 소년이 아닌, 저항군의 전사로서의 단단함이 배어 있었다.
“좋다. 작전은 다음과 같다.”
매듭 할멈은 조용히 작전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새벽은 감시자들의 순찰 경로를 파악하고 잠입 경로를 확보하는 임무를 맡았다. 바위는 주요 방어선을 뚫고 돌파하는 돌격조를 이끌었다. 진은 새벽과 함께 침투하여 내부에서 혼란을 야기하고, 광산의 핵심 동력원을 파괴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위험천만한 임무였다. 실패하면 모든 것이 끝장날 터였다.
작전 개시 D-day. 어둠이 짙게 깔린 황무지를 가로질러 저항군이 은밀하게 움직였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를 찔렀지만, 진의 심장은 뜨겁게 타올랐다. 광명 광산은 멀리서도 횃불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제국의 탐욕을 상징하는 듯했다.
“진, 저기 저 망루를 조심해. 감시자들의 시야가 닿는 곳이야.”
새벽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녀는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진을 좁고 위험한 길로 안내했다. 진은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숨을 죽였다. 강철 제국의 병사들이 순찰하는 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이제 돌아갈 길은 없다.’
진은 허리춤의 칼을 꽉 쥐었다. 그의 눈에는 아리와 미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을음 마을의 지친 사람들, 매듭 할멈의 믿음, 바위와 새벽의 굳건한 등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하나의 매듭이었고, 그 매듭은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광명 광산의 거대한 그림자가 그들 위로 드리워졌다. 이제 반란의 불꽃이 터질 시간이었다.
새벽은 망루 아래의 그림자를 타고 올라, 감시자의 눈을 피했다. 그녀는 작은 칼로 감시 카메라의 렌즈를 정확히 찌르고, 망루 위의 병사를 소리 없이 제압했다. 진은 그녀의 신호에 맞춰 움직였다. 그의 등에서 채찍 자국이 다시금 따끔거리는 듯했지만, 이번엔 그 고통이 오히려 그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안쪽으로 침투한 진과 새벽은 복잡하게 얽힌 통로를 따라 움직였다. 눅눅한 흙먼지와 함께 지하 깊숙한 곳에서 풍기는 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따금 들려오는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진의 심장을 아프게 했다. 이곳 어딘가에 그의 여동생과 사촌이 있을지도 모른다.
“저기, 병사들이 집결하는 소리가 들려. 바위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아.”
새벽이 벽에 귀를 대고 속삭였다.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자신들의 차례였다. 그들의 목표는 광산의 핵심 동력원을 파괴하고, 동시에 갇힌 사람들에게 탈출의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몇 개의 강철 문을 지나, 거대한 동력실 앞에 도착했다.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파란색 섬광이 터져 나오는 동력원은 마치 살아있는 심장 같았다. 제국의 기술력은 언제나 압도적이었다.
“어떻게 이걸 파괴하지?”
진이 물었다. 동력원은 강철 보호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취약점을 알아냈어. 핵심 냉각 장치가 노출되어 있어. 저기를 파괴하면 연쇄 반응이 일어날 거야.”
새벽이 작은 지도를 꺼내며 설명했다. 그녀는 이미 모든 것을 분석해 놓은 듯했다.
그 순간,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진과 새벽은 동시에 몸을 숨겼다. 강철 갑옷을 입은 병사 두 명이 순찰 중이었다. 진은 새벽에게 눈짓을 보냈다. 새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병사가 지나치는 순간, 새벽이 그림자처럼 튀어나와 한 병사의 목을 순식간에 제압했다. 동시에 진은 다른 병사의 가슴을 향해 칼을 찔러 넣었다. 병사는 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손은 떨렸지만, 그의 눈은 차가웠다.
“빨리 움직여야 해.”
새벽이 재촉했다. 그들은 동력원 쪽으로 향했다. 냉각 장치는 높은 곳에 있었다. 진은 낡은 삽을 이용해 벽을 타고 올라갔다. 그의 손은 피투성이 가 되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냉각 장치에 도달한 진은 온 힘을 다해 삽을 휘둘렀다.
쾅!
삽날이 강철을 찢는 소리가 동력실에 울려 퍼졌다. 파란색 섬광이 더욱 강하게 번쩍였다.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광산 전체가 비상사태에 돌입했음을 알리는 날카로운 소리였다.
“됐어! 이제 탈출해야 해!”
새벽이 소리쳤다. 진은 급히 내려왔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동력실 문이 육중하게 열리며, 감시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눈은 헬멧 속에서 붉게 빛나고 있었다.
“침입자들이다! 생포해라!”
감시자들의 지휘관이 냉정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감시자들은 보통 병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들은 움직임이 빠르고, 공격은 정확했으며, 무엇보다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진과 새벽은 등을 맞대고 칼을 뽑아 들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싸워야 했다. 진은 거칠게 칼을 휘둘렀다. 감시자 한 명이 날아오는 칼날을 피하고 진의 팔을 붙잡았다. 진은 고통에 신음했지만, 반대편 손에 든 칼로 감시자의 다리를 베었다. 감시자는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다시 공격해 왔다.
새벽은 감시자들의 빈틈을 노려 날카로운 칼날을 던졌다. 칼날은 감시자의 목덜미에 박혔지만, 감시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왔다.
“이들은 인간이 아니야!”
새벽이 비명을 질렀다. 그때, 멀리서부터 폭발음이 들려왔다. 바위가 이끄는 돌격대가 주요 방어선을 뚫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이 혼란을 틈타야 했다.
진은 온 힘을 다해 감시자들과 싸웠다. 그는 아리와 미나를 떠올렸다. 그들을 구하려면, 여기서 죽을 수는 없었다. 그을음 마을의 비참한 현실을 바꾸려면,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분노를 연료 삼아 싸웠다.
마침내, 동력원이 거대한 폭발음을 내며 터져 버렸다. 광산 전체가 흔들렸다. 파편들이 튀어 오르고,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정전이 되며 주변은 암흑으로 변했다.
“지금이야! 도망쳐!”
새벽이 진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들은 감시자들의 혼란을 틈타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폭발의 여파로 광산 곳곳에서 벽이 무너지고 길이 막혔다. 진과 새벽은 간신히 무너지는 통로를 피해 밖으로 나왔다.
밖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강철 병사들과 저항군이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바위는 거대한 둔기를 휘두르며 제국 병사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광산 내부에서는 탈출하는 노예들의 비명과 환호성이 뒤섞여 들려왔다.
진은 밖으로 나온 노예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다. 그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먼지에 뒤덮여 초췌했지만, 분명 아리였다!
“아리!”
진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아리는 진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빠… 오빠!”
아리는 진을 향해 달려왔다. 진은 아리를 끌어안았다. 앙상하게 마른 몸이었지만, 아리는 살아있었다. 진은 울컥 치솟는 감정을 애써 억눌렀다. 미나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리를 찾은 것만으로도 진은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미나는… 미나는 어디 있어?”
진이 급하게 물었다. 아리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미나는… 미나는 저 안쪽에… 끌려갔어. 더 깊은 곳으로… 광명 광산 깊숙한 곳에 비밀 수용소가 있다고… 들었어.”
아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진의 눈이 다시금 타올랐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나는 아직 저 안에 있었다.
“진! 이제 철수해야 해! 감시자들이 몰려오고 있어!”
바위가 피투성이가 된 채 소리쳤다. 광산의 동력원이 파괴되고, 노예들이 탈출하면서 제국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그들의 반격 또한 거셌다.
진은 아리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미나가 있다는 광산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속에서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미나를 구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그는 분노와 희망, 그리고 비극이 뒤섞인 눈빛으로 광명 광산을 뒤로했다.
그들이 황무지로 철수하는 동안, 저항군 뒤에서는 광명 광산이 거대한 불기둥을 뿜어내며 붕괴하기 시작했다. 제국의 중요한 거점 하나가 무너진 것이다. 작은 불씨가 거대한 제국의 심장에 작은 균열을 낸 순간이었다. 하지만 진은 알고 있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미나를 찾고, 이 강철 제국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 그것이 그의 매듭이 엮어갈 다음 이야기였다.
진의 뒤에서, 수많은 해방된 노예들과 저항군이 먼지바람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들의 눈빛에는 이제 더 이상 체념이 없었다. 매듭 할멈이 말했던 것처럼, 끊어진 실들은 하나로 엮여 거대한 밧줄이 되었고, 그 밧줄은 이제 제국의 목을 조르는 쇠사슬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황무지의 밤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그들의 심장 속에는 새로운 새벽이 떠오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