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또 깊은 지하, 지표면에서 수백 미터는 족히 될 법한 곳. 습기와 먼지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강서현은 땀으로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낡은 작업복 위로 고대 문자의 잔해가 새겨진 돌벽의 그림자가 춤을 추듯 드리웠다. 손에 든 소형 탐조등 불빛이 벽의 갈라진 틈을 헤집자, 그녀의 눈은 사냥감을 포착한 맹수처럼 형형하게 빛났다.
“이진우 씨, 이쪽이에요.”
낮지만 또렷한 그녀의 목소리는 고요한 지하 공간에 잔물결을 일으켰다. 벽에 기대어 앉아 꾸벅꾸벅 졸던 이진우가 고개를 삐딱하게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잔뜩 불만이 서려 있었다.
“강 교수, 도대체 언제까지 ‘이쪽이에요’만 외칠 겁니까? 우리가 잃어버린 지하 도시의 비밀을 캐는 건지, 아니면 벽돌 나르기 대회에 나온 건지 헷갈려 죽겠습니다.”
그의 빈정거림에 서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탐조등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자, 진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진우 씨는 역사적 가치와 개인의 재산 증식 욕구를 구별할 줄 모르는군요. 이 벽의 작은 균열 하나에도 수천 년의 지혜가 담겨 있을지 모른다고요.”
“네, 네. 그 수천 년의 지혜가 저한테는 수천만 원짜리 금덩이로 보인다는 겁니다. 솔직히, 교수님은 여기서 고대 문명 파편 찾아서 학회지에 발표하고 싶으시겠지만, 전 그냥 ‘한탕’만 하고 싶다고요. 깔끔하게, 빠르게, 그리고… 황홀하게.”
진우의 눈이 반짝였다. 서현은 혀를 찼다.
“황홀한 건 꿈에서나 찾으시죠. 여기는 탐험이 아니라 연구 현장입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서현의 심장은 쿵쾅거리고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그들은 미지의 거대 지하 유적을 탐사하며 깊숙이 들어왔다. 발길이 닿을 때마다 새로운 고대 문명의 흔적이 나타났고, 그럴 때마다 서현은 미지의 퍼즐 조각을 맞추는 듯한 흥분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것은 분명 여태껏 발견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이진우 씨, 잠시만 이쪽으로 와봐요.”
서현의 목소리에 전에 없던 긴장감이 묻어났다. 진우는 그제야 의아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거구의 그가 다가오자, 좁은 통로가 더욱 비좁게 느껴졌다.
“뭐죠? 드디어 금이라도 발견했습니까? 혹시 저 아름다운 여신의 석상이라도…!”
“석상 같은 소리 마세요. 이건…”
서현은 탐조등을 더 깊숙이 비췄다. 벽에 난 작은 틈 너머,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단순한 먼지 낀 돌이 아니었다. 마치 살아 숨 쉬는 듯, 몽환적인 빛을 뿜어내는 정체불명의 결정체였다.
“이게 뭐야? 돌에 LED라도 박았나?” 진우가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시니컬한 얼굴에도 놀라움이 역력했다.
서현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차가운 벽돌 표면을 따라 손가락을 미끄러뜨리자, 틈새가 조금 더 벌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푸른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이건… 벽이 아니라, 일종의 위장 장치였어요. 이진우 씨, 이쪽으로 좀 더 밀어봐요.”
진우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현이 가리킨 부분을 어깨로 밀었다. 묵직한 돌덩이가 천천히 옆으로 밀려났다. 이내 좁은 틈이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의 입구로 변했다.
그 안은 예상과 달리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여태껏 그들이 탐사했던 거친 바위굴이나 흙먼지 쌓인 통로와는 달랐다. 사방이 매끄러운 금속 패널로 이루어져 있었고, 중앙에는 거대한 원형의 플랫폼이 자리 잡고 있었다. 플랫폼 위로는 수많은 크고 작은 수정들이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그 수정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비로운 푸른빛이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동시에 섬뜩할 정도로 이질적인 공간이었다.
“젠장… 여기가 진짜였잖아!” 진우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의 눈은 놀라움과 함께 탐욕스러운 빛으로 가득 찼다. “이런 건 고고학 책에도 안 나오는 거 아니야? 이거면 대박… 아니, 초대박이겠다!”
서현은 그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했다. 그녀의 시선은 오직 중앙의 플랫폼에 고정되어 있었다. 수정들 사이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거대한 패널 하나. 그 패널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복잡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우리가 발견했던 어떤 유적의 양식과도 달라요. 마치, 완전히 다른 문명권의 것 같아요.” 서현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건 단순한 고대 유적이 아니었다. 인류의 역사를 뒤바꿀 만한 발견일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그녀의 온몸을 휘감았다.
“젠장, 교수님. 그러다 또 뭘 건드려 버릴까 봐 무섭다니까요.” 진우가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주변을 경계하듯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서현은 홀린 듯 패널 앞으로 다가갔다. 표면에는 미세한 먼지조차 없었다. 수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마치 어제 완성된 것처럼 완벽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패널의 문양에 갖다 대자, 푸른빛이 일렁이던 수정들이 일제히 섬광을 뿜어내며 더 강렬하게 빛났다.
“이진우 씨! 이봐요! 뭔가… 반응하고 있어요!” 서현은 흥분과 경악이 뒤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진우가 황급히 그녀에게 달려왔다. “강 교수! 뭘 또 만진 거예요! 또 뭐가 터지려고!”
그가 서현의 팔을 잡아당기는 순간, 플랫폼이 굉음과 함께 울리기 시작했다. 바닥이 흔들리고, 천장에서 작은 돌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푸른빛은 더욱 거세어져 눈을 멀게 할 지경이었다.
“아악! 흔들려요!” 서현이 비명을 지르며 균형을 잃었다.
진우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 서현의 몸이 그의 품에 안기듯 엉겼다. 예상치 못한 밀착에 두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붉어졌다. 하지만 그 순간, 로맨틱 코미디의 클리셰는 잠시 미뤄졌다.
플랫폼 중앙의 거대한 패널에서 솟구친 푸른빛이 허공에 거대한 홀로그램을 투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복잡한 지도였다. 그들이 탐사했던 유적의 전체 모습이 완벽하게 재현되어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 유적이 이제껏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지상으로 이어진 여러 개의 통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지도 한가운데, 거대한 에너지원이 맥박 치듯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유적의 가장 깊은 심장부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게… 전부라고?” 진우가 경악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들의 발견은 빙산의 일각도 아니었던 것이다.
서현은 진우의 품에 안긴 채, 홀로그램 지도를 멍하니 바라봤다. 지도의 한쪽 구석에, 작은 점멸하는 불빛 하나가 새로 나타났다.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작았지만, 이내 그 빛은 빠르게 커지기 시작했다. 마치… 그들이 있는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서현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이진우 씨… 저거…”
진우의 시선도 그 점멸하는 불빛에 닿았다. 그 점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어떤 거대한 존재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듯했다. 그것은 지도를 따라, 그들이 있는 이 방으로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동시에, 홀로그램 지도의 푸른빛이 더욱 거세지며, 중앙의 에너지원을 중심으로 거대한 문양이 번개처럼 번쩍였다. 그 문양은 마치 경고를 나타내는 듯했다.
그리고 곧, 그들의 뒤편에 있던 입구가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닫혔다.
완전히 고립된 것이다.
“젠장…!” 진우의 표정이 굳었다. “강 교수, 설마 당신 또 뭘 잘못 누른 건 아니겠지?”
서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다가오는 미지의 존재를 가리키는 점멸하는 불빛에 고정되어 있었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저 멀리서 희미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지진이 아니었다. 분명, 무언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환영의 발걸음이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