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 고요한 침입자

김수진은 도시의 소음 속에서 눈을 떴다. 창밖으로는 해묵은 아파트 단지들 사이로 새롭게 솟아오른 유리궁전 같은 오피스 빌딩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14층, 그녀의 작은 보금자리는 그 모든 번잡함 위에서 마치 외딴섬처럼 고요했다. 깔끔한 화이트 톤의 벽지, 미니멀한 가구들, 그리고 창가에 놓인 초록빛 식물들. 그녀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완벽하게 정돈된 안식처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알람이 울리기 전 눈을 떴다. 습관처럼 침대 옆 협탁 위에서 휴대폰을 집어 들었지만, 왠지 손에 잡히는 느낌이 이상했다. 어젯밤 분명 오른쪽에 두었는데, 왼쪽으로 옮겨져 있었다. 잠결에 움직였나? 피곤하긴 했지.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시간과 날씨를 확인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가운을 걸치며 거실로 향했다. 탁자 위에는 어젯밤 읽다 만 디자인 잡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펼쳐진 페이지가 다르다. 분명 이 도시의 건축 양식에 대한 기사를 읽다 잠들었는데, 지금은 북유럽풍 인테리어에 대한 페이지가 펼쳐져 있었다.

“내가 이렇게 건망증이 심했나.”

피식 웃으며 잡지를 원래 페이지로 돌려놓았다. 아침을 먹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토스트와 커피, 간단하지만 그녀에게는 완벽한 조합이었다. 식빵을 꺼내 토스터에 넣고, 컵에 원두를 담았다. 그때였다.

딸깍!

싱크대 위 선반에서 작은 유리병 하나가 떨어졌다. 정확히는,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수진은 화들짝 놀라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선반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올리브 오일 병이었다. 분명 선반 안쪽 깊숙이 넣어두었던 병인데, 마치 누가 밀어놓은 것처럼 바깥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다행히 바닥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모습이 기이했다.

“세상에, 깜짝이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병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진동에 약한 오래된 아파트라면 모를까, 이런 신축 오피스텔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혹시 지진이라도 있었나 싶어 뉴스를 검색했지만,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잠시 불안했지만, 이내 건물의 미세한 진동이거나, 자신이 제대로 놓지 않았을 거라고 합리화했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싸늘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보일러를 켰는데도 공기가 차갑게 느껴졌다. 거실 창문을 닫았나 확인했지만, 굳게 닫혀 있었다. 기분 탓이겠지.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수진은 지친 몸을 이끌고 현관문을 열었다. 텅 빈 집 안으로 들어서자 낮과는 다른 정적이 그녀를 맞았다. 평소에는 편안하게 느껴지던 고요함이 오늘은 왠지 모르게 스산했다.

거실로 들어선 그녀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소파 쿠션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리모컨이었다. 이상한 건 리모컨이 아니라, 그 옆에 세워져 있는 책이었다. 어젯밤 읽다 만 디자인 잡지. 아침에 원래 페이지로 돌려놓았던 바로 그 잡지가, 다시 북유럽 인테리어 페이지로 펼쳐져 있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아침에는 건망증이라고 치부했지만, 이건 달랐다. 분명 자신이 똑바로 놓았으니까.

“설마…”

그녀의 등골을 따라 오싹한 한기가 흘러내렸다. 집 안에 도둑이 들었나? 하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고, 깨지거나 훼손된 흔적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어서 더 소름 끼쳤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집을 자기 방식대로 ‘재정돈’한 것 같았다.

불안감에 휩싸인 수진은 서둘러 집안의 모든 불을 켰다. 환하게 밝혀진 공간은 조금의 위안을 주었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고 싶어 주방으로 향했다. 컵을 꺼내기 위해 상부장 문을 열었다.

쨍그랑!

컵 하나가 선반에서 튕겨 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수진은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아침의 올리브 오일 병과는 차원이 다른 현상이었다. 이번엔 분명히, 명백하게, 컵이 선반 안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마치 누가 컵을 던지기라도 한 것처럼.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누… 누구야?”

떨리는 목소리가 텅 빈 주방을 맴돌았다.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이 집 안에 그녀 혼자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녀가 바닥의 유리 파편을 치우기 위해 고무장갑을 끼고 빗자루를 들었을 때였다.

철커덕!

거실 쪽에서 들려온 소리에 수진은 숨을 멈췄다. 그녀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거실 쪽을 응시했다.

닫혀 있던 거실 베란다 문이, 아주 느리고 소름 끼치도록 조용하게, 스르르 열리고 있었다. 문틈 사이로 어둠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 틈새로 차가운 밤공기가 집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수진의 눈에 공포가 가득 찼다. 그녀는 굳게 다물었던 입을 겨우 열었다.

“거… 거기 누구세요…?”

대답은 없었다. 대신, 열린 베란다 문 너머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 차가운 시선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섬뜩한 확신이 그녀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온몸의 피가 식는 듯했다.

그녀는 더 이상 이 집이 자신의 안식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이 집은, 낯선 침입자의 공간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