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독립적인 단편 소설

차디찬 바람이 살갗을 찢을 듯 휘몰아쳤다. 수도 아르카나의 웅장한 첨탑들이 저 멀리, 회색빛 하늘을 꿰뚫고 서 있었다. 거대한 칼렉스 제국의 심장. 그러나 그 심장 아래, 그림자 골목이라 불리는 슬럼가는 언제나 굶주림과 절망의 냄새로 가득했다. 이안은 낡아빠진 외투 깃을 바싹 여미며 좁은 골목을 헤치고 나아갔다. 발밑에 밟히는 진흙과 알 수 없는 쓰레기들. 익숙한 풍경이었다.

“빌어먹을… 또 시작인가.”

골목 어귀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불길한 예감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었다. 광장 중심, 녹슨 철골로 얼기설기 엮인 처형대 위에 또 한 명이 매달려 있었다. 이번엔 늙은 약초꾼 할머니였다. 그녀는 사흘 전, 제국군 병사의 식량을 훔쳤다는 명목으로 끌려갔다. 식량이라 해봐야 썩어가는 콩 한 줌이었을 것이다.

“제국에 반하는 자, 모두 이와 같으리라!”

번쩍이는 강철 갑옷을 입은 제국군 병사가 채찍을 휘두르며 외쳤다. 그 굵고 검은 채찍이 허공을 가르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할머니의 시신은 이미 싸늘하게 굳어 있었지만, 그들은 조리돌림을 멈추지 않았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침묵했다. 그 침묵은 공포와 분노가 뒤섞인, 먹먹한 덩어리였다. 이안도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날 밤, 이안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지하수로로 향했다. 어둠과 습기가 뒤섞인 악취가 코를 찔렀다. 낡은 촛불 하나가 희미하게 길을 비췄다. 수로 끝, 녹슨 철문 안에서 희미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오늘도… 죽었다. 우리 어머니와 같은 할머니가.”

길이,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지만, 눈빛만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길이는 한때 제국의 서기관이었으나, 어떠한 이유로 파직당하고 그림자 골목으로 흘러들어 온 인물이었다. 그는 고대 문헌과 금지된 지식에 능통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 길이님.” 이안이 차갑게 말했다. “이렇게 앉아서 죽어가는 것을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이안에게로 향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제국의 폭정에 시달리다 못해 몸부림치는 자들이었다. 굶주린 농부, 재산을 빼앗긴 상인, 가족을 잃은 젊은이. 그들의 눈에는 이안과 같은 절박함이 깃들어 있었다.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나? 제국은 거대하고, 그들의 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한 남자가 회의적으로 중얼거렸다.

길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이안을 꿰뚫는 듯했다.
“그래, 칼렉스 제국은 강하다. 그들의 근원은 단순한 군사력이 아니지. 황제 크사스의 혈통은 오래전부터… ‘다른’ 존재와 닿아있었다.”

“다른 존재라니요?” 이안이 물었다.

“금지된 것들… 우리 세계의 바깥에 있는 것들 말이다.” 길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제국이 발굴한 고대의 유적들, 그들이 숭배하는 알 수 없는 형상의 신들. 그 모든 것이 황제의 힘의 원천이다. 그리고 그 힘은… 우리의 이성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불러온다.”

길이는 숨겨둔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다. 바싹 마른 양피지에는 기이한 상형문자들이 알 수 없는 언어로 새겨져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곡선과 기괴한 각도들이 시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안은 그 문양을 보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옛 왕국 잊혀진 기록의 조각이다. 제국의 초기, 그들이 이 심연의 힘을 어떻게 마주하고 길들였는지에 대한 단서가 담겨있지.”

길이는 손가락으로 두루마리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모든 생명은 꿈을 꾸지. 그 꿈의 밑바닥에는, 우리가 감히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들이 도사리고 있다. 제국은 그 꿈의 문을 두드렸고, 그 대가로 힘을 얻었다. 그러나 그 힘은 결국 제국 자신을 갉아먹는 독이 될 것이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은… 그 독을 역이용하는 것입니까?” 이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길이는 이안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우리에겐 선택지가 없다, 이안. 폭정에 맞설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닿은 힘의 근원을 찾아내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세계를 집어삼키기 전에, 제국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날부터 이안과 반란군 동지들은 길이를 따라 제국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길이는 지하수로 아래, 오래된 도시의 폐허 속에 숨겨진 고대 기록 보관소로 그들을 안내했다. 습하고 어두운 공간, 곰팡내와 흙냄새가 뒤섞인 곳에서 그들은 먼지 쌓인 석판들과 잊혀진 언어로 쓰인 책들을 발견했다.

“여기는… 제국의 모든 기록이 보관된 곳이 아니야. 더 깊은 곳, 더 오래된 것들이 묻힌 곳이지.” 길이의 목소리는 희미한 떨림을 담고 있었다.

이안은 석판에 새겨진 기괴한 형상들을 바라보았다. 촉수를 뻗은 거대한 눈알, 형태를 알 수 없는 구불구불한 몸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사지… 그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리고, 현실감이 희미해지는 듯했다.

“이것들이 제국의 신입니까?” 이안이 가까스로 물었다.

“신? 아아, 신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들의 본질은… 그저 존재할 뿐인 것들이다.” 길이는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알던 세상의 모든 질서를 비웃는 존재들. 제국은 그들의 그림자 아래 번영했고, 그 그림자는 이 도시의 뿌리 깊이 스며들어 있다.”

어느 날, 이안은 길이의 지시에 따라 한 폐허를 탐사하던 중, 지하 깊은 곳에서 거대한 문을 발견했다. 검고 매끄러운 암석으로 만들어진 문은 그 표면에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문양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착시를 일으켰다. 이안은 손을 뻗어 문을 만졌다. 차갑고 끈적한 감촉이 손가락 끝을 타고 전신으로 퍼졌다. 동시에 머릿속에 섬뜩한 이미지들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심연의 바다, 별이 없는 하늘, 비명을 지르는 도시…

“이건… 뭐지?” 이안은 문득 자신의 정신이 붕괴될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이안! 물러서!” 길이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미 늦었다.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묵직하고 섬뜩한 소리가 폐허 전체를 뒤흔들었다.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은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색깔이었다. 하지만 이안이 평생 보아왔던 어떤 색깔과도 달랐다. 형용할 수 없는, 너무나도 낯설고 이질적인 색깔들이 뒤섞여 기괴한 안개를 형성했다. 그 안개 속에서 알 수 없는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촉수들이 꿈틀거리고, 수많은 눈들이 동시에 이안을 응시했다. 그 눈들은 우주 전체의 차가운 공허를 담고 있는 듯했다.

“크아아악!”

반란군 동지 중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그의 눈동자는 공포로 가득 찬 채, 이내 초점을 잃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미쳐버렸다. 다른 이들도 혼란에 빠졌다. 몇몇은 도망치려 했고, 몇몇은 비명을 질렀다.

이안은 이를 악물었다. 두려웠지만, 왠지 모르게 끌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속삭였다. ‘보라… 이것이 너희가 찾던 힘이다…’

“길이님… 이게… 우리가 얻으려는 힘입니까?” 이안의 목소리는 떨렸다.

길이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아니… 이것은 우리가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될 재앙이다. 제국은 이 존재의 그림자만을 빌렸을 뿐. 우리는 지금… 그 존재의 심장에 닿으려 했다.”

그러나 시간은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제국군이 들이닥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갑옷의 철컹거리는 소리가 폐허에 울려 퍼지고, 횃불의 불빛이 기괴한 안개 속에서 번뜩였다.

“이 역적들을 모조리 잡아라! 저 문을 봉쇄하라!” 제국군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들의 눈에는 이안 일행뿐 아니라, 문 너머에서 피어나는 기괴한 안개까지 공포스럽게 비치고 있었다. 그들도 이 존재의 위험성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안! 제국군을 막아! 내가 문을 다시 봉쇄하겠다!” 길이의 외침이 들렸다.

이안은 칼을 뽑아 들었다. 이제 물러설 곳은 없었다. 문 너머의 존재가 뿜어내는 알 수 없는 기운이 그의 몸을 감싸는 듯했다. 공포와 함께 알 수 없는 광기가 피어올랐다. 그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막아라!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다!” 이안이 소리쳤다.

반란군들은 필사적으로 제국군에 맞섰다. 하지만 그들의 수는 압도적이었고, 무기도 훨씬 강력했다. 제국군의 칼날이 번뜩이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안은 눈앞의 병사들을 베어 넘기면서도, 자신의 정신이 점차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뇌리에는 아까 보았던 기괴한 촉수와 눈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바로 그때, 문 안쪽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뇌를 뒤흔드는 듯한, 모든 것을 파괴할 것 같은 소리였다. 제국군 병사들은 물론, 반란군들까지 비명을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 소리에 폐허 전체가 진동했고, 천장에서 돌멩이들이 쏟아져 내렸다.

기괴한 안개가 더욱 짙어졌다. 그 안개 속에서 수많은 촉수들이 튀어나와 제국군 병사들을 휘감았다. 병사들은 공포에 질려 발버둥 쳤지만, 촉수들은 그들을 순식간에 끌고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끔찍한 비명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모든 것이 침묵했다.

“젠장… 이건… 우리가 부르려던 게 아니야!” 이안의 옆에 있던 동지가 절규했다.

길이는 안간힘을 쓰며 문을 닫으려 했지만, 이미 존재의 힘은 너무나도 강했다. 문은 닫히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활짝 열리려는 듯 진동했다. 길이의 손끝에서 섬뜩한 푸른 빛이 피어올랐다.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고대 문자를 외우기 시작했다.

“이안! 제국을 무너뜨려라! 이 존재가 깨어나기 전에, 이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길이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그의 얼굴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이안은 길이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문 안쪽, 이제는 거의 완전히 드러난 그 존재의 형태를 보았다. 그것은 어떠한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였다. 형태가 계속해서 변하고, 시공간의 법칙을 무시하는 듯한 몸짓으로 꿈틀거렸다. 그것의 존재 자체가 세상의 모든 이치를 조롱하는 듯했다.

이안의 정신은 한계에 다다랐다. 환각과 현실이 뒤섞이고, 끔찍한 이미지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제국은 이 존재의 그림자를 밟고 권력을 유지했지만, 그 대가로 세상 전체를 이 심연의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었다. 자신들의 싸움은 단순한 반란이 아니었다. 이 세상 자체를 지키기 위한, 혹은 파괴하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

“길이님! 제가… 제가 막겠습니다!”

이안은 남아있는 반란군들을 향해 소리쳤다.
“제국으로! 수도 아르카나로 진격한다! 이 모든 재앙의 근원을 파괴해야 한다!”

그의 외침은 공포에 질린 자들에게는 광기로, 절망에 빠진 자들에게는 마지막 희망으로 들렸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평범한 반란군이 아니었다. 심연의 문을 목격하고, 그 광기에 노출된 자들. 그들의 눈빛에는 공포와 함께, 알 수 없는 결의와 뒤틀린 이해가 깃들어 있었다.

그들은 폐허를 등지고, 수도 아르카나의 첨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등 뒤에서는 알 수 없는 존재의 울음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도시의 지하를 흔들었다. 칼렉스 제국은 그 뿌리부터 썩어있었다. 이제 그 썩은 뿌리를 잘라낼 시간이었다. 설령 그 과정에서 그들 자신마저도 미쳐버리게 될지라도. 어쩌면 이미 미쳐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이안의 입술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승자의 미소도, 패자의 미소도 아니었다. 단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목격한 자의, 허무하고도 광기 어린 미소였다. 아르카나의 밤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별들이 저 하늘에서 차갑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