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의 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전등’의 불빛 아래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대조선 제국’이라 불리는 이 땅의 수도는 수백 년의 역사를 품은 고궁과 기와집들 사이에 철마(기차)가 오가는 철로와 전보국의 전신탑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평온은 ‘서린당’이라는 이름의 고풍스러운 한옥 저택에서 터져 나온 비명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서윤 탐정님, 이쪽입니다!”
강 형사의 다급한 목소리에 서윤은 갓 내린 차 한 잔을 기울이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고운 비단 도포 자락을 여미며 느릿하지만 확실한 걸음으로 어둠 속을 헤쳤다. 그의 길고 하얀 손가락은 부채 대신 늘 작은 수첩과 연필을 쥐고 있었고, 꿰뚫어 볼 듯 날카로운 눈빛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한양 시내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마다, 사람들은 그가 ‘기묘한 천재’라 부르는 서윤 탐정을 찾아왔다.
서린당의 대문 앞에는 이미 순라꾼들과 구경꾼들이 소란스럽게 모여 있었다. 붉은 피가 길게 흥건한 대문 통로를 지나 안뜰로 들어서자, 강 형사가 식은땀을 흘리며 그를 맞았다.
“박 진사님께서… 서재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셨습니다. 흉기는 비수(단검)이고, 결정적으로, 서재 문이 안에서 단단히 잠겨 있었습니다.”
강 형사의 말에 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재로 향했다. 문 앞에는 이미 여러 명의 형사들이 초조한 얼굴로 서 있었다. 서윤은 그들에게 다가가 문을 응시했다. 육중한 나무문은 고풍스러운 쇠빗장이 안쪽으로 굳게 걸려 있었다. 문틈이나 주변에 억지로 침입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문을 부쉈다는 말입니까?” 서윤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너무 단단해서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저희가 도착했을 땐 이미…” 강 형사가 말을 잇지 못했다.
서윤은 안으로 들어섰다. 서재는 고요했다. 탁한 공기 속에서 먹 향과 피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 바닥에는 이리저리 흩어진 고서들과 붓통, 벼루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그 한가운데 박 진사가 쓰러져 있었다. 비단 한복 저고리는 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고, 그의 가슴팍에는 작은 은빛 비수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서윤은 시신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박 진사는 한때 ‘천재 발명가’로 불리며 제국의 기계 공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던 인물이었다. 그의 서재답게, 한쪽 벽면에는 복잡한 톱니바퀴와 기어들로 이루어진 정교한 모형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창문은 어떻습니까?” 서윤이 물었다.
“모두 굳게 닫혀 있었고,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습니다. 창살도 그대로였습니다.” 강 형사가 답했다. “굴뚝이나 다른 은밀한 통로도 찾지 못했습니다. 완벽한 밀실입니다, 탐정님.”
서윤은 말없이 서재 안을 꼼꼼히 살폈다. 그의 눈은 미세한 먼지 한 톨, 희미한 얼룩 하나 놓치지 않았다. 벽에 걸린 낡은 벽시계의 멈춰선 바늘, 서안(책상) 위에 놓인 펼쳐진 두루마리, 그리고 천장 가까이에 위태롭게 놓인 작은 조각상까지.
“박 진사님께서는 최근 특별히 연구하던 것이 있었습니까?” 서윤이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새로운 ‘자동 직조기’의 핵심 부품을 거의 완성했다고 들었습니다. 엄청난 부를 가져다줄 발명품이라더군요.” 강 형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서윤은 벽에 걸린 낡은 괘종시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시계는 박 진사가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각에 멈춰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시계 자체가 아닌, 시계와 문 사이의 공간, 그리고 문 바로 옆 벽면에 희미하게 남은 작은 긁힌 자국에 머물렀다. 그것은 마치 아주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간 듯한 자국이었다.
“강 형사, 이 서재에 드나들던 사람 중에 박 진사님의 발명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서윤이 물었다.
“음… 김도훈이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박 진사님을 그림자처럼 따르며 기술을 배웠죠. 하지만 그는 사건 발생 시각에 마을 저잣거리에 있었다는 증인이 여럿 있습니다.”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은 이미 퍼즐의 조각들을 맞춰가는 듯했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박 진사의 시신 옆에 놓인 붓통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붓통 주변에는 작은 나무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시신은 만지지 마십시오.” 서윤이 경고했다. 그는 쪼그려 앉아 바닥의 나무 조각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조각들 사이에서, 아주 미세하고 반짝이는 은빛 가루 같은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비수의 손잡이 장식에서 떨어진 것 같았다.
서윤은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다시 문으로 향했다. 빗장이 걸려 있던 자리.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돋보기를 꺼내어 빗장을 자세히 살폈다. 빗장의 쇠붙이 표면에 희미하지만 규칙적인 마모 흔적이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긁힌 듯한.
“강 형사, 서재 천장에 달린 저 조각상을 내려 주십시오.” 서윤이 천장 가까이에 놓인 작은 나무 조각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강 형사는 의아해했지만, 그의 지시에 따라 사다리를 가져와 조심스럽게 조각상을 내렸다. 서윤은 조각상의 밑면을 살펴보더니 작게 탄식했다.
“이것이 바로 범인이 빠져나간 방법이로군요.”
모두의 시선이 서윤에게 쏠렸다. 강 형사는 물론, 다른 형사들과 박 진사의 하인들, 그리고 초조하게 서 있던 김도훈 제자까지.
“밀실 살인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밀실처럼 ‘보이는’ 살인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서윤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서재 안의 모든 소음을 잠재울 만큼 압도적이었다.
“범인은 박 진사님을 이 비수로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 방을 밀실로 위장하기 위한 준비를 했지요.”
서윤은 바닥에 놓인 비수를 가리켰다. “이 비수의 손잡이에는 은빛 장식이 박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비단 한복 저고리에 묻은 피는 이미 응고되기 시작했습니다. 박 진사님께서 살해된 지 최소 두 시진(4시간)은 지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어떻게…?” 강 형사가 말을 더듬었다.
“이곳 서재에는 박 진사님의 발명품을 위한 정교한 기계 장치들이 많습니다. 범인은 박 진사님께서 발명가라는 사실, 그리고 서재의 구조적 특성을 악용한 것입니다.”
서윤은 문을 가리켰다. “이 문은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빗장에는 아주 미세한 긁힌 자국이 규칙적으로 나 있습니다. 마치 가느다란 실에 의해 강하게 마찰된 흔적처럼.”
그는 계속 설명했다. “범인은 박 진사님을 살해한 후, 이 빗장에 아주 가늘고 질긴 명주실을 묶었습니다. 그리고 이 실의 다른 한쪽 끝을 문틈으로 조심스럽게 빼낸 것이지요.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고 아주 미세하게 벌어진 틈을 이용해서 말입니다.”
김도훈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범인은 문밖으로 나간 후, 그 명주실을 잡아당겨 빗장을 안쪽으로 완전히 걸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실을 없애야 했겠죠.”
서윤은 천장에서 내린 작은 조각상을 손에 쥐었다. “이 조각상은 박 진사님께서 아끼시던 것으로, 평소에는 저 선반 위에 안정적으로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범인은 이 조각상을 이용했습니다.”
“어떻게요?” 강 형사가 숨죽이며 물었다.
“범인은 문밖에서 빗장을 걸고 난 후, 명주실을 끊으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틈을 통해 실을 자르는 것은 쉽지 않죠. 그래서 범인은 꾀를 낸 겁니다. 명주실을 이 조각상에 아주 약하게 묶거나 걸어둔 채, 문틈으로 다시 안으로 밀어 넣은 겁니다.”
모두의 시선이 서윤의 손안에 든 조각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명주실의 다른 한쪽 끝은, 문틈을 통해 외부로 나가는 부분만 남겨두고, 안쪽 부분은 이 조각상에 걸거나 묶어둔 것이지요. 실은 문틈에 끼어 있었습니다. 범인은 문밖에서 남은 실을 잡아당겨 빗장을 걸었습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간 실을 잘라냈습니다.”
“그럼 안쪽 실은 어떻게 된단 말입니까?” 강 형사가 의문을 제기했다.
“잘린 순간, 안쪽으로 남아있던 실은 문틈에 끼어있던 장력이 사라지면서, 빗장과 조각상을 연결한 채로 힘없이 늘어졌을 것입니다. 조각상은 천장 선반 위에 위태롭게 놓여 있었고, 실의 미세한 장력 변화와 서재의 고요함을 틈타 결국 바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서윤은 바닥에 흩어진 작은 나무 조각들을 가리켰다. “이것들은 조각상이 떨어지면서 깨진 파편입니다. 조각상이 떨어지며 실은 그 충격으로 끊어지거나, 조각상에서 쉽게 떨어져 나와 바닥에 뒹굴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문이 안에서 잠긴 채 실의 흔적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시각은요? 박 진사님께서 돌아가신 지 두 시진이나 되었다면, 범인은 그 시간 동안 대체 어디에…” 강 형사가 의문을 던졌다.
서윤은 김도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김도훈은 식은땀을 흘리며 뒷걸음질 쳤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입니다. 범인은 자신이 알리바이를 만들 충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이 복잡한 밀실 트릭을 사용한 것입니다. 박 진사님을 살해한 직후, 이 밀실 트릭을 완성하고 유유히 서린당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저잣거리로 가서 사람들이 자신을 보게 만들었지요. 마치 사건과는 무관한 사람처럼 말입니다.”
서윤의 시선이 김도훈의 손으로 향했다. 김도훈은 무의식중에 자신의 엄지손가락 끝을 만지고 있었다. 그 엄지손가락에는 아주 미세한 실 자국 같은 것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명주실을 잡아당기느라 생긴 흔적이었다.
“김도훈 씨, 박 진사님의 새로운 자동 직조기 발명에 대한 지식은 당신이 가장 해박하다고 들었습니다. 그 발명의 핵심 부품이 무엇인지도요.”
김도훈의 얼굴은 이미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의 눈은 공포에 질려 흔들렸다.
“당신은 박 진사님의 발명품을 탐냈습니다. 스승을 살해하고, 그 발명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죠. 그리고 이 복잡한 밀실 트릭으로, 사람들의 눈을 속여 아무도 당신을 의심하지 못하게 하려 했습니다.”
“아, 아닙니다! 저는… 저는 정말 아닙니다!” 김도훈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겁니다. 당신이 서재를 나간 후, 빗장을 걸기 위해 실을 잡아당길 때, 문틈에 끼어있던 명주실은 문틀의 낡은 나무를 살짝 긁었습니다. 그리고 그 흔적은 명주실의 마찰로 인해 미세한 나무 가루를 만들어냈죠. 이 나무 가루는 박 진사님의 붓통 주위에 흩어져 있던 나무 파편들 사이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서윤은 강 형사에게 눈짓했다. “김도훈을 체포하십시오. 그의 옷깃과 손톱에서 분명 명주실의 잔해나 그와 관련된 증거들이 발견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집을 수색하면, 박 진사님의 발명 노트나 핵심 부품 또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강 형사는 망설임 없이 순라꾼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김도훈은 절망적인 비명을 지르며 끌려나갔다.
서재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서윤은 흩어진 책들 사이에서 먼지 쌓인 두루마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박 진사님의 마지막 발명 스케치였다.
“인간의 탐욕은 언제나 가장 정교한 트릭을 만들어내는 법이지요. 하지만 그 어떤 트릭도 인간의 눈보다 정교할 수는 없습니다.”
서윤은 차가 식어버린 자신의 찻잔을 바라보았다. 한양의 밤은 아직 깊고, 그의 탐정 일은 오늘 밤도 끝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 묵묵히 서린당의 대문을 나섰다. 전등 불빛 아래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