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오래된 상자

지훈은 먼지 쌓인 선반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시간을 파는 상점’이라는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이 낡은 가게는 그저 과거의 잔해들을 붙들고 있는 고물상에 불과했다. 할아버지가 남긴 유산이라지만, 딱히 대단한 비술이나 숨겨진 보물이 나올 리 만무했다. 그저 온갖 잡동사니들과 어둠 속에 잠긴 기묘한 향만 가득할 뿐이었다. 한때는 제법 쏠쏠한 재미를 봤다지만, 요즘 들어선 문을 여는 날이 더 적을 지경이었다.

“젠장, 도대체 이걸 언제 다 정리한다고…”

그는 덜컹거리는 나무 상자들을 정리하다가, 유독 손에 묵직하게 잡히는 낡은 서책 하나를 발견했다.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제목도 없고, 표지도 닳아 희미했다. 그저 오래된 가죽 끈이 억지로 묶여 있을 뿐이었다. 호기심이 동해 끈을 풀고 책장을 넘기려는데, 이상한 위화감이 들었다. 책은 지나치게 두꺼웠고, 특정 페이지에서 멈췄다. 겉표지를 들어보니, 예상대로 속이 파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나무 상자 하나가 들어 있었다.

상자는 검은색에 가까운 어두운 갈색이었는데, 아무런 문양도, 장식도 없었다. 마치 깎아놓은 듯 매끈했지만, 자세히 보면 미세한 굴곡들이 불규칙하게 새겨져 있었다. 손으로 쓸어보니 마치 오래된 뼈를 만지는 듯한 꺼끌꺼끌한 감촉이 느껴졌다. 뚜껑은 따로 경첩이 보이지 않았다. 억지로 벌리려 힘을 줘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하나의 통나무를 깎아 만든 것처럼 완벽하게 봉인된 형태였다.

“이게 뭐야? 할아버지가 숨겨놓은 건가?”

지훈은 답답한 마음에 상자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그러다 문득, 상자의 한쪽 면에 희미하게 패인 작은 홈을 발견했다. 그의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그 홈을 따라 미끄러졌다. 손끝에서 스쳐 지나가는 순간, 상자 뚜껑이 ‘스윽’ 하는 소리와 함께 미세하게 벌어졌다. 틈새에서 희끄무레한 빛이 흘러나왔다. 단순한 먼지가 아니었다. 마치 차가운 별빛이 새어 나오는 듯, 비현실적인 빛이었다. 싸늘하고, 동시에 어딘가 모르게 유혹적인 빛.

천천히 뚜껑을 열자, 상자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 ‘아무것도 아닌 것’이 전부를 채우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박힌, 손가락 한 마디 길이의 검은 파편 하나. 그 파편은 마치 밤하늘을 조각내어 응축한 것처럼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동시에, 미세하게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형태는 불규칙하고 날카로웠으며, 표면은 흡사 미지의 암석 같기도, 깊은 바다의 유리 같기도 했다.

파편을 손가락으로 집으려 하자, 그의 손가락 끝에 싸늘한 한기가 스며들었다. 순간, 머릿속에 수많은 이미지가 벼락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뇌리에 각인되는 광경들이었다.

아득한 우주 공간, 이름 모를 행성들의 기괴한 형태, 셀 수 없는 촉수와 날개를 가진 존재들이 밤하늘을 수놓고, 그들의 끔찍한 울음소리가 시간과 공간을 찢는 듯했다.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색채와 질감, 그리고 그 모든 것 위를 덮고 있는 존재의 그림자. 존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재앙인 듯한, 이해할 수 없는 신성함과 광기가 뒤섞인 모습이었다. 그의 뇌는 그 형언할 수 없는 광경을 채 소화하기도 전에 비명을 질렀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고,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망막 뒤에도 그 잔혹한 환상은 선명하게 아른거렸다. 뇌가 타는 듯한 고통과 함께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파편을 떨어뜨리려 했지만, 손가락은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파편에서 흘러나오는 푸른빛이 점차 강렬해지더니, 가게 안의 모든 그림자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선반 위의 오래된 도자기들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창밖에서 들려오던 자동차 소리나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점차 희미해졌다. 대신 귓가에 낯선 언어의 속삭임이 울려 퍼졌다.

그것은 마치 수천 년 전부터 존재했던 듯한, 깊고 불길한 목소리였다. 언어가 아니었다. 그저 의미 없는 음절들의 조합이었지만, 지훈은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 소리는 그의 가장 깊은 곳을 파고들어, 뿌리 깊은 공포와 함께 알 수 없는 욕망을 일깨웠다.

‘열어라… 받아들여라… 우리를…’

그 순간, 가게 안의 전등이 ‘탁!’ 하는 소리와 함께 꺼졌다. 암흑 속에서 오직 파편만이 기분 나쁜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림자들이 거대한 손처럼 그를 향해 뻗어오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간신히 파편을 놓아버렸다. 파편은 나무 상자 안으로 ‘툭’ 떨어지며 빛을 잃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그 순간의 경험은 이미 지훈의 존재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는 자신이 주워든 것이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 차라리 주워서는 안 될 것이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숨을 헐떡이며 상자를 다시 닫으려 했지만, 그의 손은 공포로 인해 떨리고 있었다. 상자의 닫힌 틈새에서 여전히 희미한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지훈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 상자가 자신을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이 상자에게 선택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불길한 유물은 이제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섬뜩한 예감을. 어둠 속에서,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가게 밖의 거리는 여전히 평화로웠지만, 지훈의 세상은 이미 영원히 변해버렸다. 그의 손에 들린 오래된 상자는, 이제 단순한 유물이 아닌, 미지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힘과 광기가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