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지배하는 땅, 잿빛 폐허가 되어버린 거대한 제국 ‘아크론’의 변방. 진은 흙먼지로 뒤덮인 얼굴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손에 들린 낡은 곡괭이는 더 이상 광석을 캐는 도구가 아니었다. 이제 그것은 제국의 목덜미를 겨눌 칼날이 될 터였다.
“진! 서둘러!”
뒤편에서 날아오는 한나의 다급한 목소리에 진은 고개를 돌렸다. 한나는 앙상한 몸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여인이었다. 한때 제국의 궁정 기록관이었으나, 진실에 눈을 뜬 후 이 지하 혁명에 몸을 던진 인물이었다. 그녀의 곁에는 세라가 날렵하게 몸을 숙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그녀의 단검은 마치 굶주린 늑대의 이빨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묵묵히 따르는 골리. 우람한 체구의 그는 말이 없었지만, 그가 지닌 묵직한 망치는 어떤 문이든 부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지금 ‘검은심장 광산’의 심연에 있었다. 한때 제국의 부를 책임지던 광산이었으나, 정체불명의 재앙 이후 버려진 곳. 그러나 제국은 이 버려진 광산을 다시 통제하려 했다. 한나의 정보에 따르면, 이 광산의 가장 깊은 곳에는 제국이 숨겨둔 비밀 통신망의 중계기가 존재한다고 했다. 동시에, 제국의 비자금과 불법적인 병기 거래를 기록한 장부, 이른바 ‘검은 장부’도 그곳에 숨겨져 있다고 했다. 평민들의 피와 땀으로 세워진 제국이, 이제는 그 피를 빨아먹는 괴물이 되어버린 증거를 찾기 위해 그들은 여기까지 왔다.
“앞쪽에 제국 보초들이 있었어. 두 명. 방금 지나쳤다.”
세라가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다. 그녀는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데 능했다.
“우회하자. 충돌은 최대한 피해야 해. 우리의 목표는 중계기와 장부다.”
한나가 조용히 지시했다.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광산 내부의 공기는 습하고 무거웠다. 낡은 갱목들은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를 위태로운 모습으로 천장을 지탱하고 있었고, 발밑의 물웅덩이는 그들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벽에는 오래된 마석들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그 빛은 이 어둠을 걷어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좁은 통로를 지나자, 거대한 지하 공동이 나타났다. 천장은 아득히 높았고, 중앙에는 고대의 제단처럼 생긴 거대한 바위가 솟아 있었다. 그리고 그 바위 주위로, 어렴풋이 보이는 빛무리와 함께 제국의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다섯 명. 그들 중 두 명은 철갑을 두른 정예 병사였다.
“젠장, 이건 예상 밖인데.”
골리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그의 망치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이곳이 그곳이군. 중계기가 저 바위 위에 설치되어 있어.” 한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측면 통로를 찾아서 진입해야 해. 세라, 내가 신호를 주면 저 마석등을 깨뜨려. 시야를 혼란시킬 수 있어.”
세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웅크렸다. 진은 주위를 둘러봤다. 폐쇄된 광산은 곳곳에 무너져 내린 잔해와 녹슨 기계들로 가득했다. 그의 눈이 한 곳에 멈췄다. 녹슨 채 쓰러져 있는 광차.
“골리, 저 광차를 우리 쪽으로 끌어올 수 있어? 소리를 최소화해야 하지만.”
골리는 진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챘다. “저걸 이용해서 제단 쪽으로 밀어 넣자는 건가? 가능은 하지만… 제국 놈들이 눈치채면.”
“우리가 시간을 벌어줄게.”
진은 한나에게 시선을 던졌다. 한나는 그의 눈빛에서 결의를 읽었다.
“좋아. 진, 세라. 우리가 저들의 주의를 끌 거야. 골리, 자네는 광차를 준비해.”
세라가 나뭇잎처럼 가볍게 움직여 측면 통로로 사라졌다. 진은 낡은 곡괭이를 고쳐 잡았다. 그가 발걸음을 옮기자, 발밑의 작은 돌멩이가 미끄러져 떨어졌다. ‘쨍그랑!’ 하는 소리가 고요한 공동에 울렸다.
“누구냐!”
제국 병사 중 하나가 외치며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진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암흑 속에 숨어 있던 채로, 있는 힘껏 곡괭이를 바닥에 박아 넣었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갱도가 흔들렸다. 낡은 갱목 위에서 먼지가 후드득 떨어졌다.
“젠장, 갱도가 무너지고 있어!”
병사들이 혼란에 빠진 사이, 세라가 움직였다. 그녀의 단검이 마석등에 정확히 꽂혔다. ‘쨍강!’ 하는 소리와 함께 마석등이 터져 나가며 빛과 어둠이 교차했다. 순간적인 혼란 속에서 세라는 번개처럼 제국 병사 한 명에게 달려들었다. 짧은 비명과 함께 병사가 쓰러졌다.
“침입자다! 공격!”
정예 병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세라에게 달려들었다. 진은 어둠을 틈타 광차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는 골리와 함께 녹슨 광차를 밀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하는 끔찍한 쇠 긁는 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젠장, 소리가 너무 커!” 골리가 땀을 흘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제국 병사들이 진과 골리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때, 공동 한가운데에서 ‘쾅!’ 하는 폭발음이 들렸다. 한나가 연막탄을 터뜨린 것이었다. 짙은 연기가 순식간에 공동을 뒤덮었다.
“크헉! 눈앞이 보이지 않아!”
병사들이 기침을 하며 주춤거렸다. 그 틈을 타 진과 골리는 필사적으로 광차를 밀었다. 폐광의 레일은 울퉁불퉁했지만, 그들의 사명감은 그 모든 장애물을 압도했다. 광차는 서서히 가속하기 시작했다.
세라가 연막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 두 명의 병사를 추가로 처리했다. 정예 병사 둘만이 남아 연막 속에서 경계하고 있었다.
“골리! 지금이다!”
진이 외치자, 골리가 온 힘을 다해 광차를 밀어붙였다. 광차는 엄청난 기세로 제단 쪽으로 돌진했다. ‘콰아앙!’ 하는 굉음과 함께 광차는 제단에 부딪혔다. 제단 위에 설치되어 있던 중계기는 산산조각이 났다. 동시에, 거대한 바위가 흔들리더니 측면의 벽을 부수고 숨겨져 있던 통로를 드러냈다.
“찾았다!” 한나가 기쁨에 찬 비명을 질렀다. “저곳이야! 장부도 분명 저 안에 있을 거야!”
남아있던 정예 병사들은 동료들의 죽음과 중계기의 파괴에 분노하며 진과 세라에게 달려들었다. 진은 곡괭이를 휘둘러 병사의 검격을 막아냈다. 묵직한 충격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더 이상 그는 그저 광부가 아니었다. 그는 혁명의 불씨였다.
세라가 하나의 검을 피하고 다른 하나의 병사에게 달려들어 목을 베었다. 이제 한 명의 정예 병사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피를 뒤집어쓴 채 숨을 몰아쉬는 세라를 노려봤다.
“감히… 제국의 심장에 칼을 들이밀다니!”
병사가 외치며 진을 향해 돌진했다. 진은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곡괭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곡괭이 날은 정확히 병사의 심장 갑옷을 파고들었다. 끔찍한 금속음과 함께 병사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피와 땀으로 얼룩진 승리였다. 그들은 숨겨진 통로 안으로 들어섰다. 통로 끝에는 작고 밀폐된 방이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낡았지만 견고해 보이는 철제 금고가 놓여 있었다.
“이거군.” 진이 말했다.
한나가 금고로 다가갔다. 그녀의 섬세한 손길이 금고의 복잡한 잠금장치를 더듬었다. 한때 제국의 비밀을 다루던 그녀에게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잠시 후,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금고가 열렸다.
금고 안에는 낡은 가죽 장부와 함께, 손바닥만 한 크기의 기묘한 장치가 들어 있었다.
“검은 장부와… 이건,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휴대용 통신 교란 장치야!” 한나가 장부와 장치를 꺼내 들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장부에는 제국의 모든 비리가 적혀 있어. 그리고 이 장치만 있으면 제국의 전술 통신망을 완전히 마비시킬 수 있다!”
진은 장부를 받아 들었다. 낡은 종이에서 피비린내 나는 제국의 죄악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의 얼굴에 어둡던 그림자가 걷히고, 결의에 찬 빛이 떠올랐다.
“이것으로, 이제 시작이야.”
골리가 묵묵히 뒤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세라는 단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어둠 너머에 있을 제국의 심장을 향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검은심장 광산의 어둠 속에서, 평민들의 반란은 이제 막 불씨를 지핀 참이었다. 이 작은 불씨가 거대한 제국을 불태울 거대한 화염이 될 때까지, 그들의 싸움은 멈추지 않을 터였다. 제국의 부패한 심장을 향한 평민들의 외침은, 이제 막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