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어둠이 세상을 삼킨 지 백 년. 인류가 쌓아 올린 모든 찬란한 문명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대륙은 찢어지고 바다는 끓었으며, 하늘에선 알 수 없는 재앙이 비처럼 쏟아졌다. 그러나 인류는 완벽하게 멸망하지 않았다. 소수의 생존자들은 기적처럼 피어난 마법의 힘을 빌려 새로운 질서를 구축했고, 그 중심에 아르카나 학원이 있었다.

아르카나 학원. 폐허가 된 대륙 한가운데, 강력한 마력 장벽으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완벽하게 단절된 채 우뚝 솟은 마법의 요람. 이곳의 학생들은 살아남은 인류의 희망이자 미래였다. 빛바랜 시대의 지식과 새로운 시대의 마법을 익히며, 언젠가 저 바깥의 어둠을 몰아내고 세상을 재건할 구원자들.

유리아는 그 ‘구원자’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녀의 재능은 엘리트들로 가득한 학원에서 그리 특별한 축에 속하지 못했다. 오히려 늘 평균에 미치지 못해 불안에 떨었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해야만 간신히 낙오되지 않을 수 있었다.

“유리아, 또 밤샘 연구야?”

대도서관 깊숙한 곳, 낡은 마도서를 펼쳐놓고 마법진을 분석하던 유리아의 등 뒤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카엘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그는 학원에서 손꼽히는 천재 마법사로, 유리아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노력 없이도 모든 것이 쉬운 듯 보이는, 타고난 재능을 가진 자.

“카엘… 너도 아직 안 갔어?” 유리아는 눈을 비볐다. 창밖은 이미 희미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난 이제 막 왔지. 넌 어제부터 박혀 있던 모양인데.” 카엘이 혀를 찼다. “그렇게 매일 밤을 새워서 얻는 게 뭔데? 아카데미의 규율을 깨면서까지 지하 자료실에 집착하는 이유가 뭐야?”

유리아는 순간 움찔했다. 카엘은 그녀가 대도서관 지하, 그것도 학생들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금지 구역’ 근처에서 종종 발견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친구였다.

“그냥… 좀 더 심층적인 자료가 필요해서.” 유리아는 애써 시선을 피했다. “바깥세상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이 마력 장벽 안에서만 살아가야 하는지… 더 많이 알고 싶어.”

카엘은 피식 웃었다. “그건 모든 학생이 궁금해하는 거지. 하지만 아카데미는 그 답을 가르쳐주지 않아. 그저 과거는 과거일 뿐, 우리는 미래를 봐야 한다고 말할 뿐이지.” 그의 시선이 유리아가 펼쳐놓은 낡은 마도서에 닿았다. “설마, 저런 고대 마법진들이 바깥의 진실을 알려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유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알 수 없는 이끌림에 홀린 듯, 늘 대도서관 지하에 있는 ‘제1고대문서보관실’의 오래된 자료들을 뒤적였다. 특히, 학원 설립 이전의 역사를 다루는 기록들, 그리고 세상이 붕괴하기 직전의 파편적인 문서들에 흥미를 느꼈다. 그곳에는 어딘가 모르게 뒤틀린, 기이한 마법 이론들이 숨겨져 있었다.

아르카나 학원은 빛과 정령, 그리고 물질을 다루는 마법만을 가르쳤다. 하지만 지하 자료실에는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불러내는 금단의 연금술, 그리고 인간의 이성을 위협하는 듯한 기이한 존재들에 대한 암시가 가득했다. 그것들은 금기였고, 그래서 더 유리아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오늘은 더 이상 밤새지 마. 이따 점심시간에 올리버 교수님 수업이 있잖아. 졸다가 혼나지 말고.” 카엘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어깨를 툭 치고는 사라졌다.

카엘이 떠나자 유리아는 다시 마도서에 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집중할 수 없었다. 지난밤 대도서관 지하, 금지된 통로 근처에서 들었던 소리 때문이었다. 흐느끼는 듯한, 혹은 긁는 듯한 기이한 소음. 그것은 바람 소리도 아니었고, 학원 내부의 어떤 기계 소리도 아니었다. 마치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고통스러워하는 듯한, 혹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한 소리였다.

그 소리는 그녀의 머릿속에 깊이 박혔다. 그리고 그 소리가 들려왔던 곳은, ‘아카데미의 심장’이라 불리는 가장 깊은 지하 구역으로 통하는 통로였다. 그곳은 학원장만이 출입할 수 있는, 일급 기밀의 장소로 알려져 있었다. 학원생들은 물론, 대부분의 교수조차도 그곳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유리아는 펜을 들고 마도서 한구석에 간략한 마법진을 그렸다. 그것은 오래된 문헌에서 발견한 ‘소리를 감지하는 마법진’이었다. 단순한 마법이었지만, 외부의 미약한 진동까지 감지할 수 있도록 고도로 증폭된 형태였다.

‘어쩌면, 내가 잘못 들었을 수도 있어.’

하지만 혹시라도 그 소리가 다시 들린다면? 그녀는 그 소리의 근원을 반드시 알아내야만 할 것 같았다. 그 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 완벽해 보이는 아르카나 학원 지하에 숨겨진, 이 시대의 모든 진실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알 수 없는 직감이 그녀를 지배했다.

밤이 다시 찾아왔다. 유리아는 모두가 잠든 시간, 조용히 대도서관 지하로 향했다. 금지 구역으로 향하는 통로는 늘 그렇듯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마력으로 조그마한 빛의 구슬을 만들어 길을 밝혔다. 먼지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섞인 공기가 그녀의 폐를 채웠다.

어제 그 소리가 들렸던 곳. 벽에는 낡고 거대한 철문이 박혀 있었다. 문틈으로 희미한 냉기가 새어 나오는 듯했다. 유리아는 자신이 만든 마법진을 철문에 조심스럽게 가져다 댔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희미한 마력이 흘러나왔고, 마법진이 벽에 달라붙었다.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묵직한 정적만이 그녀를 짓눌렀다. 유리아는 실망감에 한숨을 내쉬려 했다. 그때였다.

“끄으으…”

아주 작게,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미약하게. 하지만 분명히, 뼈를 긁는 듯한, 깊은 고통이 담긴 신음 소리가 철문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유리아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무언가의 목소리였다. 고통받고 있는, 혹은 저 깊은 어둠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존재의 울부짖음.

유리아는 손을 떼려 했지만, 몸이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공포와 함께 알 수 없는 충동이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대체 저 문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아르카나 학원이 그토록 숨기려 했던 금기가, 이 완벽한 마법의 요람 아래에 감춰진 끔찍한 진실이 대체 무엇인가?

그녀는 떨리는 손을 다시 철문에 가져다 댔다. 이번에는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철문에서 희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진동과 함께, 그녀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어떤 이미지들이 스쳐 지나갔다.

끝없이 펼쳐진 어둠, 형언할 수 없는 괴물들의 그림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억누르듯 솟아오른 웅장한 아르카나 학원의 모습. 하지만 그 학원의 심장은 붉은 빛으로 섬뜩하게 물들어 있었고, 수많은 손들이 그 심장을 향해 뻗어 있었다.

유리아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철문 너머에서 고통받는 존재가 그녀에게 보내는, 이 학원 지하에 숨겨진 끔찍한 진실의 조각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이미지의 정점에는, 거대한 마법진이 있었다. 학원의 기초를 이루는 바로 그 마법진이, 마치 무언가를 붙잡아 가두고 있는 듯한 형상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학원의 ‘심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학원의 ‘감옥’이었다.

그리고 그 감옥 안에 갇혀 있는 것은, 세상의 멸망을 불러왔던 바로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리아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끔찍한 금기가, 완벽한 마법 학원의 지하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존재의 목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