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게임 (VRMMO)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잿빛 하늘은 언제나처럼 무겁게 짓눌러 있었다. 폐허가 된 도시의 잔해는 비명처럼 솟아오르다 무기력하게 주저앉았고, 흙먼지는 모든 것을 집어삼킨 지 오래였다. 강휘는 갈라진 입술을 혀로 축이며 낡은 철골 구조물 사이를 비집고 나아갔다. 며칠째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목구멍은 사막처럼 바싹 말라붙었고, 배에서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났다.

시야 좌측 상단에 희미하게 깜빡이는 생명력 게이지가 그의 현재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거의 바닥을 드러낸 붉은 막대. 정신력 게이지도 마찬가지였다.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지독한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절망감이었다. 언제까지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버텨야 하는 걸까.

강휘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허물어진 벽돌 건물 앞이었다. 한때는 ‘미래상점’이라고 적혀 있었을 간판이 녹슬어 떨어져 있었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편의점은 로또와도 같았다. 통조림이나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식료품을 찾을 희망이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무너진 입구에 다가섰다. 부서진 유리 조각이 밟히지 않도록 발끝에 힘을 주었다. 내부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코를 찌르는 곰팡이 냄새와 썩은 내. 강휘는 낡은 배낭에서 손전등을 꺼내 비췄다. 흙먼지가 수북이 쌓인 진열대가 보였다.

“제발… 제발 뭐라도.”

그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쉬어 있었다. 간절함이 뼈저리게 묻어났다. 텅 비어버린 통조림 코너를 보며 한숨을 삼켰다. 절망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왔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그는 구석구석을 살폈다. 음료수 냉장고는 부서져 있었고, 과자 코너는 쥐들이 다녀간 흔적만 가득했다.

그러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진열대 맨 아래, 거의 바닥에 붙어 있다시피 한 찢어진 상자였다. 먼지를 털어내자 ‘비상 식량’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열었다. 흙먼지에 뒤덮인 캔 하나가 굴러 나왔다.

‘휴대용 단백질 캔.’

손에 쥔 캔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 순간,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소리가 들렸다.

끼이이익… 끼익.

금속이 마찰하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 강휘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였다. 심장이 발밑까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이 소리는… 폐기물 처리 기계가 낼 법한 소리였다. 하지만 이곳엔 그런 기계가 있을 리 없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소리였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두컴컴한 상점 입구, 부서진 선반 사이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림자의 형상은 흡사 거대한 인간과 같았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인간이 아니었다. 관절이 뒤틀리고 꺾이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강철 파편과 녹슨 전선으로 이루어진 몸체, 한쪽 팔에는 망치처럼 변형된 커다란 쇳덩이가 붙어 있었다. 눈은 없었다. 대신 가슴팍에서 붉은 센서 불빛이 깜빡였다.

‘고철 흉갑병.’

강휘의 머릿속에 위험 등급 정보가 빠르게 스쳤다. 일반적인 고철 흉갑병은 맷집이 강하지만, 움직임이 느려 도망치기 쉬웠다. 하지만 이 녀석은 달랐다. 온몸의 관절이 비정상적으로 뒤틀려 있었지만, 그만큼 기괴한 속도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흉갑병은 멈춰 서서 가슴의 붉은 센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치 주변을 탐색하는 듯했다. 강휘는 숨을 죽였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끝이었다. 이대로 발각된다면, 만신창이가 된 지금의 몸으로는 버텨낼 수 없을 것이다.

센서의 붉은 불빛이 느릿하게 상점 내부를 훑었다. 그의 위치를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제발, 제발.

강휘는 자신도 모르게 주문을 외웠다. 붉은 불빛이 그의 코앞을 스쳐 지나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불빛은 진열대 뒤쪽으로 향하는 듯했다. 안도감이 밀려오는 찰나, 흉갑병의 머리가 갑자기 강휘가 숨어 있는 쪽으로 획 돌아갔다.

끼이이익!

그와 동시에 녀석의 팔에 달린 쇳덩이 망치가 바닥을 강타했다. 굉음과 함께 콘크리트 바닥이 움푹 파였다. 흙먼지가 폭풍처럼 일었다.

“젠장!”

강휘는 몸을 굴려 겨우 망치를 피했다. 충격파가 온몸을 강타하는 듯했다. 캔을 든 손에서 힘이 풀려 캔이 바닥에 떨어졌다. 날아가는 캔 소리에 흉갑병의 붉은 센서가 정확히 강휘를 향했다.

끼이이익! 끄득!

흉갑병이 마치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그 속도는 일반적인 고철 흉갑병의 두 배는 족히 되어 보였다. 강휘는 눈앞에서 번쩍이는 쇳덩이 망치를 보며 몸을 뒤로 날렸다. 뒤로 나동그라지며 부서진 선반에 등을 부딪쳤다.

“크윽!”

옆구리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이 전해졌다. 어제 입었던 상처가 다시 터진 것 같았다. 시야 좌측 상단의 생명력 게이지가 더욱 붉게 깜빡였다. 이제 정말 한계였다.

하지만 죽을 수는 없었다. 그는 이 폐허 속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희미한 의식 속에서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짰다. 부서진 선반 파편 중 날카로운 철근 조각을 움켜쥐었다.

“이 빌어먹을 고철 덩어리!”

강휘는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우며 포효했다. 흉갑병은 멈칫하더니, 다시 망치를 휘두르며 돌진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망치를 피하고, 휘두르는 팔의 빈틈을 노려 철근을 찔러 넣었다.

짜아아앙!

기계음과 함께 흉갑병의 몸체에서 불꽃이 튀었다. 철근이 몸체에 박히는 고통 대신, 강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귓가를 찢었다. 녀석의 맷집은 상상 이상이었다. 튕겨 나온 철근이 그의 손에서 벗어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눈앞에는 다시금 거대한 망치가 솟구쳐 올랐다. 피할 수 없었다. 이대로 끝인가?

순간, 폐허가 된 상점의 찢어진 천장 사이로 희미한 햇빛이 한 줄기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그 빛줄기 아래, 강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먼지 쌓인 카운터 아래,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작은 스위치였다.

‘비상 전원 스위치.’

상점의 비상 전원이 아직 살아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그 스위치에 꽂혔다. 마지막 남은 희망.

“꺼져!”

강휘는 필사적으로 망치를 향해 발을 뻗어 시간을 벌었다. 흉갑병의 망치가 그의 다리를 스쳐 지나가며 옷자락을 찢었다. 아슬아슬한 순간, 그는 온 힘을 다해 카운터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스위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끝이 닿는 순간, 뇌리에 경고창이 번개처럼 스쳤다.

[시스템 경고: 불안정한 전원 장치에 과부하를 가할 경우, 연쇄적인 폭발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젠장. 폭발이라니. 이 좁은 공간에서?

하지만 망설일 틈도 없었다. 흉갑병의 거대한 그림자가 그의 등 뒤를 덮쳤다. 강휘는 이를 악물고 스위치를 강하게 눌렀다.

딸깍!

순간, 상점 내부에 잠들어 있던 노란 비상등이 깜빡거리며 켜졌다. 그리고 동시에, 천장에서부터 거대한 전기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익!!!

흉갑병의 몸체에서 기괴한 비명 같은 전자음이 터져 나왔다. 녀석의 붉은 센서가 미친 듯이 깜빡이다가 이내 푸른색으로 변하며 정지했다. 스파크는 점점 거세져, 흉갑병의 몸 전체를 감쌌다.

강휘는 간신히 카운터 뒤에 웅크려 앉아 폭발에 대비했다.
콰아아아앙!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상점의 내부가 거대한 불덩이로 변했다. 잔해가 사방으로 튀었고, 뜨거운 열기가 그의 얼굴을 강타했다. 강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후, 모든 것이 잠잠해졌다.
강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상점은 이제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다. 흉갑병의 잔해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산산조각 나 있었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또다시.

그는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용 단백질 캔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폭발의 여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놓여 있었다. 강휘는 캔을 주워들었다. 이 작은 캔 하나가 오늘 그의 생명을 구원해 주었다.

그는 캔 따개를 이용해 뚜껑을 열었다. 고기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왔다. 갈증과 허기에 시달리던 그는 그 자리에서 캔을 비웠다. 텁텁한 맛이었지만, 그의 몸에 에너지가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생명력 게이지가 아주 미미하게나마 회복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이곳에 더 이상 머무를 순 없었다. 이 거대한 폭발은 분명 주변의 다른 위험 요소들을 끌어당길 것이다.

강휘는 서둘러 상점 밖으로 나왔다. 잿빛 하늘 아래, 폐허가 된 도시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귀에는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드르륵… 쾅. 드르륵… 쾅.

멀리서 들려오는, 묵직하고 규칙적인 금속 마찰음.
그것은 방금 쓰러뜨린 고철 흉갑병과는 확연히 다른 종류의 소리였다.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위협적인.

강휘는 캔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살아남기 위한 그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막 시작된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 도시의 가장 깊은 어둠 속을 응시했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