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성공”이라는 단어는 흔히 빛나는 별에 비유되곤 했다. 하지만 김준혁에게 그 단어는, 지금 그가 서 있는 수십 층 빌딩의 최상층을 휘감는 도시의 불빛이자,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 그 자체였다. 그의 눈앞에는 ‘아르케(ARKE)’라는 로고가 새겨진 거대한 전광판이 번쩍이고 있었다. 몇 년 전, 작은 지하방에서 시작했던 꿈이 현실이 되어 온 세상을 향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오늘 밤, 아르케의 신기술 발표와 함께 주식은 상한가를 쳤고,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외쳤다.

환호와 박수갈채 속에서도 준혁의 시선은 한 사람을 향했다. 바로 그의 가장 오랜 친구이자 아르케의 공동 창업자, 이도윤이었다. 도윤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기자들의 질문에 능숙하게 답하고 있었다. 언제나 준혁의 옆에서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했던 그였다. 둘은 서로의 눈빛에서 말없이 축하와 감사,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주고받았다.

“준혁아, 잠시 나 좀 보자.”

환희로 들끓던 파티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도윤이 준혁을 따로 불러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실려 있었다. 준혁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의 뒤를 따랐다. 아마 다음 프로젝트에 대한 중요한 논의를 하려는 것이겠지. 둘은 파티장과 떨어진 빌딩의 가장 높은 층, 준혁의 개인 집무실로 향했다. 통유리창 너머로 서울의 야경이 발아래 펼쳐져 있었다. 그 야경만큼이나 빛나던 준혁의 미래가, 불과 몇 분 뒤 산산조각 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무슨 일이야? 네 얼굴이 좀 굳어 있는데.” 준혁이 웃으며 물었다.

도윤은 준혁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문을 닫고 안쪽에서 잠금장치를 걸었다. 굳게 닫히는 문소리가 어쩐지 불길하게 울렸다. 그의 눈빛은 아까 파티장에서 보여주던 따뜻한 미소와는 전혀 달랐다. 낯설고, 차갑고, 날카로웠다.

“오늘이 아르케의 마지막 발표가 되겠구나, 김준혁.”

도윤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준혁의 머리를 망치로 때리는 듯했다. 마지막 발표?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야, 도윤아? 장난치지 마.” 준혁은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장난? 그래, 네가 생각하기엔 장난일 수도 있겠지. 평생을 ‘천재 김준혁’의 그림자에서 허우적대던 내게, 이 모든 게 장난처럼 느껴질 리 없겠지만 말이야.” 도윤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가웠다. 그의 얼굴에 비열한 미소가 번졌다. “아르케는 이제 내 거야. 네가 평생을 바쳐 이룬 모든 것이, 이제부터는 나의 이름으로 빛나게 될 거라고.”

준혁은 숨이 턱 막혔다. 믿기지 않았다. 눈앞의 남자가 자신이 아는 이도윤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그래, 멍청한 천재 녀석아. 네가 똑똑하다고 생각했나 보지? 하지만 세상은 결국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법. 그리고 그 힘은, 너처럼 순진하고 우직한 놈이 가질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도윤은 태블릿을 들어 준혁의 눈앞에 내밀었다. 그 안에는 충격적인 문서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회사 지분 매각 동의서, 특허권 양도 계약서, 그리고 준혁의 이름으로 된 해외 비자금 조성 혐의 보고서까지. 모든 문서에는 준혁의 서명이 위조되어 있었고, 그 밑에는 법적 효력을 갖춘 공증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준혁의 모든 재산은 이미 도윤의 수중에 넘어갔고, 그는 곧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구속될 예정이었다.

“이게… 이게 다 뭐야! 말도 안 돼!” 준혁의 목소리가 격앙됐다. “네가 감히…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우린 친구잖아!”

“친구? 하, 친구.” 도윤은 코웃음을 쳤다. “그래, 친구지. 내가 네 그림자 속에서 살면서 얼마나 많은 걸 감수해야 했는지 알기나 해? 네가 칭찬받을 때마다, 네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마다, 나는 너를 보며 얼마나 이가 갈렸는지 알아? 네가 모든 걸 가졌을 때, 나는 네 옆에서 웃으며 박수치는 꼭두각시 노릇을 해야 했어. 이제 그 역할이 바뀔 때가 됐어.”

도윤의 광기 어린 눈빛에서 진심이 읽혔다. 준혁은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자신이 가장 믿었고, 모든 것을 나누었던 친구에게서 온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배신이었다.

“넌… 넌 인간도 아니야!” 준혁은 이를 악물었다. “네가 이럴수록, 이 아르케는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 거야! 그리고 네 더러운 진실도 언젠가 드러날 거라고!”

“오호, 글쎄? 넌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될 텐데?” 도윤의 입꼬리가 섬뜩하게 올라갔다. “네가 사라지면, 아르케는 나의 독자적인 기술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회사가 되겠지. 그리고 너는… 역사 속에서 잊힐 거야. 아주 더럽고 추악한 범죄자로.”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무실 문이 굉음을 내며 열리고 건장한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준혁을 붙잡아 거대한 통유리창 쪽으로 끌고 갔다.

“이게 무슨 짓이야! 놔! 놓으라고!” 준혁은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의 몸은 순식간에 창밖으로 내던져졌다.

차가운 유리창에 몸이 부딪히는 순간, 준혁의 눈에 도윤의 얼굴이 다시 들어왔다. 그의 표정은 냉혹했다. 그 얼굴에서 지난 세월의 우정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광기와 승리감만 가득했다.

“잘 가라, 나의 오랜 친구. 이제부터 이 모든 영광은 나의 것이 될 테니.”

도윤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준혁의 몸은 공중으로 떠밀려 나갔다. 수십 층 높이의 빌딩에서, 그는 한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도시의 불빛들이 빠르게 멀어져 갔고,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할퀴었다.

그 짧은 순간, 준혁의 뇌리에는 과거의 기억들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도윤과 함께 밤샘 연구를 하며 라면을 나눠 먹던 시절, 실패에 좌절했을 때 서로를 다독이던 순간들, 그리고 아르케의 첫 성공에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던 기억들. 그 모든 순수한 시간들이 거짓으로 얼룩졌다는 사실에, 그는 비통함과 분노로 몸부림쳤다.

‘이도윤… 이 개자식…!’

몸은 중력에 이끌려 추락하고 있었지만, 그의 정신은 오직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찼다.

‘내가… 내가 반드시 살아 돌아올 거야. 그리고 네가 나에게 했던 것보다, 수백 배, 수천 배 더 처절하게 갚아줄 거야. 반드시…!’

차가운 지면이 눈앞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충격이 몸을 덮치기 직전, 그의 시야는 눈이 멀 것 같은 강렬한 백색 섬광으로 가득 찼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오직 머릿속을 울리는 굉음만이 남았다. 마치 시간이 뒤틀리고 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알 수 없는 감각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암전되었다.