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Chapter 1: 피의 시작**

해는 늘 그렇듯 더럽고 칙칙한 회색빛으로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 거대한 제국의 수도, ‘아스타르’의 변두리 빈민가, ‘잿골’에는 해가 뜨는 것도 지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해가 떠도 빛은 건물들의 그림자에 가려 희미했고, 해가 져도 도시의 악취와 비명은 사라지지 않았다. 잿골의 밤은 어둠과 혼돈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진은 눅눅한 골목을 따라 걸었다. 낡은 가죽 조끼는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지 못했고, 헤진 신발은 바닥의 날카로운 돌멩이를 그대로 발에 전달했다. 그의 손에 들린 녹슨 쇠막대기는 위협적인 짐승이나, 운 나쁜 타인을 쫓아내는 데 쓰이는 유일한 도구였다. 오늘 그의 몫은 아무것도 없었다. 매번 그랬듯이, 하루를 살아남기 위한 작은 조약돌 하나 건지지 못했다. 텅 빈 뱃속에서는 천둥 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젠장.”

마른침을 삼켰다. 집에는 어린 동생, 미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나의 마른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어제 겨우 찾아낸 딱딱한 빵 부스러기가 마지막이었다.

그때였다. 으슥한 골목 끝에서 희미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진은 본능적으로 쇠막대기를 고쳐 쥐었다. 이곳 잿골에서는 살아있는 모든 것이 잠재적인 위협이었다. 굶주린 들개도, 절망에 빠진 사람도.

“누구… 누구 없습니까?”

쉰 목소리였다. 진은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골목 모퉁이를 돌아 나타난 것은 젊은 사내였다. 그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해 있었고, 입가에는 거품이 맺혀 있었다. 눈은 풀어져 초점을 잃었고, 몸은 마치 꼭두각시처럼 비틀거렸다. 사내는 벽에 기대어 흐느적거리더니, 이내 쓰러져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그의 닳아빠진 옷 사이로 드러난 피부는 이미 썩어가기 시작한 듯 기분 나쁜 얼룩이 번져 있었다.

“저… 저리 가라…!”

진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사내의 모습은 흡사 병에 걸려 죽어가는 모습과도 달랐다. 무언가에 씌인 듯, 알 수 없는 광기가 그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내가 기어오다 말고, 진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풀어져 있던 눈동자에 갑자기 섬뜩한 붉은빛이 번뜩였다.

크아아아악!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짐승 같은 포효가 골목을 뒤흔들었다. 사내는 네 발로 바닥을 박차고 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속도는 이미 죽은 몸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진은 순간 얼어붙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사내의 손톱이 그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살갗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과 함께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건… 병이 아니야!’

진은 직감했다. 이건 단순한 열병이나 역병이 아니었다. 사내는 진을 향해 다시 몸을 돌렸다. 이미 썩어가기 시작한 듯한 피부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풍겼다. 그의 이빨은 길게 튀어나와 있었고, 핏줄이 불거진 목덜미는 마치 살아있는 촉수처럼 꿈틀거렸다.

“크아아아… 피…!”

사내는 핏발 선 눈으로 진을 노려봤다. 진은 쇠막대기를 휘둘렀지만, 사내는 마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쇠막대기가 사내의 어깨를 강타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진의 팔을 물어뜯으려 했다.

진은 온몸의 힘을 다해 사내를 밀쳐냈다. 사내는 비틀거리다 쓰러졌다. 진은 망설일 틈도 없이 쇠막대기로 사내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내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의 몸은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는 가까스로 몸을 가누고 사내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이미 죽은 시체였지만, 여전히 그 핏발 선 눈이 자신을 응시하는 것 같아 섬뜩했다.

그때, 멀리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제국 병사들의 발소리였다. 잿골에 병사들이 나타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세금 징수, 다른 하나는…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진은 본능적으로 시체를 끌어당겨 좁은 하수구 뚜껑 밑으로 밀어 넣었다. 이곳에서 이런 기괴한 시체가 발견되면, 병사들은 십중팔구 빈민들을 잡아다 심문할 것이 뻔했다. 희생양을 찾는 건 제국이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이봐, 거기 누구야!”

병사들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진은 뺨에서 흐르는 피를 손으로 훔치고는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진은 문을 걸어 잠그고 벽에 기댔다. 미나가 잠든 작은 방에서는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진은 벽난로에 겨우 구한 마른 나뭇가지 몇 개를 넣고 불을 지폈다. 희미한 불꽃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그의 뺨에는 사내의 손톱에 긁힌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피가 흐르는 상처는 화끈거렸다.

“젠장, 젠장할!”

진은 상처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저 사내는 대체 뭐였을까?
며칠 전부터 잿골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피를 갈구하는 병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허황된 이야기로 치부했지만, 오늘 밤 진이 직접 겪은 일은 그 어떤 소문보다 현실적이고 끔찍했다.

그는 문득 벽에 붙은 낡은 종이 한 장을 올려다봤다. 그것은 제국에서 내려온 포고령이었다.

<황제의 영광 아래, 모든 백성에게 고하노라. 최근 수도 외곽에서 발생한 '알 수 없는 열병'은 단순한 계절성 질병이니, 일절 동요하지 말고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히 임하라. 제국 의료기관은 해당 질병에 대한 치료법을 강구 중이며, 곧 해결될 것이다. 불안을 조장하거나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자는 반역으로 간주하여 엄벌에 처할 것이다.>

진은 코웃음을 쳤다. “단순한 계절성 질병?” 그는 방금 자신이 겪은 일을 떠올렸다. 그건 단순한 병이 아니었다. 명백한 괴물이었다. 제국은 진실을 은폐하려 하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황제는 자신의 거대한 성에서 온갖 진귀한 음식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귀족들은 값비싼 비단옷을 입고 향락을 누리며, 빈민들의 고통을 외면할 터였다. 그들에게 잿골의 백성들은 그저 손쉽게 버릴 수 있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젠장, 미나….”

진은 한숨을 쉬었다. 미나는 제국의 어두운 그림자 아래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 미나가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 제국 의료기관은 단 한 번도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겨우 약초꾼의 도움으로 미나는 살아남았다. 제국은 백성들의 고통에는 무관심했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권력과 부만을 탐할 뿐이었다.

진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잿골 전체가 저 끔찍한 ‘병자’들에게 먹힐 것이다. 그리고 제국은 그저 거대한 성벽을 굳게 닫고 자신들만의 낙원에서 버틸 뿐이겠지.

갑자기, 문밖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은 몸을 움찔했다.

“이봐, 진! 진이냐? 문 열어!”

이웃집 사내, ‘한스’의 목소리였다. 진은 급히 쇠막대기를 쥐고 문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한스?”
“젠장, 큰일 났어! 저 위쪽 골목에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난리가 났어! 병사들이 들어와서 사람들을 때려잡고 있어! 뭔가…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병사들이 ‘병자’들을 잡으러 온 것인가? 아니면… 그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으려 백성들을 탄압하러 온 것인가? 어느 쪽이든, 잿골에는 피바람이 불 조짐이었다.

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숨어있을 수만은 없었다. 미나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이 불타는 분노를 위해서라도.
그는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쇠붙이가 그의 손아귀에 꽉 잡혔다.

“젠장, 제국 놈들… 너희가 우리를 외면했으니, 우리도 너희를 외면하겠다.”

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안에는 미나에 대한 애틋함과 동시에 제국에 대한 깊은 증오가 서려 있었다.

이 밤, 잿골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고, 그 그림자 속에서 작은 불씨 하나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반란의 불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